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디어의 죽음

‘르 디플로’ 10월호 머릿기사 프롤로그

2009-10-06     편집자

섬유·철강·자동차·은행…, 그리고 이제는 신문의 차례인가. 미국에서 지난해 1만5천 명의 기자가 해고됐고, ‘살아남은 자’들의 급여도 대부분 삭감됐다. <뉴욕타임스>는 생존을 위해 멕시코의 최고 갑부에게 연 14% 이자로 대부를 받았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오랜 전통의 종이신문을 포기하고 인터넷 매체로 전환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파산했다. 디트로이트·시애틀·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의 유력지도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스페인·프랑스 등 유럽 신문, 그리고 한국의 신문들도 예외가 아니다. 일반 가정은 휴대전화, 유료 케이블TV, 인터넷 등 뉴미디어에는 돈을 쓰지만, 정작 신문은 외면하고 있다. 일반 독자에게 신문은 심심풀이 게임 프로그램보다 못한 싸구려 신문지이거나 공짜 전단지에 불과하다. 부동산과 증권 파생상품 투자 정보, 패거리 집단의 인물 동정, 유한계급의 여가를 위한 소비, 날씨, 스포츠 섹션, 그리고 몰가치적인 정치·사회 기사 등이 지면을 가득 채운다. 사회적 삶이 한갓 외양에 지배되고 있다는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가 도래한 셈이다. 사실, 언론의 위기는 스스로 언론이길 포기하고 스펙터클의 마술사로 나서면서 자초한 측면이 크다. 언론의 다양성을 내세워, 신문이 수익성 없는 본업을 팽개치고 방송에 뛰어든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인가? 설상가상, 민영 방송사들이 우후죽순 난립해 천박함의 경연을 벌일 게 분명하다. 이러한 언론의 위기를 두고, 그저 하나의 경제 모델이 또 다른 패러다임에 밀려나는 것일 뿐이라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에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다. 공적 토론의 장이 무너져가고 있는 것이다. 출구 없는 언론의 위기 상황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다시 언론의 본질과 가치를 되짚어보는 것은 민주주의의 복원을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