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트기 시작한 민주주의와 인권

[Spécial] 아프리카의 역사를 새로 쓰다 3

2009-09-04     앙드레미셸 에순구|언론인

1963년 창설될 당시 아프리카통일기구(OAU)는 세 가지 중요한 야망을 내세웠다. 각국의 주권을 보장하고, 영토 전체를 수호하며, 아직도 외세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의 탈식민화와 자유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인권에 대한 존중은 거의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1980년대 초반까지 이 기구는 이디 아민 다다가 우간다에서, 조제프 모부투가 자이르에서, 혹은 아메드세쿠 투레가 기니에서 자행하는 심각한 인권침해에 침묵을 지켰다. 당시, OAU 내부에선 외부의 위협에 강박관념을 지닌 반제국주의 담론이 주류를 형성했다. 인권과 관련된 일체의 논의는 예전의 서구 식민주의자들이 숨겨 들어온 트로이 목마로 의심됐다.

각종 정상회담과 콘퍼런스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인권보호 메커니즘을 마련하려는 시도는 기구 내부에서 격렬한 공격 대상이 됐다. 사실, 이런 시도는 식민지 시대가 종식되기 이전에도 있었다.(1)
 
역대 정권들, 경제 앞세워 인권 무시

그러나 아프리카 주민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끊이지 않자, 1970년대 말 아프리카의 여러 기구들은 행동에 나섰다. 1981년 감비아의 반줄에서 아프리카인권헌장이 채택되었다. 헌장은 5년 후부터 효력이 발생했다. 1974년 채택된 ‘난민에 대한 아프리카 협약’과 더불어 헌장은 기본적 자유를 보호하려는 아프리카 대륙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비록 여러 측면에서 위대한 국제적 선구자들의 유산(2)을 물려받았을지라도 아프리카 헌장은 내용 면에서 사뭇 달랐다. 그 현격한 차이는 아프리카헌장이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아프리카적 개념을 반영해, 인권과 국민의 권리를 동시에 수호하려는 열망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 개념에 따르면 비록 “개인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갖는다고 할지라도 권리의 특권적 주체는 공동체이다”.(3)

게다가 1980년대에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토론들의 주된 내용은 신속한 경제적 독립에 관한 것이었다. 유럽인권협약과 달리, 아프리카 헌장은 시민적 혹은 정치적 권리와 마찬가지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들의 수호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했다. 헌장은 아프리카 국민들에게 인권을 넘어 가족, 공동체, 대륙에 대한 의무를 규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군사 혹은 민간 독재자들이 군사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모습이 일반화돼 있었고, 민주주의와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예외적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권력의 폭력에 맞서 자신들의 목숨을 바쳤다. 철학적인 논쟁을 넘어, 이런 모습은 국가 앞에서 한 개인의 인권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4)

인권재판소는 1980년부터 설립 시도가 있었으나 2004년에 가서야 구체화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인권재판소가 정의에 대한 아프리카적 이념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며 반대했다. 그들에게 정의는 화해에 기초해 있지 고발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반대파의 의견을 받아들여, 1987년에 당초 안을 수정한 아프리카인권위원회가 설치됐다. 그러나 그 기관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보다 각국의 이미지 보호에 더 몰두하는 등 지극히 불충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기관이 줄타기 곡예사처럼 거쳐온 지난 20년간 아프리카 대륙은 1994년 르완다에서의 투치족 대학살, 1996년 이후 콩고의 끝없는 전쟁 등 불행으로 점철됐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만도 400만 명 정도가 사망했는데, 전투가 아닌 반복되는 인권침해에 의한 것이 많았다.
 
아프리카를 바꿀 인권 보호

OAU가 인권 문제에 침묵했지만, 이를 대체해 2001년 아프리카연합(AU)이 창설된 직후부터 기본권을 더 잘 보호하기 위해 회원국들이 공개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은 하나의 진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적 비전도 아프리카 국가의 대부분이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 한계가 뚜렷하다.

최근 들어 여성인권의정서(2003), 아프리카청소년개발헌장(2006) 등 법적인 장치와 절차들이 늘어났다. 냉전 이후의 국제 질서가 변화를 요구했다. 인간의 기본적 자유권과 권리를 침해한 국가와 개인들은 이제 압력을 받게 된다. AU는 반인륜 범죄, 전쟁범죄와 고문 등의 혐의로 벨기에에서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인 차드의 옛 대통령 히센 하브레를 아프리카에서 재판하기로 2006년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다.(5) 재판은 독재자가 피신했던 세네갈에서 열릴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민주주의의 진보는 인권 보호의 지역 메커니즘이 더욱 효과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안겨준다.

글·앙드레미셸 에순구 AndréMichel Essoungou
제네바에 거주하는 언론인으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 진보매체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번역·이상빈 malraux21@ilemonde.com
파리8대학 불문학 박사. 역·저서로 <현대 프랑스문화사전>과 <나폴레옹의 학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