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빈곤층을 갈취하는 기술

2015-08-31     막심 로뱅

 지난해 미국 대학생들의 부채는 1조 2천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은행은 상환 능력이 없는 고객들에게 각종 불이익을 주면서 이를 빌미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반면 빈곤 지역에는 지점조차 내지 않는다. 이에 주민들은 ‘탐욕스러운 고리대금업자’의 구멍가게로 내몰리고 있다.

 뉴욕 지하철 고가다리 아래를 지나는 센트럴 브룩클린의 중앙도로 브로드웨이. 이곳에 위치한 수표/현금 교환소에서 카를로스 리베라는 카운터 유리창 건너편에 앉아 있는 여직원에게 날짜를 며칠만 더 미루어 달라고 간청한다. “No tengo los 10 pesos(10달러가 없어요.)” 이 상점들은 브룩클린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곳만 236곳이다. 낡은 외관을 가리기 위한 화려한 페인트칠과 네온사인, 그리고 달러 표시와 'CASH'라고 적혀 있는 간판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현금거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들이 수표를 가져오면 현금으로 바꿔주기도 한다. 이 경우 100달러 당 2% 수준의 수수료와 기타 비용을 제한 금액이 고객에게 지불된다. 또한 초고금리로 초단기 대출도 해준다.

현재 미국 전역에는 이러한 구멍가게들 수천 개가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면서 강력한 금융 산업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약탈적 대출자' 혹은 ‘탐욕스러운 고리대금업자’로 불린다. 바로 이들이 애용하는 공격적인 상업 모델 때문인데, 채무자가 상환금을 가져와도 또 다른 대출을 권유함으로써 채무자를 대출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양심 없는 대부업자들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미국의 각 주들이 이들의 활동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페이데이 론’ 또는 ‘월급 담보 대출’이라 불리는 초고금리 대출 상품은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합법이지만 뉴욕주에서는 불법이다. 이 상품은 15일 이하의 초단기로 돈을 빌렸다가 월급날에 원금과 높은 이자를 함께 갚는다. 예를 들어, 고객은 300달러를 빌린 후 월급날에 346달러를 갚는다.

2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이러한 형태의 금융산업은 작년에만 460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하였다. 현재 미국의 수표/현금 교환소 수는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매장을 합친 것보다 많다. 대출 남용 사례를 조사하는 ‘책임 있는 대출 센터(CRL)’는 출범 첫 해인 2002년, 이 같은 대출의 총 규모를 각종 이자, 그리고 상환불능상태인 경우 압류까지 합쳐 91억 달러로 추산하였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지금, 그 규모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아마 수천억 달러에 이를 겁니다. 이는 수백만의 미국인들, 더 나아가서는 미국 사회 전체를 수렁에 빠뜨리고 있습니다.”(1) CRL은 지난 6월 이와 같이 경고하였다.

미국의 빈곤층은 각종 부담금, 식료품, 보험 등 온갖 분야에서 이미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2) ‘빈곤으로 인한 불이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데이비드 캐플로비츠는 1967년 펴낸 사회학 개론서인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에서 이 개념을 이론화시켰다.(3) 그의 분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 오레곤주 공화당 소속의 얼 블룸노어 의원은 2009년, ‘우유 1리터와 낙후된 주거 시설에 지불하는 비용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빈곤 한계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3,700만 미국인들과 중산층 진입을 꿈꾸면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1천만 미국인들은 “중산층이 당연히 돈을 지불하지 않고 혜택을 보는 것에 대해 돈을 지불해야 한다.”(4)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미국 소비자연맹의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자동차 보험회사들의 보험료 책정표에는 고객의 운전 실력보다 학력과 직업이 더 중요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2/3에 달하는 사례들에서, “운전 실력은 좋지만 가난한 운전자(약 25%)가 사고를 낸 적이 있는 부유한 운전자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낸다”는 것이 밝혀졌다.(5)

워싱턴 포스트는 “결국 가난하게 살기 위해서는 돈이 많아야 한다”고 꼬집었다.(6) 가난한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사례로는 출퇴근에 허비하는 시간, 질 낮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오래 기다려야 하는 시간 등이 있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돈을 지출하다보면 여가를 위한 자금이나 여윳돈은 남지 않게 된다.

