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정부는 어떻게 약속을 저버렸나
2015-08-31 밥티스트 데리크부르그
유럽기관으로부터 모욕을 당하면서도 유로존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한 알렉시스 치프라스 정부는 모두 그리스 국민의 의지였다면서 합의안 서명을 정당화했다. 그리고 그는 다른 대안을 제시할 만한 경험 많은 지도부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시리자가 집권한 후 지금까지 그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당원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게 더 적절한 것 같다.
2015년 7월 30일 아테네. 작열하는 태양과 무더위로 한산한 도시에서 시리자 중앙위원회는 창당 이래 가장 중요한 회의를 열었다. 지난 1월 총선에서 36.34%의 득표율을 보이며 의석 149개를 차지한 시리자는, 긴축정책을 끝내고 유럽연합집행위원회,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등으로 구성된 트로이카의 감독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최초의 그리스 정부를 구성했다. 그렇지만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7월 13일, 향후 3년간 추가로 860억 유로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새로운 긴축조치 이행와 대규모 민영화를 골자로 한 제3차 구제금융지원합의안을 받아들였다. 추가 지원금은 자금이 바닥난 그리스 은행 증자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치프라스 총리와 측근들은 3차 합의안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않으면서도 일부 내용을 옹호했다. 예를 들어 기오르고스 스타타키스 경제부장관은 “이번 합의안에 포함된 상당한 조치들이 경기축소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4년간 부채를 국내총생산(GDP)의 15% 수준으로 감축하라거나 연금과 임금을 30~40% 사이로 삭감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이전의 두 합의안과 전혀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1) 그러나 채권단이 약속된 860억 유로 지원금 중 일부를 지급하기 전에 비준하라고 요구한 ‘선결조치’를 담은 법안에 대해 지난 7월 15일 열린 긴급표결에서, 시리자 의원 149명 중 32명이 이번 협의안이 당의 강령과 어긋난다며 반대했고 6명은 기권했고 한 명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법안은 일부 야당의 지지를 얻어 겨우 채택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시리자는 내부분열 위기를 겪고 있다. 합의안 서명에 찬성하는 파와 좌파연대(2)를 필두로 합의안 서명을 거부하는 파로 나뉘어 불통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고 있다.
7월 30일 모임에서 치프라스 총리는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대안을 제시해 보라고 요청했다. 유로존 탈퇴는 그리스의 정책 변경을 이끌지도 못하면서 재앙만 불러올 것이라며 “유로존을 제외하고는 해결책이 없다. 유로존이 아닌 국가에게도 우리에게 요구하는 수준과 유사한 긴축정책을 적용한다.”고 그는 설명했다.(3) 야니스 드라가사키스 부총리는 유럽 ‘파트너들’과 강도 높은 마찰이 발생한다면 시리자는 그리스 국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석유, 의약품 등을 조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좌파연대의 파노스 코스마스는 “총리가 아니라면 대안을 제시할 의무가 누구에게 있는가? 왜 대안을 만들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강제적 유로존 퇴출을 두려워하는 이들과 주도적인 ‘그렉시트’를 제시한 이들 사이의 두드러진 입장 차이였다. 경제학자인 코스타스 라파비차스 의원은 전략적인 유로존 탈퇴를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4)
좌파정부가 부딪힌 장애물을 설명하기 위해 대안 준비에 관한 의제가 당 지도부와 정부인사 간 회의에 자주 등장한다. 2013년 7월 창당대회를 통해 좌파연합 시리자는 당원 3만 명~3만 5천 명의 통합정당이 됐다.(5) 이후 지역별, 직업별, 주제별 등 세 단계로 당이 조직됐다. 지역위원회는 정당의 기본이 되는 당원을 모았다. 당원 중 1/3 가량이 월례모임에 참석해 정책노선을 논의하고 지역 차원에서 수행할 활동을 기획·조직한다. 지역위원회는 거의 전적인 자율권을 가지고 있으며, 이 자율권은 파업참가자들과 연대 활동을 벌일 때 빛을 발한다. 시리자에는 당원들을 직업별로 구분한 조직도 갖춰져 있어서 분과별 노동쟁의가 발생할 때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 회원의 추천 또는 지명에 의해 충원되는 주제별 위원회가 정부정책 마련을 담당한다. 주제별 위원회는 꼭 당원이 아니어도 참여할 수 있다. “‘분노의 시민운동’ 이후, 헌법 개정을 위해 한 단체에 가입했습니다. 그랬더니 누군가 이 주제에 관한 위원회에 들어가 보라고 권하기에 한 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30년간 관심을 끊고 지내던 정치와 연이 다시 이어졌지요.”라고 아테네에서 종교학교수를 맡고 있는 바실리스 시디아스는 설명했다.
