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물신주의에 저항하는 최후의 공간

디지털화 작업의 궁극적 목표는 상업적 돈벌이
어떤 유토피아적 신기술에도 책의 가치는 유효

2009-09-03     세드릭 비아지니, 기욤 카르니노 | 출판인

구글의 야망에 오랫동안 반대해왔던 프랑스국립도서관(BNF)이 소장도서들의 디지털화를 위해 구글과 협상했다고 8월 중순 발표했다. 가상 세계로 향하는 이 거대한 문화의 흐름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누가 그것을 통제할까? ‘e북’의 강력한 대두는 거대한 상업주의의 욕망 속에 세계도서관에 대한 꿈과 민주주의적 공간이 용해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미국 의회를 비롯해 유네스코와 관련한 32개 협력기관들은 지난 4월 21일 세계디지털도서관(WDL)을 발족시켰다. 이 사이버 도서관은 지구상의 문화유산 전체를 디지털화한 자료들을 이용객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이와 관련해 주요 투자자 중 하나인 구글이 “반대급부 없이 300만 달러를 출연했다”고 유네스코의 로니 아멜란은 전한다.(1) 이 프로젝트는 ‘유로피아나’(Europeana)와 구글 북스(Google Books)의 사이버 도서관 건설 계획에 뒤이은 것이다. 2008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개통한 ‘유로피아나’는 인터넷을 통해 유럽연합 25개 회원국의 국립도서관과 문서보관소 소장 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한편 구글은 가상 도서관을 개발한 최초의 기업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구글의 가상 도서관은 700만 권 이상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2)

‘인류의 모든 지식’의 디지털화는 ‘e북’(e-books), ‘리더’(readers) 등 전자도서의 개발과 병행해 진행되었다. 2001년 요란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제1세대 ‘e북’은 완전한 실패를 맛보았다. 하지만 오늘날 ‘e북’은 훨씬 더 유리한 상황에서 더욱 강해져 돌아왔다. 디지털이 우리 생활을 장악하고 있고, 인간 활동의 많은 부분이 기계로 이전된 덕택이다. 미국의 거대그룹 아마존은 킨들(Kindle)을 개발해 자사 사이트를 통해 콘텐츠를 구입할 수 있도록 했으며, 소니는 PRS 505 리더를, 필립스 계열사 아이렉스(iRex)는 일리아드(iLiad)를, 그리고 북켄은 사이북(Cybook)을 출시했다. 전화 사업자들 역시 이와 관련된 시장을 움켜쥐려 한다. 오랑주사는 리드앤드고(Read&go)를, SFR는 GeR2를 개발했다. 포켓용 컴퓨터인 PDA와 휴대전화, 나아가 아이폰도 콘텐츠를 제공한다. 현재 여러 ‘리더들’과 이와 연계한 PDF, 모비포켓(Mobipocket), HTML, TXT 등 파일 형태 사이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사방에서 포위당한 책은 디지털의 질서 속으로 들어가도록 독촉받고 있는 양상이다. 전자공학 분야의 다국적기업, 인터넷 쪽의 거대그룹들, 그리고 벤처기업들은 책의 디지털화를 황금을 캘 광맥으로 생각한다. 프랑스에서도 책의 디지털화 작업이 경제적인 중요성을 갖기 시작했다. 이 분야는 2007년 30억 유로의 매출을 올렸는데 출시된 제품 수는 7만5천 종, 판매량은 4억8500만 개였다.

경쟁으로 치닫는 디지털 작업

책과 관련된 많은 주체들은 그러한 상황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전자공학 분야의 거대그룹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무조건 지지하는 사람들, ‘e북’을 열렬히 찬양하는 일부 이론가 겸 프로모터들의 열정적인 주장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디지털화 작업이 자신들을 주변부로 내몰아 결국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며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예언 메커니즘의 완벽한 작동에 힘입어 각 주체들은 스스로 디지털 작업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인들에게 양보하지 않기 위해서(‘갈리카(Gallica) 프로젝트’)(3), 또는 도서산업의 외부 조직들과 경쟁하기 위해서(알리르-SLF 위원회)(4), 그렇잖으면 ‘거대그룹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5) 등이 그 이유다. 건설적이고도 비판적인 담론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습관적인 어투에 움츠러든다.

