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인들의 교양 없는 횡포

‘교양적인’ 지식인들의 비교양적인 행태
끼리끼리 모여 명예와 양지만을 좇아

2009-09-03     피에르 랭베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민주주의를 조롱하는 희극인에서 민주주의적 가치를 알리는 설교자로, 시골 콘서트홀의 가수에서 파리 사교계의 가수로, 정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엡도> 사장에서 라디오 방송 <프랑스 앵테르> 사장(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발탁)으로 자리를 옮긴 필리프 발(Philippe Val)의 여정이 눈길을 끈다. 발자크의 작품 <인간희극> 속의 야심찬 주인공 외젠 드 라스티냐크와 뤼시엥 드 뤼방프레에 버금가는 모습이 부활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발은 파리의 엘리트 논객으로서 자신의 적들을 현혹하고 길들이는 능력만은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발은 적들 일부에게 거울 중에 최고의 매력을 지녔다는 거울(자신의 정치 풍자 논설)을 건네며, 이 거울이 그들의 이미지를 번지르르한 문화로 덧칠해 향상시켜줄 것이라고 현혹하고 있다.

 

전 내무장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전직 광대 무정부주의자를 라디오 방송 <프랑스 앵테르> 사장에 발탁한 것은 문학과 예술, 지성을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그가 취한 행동이 드러낸 아이러니의 극치다. “나는 교양인들이 무대 맨 앞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투쟁하고 있다.” 하지만 그 투쟁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불행하게도, 교양인들의 섬세한 분석이 대중의 의견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양 지식인들의 역설적 행태

그의 이런 시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발이 사설을 쓰거나 콘퍼런스에 참가할 때면, 자신의 모든 주장을 모차르트, 프루스트, 아인슈타인, 갈릴레오, 스피노자, 페리클레스 등의 잡다한 표현들을 인용하며 끼워맞추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누구한테나 셰익스피어, 니체, 단테, 보르헤스, 몽테뉴의 표현 하나쯤을 쓸 권리는 있다”.(1)

지배 계급의 견해에 동조하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채 정상을 향해 가는 발의 행보는 그의 탐구 및 직관과 함께 양날의 무기를 형성해 비판 성향을 뼛속까지 주입시키거나 혹은 순응주의를 단련시켜, 얼마든지 해방과 종복을 동시에 유발할 수 있다.

<샤를리 엡도> 사장은 이전에 자신이 취한 행동과 상반된 일련의 사건들을 잇달아 지지했다. 1999년 3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주도한 코소보 전쟁 지지를 비롯해 유럽의회 녹색당 당수 다니엘 콘벤디트와 파리 시장 베르트랑 들라노에의 홍보 책임자로서 전통적인 정치 게임에 몰두했고, 급진좌파를 반미주의에, 반미주의를 반유대주의에 동화시켰으며, 중동 지역에서 이스라엘이 추진한 정책을 지지했다. 또 2005년 5월 유럽헌법조약의 채택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찬성 쪽에 섰다.

1998년 주간지 <샤를리 엡도>는 시류에 발빠르게 편승한 발의 추진력 아래 자유무역 반대투쟁 등 사회문제를 다뤘다. 또 발은 미디어가 “오로지 한 생각”만 주입시킨다고 비난하며 “문명전쟁”의 최일선을 모토로 자신의 논설을 날카롭게 재편성했다. 물론 희극인과 가수로서 1992년 <샤를리 엡도>를 창간한 발이 처음부터 특권층에 속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주간지가 기존의 저널리즘 틈새에서 번창하며 파리의 지식층을 농락했다. 그로부터 17년 뒤, 발은 <샤를리 엡도>에 쓰던 논설과 수필을 중단했다. 이어 그는 2007년 9월 프랑스 경제인연합회(MEDEF) 서머스쿨 및 수많은 텔레비전 토론에 패널로 저명인사들과 함께 초대되었고, 2008년 5월에는 칸영화제 단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샤를리 엡도>의 사장인 그는 종종 국가 원수의 전략적인 정책에 기여하는 태도를 취하며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분명히 했다.

