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후안 헬만의 지옥과 깨달음

2015-09-01     제라르 누아레

 

1930년에 태어나 1975년에 망명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르헨티나 출신의 후안 헬만은 아르헨티나를 장악한 군사독재를 2014년에 눈을 감을 때까지 끊임없이 비난했다.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는 실제로 헬만의 아들, 며느리, 많은 친구들의 목숨을 앗아간 존재였다. 1981년부터 프랑스의 안목 있는 출판사들(1)을 통해 출간된 12권의 책으로 헬만은 매우 유명해졌다. 갈리마르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시집 <남쪽을 향해서 외>(2)는 헬만의 명성을 더욱 높여주었다.

이 시집은 헬만이 지난 50년을 빛낸 남미의 최고 시인 중 한 명, 나아가 세계 문학을 빛낸 최고 시인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헬만은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멕시코, 스페인과 칠레에서 각종 주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내가 꺼내는 말소리 속에서

나의 목소리를 밤처럼 감싸는

말소리 속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내게 이야기 하는 죽은 이들

혹은 죽음과 함께 접어드는

말소리처럼 그림자처럼

자신의 빛으로 아름다워지는

동료들의 얼굴처럼

 

1978년과 1984년 사이에 집필한 <노트>, <코멘트>, <남쪽을 향해서>, <이것>을 모은 시집은 아르헨티나에서 3만 명이 사망하고 1만 5천 명이 총살된 비극의 시대를 대변하며 문학‧정치‧역사의 관계를 언어로 재편성 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헬만의 시는 환각이 현실이 된 고통과 공포로 얼룩진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다. 사용된 문체는 특별해 기존의 언어를 새로운 의미로 사용하는 기법을 보여주고 문법을 교묘히 비틀어낸다.

헬만의 시를 이루는 문체, 문장 기호는 독립적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무리 번역이 된다 해도 바뀌지 않는 성격이다. 헬만의 시는 본인의 마음을 흔드는 동요를 표현한 것으로, 프랑스어로 번역이 되어도 그 느낌이 살아있다.

1981-1982년에 로마에서 헬만이 지은 시 <남쪽을 향해서>는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진정한 지옥 속에서 태어나는 문체는 고통과 냉소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대한 애정과 깨달음을 간직한다. 이는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유명한 질문 ‘아우슈비츠 이후에 어떻게 글을 쓸까?’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50여 편의 시로 이루어진 헬만의 시집은 최근에 보기 힘든 비극의 아름다움을 글로 승화시키고 있다.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자란 작가들은 헬만처럼 표현해내기 힘들다. 비유하자면 종교 재판이 있었기에 고야 같은 화가가 나타나고 <변덕> 같은 동판화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글·제라르 누아레 Gérard Noiret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졸. 번역서로는 <프랑스 엄마처럼>(2014) 등이 있다.

(1) Juan Gelman, <Salaires de l'impie et autre poèmes>(부도덕한 자의 봉급 외>, Diffedange(룩셈부르크), 2004년 <L’Opération d’amour> (사랑의 작전), Gallimard, 파리, 2006년, <Lumière de mai> (5월의 빛), Le Temps des Cerise, 파리, 2008년, <Lettre ouverte suivi Sous la pluie étrangère> (열어본 편지, 이상한 빗 속에서), Caractères, 파리,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