이런 조직구성으로 인해 시리자는 정책을 포괄적인 기본노선에서 구체적인 조치로 현실화시킬 수 있는 실무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2년 선거에서 약진에 성공하며 신규당원이 늘었지만 지도부는 2009년 이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세력 확대에 성공하면서 지도부 중 수백 명이 다른 일을 맡게 되자 팀을 꾸리기도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2012년 6월 의원 76명이 선출되고 2014년 5월 유럽의회 의원 6명, 같은 달 시의원 927명과 지역의회 의원 144명 그리고 지난 1월 국회의원 149명이 선출되며 당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 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심리학자 디미트리스 트리안다필루는 “국회의원 보좌관을 맡게 돼서 지난 1월 영국에서 돌아왔어요. 처음부터 다 새로 익혀야 해요.”라고 털어놨다. 그가 보좌하는 크리술라 카차브리아도 지난 1월 처음 국회에 입성한 초선의원이다.
현장 행정 업무 경험이 거의 부재한 시리자당
정부조직도 구성해야 했다. 물론 좌파연대 소속 스타티스 쿠벨라키스의 말처럼 시리자에는 경제학이나 계량경제학 등 석사학위를 소지한 젊은이들이 많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경제부 고위공무원은 “전반적인 사상과 지식을 갖고 있는 것과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한 실무역량을 갖추는 것은 명백히 다른 일이다. 조직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임명해야 하는 요직을 파악해야 하며, 지연되는 사안들을 어떤 사무국에서 처리할 지, 그리고 어떤 법률적 난관이 있을 수 있는지 인지해 우리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행정에서 익힌 경험이라고 국가 차원 업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논평했다. 요컨대 시리자에는 현장행정업무가 가능한 지도부 인사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 결과 인사, 결정 및 실행에 막대한 지연이 발생하는 일이 왕왕 생긴다. 거대 정보미디어 관련 법안이 대표적인 예다. 소수 집단이 모든 텔레비전과 라디오 채널, 대부분의 신문‧잡지사를 점령한 방임의 시대(6)를 보낸 후, 니코스 파파스 장관은 주파수 할당을 규제하는 법을 채택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3월부터 준비된 이 법안은 이들 미디어에게 정부에 격렬히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일 빌미를 제공한 국민투표가 열리고 2주가 지나서야 의회에 상정됐다.
업무 지연은 낡은 관행을 버리지 못한 예전 지도부 인사를 자리에 남겨뒀다. 아직도 경찰 내부에 남아 있는 극우조직은 지속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7) 심리학자이자 테살로니키의 시리자 열혈당원인 파냐이오티스 베네티스는 “병원 관리자들이 교체되길 헛되이 기다렸다.”면서 보건 분야에 있어서도 동일한 경직성이 남아있다고 했다. 병원 관리인들은 부패했고 그리스 보건시스템을 붕괴하게 만든 원흉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문제를 인지한 지도부는 자신의 지금까지 주로 여당 계파 소속 여부로 결정된 인사를 앞으로 능력을 중심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인사기준을 바꾸면 사회당과 우파의 관행과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8) 타소스 코로나키스 시리자 사무총장은 “사회당과 우파는 사회와 단절돼 있고 인기영합술만 펼치고 있다.”라고 전했다.(9) 인사기준 변경은 대규모 인력개편이 야기할 수 있는 동요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지도부가 당과 정부 사이의 관계에 적용하려는 기본방침에 부합했다. 니코스 스베르코스 기자는 “시리자 지도부가 야당에게 복수를 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 한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치프라스 총리와 그의 측근들(특히 파파스 장관, 드라가사키스 부총리, 알레코스 플라부라리스 정부 주도 계획 조율을 위한 국무부장관)은 유럽 기관과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IMF와 유럽연합집행위원회, 미국과 독일 등 기관과 국가 사이의 견해차를 이용해 괜찮은 절충안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 내부에 긴장 상태가 고조되지 않고 당의 기반이 안정적인 게 좋다.
