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2015-09-01 피에르 랭베르
지난 7월 13일, 숨통을 조여 오는 채권단 앞에서 알렉시스 치프라스 정부는 결국 백기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리스의 지난 몇 달간의 저항과 그리스에게 내려진 ‘보호감호처분’은 유럽연합의 본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다른 정책’의 필요성을 대두시킨 계기가 된 건 아닐까?이러한 해석이 공공연히 퍼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지난 8월 11일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위기의 교훈들’이라는 주제로 특집 기사를 발행했다. 유로화와 긴축정책에 반대하는‘선동자들’을 비판한 로랑 조프랭 편집장의 장황한 사설, 장 카트르메르 기자가 다니엘 콩방디(프랑스 68혁명의 주역이자 전 유럽의회 의원-역주)와 나눈 대담 ‘좌파에게 유럽은 필연적인 이상향이다,’ 유럽연합기관들의 민주화를 위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적극적인 전방위 행동’에 이르기까지, <리베라시옹>은 커다란 대포를 꺼내 놓았다. 조프랭 편집장은 “이번 그리스 위기는, 위기의 가혹함을 통해 그동안 만연해 있던 잘못된 생각, 지키지 못할 약속,감언이설을 시험하는 시험대 역할을 했다”라고 말한다.
특집 기사의 첫 번째 목적은 사건을 다시 기록 하는 것이었다. 조프랭은 그리스 총리가 ‘파트너들’이 휘두른 그리스 경제 붕괴라는 위협 앞에 무릎을 꿇도록 강요받은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치프라스가 쓰디쓴 독배를 받아 들면서도 유로를 선택한 것은 당연히 자국민을 위해 득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사실 치프라스는 유로존 탈퇴를 원하지 않았다. 일부러 논의가 지연되게 만들고, 술책을 쓰고, 허세를 부렸다. 그리스의 미래를 담보로 도박을 한 것이다.” 결국 관대한 채권자들은 그리스에게 엄청난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실제로, 다른 식의 타협은 불가능했다.”
두 번째 교훈은 <리베라시옹>의 편집장이 ‘엉망진창’이라고 분류한 이들을 겨냥하고 있다.이 역시 듣기 좋은 말투로 써내려가지는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한 번의 일로 관례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 사태를 경험하면서 극좌파들은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스 국민에게 선동적으로 긴축정책의 끝을 약속하던 허황되고 거짓된 진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 현실에 대해 조프랭은 지난 1월 말 그리스 극좌파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쓰기도 했다. “이 시원한 바람은 ‘드라기(유럽중앙은행 총재-역주) 처방’이 이미 반대한 긴축정책을 바라는 유럽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트로이카의 무감각함으로 빚어진 시리자당의 승리는 유럽연합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가장 효과적인 자기 성찰을 하도록 만들 것이다.” 다음과 같은 예측도 있었다. “십중팔구 채무 재협상, 국내 긴축정책 완화, 소비 활성화로 결론이 날 것이다. 그리스 국민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고통을 감안하면 당연하고 꼭 필요한 것이다.”(2014.1.24.~25). 허황되고 거짓되며 선동적인가?
조프랭의 마지막 사색은 논설위원들이 벌써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위한 사각의 링을 준비하고 있는 프랑스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스 사태는 프랑스에게도 교훈을 준다. 국채를 늘리고자 하는 모든 정책은 프랑스의 주권을 위협한다.” 8월에 들어와서는 그리스 소식을 잘 다루지 않고 있는 다른 프랑스 기자들에게 <리베라시옹>의 이번 기사는 분명히 영향을 줄 것이다. 2005년 5월 유럽헌법 채택에 대한 국민투표 다음날, ‘반대’ 표를 던진 사람들에게 ‘포퓰리즘 전염병’을 퍼뜨렸다고 비난하던 세르주 쥘리 전 <리베라시옹> 편집장의 사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리베라시옹>은 ‘새로운 유럽정신’이라는 컬러로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이끌어 간다. 대세는 같은 옷을 입는 것이다. 전파하라! 올해 그리스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글·피에르 랭베르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부편집장. 언론개혁 포럼 ‘미디어 비평 행동(ACRIMED)' 회원. 저서로<리베라시옹, 사르트르에서 로스차일드까지Libération, de Sartre à Rothschild>가 있다.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