빠듯하게 돌아가는 생활은 때로는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마리아 페르난데스는 2014년 9월 뉴저지주의 한 주차장에서 자동차 안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32세의 이 여성은 4년 전부터 패스트푸드 체인점 던킨도너츠의 직원으로 일해 왔으며, 딸의 교육비를 대기 위해 그동안 3개의 다른 직장을 가지고 주간‧야간‧주말까지 쉬지 않고 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녀는 뉴저지주의 최저 임금인 시간당 8.25달러를 받고 있었다. 기본적인 가구가 구비되어 있는 아파트의 월세로 550달러를 내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잠을 자는 일은 드물었다. 대부분은 자신의 차안에서 엔진과 에어컨을 켜둔 채로 잠을 청했는데, 뒷좌석에는 늘 휘발유통이 놓여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녀가 잠든 사이에 이 휘발유통이 엎어지며 유독가스가 확산되면서 그녀를 질식사시켰다. 던킨도너츠의 대변인은 그녀가 ‘모범적인 직원’이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공식 성명을 통해 깊은 애도와 조의를 표하였다.(7)

스타이브센트 하이츠 구역의 수표/현금 교환소로 다시 돌아가 보자. 유리창 뒤의 여직원은 리베라에게 내일까지는 꼭 돈을 갚으라고 말한다. 친근하게 리베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니 그는 이곳 단골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돈을 곧 갚겠다고 영어로 약속한다. 그리고 슈퍼마켓 카트를 밀고 길을 떠난다. 그는 카트 안에 재활용 공병들을 모은다. 슈퍼마켓에 가지고 가면 1병당 10센트를 받을 수 있다. ‘공사장에서’ 가끔 불법으로 일을 하기도 한다. 이런 그도 예전에는 어엿한 은행 직원이었다. 지금은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수표‧현금 교환소를 이용하는 가난한 시민들

전통적인 금융기관들은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구역에 지점을 잘 내지 않는다. 리베라가 거주하는 스타이브센트 하이츠는 인구가 8만 5천 명이나 되지만 정식 은행지점은 두 곳 뿐이다. 미국 전역에 650개의 은행지점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8) 아이러니하게도 스타이브센트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와 지하철역으로 고작 열 정거장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은행들은 사실 빈곤 구역에 지점을 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수익원은 적고 잡일만 늘어나기 때문이지요. 이 구역의 주민들은 정작 돈은 예치하지 않으면서 창구는 자주 방문합니다. 사실 은행들은 정반대의 상황, 즉 고객이 창구에는 나오지 않으면서 돈은 많이 예치되는 상황을 바랍니다.” 뉴욕 뉴스쿨 도시정치학과의 리사 서번 교수가 설명한다.

