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회의 위험성

2015-08-31     성일권

 

만일에 국내 대기업들이 언론사에 광고나 협찬금을 주지 않는다면 어찌될 것인가? 아마도 엄청난 야단법석이 날 것이다. 당장에 언론들은 기자 급여를 대폭 삭감하고, 지면을 줄이고, 심지어는 인원 감축에 나서야 할 것이다. 국내의 모든 언론들에게 광고 수입은 전체 매출의 80~90퍼센트를 차지할 만큼 절대적이며, 특히 대기업 광고는 언론사의 존폐를 가늠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업 광고를 받기 위해서라면, 기업 CEO의 시시콜콜한 취미생활에서부터 경영철학, 인생관, 심지어 가족들의 세세한 경조사까지 챙겨주고, 별 것 아닌 경영에 대해서도 감동경영, 혁신경영, 현장경영, 글로벌 경영, 카리스마 경영 등 갖가지 미사여구를 동원해 그럴 듯하게 꾸며줘야 한다. 얼마 전,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에서 악덕재벌 조태오의 실존인물로 거론되는 악덕 재벌들이 수두룩하지만, 언론은 이를 애써 모른 체한다. 어쩌다 언론이 나름의 비판 기능을 발휘하지만 승자는 늘 대기업이다. 이명박 정권에 이어 지금의 정권도 노골적인 친(親)기업 정부인데, 언론이 아무리 기업의 비리를 나열한다 한들, 관심을 갖고 칼을 휘두를 리 만무하다. 언론은 꼼짝달싹 않는 대기업에 늘 백기를 들고 투항한다. 대기업은 성가신 언론사에 꽤 큰 돈더미를 미끼로 던지며, 자사에 비판적인 기자나 편집책임자의 보직변경 또는 해고를 요구하고, 언론사는 광고주인 대기업과 물밑 접촉을 하면서 광고수주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해줄 각오를 내비친다. 지금까지의 레퍼토리는 늘 한결같다. 힘 있는 보수매체나, 까칠한 진보매체나 할 것 없이 절대강자인 광고주 앞에 감히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주장할 처지가 아닌 셈이다. <베테랑>에서 배우 황정민이 내세운 “우리(경찰)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라는 푸념은 이미 언론에서는 사라진지 오래다.

 급기야, 기업들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언론 등급을 멋대로 매기는 일까지 벌인다. 한때 거액의 불법 리베이트 사건을 저지른 일동제약의 이정치 회장이 이끄는 광고주협회는 최근 몇 년 동안 기업 비판을 자주하는 몇몇 언론사를 ‘나쁜 언론’으로 낙인찍어왔다. 광고주협회에 따르면 500대 기업 홍보담당자들을 상대로 이메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유사언론으로 192개 매체가 선정됐으나, 이 가운데 삼성전자와 갈등관계에 있는 메트로 1개사가 응답률 33%로 1위로 공개돼 있고, 나머지는 모두 비공개 상태다. 광고주협회는 막상 어느 매체가 유사언론으로 지목됐는지에 대해서는 ‘메트로' 이외에는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으나,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중·동 등 보수매체는 물론, 진보매체, 경제매체, 지상파, 종편방송 등 모든 매체들이 유사언론에 망라돼 있다.

그렇다면 좋은 언론은 무엇일까? 광고주협회는 “자유 시장경제 인식을 제고하고, 규제 완화를 유도하여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기여한 기사를 쓰는 매체들”이라고 규정하며, 이같은 기사를 쓴 기자들을 해마다 선정해 ‘좋은 신문기획상’을 주고 있다. 광고주협회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에 자신들의 눈에 거슬리는 인터넷 매체와의 뉴스 검색 제휴를 해지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언론의 약한 고리를 부여잡고서, 기업 입맛에 맞는 기사들만 강요하는 광고주협회의 갑질 행위는 우리사회를 민주사회가 아닌 기업사회로 인식한 데서 비롯된다. 경제학자 칼 폴라니에 따르면, 기업사회는 시장이 사회로부터 분리돼 나와 자율적인 것이 되는 데 머물지 않고 사회를 식민화한 상태를 말한다.

어쩌면, 광고주협회는 기업이 단순히 사회의 일부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사회가 기업의 모델과 논리에 따라 재조직되어야 한다고 보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