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혁을 위해선 대통령사면 엄격해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놓고, 국내 재벌의 뒤틀린 소유·지배구조가 또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기에다 8·15 광복절을 앞두고, 비리 등으로 수감된 재벌 인사들의 특별사면설이 정치권과 재계에서 흘러나와 재벌의 윤리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와 관련, 경제개혁연구소장으로 재벌 개혁에 앞장서온 김우찬 교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에 대한 형량 강화, 대기업 경영자의 중대범죄에 대한 사면권의 엄격한 관리 등 대통령의 공약이행이 재벌지배 구조의 개선방안”이라고 주장한다.
기업의 소유·지배구조는 기업의 경쟁력 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른바 재벌로 불리며 성장한 한국형 기업 집단은 개인 등 소수의 적은 지분으로 계열 회사들에 대해 절대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기업의 이윤과 가치보다는 총수 일가의 이익을 우선하며, 편법을 통해 혈연 간 경영권을 승계하는 등 갖가지 문제점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사례만 봐도 재벌의 소유·지배구조의 문제점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감사위원회의 도입 등 관련 제도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와 영미계 대기업의 소유구조는 상당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영미 국가들은 회사를 인수할 때 지분을 전량 인수해 100% 자회사화 한다. 지분을 전량인수하면 모든 회사가 상장 폐지돼 순환출자가 불가능해진다. 또한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교차출자가 불가능해지고 다단계 출자도 어려워진다. 다른 외부 주주가 없기 때문에 부채를 통해 자회사, 손자회사, 증손자회사를 가져야만 한다. 결국 회사 지분을 전량인수하게 되면 굉장히 간단한 영미식 소유구조가 된다.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부분인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벌 총수일가의 경우 지분 25% 정도를 인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를 통해 다단계 출자·순환출자가 가능하게 된다. 또한 한 번의 인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인수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총수일가는 직접지분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내부지분을 갖게 되는 소유·지배구조를 만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경제력의 집중(수많은 계열사 지배)’, ‘부당한 내부거래’, ‘외부 주주 견제 부재’ 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계열사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부당 내부거래 비중이 높아지게 된다. 총수일가들은 적은 직접지분으로 많은 내부지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계열사별로 지분율이 제각각이다. 어떤 회사는 100% 지분을 보유하기도 하고 어떤 회사는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기도 한다. 이런 경우, 두 회사 간의 거래는 굉장히 공정하지 않은 채 이뤄지게 된다. 총수일가의 지분이 많은 계열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는 결국 소액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황제경영의 불씨는 재벌의 내부 지분 부분소유
이 같은 소유구조는 결국 황제경영이 된다. 높은 내부지분율 때문에 소액주주들의 목소리 측, 반대의견이 있어도 잘 전달되지 않아 소통하지 않는 경영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은 회사를 예로 들면 SK, 현대, 한화 등이 있다. 이들 회사는 총수일가의 지분이 거의 없는 다른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경제적 부를 증식시키고 있어, 이는 결국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여러 종류의 부당 내부거래가 있지만 최근 이목을 집중시킨 형태가 있다. 바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다. 회사를 합병할 경우에는 합병비율이 가장 중요시 된다. 합병비율에 따라서 어떤 회사는 유리해지고 어떤 회사는 불리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일모직의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그 일가의 지분이 42.6%에 달한다. 반면 삼성물산에 대해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혼자만 1.4%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번 합병은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책정해 합병에 성공했고 결국 총수일가에게 유리한 거래로 끝났다. 이런 이유로 ‘합병’이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부당 내부거래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가도 상당부분 하락했다. 삼성물산은 주총 당일인 17일부터 10일간 약 17%가 떨어졌고, 제일모직도 10일도 14% 정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재벌가의 소유구조를 그대로 둔 재 소수지배구조의 문제점을 해결하기란 상당히 어렵다고 전망한다.
재벌 소유구조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과거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있었지만 금융위기로 1년 만에 폐지가 됐다. 또한 소유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지주회사에 대한 여러 가지 행위 규제가 완화됐고 최근에는 원샷법(지주회사에 대한 지속적인 규제완화 진행)을 통해 더 완화하려는 추세다. 또한 금융보험회사의 의결권도 15%까지 제한해야 한다는 공약사항이 나왔지만 이것도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그 외에도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결여돼 있고, 감사위원회 위원을 일괄선출하고, 정관을 통한 집중투표제 배제를 고수하고 있는 점도 부당 내부거래를 부추기고 있다. 이를 위해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과세와 과징금이 도입됐지만 여전히 만연하고, 심지어는 과거 이런 행위를 통해 배임·횡령을 했던 경제사범에 대해 특별사면을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굉장히 높은 상황이다.
그리고 외부주주의 견제와 관련해서 국민연금의 경우에도 이번에 굉장히 실망스러운 결정을 했다.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삼성 합병 건에 대해서 거의 100% 정도가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익과 재벌이익을 혼동하는 국민들의 인식도 문제가 있다. 이밖에도 기업에 대한 주주들의 소송도 중요한데, 기업의 위법사항에 대한 입증 책임을 원고에게만 떠맡기는 우리나라 법제도에서는 소송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다중대표소송 또한 이 같은 재벌 소유구조에서는 할 수가 없다.
