사보타지의 이점
2015-07-31 도미니크 팽솔
“권력은 제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제 권력은 이 세계의 하부구조에서 나온다.(1)” ‘익명 위원회’는 가장 최근에 발간한 책에서(2) 이러한 단언으로부터 실제적이면서도 매력적인 결론을 이끌어 낸다. 혁명가들은 우리 세계를 관통하고 짜 맞추는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 조직되어야 한다. 그 하부구조는 이제 전 지구적인 차원의 네트워크가 될 것이다. 좋은 소식은 (현 세계는) 서로 연결된 매듭들이 전체적으로 허약해 목표를 잘 정하면 몇 차례의 행동으로도 전체 조직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구조로 발전하려는 자본주의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정보 서버를 해킹하고 정제소를 차단하며 대도시의 핵심부에 자리를 잡으려는 등의 확고한 결심을 한 기발한 창의력을 지닌 개인들로 구성된 단체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혁명적인 관점을 드러내는 이 이론의 기원은 사실상 적어도 20세기 초까지 거슬러간다. 왜냐면 교통, 통신, 유통망 등의 보급은 투사들로 하여금 하나의 근본적인 의문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익명 위원회는 이 의문에 재빠르게 긍정적인 답을 준 것이다. 기술 네트워크는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를 필연적으로 더 허약하게 만드는 것인가? 20세기 초에 전기, 텔레그래프, 전화기술이 발전했는데, 그 선들이 철도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졌다. 이 사실은 프랑스의 몇몇 무정부주의적 노동조합주의자들의 창의력을 자극했다. 국가와 대기업들이 점점 더 이러한 하부구조에 의존하게 되었으므로, (이들의 말에 따르면) 그 하부 구조를 공격함으로써 경제를 마비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오늘날 우리가 거의 아는 바가 없는 투사들이 1909년 3월과 5월부터 우편 파업에 돌입했다. 갈등이 시작되자 이들은 텔레그래프 선들을 잘라버렸다. 일을 다시 시작한 이후에도 이들은 해고된 800명을 복귀시키라고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선을 자르는 사보타지를 계속했다(해고된 사람들은 점진적으로 복귀하게 된다). 1909년 3월 20일자 〈뤼마니테〉에서 브라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알렉산드르 데루소(Alexandre Desrousseaux)는 이렇게 기뻐했다. “해방을 위한 결정적인 시기에 행할 총 투쟁을 위해 우편 통신의 도구 사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가 그 도구들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떤 힘을 부여해 주는지 깨달았다는 걸 의미한다.”
혁명적인 노조주의자와 경계에 서 있던 일단의 자유주의자들이 사보타지를 하나의 만병통치약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노동총연맹(CGT)이 이미 1897년에 이 투쟁 방법을 채택하지 않았느냐고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무정부주의자 세비스티앙 포르(Sébastien Faure)와 파리를 어둠 속에 빠뜨려 버린 1907년 3월의 전기기술자 파업 이후 “어둠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전기기술자 에밀 파토(Emile Pataud)는 노동자들을 숨 막히게 하는 하부구조가 그 속성 자체에 바로 그 노동자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허약함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보았다. “(집단) 난방기의 연료를 제공하고 이를 가정에 배달하기까지 이 거대한 도구에 있어서 모든 것은 중요하며 극도로 미묘하면서도 동시에 거대한 힘을 내포하고 있다. 사고라던가 사소한 오작동, 단순한 망각 혹은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빠른 행위 하나까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사보타지의 의도를 가지고만 있다면 가로막고 마비시키는 데 충분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긴 기간 동안 모든 전기 서비스를 멈추게 할 수 있다”( 〈사회의 전쟁 (La Guerre sociale)〉, 1909년 12월 8일).
파업 가담자들의 해고를 막으려는 목적으로 시행한 전례가 없던 사보타지의 물결에 이은 1910년 기차 화부들의 파업에서 이 열정적인 태도는 그 절정에 이르렀다. 갈등이 시작되고 나서 불과 며칠 후, 내각 의장인 아리스티드 브리앙(Aristide Briand)은 군대를 배치하고 화부들의 동원령을 내리면서 이 파업을 무력화시키려고 애썼다. 화부들은 일주일 후에 일터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다음에 정부는 강력한 보복을 당해야 했다. 9개월 동안 경찰은 3,000건의 사보타지(그 중의 90%는 철도와 연결된 전화나 텔레그래프 선을 잘라버리는 것이었다)를 조사해야 했지만 실질적으로 그 주동자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국가에 통제되는 기술네트워크의 취약성
〈사회의 전쟁〉은 이 사건을 요란하고도 자랑스럽게 지지했는데, 이 신문을 창간한 구스타브 에르베(Gustave Hervé)는 당시 반군국주의적 사회주의자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쓴 칼럼 “마드무아젤 큰 가위(후일 사보타지와 동의어로 사용되게 된다-역자)”는 박해받은 희생자들의 복수를 위해 은밀하고도 심술궂게 선을 잘라버리는 행동의 상징이 되었다(3). 그러나 이 방법은 효율적이라기보다는 소리만 더 요란스러웠다. 대개의 경우 기차 운행 시간이 지연될 뿐이었다. 예외적으로 1911년에 여파가 큰 탈선 사고가 발생했으나 희생자는 없었고 대신에 전 국민의 비난만 사게 되었다. 이번만큼은 〈사회의 전쟁〉도 비난 대열에 가세했다. (3,000명에 가까운) 해고된 화부들 중에서 1915년에 복귀된 숫자는 많지 않았다.(4)
얻어낸 결과가 신통치 않아서 노조는 이 방법을 고집할 수만은 없었다. 1910년의 파업에서 실패한 이후 특히 전기기술자들은 전원을 끊는 것이 기적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5) 총 파업의 신화는 “사보타지 결집” 프로젝트처럼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몇몇 절대자유주의자들이 완성했다.
