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삼성드림 홍보역을 거부한 이유
2015-08-31 김승환
지난 6월 직원으로부터 한 가지 보고를 받았습니다. 삼성 드림클래스 여름방학 캠프에 전북의 학생들이 참여토록 삼성에서 연락을 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겨울방학 드림클래스 캠프에 대해 전북교육청이 문제 삼았던 성적 상위권에 속하는 학생들을 일정 부분 참여할 수 있게 한 부분을 없앴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드림 클래스는 삼성이 농어촌 또는 도시 저소득층 중학생들이 경제적‧지리적 여건 때문에 학원 수강이나 과외교습을 받을 수 없는 점을 감안하여 만든 프로그램입니다.이 캠프에 참여하는 중학생들에게 이미 선발한 대학생들이 과외지도를 하고, 그 대학생들에게는 월 60만원 정도의 수당을 지급합니다.
이것은 중학생들에게는 배움을 보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대학생들에게는 학비를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서 재벌 기업의 교육 자선사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얼핏 보면 누구나 반기고 고마워할 만한 이 프로그램에 대해 전북교육청은 지난 겨울에 이어 이번 여름에도 협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전북교육청의 이러한 방침에 대해 지난 겨울 지역의 언론과 정치권은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교육감이 고집을 부려 농어촌지역 학생들과 도시 저소득층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지역의 대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막아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윤리적 기업을 옹호할 순 없어
이런 비판은 이번 여름에도 당연히 나왔어야 하는데 6월과 7월이 지나고 8월 중순이 지나가는 데도 조용했습니다. 웬일일까? 궁금해 하던 저는 그 이유를 발견하고 실소를 금하지 못했습니다. 삼성 드림클래스 참여를 거부하는 전북교육청에 대해 언론이 문제를 삼아야 할 적기는 6월이었습니다. 전북 지역 아이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싶었다면 학생 선발이 이루어진 시기에 문제를 제기했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바로 그 6월은 메르스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삼성서울병원으로 대표되는 삼성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 상황에 주목한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는 메르스 수혜자다. 메르스가 아니었다면 삼성 드림클래스에 참여하지 않는다며 언론이 나를 엄청 공격했을 것인데, 지금은 삼성이 비판을 받는 상황 아니냐?"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8월 18일 오후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이 전북교육청이 삼성 드림클래스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비판기사를 연달아 올렸습니다. "소외계층 배울 기회 뺏은 전북교육감", "아이들 교육기회 차버린 전북교육감" 등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평소 언론의 공격에 대해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저이지만, 이번에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제 페이스북에서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반론에서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덧붙였습니다. 전북교육청은 전북 지역의 학생들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를 포함하여 반도체 기업에 취직시키지 말라고 관내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 지시해 놓았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삼성 드림 거부는 공교육 정상화의 의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키며 극우보수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았습니다. 전북교육감이 학생들의 배울 기회를 막을 뿐 아니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신상털기식 인신공격도 가했습니다. 삼성의 위력은 역시 대단했습니다. ‘삼성에 반대하는 것은 기업에 반대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국익에 반하는 것이다’라는 강고한 프레임이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삼성 드림클래스를 통해서 전북의 중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숫자는 약 2백 명입니다. 전북교육청의 공식적인 입장과 상관없이 학생들은 개별적으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 실제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육감이 학생들이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학습의 기회를 갖는 것조차 막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전북교육청이 거부한 것은 삼성 드림클래스에 전북의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우리 지역 학생들의 삼성 드림클래스 캠프 참여를 거부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도교육청은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고, 공교육의 힘을 강화시킬 기본책무를 갖고 있습니다. 삼성 드림클래스는 사교육입니다.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도록 주선하는 것을 공적 기관인 도교육청이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삼성은 이 사업을 사회공헌사업이라고 합니다. 외견상으로는 그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삼성의 기업홍보 사업입니다. 거기에 투입되는 비용은 전액 법인세 정산에서 비용처리하게 될 것입니다. 삼성 드림클래스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알게 모르게 삼성의 이미지 홍보에 빠져 들게 되어 있습니다. ‘삼성은 좋은 것이다’라는 이미지입니다. 학생들이 거대 공룡재벌 삼성을 바라보는 데 필요한 균형 감각을 놓치게 될 위험성이 높습니다.
또한 저는 관내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의 학생들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를 포함한 반도체 기업에 취직시키지 말라는 지시를 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브로모프로판을 다루게 되는데 이 물질이 각종 암 등 난치병과 불치병을 유발합니다. 실제로 삼성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이나 난치병에 걸린 노동자들과 유족들이 삼성을 상대로 산재인정과 손해배상 소송을 해왔습니다. 그 노동자들 중에는 전북의 특성화고 출신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온갖 구실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설상가상으로 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몇 년씩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투병 중인 노동자들과 유족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비극적 사태를 고발하는 자료들도 속속 나왔습니다. 만화 '먼지 없는 방'과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그 대표적인 것입니다.
항상 학생들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 교육감으로서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을 그냥 지나쳐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산업현장에 파견을 나가거나 취업을 할 때 위험성이 높은 사업장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가능한 위험한 사업장에 파견하거나 취직하는 것에 대해 신중히 판단해 줄 것을 권고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개개의 학생들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등 반도체 기업에 취직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보수언론의 일방적 삼성 편들기
사안의 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극우보수언론은 마치 전북교육감이 학생들의 배움의 기회와 직업선택의 자유를 불법적으로 빼앗은 것인 양 과잉 비판을 하는 일에 골몰한 것입니다. 그 공격은 비겁하게도 메르스 사태로 삼성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좋지 않은 6‧7월을 피하고 8월 중순 이후를 선택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대한민국의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법인체로서의 삼성그룹과 소수의 지분으로 삼성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삼성총수 일가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삼성의 성장은 삼성 자체의 노력과 능력이 그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재벌기업들, 특히 삼성은 역대 정부로부터 엄청난 특혜를 받아 왔고,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의 특혜는 역으로 국민이 받아야 할 몫의 희생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특히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희생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삼성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 홍보성 교육 사업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시도교육청이 알아서 합니다. 삼성이 진정 장학사업을 하고 싶다면 그 방법은 시도교육청에 일임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삼성이 먼저 해야 할 일은 국민의 희생에 보답하고, 백혈병 등 산업재해로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입니다.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기업이 될 때 비로소 삼성은 국민의 기업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삼성은 법인세 성실 납부, 기업지배구조 개선, 순환출자 개선, 변칙적인 상속과 증여 탈피, 노동자 인권 보호 등의 기업윤리를 지켜야 합니다.
언론 역시 이대로는 안 됩니다. 언론은 최소한의 기능인 '사실전달'에 충실해야 합니다. 앞뒤 모두 잘라내고, 공격소재가 될 만한 것들만 끌어 모아 새로운 사실을 가공해 내는 작업을 하는 집단은 헌법이 기대하고 보호하는 언론이 아닙니다.
글·김승환
고려대 법학박사.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냈고, 제16대 전북도 교육감(2010~14)을 거쳐, 교육감 재선에 성공해 지난 7월부터 제2기 임기 시작. 시민운동에 적극 참여해 한국 인권영화제 위원장, 한국헌법학회 회장,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