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가격의 자유는 그렇게 탄생했다

[서평] ‘지스카르 데스탱의 해, 1974~1981’ 등

2009-09-0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지스카르 데스탱의 해, 1974~1981>
 세르주 베르스탱, 장클로드 카사노바, 장프랑수아 시리넬리 공저

이 책은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이 집권한 해’를 다루고 있다. 책을 보면 이런 구절들이 나온다. ‘프랑스 경제는 매년 3%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부러운 부분이다.’ ‘1974년과 마찬가지로 1980년에도 공공 부채가 국내총생산의 15%를 겨우 넘는다. 따라서 지금에 비해 당시는 거의 안정을 이룬 상황이다.’ ‘경제지표를 전반적으로 보면 불평등 지수가 실질적으로 낮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원의 평균 연봉과 노동자의 평균 연봉 차이가 1975년 3.84에서 1980년 3.56으로 낮아졌다.’

데스탱 전 대통령의 증언이 등장하기에 역사가들은 환영할 만하다. 1975년, 프랑수아 미테랑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된 지 1년 후. 데스탱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후세 사람들은 나에 대해 어떤 이미지도 갖고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 말과 달리 데스탱은 역사 속에 ‘위대한 현대적 개혁가’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어쩌면 데스탱도 내심 역사 속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했는지 모를 일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데스탱이 엘리제궁에 입성한 순간, 프랑스 경제는 당시 소련의 경제와 조금 비슷했다는 생각이 든다. “1970년경, 프랑스의 경제는 아직 정부 주도 속에 있었고 중앙집권적이었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했고… 봉급 결정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정부는 수출입을 통제했고, 국내와 국외의 통화 흐름을 조절했으며, 기초 투자에 대한 방향과 지원을 결정했다”라는 구절이 이를 증명한다.

데스탱은 이러한 프랑스 경제를 변화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중앙집권적인 정부는 점차 물러갔어야 한다. 경제주체들이 더욱 자유로운 입장이 되어 경제 자유화로 나타나는 문제를 스스로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고소득층과 엄청난 상속에 대해 세금을 높이 매기던 기존의 우파 정부와는 아주 멀다.”

그런데 데스탱 전 대통령의 7년 임기 동안에는 원자재값이 급등했고 실업률이 고공 행진을 했다. 1973년 말 42만1천 명이던 실업자 수가 1981년 봄에는 172만9천 명이었다. 그러나 데스탱 전 대통령의 성과라면 바로 ‘가격 자유화’다. 이 덕에 프랑스의 경제가 현재 말하는 ‘세계화’와 비슷한 것에 들어가게 되었다. ‘외부와 경쟁하고 싶다면 내부에서도 경쟁을 해야 한다. 고립은 몰락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외부와의 경쟁과 내부의 경쟁은 모두 필요하다. 이는 그동안 프랑스가 해온 가격통제를 끝내는 일이기도 하다.’ 당시 레이몽 바르 총리가 1976년부터 추진한 ‘강력한 프랑화 정책’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 정책으로 기업가들은 이제 프랑화 평가절하라는 혜택만 믿는 것이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경쟁하는 체질로 바꿔야 했다.

이 책은 설명이 명확하며 주장도 논리적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혼란스럽기도 하다. 2008년에 출간된 데스탱에 관한 전기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장피에르 코르슬레트, 프레데릭 아바디 지음)(1)에서는 가격 자유화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러니 여기서 의문이 든다. 도대체 가격 자유화의 기본 방향은 언제 프랑스 국민에게 소개되어 공개적으로 토론 대상이 된 것일까? 대답은 민주주의 사회의 운영 방식에 특이한 문제를 제기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경제 자유화는 언제나 우파 후보들에게 ‘밀수입품’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지금도 우파 후보는 일단 당선이 되면 경제 자유화를 외친다. 치안, 테러, 이민, 도덕과 종교의 가치는 분명 우파 정치인들에게 이로운 카드다.

데스탱이 했던 말을 살펴보면 더욱 이런 의심이 든다. “대다수 프랑스 국민은 가격 자유화에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1978년 봄부터, 그러니까 총선에서 좌파 일부도 가격 자유화가 서서히 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데스탱이 대통령으로 집권한 1974년에는 경제 자유화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지만 그로부터 4년 뒤, 데스탱이 재선된 1978년에는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그 누구도 경제 자유화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가격 자유화는 한 시대를 풍미했다. 동시에 프랑스는 선진 경제에 진입하게 되었다.” 데스탱이 했던 말이다.

<각주>

(1) Jean-Pieere Corcelette, Frederic Abadie,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Valerie Giscard d‘Estaing).

 

<유럽의 그린 도시> 필립 보베

취리히에서 파리, 런던까지 유럽의 환경친화적인 ‘그린 도시’를 둘러보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세계의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나볼 수 있다. 환경친화적인 도시 11곳이 소개된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환경오염이 심각하지만 도시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 책은 그린 도시 11곳을 무조건 이상화하지는 않는다. 환경 전문 기자이기도 한 저자 필립 보베는 환경친화적인 도시가 된 곳들을 현실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도시 환경정책의 방향을 새롭게 바꾸고 도시 환경의 질을 높이려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자료가 되는 책이다.


<델리지아! 이탈리아 미식의 역사>  존 디키

역사학자이자 기자인 저자는 1천 년 가까이 된 이탈리아 미식의 역사를 다룬다. 재미있는 글재주와 풍부한 자료를 통해 저자는 이탈리아의 미식이 어떻게 문화로 발전되어 ‘식탁의 예술’을 이뤄냈는지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시칠리아, 아랍을 통해 이탈리아에 전해진 요리, 슬로푸드 운동, 미식산업까지 미식과 관련된 것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편견을 깨기도 한다. 이탈리아 요리는 시골구석이 아니라 도심에서 탄생했고 여기에는 귀족들의 전략과 시민들의 확고한 정체성도 한몫했다는 것이다.


<세계 프로파간다 영화의 역사> 장피에르 베르탱 마기

프랑스 사회학자 자크 엘륄은 프로파간다를 이렇게 정의했다. ‘프로파간다란 개인이나 집단이 특정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악의적으로 조장하는 여론이나 행동이다.’ 서구 영화 전문 역사학자인 장피에르 베르탱 마기는 이 책에서 민주주의 사회도 권위주의적 체제 못지않게 영화를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영화가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사용된 예를 설명한다. 1·2차 세계대전, 냉전, 마오쩌둥이 이끈 중국 공산당 정부, 브라질의 독재 정부…, 모두 영화가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전락한 시기다. 영화가 어떻게 수단으로 악용되었는지를 잘 설명하는 책이다.

요약 및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한불상공회의소 격월간지 <꼬레 아페르> 전속 번역. 번역서로는 <여성의 우월성에 관하여>(200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