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난제 속 귀한 희망, 일본 정권 교체

[Spécial]
‘전지전능한’ 관료주의 타파 여부가 개혁 성공의 관건
54년 자민당 지배에 염증 느낀 국민, 변화 욕구 강렬

2009-10-06     오다이라 나미헤이|<르 디플로> 도쿄 주재 기자

지난 8월 30일 총선에서 승리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신임 총리(민주당)가 가메이 시즈카를 금융·우정 개혁 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가메이 시즈카는 우정국 민영화에 가장 격렬히 반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정국 민영화는 자민당의 개혁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토야마 총리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내수 시장을 성장시키고 미국과 동등한 관계를 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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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갖고 미래를 믿읍시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용기를 가집시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신임 총리가 한 말은 아니다. 2009년 9월 16일 공천 연설에서도, 8월 30일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자민당을 뒤엎고 역사적인 정권 교체를 이뤄낸 날에도 하토야마 총리가 이런 말을 한 적은 없다. 이것은 하토야마 총리가 1988년 일본 정치계에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녹음한 노랫말의 일부다.

1988년 당시는 물론 자민당이 일본 집권 세력이었다. 일본은 부유함을 누리고 있었다. 일본 기업들은 ‘세계를 사들일’(1) 태세였고, 일본은 서구가 일본식 모델을 배우려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일본 국민은 정부의 선택을 따랐다. 정부 주도 아래 일본은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부는 일본 기업들을 통해 가능한 한 공평하게 분배되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사회 조절 구실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국제 환경까지 큰 변화를 겪자 일본은 전례 없는 위기를 겪게 되었다. 자민당은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일본 열도의 각종 신문에서는 ‘실업’, ‘불안정’, ‘빈곤’이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자민당 정부는 ‘세계화’라는 방책을 꺼내들었다. 미국의 압력을 받아 일본은 경제 규제를 풀었지만 이에 합당한 사회보장 정책은 마련되지 못했다. 회사에서 쫓겨난 수천 명의 샐러리맨들이 비참한 처지에 빠지자 일본 국민은 충격을 받았다. 2008년 12월, 정리해고를 당한 샐러리맨들이 도쿄 공원에서 며칠 동안 노숙을 하는 모습을 본 일본 국민은 사회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2).

부의 효율적 재분배 약속

국민의 바람을 읽은 민주당은 부를 가장 효율적으로 재분배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가족수당, 농업보조금, 고등학교 무상 교육을 약속했다. 한편, 자민당은 여전히 개혁이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월 중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연간 증가율이 2/4분기 수준으로 회복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참고로 일본의 국내총생산 연간 증가율은 2008년 3/4분기에 마이너스 13.1%, 2009년 1/4분기에는 마이너스 11.7% 기록). 하지만 이미 얼어붙은 여론을 돌릴 수는 없었다.

총선 전인 2009년 7월 발표된 실업률 수치를 보고 유권자들은 변화에 대한 열망을 더욱 굳혔다. 실업률 5.7%. 1953년 이래로 일본 최악의 실업률이었다. 특히 15~24살 젊은이들 실업률이 심각해 이들 중 9.9%가 공식적으로 실업 상태로 조사되었다. 불안정한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일본 신사회운동의 기수 아마미야 카린은 이렇게 설명했다. “자민당에 대한 거부감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자민당 정권을 뒤집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었습니다.”(3) 실제로 그러했다.

탈미국적 아시아 중시 외교

일본 국민 다수가 민주당에 지지 투표를 하며 나눔과 공정함이 숨쉬는 사회를 원한다는 열망을 표현했다. 또한 많은 일본 유권자들이 정치계에서 실제로 잘 알려지지 않은 민주당 출신 후보들에게 표를 몰아주면서 일본 정치계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싶어했다(하토야마 내각 의원 18명 중 14명은 총리직을 포함해 장관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일본 정치계가 이제는 낡을 대로 낡아 사회구조의 변화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대다수 일본 국민은 정권 교체를 통해서 정치계를 바꿔 관료주의적 정치에서 시민 중심의 정치로 옮겨가기를 원했다.