또한 지적인 귀족계급에 매료된 그는 언론 세계에서 요란한 쇳소리를 내는 번득이는 요소들, 즉 지식인들의 현란한 표현들에 눈길을 돌렸다. 예를 들어 발은 파리고등사범학교 출신의 대표적 지식인이라 할 시사주간지 <르 포앵>의 베르나르앙리 레비, 라디오 채널 <프랑스 퀼튀르>와 프랑스·독일 합작 공영문화 TV채널인 <아르테>에서 맹활약 중인 라파엘 앙토방, 그리고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의 크리스토프 바르비에 등과 교류하면서 우정을 쌓았다. 그는 미디어에서 이 지식인들의 상투적인 표현들을 곧잘 인용했고, 이들은 발이 자신들을 들먹일 때마다 잊지 않고 새 친구인 그의 이름을 자신들의 매체를 통해 거론했다.

‘피그말리온적’ 지식인들의 떠벌리기

사실, 발과 그의 ‘피그말리온’(2)(자성적 예언가, 자기 충족적 예언가라고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이름에서 유래한 심리학 용어)들 사이는 서로가 서로를 선택한 상호적인 관계다. 부르주아 교양인들은 반항적인 선동가인 발을 소요 대열에서 떼어내 그를 이성적이고 온건한 사람으로 다듬어 자신들의 기사(騎士)로 활용했다. 이들은 그로 하여금 우아한 사교계와는 거리가 먼 대중 곁에서 자신들의 대변인 노릇을 하도록 시킨 셈이다. 이들은 발을 비판자의 역할을 포기한 전형적인 인물로 만들어버렸다.

1912년, 노동자 이야생트 뒤브뢰이는 프랑스 노동총연맹(CGT)의 금속연맹 집행위원회에 합류했다. 1883년 마부 아버지와 농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기계 견습공으로 일하며, 20세기 초의 특징인 혁명적인 노동조합운동 문화를 독학으로 익혔다. 또 그는 그림을 그리며 혁명문학을 탐독하고 프루동의 저서 원본을 수집했고, 1919년에는 센(Seine) 지역의 대규모 파업에 참가했다.

1년 후, 그는 센 행정관할구역 노조연맹의 사무총장직에 올랐다. 뒤브뢰이는 온건한 지식인들과 빈번한 만남을 통해, 이들에게 자신이 보는 프랑스 노동조합운동의 노선은 아직 독일 및 영국 모델보다는 훨씬 혁명적이라며 자랑했다. 당시 개혁적인 출판물 <노동 및 사회 정보>의 공동 창간자인 사회주의자 알베르 토마와 샤를 뒤로는 그를 격려하며 현 노선 유지를 당부했다. 역사학자 마르탱 핀에 따르면 뒤로와 토마는 뒤브뢰이에 대해 ‘평소 일반 노동자들이 반감을 갖지 않고 말을 걸 수 있는 보기 드문 지식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듯했다. 그는 “뒤로와 토마가 뒤브뢰이에게 더욱 많은 대중과 접촉할 기회를 주기로 합의했다”(3)고 덧붙였다.

명문 고등사범학교 출신에다 대학 역사교수 국가임용고시 수석 합격, 센 지역 국회의원, 그리고 국제노동사무소 소장을 역임한 토마는 프랑스 사회주의의 거물이었다. 그의 꿈은 “고용주와 노동자 계급 사이에 진지하고 항상 협력하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품에 뒤브뢰이를 품었다. 노동자들로부터는 지식인 취급을, 지식인들부터는 노동자 취급을 받았던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시도하는 노동운동 편에 서서 개혁주의자들의 나팔수 역할을 했다. 1924년, 토마는 뒤브뢰이의 문집을 출간한다. 그는 뒤브뢰이에게 보낸 축하 편지에 “제가 당신의 책 속에서 특히 좋아한 것은 글들이 보여주는 아주 단순하고 진지하고 직설적인 노동자의 말투입니다”라고 썼다.