빈곤 구역에서 은행지점들의 빈자리를 메운 것이 바로 수표/현금 교환소로, 근거리 서비스, 서비스의 다각화, 거래 수수료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은행은 100만 달러를 가진 단 1명의 고객을 원하지만 우리는 1달러를 가진 100만 고객을 타깃으로 합니다.” 브롱스와 할렘에 12개 지점을 운영 중인 라이트체크의 조 콜먼 회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9)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 수표/현금 교환소가 악덕 사채업자들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으로 돈을 빌리기 전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는 셈이다. 크고 작은 범죄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빈곤 계층은 원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서번 교수는 또한 뉴욕주 내의 이민자 사회, 그중에서도 남아메리카‧세네갈‧아랍 출신의 이민자들이 금리 0%의 소액금융 방식을 미국에 수입했다고 말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몇 명이 일정 금액을 투자해 공동 자금을 만든 후 ‘한 사람씩 매주 돌아가면서 그 돈을 가져가는 것’이다. 서번은 이러한 대안적 대출 형태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지만 아직 그 종류와 규모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서번의 분석에 따르면, 체이스 뱅크나 뱅크 오브 아메리카(‘체이스 뱅크’나 ‘뱅크 오브 아메리카’ 모두 미국의 주요한 은행들이다-역주)도 빈곤층에 관심이 없지만 사실 빈곤층도 은행에 딱히 관심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이 수표/현금 교환소를 선호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은행을 이용하면 실제 잔고보다 초과 지출 시에 발생하는 수수료 때문에 결과적으로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10) 은행들은 많은 돈을 거래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필요로 하는 단기 소액대출은 해주지 않는다. 은행들은 한 계좌 당 평균 49번의 초과 지출을 허용하는데, 여기서 한 번이라도 더 초과 지출을 하게 되면 빚이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은행들의 관리감독기관인 연방예금보험회사가 미국의 10대 은행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초과 지출된 경우의 절반가량이 36달러 미만에 해당되었다. 허용치 이상의 초과 지출은 단기 대출로 간주되어 무려 5,000%의 연이율이 붙는다.

2011년 미국의 은행들은 초과 지출로 인한 수수료만으로 무려 380억 달러의 수익을 챙겼다.(11) “수수료는 점점 더 비싸지는 추세입니다. 이와 함께 미국인들의 재정적 불안정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돈을 벌어도 이것저것 지출하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시간이 남으면 투잡, 쓰리잡을 합니다. 그래도 월말이 되면 여윳돈이 없습니다. 만년 적자 상태가 지속되고, 이자는 쌓여만 갑니다.” 경제위기 전에는 안정적인 월급으로 생활했지만 이제는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보건‧교육‧육아 비용이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주들이 제공하는 사회보장 혜택은 오히려 줄어들어, 실제 미국인들이 부담해야하는 비용은 늘어났다. 살림은 더욱더 빠듯해졌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오늘날 평범한 미국인의 모습은, 대출 만기일에 맞추어 빚을 갚아 나가는 미국인이다. 그리고 금융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하는 1천만 미국인 가정들은 신용평점이 없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제대로 된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신용평점은 일반적으로 300점(매우 나쁨)부터 850점(매우 좋음) 사이에서 매겨지는데, 금융기관에 따라 100~990점인 경우도 있다. 미국 사회에서 신용평점은 또 다른 주민등록번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프랑스에 존재하지 않는 이 신용평점 개념은 미국 시민들의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대출한 돈을 만기일에 갚을 수 있는지, 대출을 받기에 신용이 충분한지를 증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초기에는 부동산 구매를 위해 대출을 받는 경우에 한해 은행들만 신용평점을 조회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상점, 보험회사, 부동산 주인, 심지어 잠재적인 고용주까지도 신용평점 조회가 가능해졌다. 높은 신용평점은 높은 신뢰를 준다. 최근에는 온라인 만남 사이트에서도 신용평점을 기재하게 함으로써, 대화를 시작해도 괜찮을 만큼 상대방의 재정적 상황이 충분히 건전한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12) 결제 대금이 단 한 번만 밀려도 신용평점은 급락한다. 그리고 은행은 초과 지출 이율을 얼마든지 마음대로 높일 수 있다.

최악의 경우는 신용평점이 아예 없어 금융시스템에서 제외되는 때이다. ‘신용불량’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은행을 이용할 수 없어 생활은 더 어렵고 힘들어진다. 소비자금융보호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빈곤 구역 거주 인구의 30%가 신용불량자이다. 특히 흑인들과 히스패닉들 사이에서 신용불량자들이 더 많다. 백인들과 아시아인들의 경우 9%에 불과한 신용불량자 비율이 흑인들과 히스패닉들 사이에서는 15%나 된다.(13)

 

대출 권하는 미국 사회

 

유럽은 저축을 장려하는 반면 미국은 대출을 부추긴다.(14) 가계부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대출 이력이 없다는 것은 재정상태가 건전하지 못하는 신호이다. 도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각 세대는 평균 8개의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대 당 가계부채는 1만 5천달러에 달한다.