민주당은 국민과 구태의연한 정권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는 것을 알고 시민 중심의 정치를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총리실 소속 국가전략국과 행정개혁위원회는 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 창설되었다. 아울러 정치인들은 이런 기관들을 통해 예산 등 주요 정책을 구상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재무부 소속 공무원들이 주도했던 것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국가전략국 담당 장관에 간 나오토 민주당 대표대행 겸 부총리를 임명하면서 새로운 정치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과거 후생부 장관을 지낸 바 있는 간 나오토는 1996년 열처리를 하지 않은 ‘수혈 스캔들’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유명해졌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간 나오토는 구태의연한 방식을 버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자신감 넘치는 인물이다.

외무장관으로는 오카다 가쓰야가 임명되었다. 오카다 가쓰야 외무장관은 주변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미국과는 좀더 독립적이며 대등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는 민감하다. 일본에는 미군 기지 85곳이 있고(일본에 주둔한 미군은 4만 명),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지금까지 일본은 언제나 미국의 결정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에도 전향적

하토야마 총리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25% 감축(1990년 대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온실가스 감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미국과는 대조적이다. 온실가스 감축은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일본 새 내각이 첫 번째로 치르는 테스트가 될 것이다. 일본은 오는 12월에 열리는 코펜하겐 정상회담에서 온실가스 감축 문제를 논의할 생각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실행으로 옮기는 책임을 맡은 이는 오자와 사키히토 환경장관이다. 오자와 사키히토는 중의원에서 환경 문제 담당 위원회를 2004년에서 2006년까지 이끌었던 경험이 있기에 환경장관으로는 적합한 인물이다.

자, 이만하면 하토야마 정권이 일본 국민에게 다시 미소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8월 30일 선거 결과 발표에 일본 국민이 그리 열광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일본 국민은 그 어떤 내각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일본이 마침내 성숙한 사회가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좋은 징조다.”(4) 무라카미 류가 쓴 칼럼의 내용이다. 사회운동가 아마미야 카린도 무라카미 류와 같은 생각이다. 일본 국민은 민주당 정권이 출범했다고 해서 모든 불안정한 문제와 생활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아마미야 카린은 설명했다.

일본 국가 통계(5)에 따르면, 연소득이 300만 엔(약 2만2300유로) 미만 가정의 비율은 1997년 9.3%에서 2006년 12.3%로 급증했다. 동시에 아이가 있는 가정의 소득은 평균 760만 엔(약 5만7200유로)에서 690만 엔(약 5만1300유로)으로 하락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민주당은 특히 연간 아이 1명당 가족수당 2만6천 엔(약 195유로)과 고등학교 무상 교육을 약속했다.

하지만 일본 유권자들은 정부의 재정 상태가 상당히 취약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일본 유권자들은 좀더 공평한 사회를 다시 건설하려는 민주당의 의지에 마음을 연 듯하다. 후지이 히로히사가 재무장관에 내정된 것은 공공 지출로 불안한 기미를 보이고 있는 시장을 안심시키고 일본 국민에게 노련한 재무 전문가가 곁에 있으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실제로 후지이 히로히사는 1993~1994년 재무장관을 지낸 바 있다. 한편, 가메이 시즈카 금융·우정 개혁 장관은 우정 민영화 때 자민당을 탈당했던 인물이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단번에 이렇게 선언했다. “시장경제로 만신창이가 된 일본을 온 힘을 다해서 다시 살려내겠습니다.”(6)

고용 문제 해결이 최대 숙제

하지만 국민에게 신뢰를 다시 안겨주고 국민의 의심을 불식시키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민주당은 특히 고용 문제와 관련해선 제조업의 비정규직 파견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2008년 일본 경제활동 인구 중 34.1% 이상이 계약직·인턴직·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7) 하지만 세키네 슈이치로 파견노동조합 관계자는 간사이 지방(오사카가 있는 곳)에서 민주당 후보 여러 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비정규직 파견 금지 법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8)