이와 관련해, 디지털 전문가 제롬 비달은 “현재의 변화에 대한 최악의 태도는 테크놀로지에 혐오감을 드러내고, 보수적인 견해를 지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현상 유지를 바라는 자세다. 결국 그런 태도는 출판 과점 권력만을 강화해주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6)고 설명한다.

가장 큰 착각 중 하나는 디지털화 작업이 충분히 이뤄진다면, 책 시장이 여전히 경제적 모델과 나름의 가치를 유지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알리르-SLF 위원회에 따르면 서점은 디지털화 작업의 모든 기회를 전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나아가 출판사들과 서점들은 중재자의 역할을 더 잘 수행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하지만 테크놀로지는 결코 불편부당하지 않다. 또한 그것은 선의 또는 악의의 용도 중 어느 한 가지에 좌우되지 않으며,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이뤄진다. 테크놀로지는 새로운 세계를 열지만, 그 세계는 옛 기술과 다른 고유의 장점과 결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연구자들을 위한 인터넷의 공헌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터넷이 가져다주는 거대한 흐름과 삶의 양식을 생각해봐야 한다. 인터넷은 자신의 가치와 고유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서, 중간자적 구조의 역할을 넘어설 것이다. “인터넷 사회는 매개 조직들에 의해 구조화된 총체로 정의되지 않고, 개별 수준의 미세 단위가 이뤄낸 총체가 되는 것이다.”(7)

디지털 작업에 대한 환상

온라인 판매가 급증하면서 이미 큰 타격을 입은 서점들은 가장 먼저 사라질 운명에 처한 중간자이다. 하지만 서점들은 책, 상담, 교류 및 만남의 장소로 여전히 그 가치가 있다. 더욱이 공간적인 제약은 다양성을 보장한다. 책의 세계에서는 중간 크기의 구조가, 디지털 세계에서는 구글·아마존 등 소수의 거대한 권력그룹이 어울린다. 이들 권력그룹은 서로 단절된 무수한 군소시장들과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에 부합하는 사회만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도서관을 예로 들자. 가상 네트워크를 통해 무한정한 텍스트를 읽을 수 있게 되면서 문화적이고 지성적인 풍요로움이 촉진될 것이라는 생각은 평등이라는 가치를 교육과 사회구조의 문제가 아닌 접근의 평등성 문제로 인식하게 할 것이다. ‘호주머니 속에 도서관을 넣는다’는 전능한 환상을 확산시키면서 말이다. 그와 반대로 해방 운동은 대중교육을 수호하기 위해 기회의 형식적 평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견해와 맞서 싸웠다. 외견상, 프랑스에서만도, 두 명 중 한 명꼴로 도서관을 찾을 정도로, 누구든지 수많은 도서들을 도서관에서 접할 수 있지 않은가!(8)

출판사의 기능 자체와 그들의 노하우는 ‘e북’이 정착됨에 따라 피상적인 것으로 변할 것이다. 제작 비용, 배포와 배급, 저작권 관리 등은 도서 생산에서 불가분의 관계지만, 이제 모든 책이 온라인을 통해 최소 비용으로 출간할 수 있는 만큼 더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e북’이 주도하는 변화에 따라 도서의 물질성이 와해되는 순간, 그리고 책과 관련된 문화 전체가 와해되는 순간 책의 텍스트성도 해체될 것이다. 사실 이것이 변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책은 고유한 속성을 잃고 다양한 디지털 전달 수단에 의한 재현 대상인 하이퍼미디어 오브제가 될 것이며, ‘엄밀한 의미의’ 전통적 형태의 도서를 디지털 포맷으로 재생산하는 방식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인쇄술의 등장에 뒤이은 30년 동안 손으로 책을 베껴쓴 수사본 제작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점, 그 후 인쇄물에 유리하게 수사본 시장의 전면적인 붕괴가 일어났던 점을 디지털과 종이의 공존을 고집하는 자들에게 상기시켜주자. 수사본은 점점 더 수집용으로 변모해갔다. 생산 과잉 현상 등을 비롯해, 현재 상황과 너무 비슷하다.