1980년대 말에 기존의 경제 구조를 조용히 전복시킨 사건이 일어났다.(15) 바로 금리규제의 완화로, 한마디로 은행 금리 상한선을 없앤 것이다. 이로 인해 은행 대출의 문턱이 낮아져 수많은 미국인들이 손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보상으로 은행은 금리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결국 개인이 파산하는 사례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가계부채는 대공황 시대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16) 금융산업의 폐해를 지적하는 일을 해오다 민주당 의원이 된 엘리자베스 워렌은 2004년 이와 같이 비판하였다. 그녀는 경제위기 이후 2010년에 소비자금융보호국이 설립되는 데 기여한 인물로, 하버드 법대에서 오랫동안 금융학을 강의해왔다. 은행의 불투명성을 주장하면서 그녀는 자신 역시 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금의 금리가 어떻게 계산되는지 모른다고 고백하였다.

은행의 주요 수입원은 현재 중산층인 사람들과 중산층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상환해야 하는 대출금이 있거나 각종 위약금으로 묶여 있는 경우가 많다. 워렌 의원은 이들이야말로 금융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진정한 주체들이라고 말한다. “파산 직전의 상태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매달 원금이 아닌 정해진 이자만 간신히 낼 수 있는 사람들, 가끔은 이자를 늦게 내기도 하고 또 가끔은 통장에 잔고가 없는 상태에서 수표를 발행하는 사람들, 대출 돌려막기를 하는 사람들 등”이 이 카테고리의 사람들에 포함된다.(17)

오레곤주에 사는 클레어 슈루트는 간호사이고 결혼을 했으며 두 자녀를 두고 있다. 그녀는 이 카테고리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그녀의 가족이 누리던 행복은 사소한 일 하나에서 어긋나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두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일 때 남편의 몸에서 암이 발견된 것이다. “제가 둘째를 출산했을 때 남편은 겨우 화학요법만을 끝낸 상태였어요.” 그동안 그녀는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비상금을 마련해 놓을 여유가 없었다. “매달 수백 달러가 계좌에서 빠져나갔어요.” 남편은 암 때문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그녀 역시 4개월 동안 휴직을 해야 했다.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의료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 했어요. 첫 번째 대출금을 갚으면서 바로 두 번째 대출을 받고, 두 번째 대출금을 갚으면서 바로 세 번째 대출을 받고, 이런 식이었지요. 그게 악순환의 시작이었어요.” 배우자의 질병, 소득 감소, 학자금 대출금… 개인 파산은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중산층의 상황도 대부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은행의 입장에서는 슈루트 부부야말로 최고의 고객이다. 슈루트 부인은 1990년대 중반에 오레곤주립대학교를 졸업했다. 학비는 “현재의 대출금에 비교하면 아주 적은 금액”이었다. 그녀는 개강 시즌에 캠퍼스 잔디밭에 커다란 텐트를 세워두고 대학생들을 상대로 신용카드를 판매하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카드를 팔던 사람들도 알록달록한 색깔의 티셔츠를 입고 있던 우리 또래의 젊은 사람들이었어요. 신용카드 1개를 만들면 무료 식사권이나 프리스비(플라스틱 원반)를 주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일이지요. 하지만 17살의 우리에게는 신용카드를 갖는 일이 그렇게 멋져 보였어요.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원하는 대로 다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금방 대출금을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대학 4년 동안 그녀는 5개의 신용 카드를 만들었다. “그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되어버렸어요.” 28세의 나이로 결혼할 당시, 그녀의 연봉은 2만 5천달러에 불과했지만 빚은 1만 3천달러로 불어나 있었다. 남편의 빚은 8천달러였다.