이는 비정규직 문제가 민감한 사안인 만큼 새로운 내각이 얼마나 특단의 정치적 과감함을 필요로 하는지 보여준다. 새로운 내각은 기업에 불안감을 주지 않는 방향에서 고용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한다. 기업들은 필요할 때 마음대로 해고를 하지 못하고 최저임금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오른다면 생산공장을 이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야심을 실현할 수 있는 대책을 찾고 싶어하며, 이를 위해 2009년 2/4분기에 나타난 회복의 기미가 지속되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이는 중국의 성장(막대한 공공자금을 투입해 빠른 속도로 회복해가는 중이다)과 서구의 경제 현실에 달려 있다. 실제로 일본은 외부 시장 의존도가 높다. 반면 내수는 여전히 약하다. 소비를 회복시키고 경제를 더욱 안정시키려면 고용과 소득 수준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 이런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 앞에서 하토야마 새 내각은 노래의 가사를 기억해야 한다. “용기를 갖고 미래를 믿읍시다.” “희망은 때로 약이 되기도 한다.”

글·오다이라 나미헤이 Odaira NamiheiI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한불상공회의소 격월간지 <꼬레 아페르> 전속 번역. 번역서로는 <여성의 우월성에 관하여>(2009) 등이 있다.

 


 

<각주>

(1) 피에르 앙투안 도네, <일본이 세계를 사다>, 1991년, 파리, Le Seuil.
(2) 2009년 6∼7월 <마니에르 드 부아> 105호 기사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일본’ 참조.
(3) 잡지 <슈칸 기뇨비>, 도쿄, 2009년 9월 4일.
(4) <뉴욕타임스>, 2009년 9월 7일.
(5) <슈칸 기뇨비>, 도쿄, 2009년 8월 28일.
(6) <AFP>, 도쿄, 2009년 9월 16일.
(7) <니혼게이자이신문>, 도쿄, 2009년 7월 13일.
(8) <비정규직 노동통신>, 도쿄, 2009년 8월 25일.

정치가 세습되는 일본 정치 풍토

일본에서는 정치가 세습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많다.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등 전 총리 세 명 모두 전직 장관의 아들 혹은 손자다. 또한 이들은 모두 1955년부터 일본을 이끌어온 자민당 출신이다. 올해 9월 16일에 정식 출범한 새 내각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 역시 명문 가문 출신이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자민당이 부패 사건에 연루되고 여전히 포퓰리즘 전술을 기반으로 한 구태의연한 방식을 고집하자 하토야마 유키오는 비자민당 연정으로 호소카와 모리히로 내각이 출범하던 1993년 자민당을 탈당했다. 하지만 하토야마는 선거에서 승리하게 된 것을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 덕으로 보고 있다. 오자와 간사장은 실제로 민주당의 막후 실세다. 하토야마 총리는 포퓰리즘 전술을 거부하고 있지만 이렇게 자신하게 된 것은 개인 재산이 어마어마한 덕이기도 하다. 민주당 소속인 동생 하토야마 구니노와 함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외할아버지가 창립한 일본 최고 타이어 회사 브리지스톤의 자본 일부를 보유하고 있다. 1990년대 초 비자민당 연정이 형성되자 하토야마는 1996년 여름 큰 야심을 품고 민주당을 창당했다. 자민당을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거대 야당을 세워 정권 교체를 이뤄내자는 것이 하토야마가 품었던 야심이다.

사회민주당을 포함해 여러 정권 출신의 의원 60여 명의 지지를 얻은 하토야마는 정권 교체라는 거대한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노련한 정치인 오자와 이치로의 존재 덕에 하토야마와 민주당이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자와는 자민당 시절에 가지고 있던 구태의연한 습관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1993년 호소카와 내각 시대가 막을 내렸을 때 오자와의 역할을 기억하는 이들은 민주당 간사장으로 임명된 오자와가 하토야마 내각에 지나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하토야마 총리는 2010년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려면 오자와 간사장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때까지 오자와 간사장이 당의 중심을 잡아주기를 하토야마 총리는 바라고 있다.

글·오다이라 나미헤이 Odaira NamiheiI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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