뒤브뢰이는 1929년 자신의 저서 <표준>이 출간된 이후 유명세를 타게 된다. <표준>은 프랑스 노동자가 본 미국의 노동, 즉 과학적 경영관리법인 테일러리즘을 진단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큰 인기를 끌었다. 하루가 다르게 저자는 유명세를 탔다. 그는 곧바로 노동총연맹을 떠나 수필가 또는 고용주들을 위한 자문위원으로 일했고, 1960년대 일간 <피가로> 칼럼니스트를 끝으로 일을 그만뒀다.

유식한 교양인들 vs 멍청한 사람들

2006년 3월 16일,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TV채널인 <아이 텔레비전>의 토론장에서 발과 얼굴을 마주했다. 당시 <샤를리 엡도>가 그를 우롱했지만, 그 철학자는 풍자만화가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발)는 <비겁자들의 국민투표>라는 책을 썼는데, 하버마스 이후 유럽 문제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가장 강력한 파장을 미칠 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4)

베르나르앙리 레비가 발의 충격적인 표현을 하버마스의 불멸의 텍스트와 비교한 것을 계기로 이들 간에 문화적인 종속관계의 힘이 탄생되고, 이날 이후 이들은 모든 부문에서 뜻을 같이하게 된다.

제도권의 학위가 없는 독학자들이 (교양인들과 그렇지 못한) 두 진영의 입장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채, 사회적인 장벽을 뛰어넘어 상대 진영으로 진입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작가 기 드보르처럼 사이비 지식인을 추방하자고 자극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이비 지식인들을 두둔하는 식으로 “보험에 가입하듯, 문화다 싶으면 경의”를 표하고 있다.(5)

그래서 발은 인간관계에서부터 지식에 이르기까지 단 하나의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이를테면 중동 지역의 갈등에 대해선 성경을 읽는 유대교인과 무지렁이 무슬림 간의 대립으로 봤고, 서민층은 스피노자를 공부하는 것보다 축구를 선호할 것이라 예단하며, 이들을 “배때기가 출렁이도록 마신 싸구려 포도주와 향토 맥주 때문에 용기백배해진 둔한 시골뜨기들” 집단이라 우롱했다(2000년 6월 14일, <샤를리 엡도>). 이 풍자만화를 그린 재능 있는 만화가 쥘 또한 고등사범학교 출신에다 중국 전문가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마치 본능적으로 햇빛을 좇는 식물의 굴성(屈性)처럼 양지만을 지향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다. 2008년 10월 13일 발은 파리국립고등연극원 학생들을 상대로 “우리(작가들)는 대표들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대신해 말을 하기 때문이다. 들뢰즈의 말처럼 작가는 멍청한 사람들을 대신해 말한다”고 했다. ‘라디오 프랑스’를 청취하는 멍청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까?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로 알리앙스프랑세즈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각주>

(1) 1999년 10월 렌에서 발간된 잡지 <감전된 눈>(L’Œil electrique), 제9호 및 2001년 10월 24일 파리에서 발간된 <샤를리 엡도> 참고.
(2)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은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하고, 그 여인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여신 아프로디테(로마 신화의 비너스)는 그의 사랑에 감동해 여인상에 생명을 주었다. 이처럼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해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심리학에서는 타인이 나를 존중하고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으면 기대에 부응하는 쪽으로 변하려고 노력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교육심리학에서는 교사의 관심이 학생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요인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3) 잡지 <사회운동>, 제106호, 파리, 1979년 1~3월호.
(4) 2008년 www.leplanb.org 참고.
(5)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 짓기-판단력에 대한 사회적 비판>, 파리, Minuit,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