그녀의 부모님은 보스턴칼리지를 졸업했다. “하지만 두 분 모두 학자금 대출을 받지는 않았어요. 옛날에는 그런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녀의 아버지는 졸업 후 주식시장에 상장된 주유소 업체에서 일하면서 충분한 돈을 벌었다. 2015년의 경우 보스턴칼리지에서 1년 동안 공부를 하려면 48,540달러가 든다. 캠퍼스의 기숙사까지 얻으면 62,820달러이다.

오늘날 미국인들이 빚을 지는 것은 수영장 딸린 집을 구하거나 고가의 SUV를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거‧건강‧자동차‧교육‧보험 등 기본적인 욕구들을 충족하기 위해서이다. “좀 더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건강이나 교육 때문에 대출을 받을 일이 없겠지요.” 슈루트 부인이 부러움 섞인 한탄을 내뱉는다. “만약 제가 스웨덴에 살고 있는 엄마였다면 우리의 상황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출산 휴가로도 10일 이상을 쓸 수 있었을 거고요. 저는 사회나 금융기관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에게도 물론 책임이 있어요. 하지만 미국의 젊은이들은 어느 나라보다도 대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어요. 대출에 의해서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겁니다. 비극적인 상황으로 가는 지름길이에요. 미국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요.”

리베라나 슈루트 부인의 빚은 아주 작은 물줄기에 불과하지만, 미국 전체로 보면 이러한 물줄기들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빚의 강물을 형성하고 있다. 가계 대출은 지난 3년 동안 22%나 증가하면서 2014년에는 3억 2천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였다.

 

글·막심 로뱅 Maxime Robin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The cumulative costs of predatory practices’, <책임 있는 대출 센터>, 더럼, 2015년 6월.

(2) 세르주 알리미, ‘캘리포니아 주의 이면을 통해 드러난 미국식 빈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88년 9월.

(3) 데이비드 캐플로비츠, <The Poor Pay More : Consumer Practices of Low-Income Families>, Free Press, 뉴욕, 1967년.

(4) 드닌 L. 브라운, ‘The high cost of poverty : Why the poor pay more’, <워싱턴 포스트>, 2009년 5월 18일.

(5) ‘대형 보험사들은 종종 교통사고 가해자보다 안전운전자들에게 더 높은 보험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소비자연맹>, 워싱턴, 2013년 1월 28일.

(6) 드닌 L. 브라운, <The high cost of poverty>, art. cit.

(7) 레이첼 L. 스원스, ‘쉬는 시간 없이 3개의 직업을 전전하던 여성이 낮잠을 자는 사이에 참변을 당하다’, <뉴욕 타임스>, 2014년 9월 28일.

(8) 러셀 D. 카시안, 랜 타오, 클라우디아 페레즈-발데즈, <Banking the unbanked : bank deserts in the United States>, 위스컨신 대학, 매디슨, 2015

(9) 리사 서번, ‘The high cost, for the poor, of using a bank,’ <더 뉴요커>, 2013년 10월 9일.

(10) 잔고를 초과하는 출금액에 대해 부과되는 이자

(11) <Graphic : Checking account risks at a glance>, 퓨 자선 신탁, 필라델피아, 2011

(12) <Where Good Credit Is Sexy!!>, www.creditscoredating.com

(13) 소비자 금융 보호국, <신용불량자>, 리서치 사무소, 2015년 5월, http://files.consumerfinance.gov.

(14) 크리스토퍼 뉴필드, ‘시한폭탄, 미국 대학생 부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9월.

(15) 미국의 고리대금 관련 법은 영국 ‘관습법’에서 왔다. Cf. 스티븐 머카탄트, ‘The deregulation of usury ceilings, rise of easy credit, and increasing consumer debt’, <사우스 다코타 로(law) 리뷰>, 버밀리언, 2008.

(16) <Frontline>, PBS, 2004년 11월 23일.

(17) Ib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