이 제도의 1차 목표는 주주평등의 원칙이다. 현재 주주가 평등하지 않은 이유는 경영권 프리미엄 때문이다. 지분 25%를 매수하는 경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기 때문에 나머지 주주들은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에 주식을 판매할 수 없게 된다. 이 제도를 통해 모두에게 경영권 프리미엄을 나눠주게 되면 결국 경영권 프리미엄이 없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된다. 이에 따라 모든 주주가 주식매수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돼 주주평등의 원칙을 이루게 된다. 이 제도를 통해 얻는 또 다른 기대효과는 부분매수가 아닌 전량매수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전량매수가 이뤄지면 소유구조는 매우 간단해진다. 그렇게 되면 소유구조의 문제점인 경제력 집중의 문제, 부당 내부거래의 문재, 외부주주 견제 부재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이 제도로 인해 우려되는 점인 인수합병(M&A) 활동저하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 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영국의 경우 M&A 활동이 저하된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의무공개매수제도를 과거의 출자총액제한제도와 비교하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1차 목적은 경제력 집중의 억제였고 의무공개매수제도의 1차 목적은 주주평등대우의 원칙 실현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의 경우 과거 한국, 일본 등이 도입했을 뿐 이를 도입한 나라는 몇 되지 않는다. 반면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영국에서 시작돼 영국의 식민지였던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가 도입했다. 2004년에는 EU에서 회원 국가들에게 강력하게 제도 도입을 권장했고, 2012년 기준으로 28개 EU회원국가 중 22개 국가가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된 이유는 출자를 제한하면 실물투자도 제한되리라는 논리 때문이었다. 이에 반해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출자를 독려한다.
국가경쟁력· 기업윤리 등 관련 기업지표들 추락
재벌 지배구조는 내부견제장치와 외부견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통해 평가할 수 있다. 먼저 내부견제장치로는 이사회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최고경영자에 대한 성과평가 및 보상 기능이 있는지를 진단하게 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이사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최고경영자에 대한 평가 보상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재벌 총수가 있는 이사회에서는 절대로 최고경영자 평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열 2위, 3위 등에 대한 평가는 이뤄질 수 있어도 최고경영자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고경영자의 재임, 퇴임, 교체, 후임 등의 결정 또한 이사회에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우리나라 재벌기업의 이사회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외부견제장치로는 적대적 M&A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적대적 인수합병은 사실상 전무하다. 또 다른 장치인 주주 행동주의의 경우에도 외국인에 국한돼 있는 등의 이유로 최근 실패를 했다. 이때 주로 사용하는 마케팅은 ‘애국 프레임’을 통해 진실을 호도하는 방법이다. 외부견제장치의 가장 핵심은 독립적인 외부 사외이사를 외부 주주들이 선임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제도라 집중투표제도, 감사위원회 등으로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법개정의 실패로 도입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도 원고의 입증책임 부담으로 주주대표소송이 어렵고 다중대표소송 또한 불인정되고 있으며, 행동 규율인 일감몰아주기 규제들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공정위에서는 과징금 등을 부과할 수 있지만 기업의 효율성 증대, 보안성, 긴급성 등 거래 목적이 있는 경우 적용이 배제되고 있다.
우리나라 재벌 지배구조의 가장 큰 문제는 황제경영이다.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황제경영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9월 현대자동차그룹이 한전부지를 매입한 것을 들 수 있다. 그 당시 현대차그룹의 주가는 폭락했다.
또 다른 문제는 임원 보수를 들 수 있다. 같은 회사의 총수일가와 최고경영자의 보수 차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특히 총수일가는 내부지분이 높아 한 회사로부터만 월급을 받지 않는다. 가령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경우 3개 회사(계열사)에서 받는 보수를 다 합하면 100억원이 넘는다. 황제경영의 전형적인 예다. 결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많은 공약을 내걸었고 일부는 이뤘다.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이 입법됐고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도입됐다. 하도급법 또한 개정됐고 물류회사지배구조도 개정이 됐다. 하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공약들이 많다. 먼저 금융보험사 보유 비금융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 감사위원의 분리 선출, 집중투표 및 전자투표 의무화(일정 상장회사부터 우선 실시), 독립성 강화를 전제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 및 대표소송 제기권 등 주주권 행사, 다중재표소송제도 도입, 증권집단소송법 상 자격요건 및 허가요건 등 완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에 대한 형량 강화, 사면심사위원회 등을 통해 대기업 지배주주 경영자의 중대범죄에 대해 사면권을 엄격하게 상신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진정한 지배구조 개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김우찬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 관료 출신으로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직을 지냈고 현재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 재벌개혁운동을 벌이고 있다.
* 이글은 지난달 27일,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국가미래연구원·경제개혁연구소·경제개혁연대의 공동 주최로 열린 보수-진보 합동토론회에서 김우찬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정리·선초롱 기자 / 박수현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