매체의 특성과 그 환경은 독서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은 효율성, 즉시성 그리고 정보의 대량 유통을 가져온다. 인터넷을 통한 독서는 더욱 분할되고, 조각나며, 분절된다. 디지털,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멀티미디어는 미국 심리학자들이 종이매체의 선형적인 독서에 반드시 요구되는 ‘깊은 주의력’에 대립된 개념으로 파악한 이른바 ‘하이퍼어텐션’(hyper-attention)(9)을 필요로 한다. 프랑스 문화통신부에 제출된 ‘독서, 디지털의 문화적 실천’이라는 연구가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전통적인 독서에서는 육체적 문제를 포함해 참을 수 없게 되는 위험이 나타난다. 우리는 ‘능수능란한 정보력에 의해 대체된 인지능력의 해체’(10)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니콜라스 카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인터넷 기업가들이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은 느리고도 게으르며, 집중적인 독서를 격려하는 것이다. 소일거리를 갖게 하는 게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11)

책은 민주주의의 보루

이와 반대로 책의 힘은 생각들에 체계와 위상을 부여하는 데 있으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책은 민주적인 토론의 공간을 형성한다. 역사가 로제 샤르티에는 18세기에 사회적으로 널리 퍼진 개인적 혹은 집단적 독서의 행위 자체가 인쇄물의 내용을 넘어서 어떻게 ‘프랑스 대혁명의 문화적 기원’,(12) 다시 말해 비판정신, 논쟁적인 토론과 정치적 교환 습관을 만들어냈는지 잘 보여주었다. 장소는 문학 살롱에서부터 마을의 야회(夜會)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는데, 거기서 구전의 독서가 공동의 관심을 표출하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종이책은 선형성과 유한성, 물질성과 현존성의 차원에서 속도의 숭배와 비판력의 상실을 저지하는 침묵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종이책은 닻을 내리는 지점이자 일관되고 분명한 사상을 예약하는 공간이다. 막대한 네트워크와 정보 홍수의 유혹에도 아랑곳 않고, 책은 저항의식이 숨쉬는 최후의 장소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글·세드릭 비아지니 Cedric Biagini, 기욤 카르니노 Guillaume Carnino
레샤페(L‘echappee)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테크놀로지의 폭정-디지털 사회 비판>(La Tyrannie technologique. Critique de la societe numerique, L’echappee, Paris, 2007)을 공동 저술했다.

번역·이상빈 malraux21@ilemonde.com
파리8
대학 불문학 박사. 역·저서로 <현대 프랑스 문화사전>과 <나폴레옹의 학자들> 등이 있다.

 


<각주>

 

(1) ‘전자도서관 인터내셔널’(L‘Internationale des e-bibliotheques)에서 인용. 로리 아슬레(Laurie Hasle), 20minutes.fr, 2009년 4월 27일자.
(2) 로버트 단턴, ‘보편도서관, 볼테르에서 구글까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3월호 참조.
(3) 장노엘 잔느네, ‘구글이 유럽에 도전할 때-도약을 위한 변명’, Mille et une nuits, 파리, 2005 참조.
(4) ‘디지털을 받아들여야 하는가?-서점과 도서산업을 위한 변화’ 보고서, 정보화·전자 네트워크 서점협회(Alire) 및 프랑스서점노조(SLF).
(5) 조엘 포실롱, <책은 어디 쓰일까?>, La Fabrique, Paris, 2008 중 ‘컴퓨터 기술자들과 상품 운반 전담원들의 세계?-독립 도서와 새로운 기술’ 참조.
(6) 제롬 비달, <읽고 함께 생각하기-독립 출판의 미래와 비판적 사고의 홍보에 대하여, Amsterdam, 파리, 2006.
(7) 파스칼 조제프, <즉물적인 사회>, Calmann-Levy, 파리, 2008.
(8) 브누아 이베르, ‘책의 미래’, <르 데바>, no 145, 2007년 5~8월호, p. 6.
(9) 젊은 세대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인지 태도를 가리킨다.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이 짧고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는 특성이 있다. 멀티미디어 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옮긴이.
(10) ‘관심의 형성과 파괴’, Arsindustrialis.org, 2008.
(11) ‘구글은 우리를 어리석게 만드는가?’, <레 카이예르 드 라 리브레리>(Les Cahiers de la librairie), no 7, 2009년 1월호.
(12) 로제 샤르티에, <프랑스 대혁명의 문화적 기원>, Seuil, 파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