이런 온건한 변화는 때론 의외의 결과를 가져온다. 안토니스 사마라스 정부(현 시리자 정부 이전의 정부-역주)에서 재무부장관을 지낸 야니스 스투나라스 현 그리스은행장은 교체되지 않았다. 프랑스 일간지 <레제코>조차 ‘거대 제약회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생물학자의 남편’이자 ‘2000년대 엠포리키은행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었으나 결국 그 은행이 도산해 프랑스 크레디아그리콜에게 100억 유로의 손실을 입히게 한’ 그에게 보이는 치프라스 총리의 관대함에 놀라워했다. 게다가 ‘그리스 재무부 자문 재임 당시 그는 그리스의 유로존 가입 과정에서 지대한 역할을 했는데, 이때 유럽이 그리스의 정확한 경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수치를 위조했다’고 한다.(10) 시리자가 집권한 후로 그는 계속해 시리자의 협상전략을 비판했고 국민투표가 열리기 전 일주일 동안 그의 비판 강도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 경우에 대체된 지도부원들도 할 말은 있다. 당 조직에 은행업 관련 담당자가 ‘500명도 넘고 그중에는 실무경험이 풍부한 은행장과 관리인도 많다. 우리는 은행국유화계획과 대출계획을 만들었다. 선거가 끝나고 자본이 유출되고 있는 만큼 조치가 취해지길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드라가사키스는 우리 중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전했다. 그렇지만 치프라스 총리는 ECB가 야기한 재무경직성과 은행시스템의 붕괴임박으로 인해 7월 13일 합의안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선수촌 서민동네에 사는 주민들은 지난 1월부터 시리자 의원이 찾아와 그들에게 정보를 주거나 그들의 관심을 모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떤 주민들은 시리자 집권이 ‘큰 기쁨’이지만 정부조직원들이 예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국민들과 동떨어져있다고 생각하며 합의안에 서명한 일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좌파연대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은 합의안 서명에 반대하기 위한 시위에 나서지 않았다. 국민투표 ‘반대표’ 포스터가 아직 벽에 붙어있는 것을 보면 아테네에서 동네마다 이해관계가 서로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쿠벨라키스는 “좌파연대가 다수를 차지한 위원회가 주축이 돼 캠페인을 벌였다.”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치프라스 정부는 성급하게 시리자에게 재량권을 주고 국민들이 유로존 탈퇴에 대비하도록 하지 않았다. 놀라운가? “‘유로를 위해 어떤 희생도 없다’라는 슬로건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시리자는 인류적 재앙 방지와 사회적 필요 충족을 절대적인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라고 시리자 창당선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치프라스와 드라가사키스는 1월 총선이 있기 전부터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할 일은 없을 거라고 수차례 밝혔다. 7월 13일 합의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리스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들은 대안이란 제안을 했을 때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찌됐든 지금도 여론조사를 보면 그리스인 80%는 유로에 애착을 갖고 있다. 대부분 은행시스템 붕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드라가사키스도 독일이 그리스보다 ‘유로존 탈퇴’에 대비가 잘 돼있을 거라고 인정했다.(11)
좌파연대의 웹사이트인 Iskra.gr가 ‘국민의 ‘반대’가 이기지 못했다’는 주제로 지난 7월 27일 주최한 공개모임에서, 치프라스 정부의 생산에너지환경재편부 장관이었던 파나지오티스 라파자니스가 내놓은 그리스화로 돌아가자는 제안이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치프라스 총리는 7월 5일 국민투표의 ‘반대’가 드라크마에 ‘찬성’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12) 이제 이 논쟁은 사회 전체로 확대됐다. 아마도 올 가을 열리는 임시총회에서도 유럽기관의 위협에 저항하기 위해 그리스 좌파가 어떤 무기를 갖출 수 있는지가 주요한 논제가 될 것이다.
글·밥티스트 데리크부르그Baptiste Dericquebourg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르 주르날 뒤 레닥퇴르>, 아테네, 2015년 8월 1일.
(2) 시리자 내부의 급진파로 유로존 탈퇴안 마련 등을 지지한다. 중앙위원회 회원 중 1/3이 좌파연대 소속이다.
(3) 2015년 7월 25일 라디오 스토 코키노가 진행한 인터뷰. 프랑스 일간지 <뤼마니테>가 2015년 7월 31일자 신문에 이 인터뷰를 요약해 실었다.
(4) Costas Lapavitsas, ‘어떻게 그리스를 구할 것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년 7월호.
(5) ‘한 손엔 영혼을, 다른 손엔 권력을 - 그리스 좌파의 새로운 도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6월호.
(6) Valia Kaimaki, ‘위기의 그리스 언론’과 ‘그리스의 무릎 꿇은 미디어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각각 2010년 3월호와 2015년 3월호.
(7) Thierry Vincent, ‘온건한 희망, 복잡한 사건을 두려워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년 2월호.
(8)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 중도좌파)과 신민주주의당(우파)은 1974년 군부독재가 종식된 이후로 권력을 공유했다.
(9) <르 주르날 뒤 레닥퇴르>, 아테네, 2015년 5월 9일.
(10) <레제코>, 파리, 2015년 7월 20일.
(11) ERT, 2015년 8월 12일.
(12) 스토 코키노, 2015년 7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