그러나 혁명주의자들과 노조주의자들만이 적들의 약점이 기술적인 네트워크에 있다는 것을 간파한 유일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지도부 역시 이 가설로 기울게 되었다. 전쟁이 점차 산업화되어감에 따라 투사들은 적들이 의존하는 하부구조를 목표로 하면 적들을 흔들고 굴복시킬 수 있다고 파악했다.
미국 남북전쟁(1861-1865) 때부터 남부군은 전세를 자기편에 유리하도록 하고 북부군을 흔들기 위해 철도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소위 “산업망 이론(industrial web theory)”을 단계적으로 적용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이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소위 상대의 취약점을 겨냥한 폭격은 적 진영의 와해를 야기한다고 한다(6). 그러나 방어전문가인 데이빗 터커가 강조하듯이 이런 공격은 분명 승리에는 기여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폭격과 사보타지는 보다 광범위한 차원에서 전체 전략의 한 전술적 요소로서 층격을 줄 수 있을 뿐이다. 개별적으로 사용한다면 갈등을 해결하는 데 어떤 결정적인 영향력도 행사하기 힘들 것이다.
기술 네트워크는 관계와 쉽게 부서질 수 있는 흐름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 허약함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이제 그런 허약한 속성이 있는 기술 네트워크와 이를 겨냥한 공격에 저항하는 힘 사이에 편차가 있음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터커의 설명은 이렇다. “현대의 하부구조의 역설은 그 하부 구조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층위에서는 허약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의 하부구조는 그 구조에 고유한, 소위 “잉여분”을 가지고 있다. 즉 기능장애시 곧바로 한 요소를 다른 요소로 쉽게 대치할 가능성을 위해 설비가 최대한으로 구비되어 있다는 뜻이다. 터커의 주장을 좀 더 따라가 본다. 세 개의 사무실(B,C.D)과 연결된 중앙구조(A)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일 A와 B가 관계가 와해되면 두 사무실 간의 정보의 교환은 언제나 B와 중앙구조(A)에 연결되어 있는 C나 D의 중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네트워크의 “잉여”가 그 네트워크를 유연하고 내구성이 있게 만든다고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고 갈등이 발생할 경우 기술 네트워크의 허약함을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을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사회 분야에 있어서도 그렇다. 화물차 운전수, 항공관제사, 철도 종사원, 정제공장의 노동자, 전기 기술자 등은 정부에 대한 압박의 수단으로 어떤 흐름을 방해하거나 중단시킬 수 있는 그들의 힘을 여전히 사용한다. 예컨대 1995년과 2010년의 파업이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이 조작하는 한계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왜냐하면 한 편으로는 하부구조 핵심 부분의 통제가 지도부가 신임을 가진 간부들에게 맡겨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가 경제와 행정 분야에서 잘 가동되도록 중요 필수적인 네트워크를 잘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필요할 경우 실력 행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이는 모든 종류의 파업 가담자들이 때로는 미리 고려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글‧도미니크 팽솔Dominique Pinsolle
번역·이진홍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
(1) 익명 위원회 (Comité invisible), 〈우리의 친구들에게 (A nos amis)〉, La Fabrique, Paris, 2014.
(2) 익명 위원회는 〈다가오는 폭동 L’Insurrection quivient (La Fabrique, 2007)>으로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책은 2008년 고속철도(TGV)에서 발생한 연쇄 사보타지를 주도한 8명과 함께 고발당한 경찰 줄리앙 쿠파(Julien Coupat)에게 헌정되었다.
(3) 기욤므 드브랑슈(Guillaume Davranche), 〈죽기에는 너무 젊다(Trop jeunes pour mourir)>, L’Insomniaque-Libertalia, Montreuil-Paris, 2014.
(4) 크리스찬 슈방디에 (Christian Chevandier), 〈화부들의 파업 혹은 정체성의 구축(1848-2001) (Cheminots en grève ou la Construction d’une identité) (1848-2001)〉, Maisonneuve & Larose, Paris, 2002.
(5) 스테판 시로 (Stéphane Sirot), ‘전기 기술자 파업에서 전선 끊기 한 세기. 중심부에서 변방으로(1905-2004) (Un siècle de coupures de courant dans les grèves des électriciens. De la centralité à la marginalisation (1905-2004)’, 〈Annales historiques de l’électricité, n° 6〉, Paris, 2008.
(6) 데이빗 터커 (David Tucker), 〈전쟁의 어두운 기술을 밝히다 (Illuminating the Dark Arts of War)〉,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Londres, 2012. 이후 전개는 이 책을 참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