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화해가 가능하려면
[서평] ‘용서 없이 미래 없다’(데즈먼드 투투)
용서없이 미래없다
데즈먼드 투투 지음 홍정락 옮김 홍성사 펴냄 1만4500원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많은 정치적 탄압과 곡절을 겪은 정치인이다. 죽음의 고비만도 서너 차례 넘겼고, 연이은 망명과 투옥으로 점철된 정치 역정 속에서도 민주주의와 통일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역사적인 정권 교체를 한 후 정치 보복을 하지 않았고, 정적이던 박정희 기념관 건립도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무작정 불행했던 과거를 용서만 했겠는가? “용서를 하되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만이 재발을 방지하고 평화로 나아가는 길임을 인식했다. 그렇기 때문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출범시켜 인권탄압이 재발하지 않도록 과거사 청산을 시작했다.
DJ가 남긴 유산 ‘화해와 용서’
그는 재임 중에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반대자와 반대 세력에 대해 이미 용서를 하고 화해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이념과 계층 간의 대립이 남긴 사회적 대결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갈등을 통합하고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용서와 화해’를 화두로 던졌던 것이다.
한국의 20세기 역사는 갈등과 대립이 점철된 역사다. 국권 상실과 일제의 식민지 지배, 그로 인한 좌우의 이념 대립은 해방과 분단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정치·경제·사회·종교 각 영역에서 갈등의 구조를 청산하지 못한 채 이러한 대립은 여전히 국민적 통합과 화해를 가로막고 있다. 한국전쟁기의 이념 대립에 따른 대규모 민간인 희생, 정부 수립 이후의 반민주적 통치에 의한 인권침해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과거사’의 피해자들은 사건의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 등을 바라고 있고, 정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발을 빼고 있는 형편이다. 가해자(집단)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진실 규명도 국가기관의 비협조로 난관에 부딪혀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가해자 집단과 보수 세력은 과거 청산이 우리 사회의 ‘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라며 극력 반대하거나, 축소·외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화해하고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용서와 화해의 길은 분명 쉽지 않은 길이다. 그것은 원상 회복과 가해자 처벌을 통한 정의 실현의 길과는 다른 길이다.
남미의 과거청산 ‘인정과 기억’
화해와 용서는 비슷한 역사적 과정을 겪은 많은 나라들이 힘겹게 거쳐간 길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사를 ‘진실 규명’과 ‘화해’라는 열쇠로 해결하려는 진실화해위원회가 오랜 기간 고민하며 연구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간 필자는 위원회의 화해·위령 사업과 재단 설립 업무를 맡아 세계 각국의 사례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그중 몇 나라는 우리 사회의 용서와 화해의 길을 여는 데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와 같이 1970~80년대 오랜 군사독재를 거친 아르헨티나와 칠레도 과거사 청산을 경험한 나라다. 이들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 규명 후 국가에 의한 명예 회복과 상당액의 피해 보상을 실시하고,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추모·기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인권침해의 주요 장소인 ‘해군기술학교’를 ‘국가기억자료보관소’로 개조해 과거를 기억하고 있고, 칠레는 산티아고 중심부에 ‘국가기억박물관’을 건립하고 있다. 모두 과거사의 재발 방지와 국민 교육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 국가는 가해를 인정하고 피해자 명예를 회복하고 피해를 보상하며, 불행한 역사를 기억하는 과정을 통해, 대립·분열의 터널을 빠져나와 인권 보장과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 있다. 최근 유엔 등 국제 인권기구의 권고에 따라 정의를 확립하기 위해 가해자에 대한 재판도 진행하고 있다.
조건 없이 용서를 받아들이는 가톨릭도 ‘진실·화해’보다 ‘진실·정의’를 강조한다. 화해란 가해자가 먼저 언급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분노와 고통스런 성찰을 거친 후에 가해자에게 내미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해자가 용서를 말하는 건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남아공 투투 대주교와 ‘우분투’
넬슨 만델라가 1994년에 대통령이 되었고, 이듬해에 진실화해위원회(TRC)를 구성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즈먼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가 위원장이 되고, 17인의 위원으로 3개 소위원회가 조직되었다. 투투 위원장은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국민당의 끊임없는 반발을 뚫고 활동을 펼쳐나갔다. 위원회는 전국에 중계되는 청문회와 현지 조사를 통해 사건을 조사했다. 많은 가해자가 청문회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고백하며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었고, 피해자는 고통과 한을 해소하고 받아들였다. 전 국민과 더불어 끔찍했던 과거의 기억과 대면함을 통해 ‘정화와 용서’의 과정을 거쳤다.
“진실 없이 진정한 화해는 없다”(보고서의 권고5)는 결론을 내리며, 불행한 과거가 재연되지 않도록 다양한 권고를 국가에 제시했다. 하지만 권고만으로 화해가 곧바로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국가는 후속 조치로 피해자들에 대한 긴급임시보상을 통해 피해자의 생활고 완화와 일자리 지원 조치를 취했으며, 각종 기념사업을 실행했다. 남아공은 지금도 완전한 화해를 이루지 못했다. 그것은 ‘진실 고백→가해자의 참회→피해자의 용서→보상→기억과 기념’이라는 긴 과정을 통해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용서 없이 미래 없다>라는 저서에서 보듯 투투 주교는 ‘용서 없이 화해 없다’는 신념으로 폭력과 갈등이 지배하던 남아공의 과거사를 지혜롭게 해결하며, 화해의 주춧돌을 놓았다. 남아공 전통사회의 우분투(ubuntu·형제애)라는 정신적 자산을 적극 활용해 관용과 용서를 이끌어냈다. 우분투란 “관대하고 호의를 베풀며, 친절하고 다정하고, 남을 보살피고 자비로우며, 가진 것을 나누는”(책 41쪽) 인간적 특징이다. 그 용서는 물론 진실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가해자가 화해를 말하는 한국
이에 비해 우리는 이념과 계급 대립의 산물인 과거사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호텔과 서울시청 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그 악명 높던 안기부의 청사도 허물고 녹지로 환원하겠다는 ‘역사 망각증’의 정치인을 갖고 있지 않는가? 또한 울산·문경 등 민간인 학살 피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은 여전히 ‘시효이익’ 의 방패 뒤에서 명백한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지 않는가? 국가원수가 조사 도중 자살을 하고, 피해자의 입이 아니라 가해자의 입에서 먼저 ‘용서와 화해’가 발화되고 있다. 게다가 규명된 진실을 가해자들이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참회와 용서조차 구하지 않고 있지 않다.
화해는 용서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지만, 진실 없는 용서는 불가능하며 불안한 화해일 것이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통해 국민 통합과 선진 사회로 나아가려면 제대로 된 과거사 정리가 필요하다. 해방 후 무수한 사건으로 상처 입은 국민을 진정으로 치유하려면 국가와 가진 자들이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고, 새로운 사회 건설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기관 및 가해자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와 용서를 구하며, 명예 회복과 피해 보상을 한 후, 과거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을 추진하는 후속 기관(과거사재단)을 설립해야 한다. 과거사 청산 불성실국이라는 일본을 향한 비난이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진정한 인권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글·석원호
철학박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화해사업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