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축, 더딘 걸음 복잡한 이정표
[Dossier] 유엔의 가치와 비전
적극적 평화 의지 아닌 갈등 구조 변화 적응 과정
강대국 이해 우선… 첨단무기 예산은 폭발적 증가
냉전의 유물로 남은 무기들은 비정상적으로 많고, 현대전에는 맞지 않는 것들이다. 더욱이 그 경제적 부담은 기아와의 전쟁이나 기후변화 대처에 사용돼야 할 소중한 재원들을 가로채고 있다. 군비축소는 유엔의 중요 임무지만 몇몇 국가들은 군비축소에 소극적이다.
유엔 헌장 정신에서 볼 수 있듯이, 군비축소는 유엔의 주요 목표이며, 이를 위해 유엔은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얼마 전 33호 연감을 발간한 유엔사무국 군축국(DDA)은 핵 확산 방지와 생화학무기 규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동시에 재래식 무기 감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군축국은 유일한 다자간 협상기구인 군축회의와 더불어 이 분야의 유엔 주무부서다.
1979년부터 효력을 발생하기 시작한 군축회의에는 모두 65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나머지 국가들은 제한적으로 그 업무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화학무기의 개발 및 생산, 비축, 사용을 금지하기 위해 1993년 1월 13일에 체결된 ‘화학무기금지협약’(CWC)과 1997년 9월 24일에 체결된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은 군축회의가 이끌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1)
하지만 몇몇 핵심 사안들에 대해서는 유엔이 아닌 특정 국가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해 노력하자는 2009년 4월 오바마 미 대통령의 프라하 연설로 다시 이슈가 된 핵 감축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유엔 아닌 몇몇 국가에 군축 주도권
이 방침은 2009년 7월, 오바마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회담을 통해 구체화됐다. 미-러 두 대통령은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을 대체할 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미국과 러시아에 있어 이 협상은 핵탄두 1500~1575개 이내, 핵미사일 500~1100개 이내로의 감축 문제로 압축된다. 2002년에 체결된 미-러 전략핵무기감축협정(SORT)은 2012년까지 핵탄두를 1700~2200개로 줄이는 것이 목표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한 CTBT가 미 상원에서 비준되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하고, 군사적 목적의 “핵분열 물질 생산을 종식할 국제조약을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최근 이런 방향 전환은 핵보유국이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로 늘어난 것과, 북한과 이란의 핵실험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과연 군비축소를 위한 걸음으로 보아야 할까? 차라리 갈등 상태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냉전시대 경제력을 반영하던 비정상적인 무기 보유 상태(전세계에 1만5천 개 핵탄두 산재)는 이제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고, 새로운 상황에의 적응을 방해하고 있다.
강대국들의 가이드라인은 두 가지다. 한편으로는 군비를 제한함으로써 ‘확산’(이란·북한 등)에 대처하는 효율적인 힘 관계를 구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핵 현대화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핵의 경제적 영향력을 재조정하는 것이다. 결국 전세계의 비핵화보다는 미국 방위 재편과 더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재래식 무기 감축과 관련해서는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한 오타와협약을 주목할 수 있다. 1997년 12월 3일과 4일에 서명되어 같은 해 12월 5일 유엔에 제출된 이 협약은 1999년 3월 1일 발효되었다. 이 협약에는 155개국이 서명했지만 미국·러시아·중국은 서명하지 않아(2) 그 효력은 제한적이다. 2008년 5월에는 이 협약을 집속탄 사용 금지로까지 확대시키려 했으나 많은 강대국들이 비준을 하지 않아 마찬가지로 한계에 부딪혔다.
경·소형 무기(ALPC) 문제는 2001년 뉴욕에서 처음으로 다뤄졌다. 그 프로그램의 진척에 대해서는 2006년 회의에서 평가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이 무기들의 경우 특히 표식 부착과 유통경로 확인 문제가 주로 토론되고 있음에도 현재까지 어떤 공동성명도 완성되지 않았다.
오바마 재래식 무기 협약 재검토
2006년 미국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재래식 무기 거래에 관한 협약 문안은 오바마 정부에 의해 재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그 텍스트가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지는 확실치 않다. 한 예로, 1999년 이후 유럽 행동지침이 시행됐지만 무기 판매가 현저히 감소하지는 않은 사실을 들 수 있다.
사실 군비축소의 법적 양상과 경제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양을 줄이는 것만이 유일한 문제 접근 방식은 아니다. 무기의 수도 중요하지만, 더 전반적으로는 투자 금액을 살펴봐야 한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전세계 군비 지출은 8470억 달러(약 5920억 유로)에서 1조2260억 달러(약 8570억 유로)로 45% 증가했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하면 그 증가 추세(약 3510억 유로에서 4580억 유로로 약 30% 증가)는 완만하다. 또한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다. 이 기간 서유럽의 군사예산 증가액(+4.5%, 약 80억 유로)은 적은 반면, 동유럽(+174%, 약 190억 유로)·극동(+56%, 390억 유로)·근동(+56%, 180억 유로)의 군사 예산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반면에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남아시아(인도 남부 대륙)의 군사예산 증가액은 변화가 없었다.
전세계적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군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감소하고 있다. 국제전략연구소(IISS)(4)는 1985년 6.7%를 차지하던 군비 지출이 1999년에는 4.1%로, 그리고 2007년에는 2.27%로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변화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GDP의 4% 이상을 군비로 지출하는 국가가 1987년에는 28개국이던 것이 1997년에는 18개국으로, 2007년에는 11개국으로 줄어들었다. 이 중에 소수 핵심국가(매년 4~6개국으로 그 수가 달라진다)가 국내총생산의 8% 이상을 군비로 지출한다.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오만 3개국은 항상 포함되고, 시기에 따라 다른 국가들도 해당된다. 1987년에는 요르단과 시리아가, 1997년에는 앙골라와 쿠웨이트, 레바논이, 2007년에는 그루지야가 포함됐다. 상위 20개국의 군비예산은 2.5%에서 2.7% 정도였는데, 이 수치는 상대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미국을 제외하면(미국의 군비예산만으로도 전체 변화액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차라리 2% 감소했다고 보아야 한다.
병력 역시 급감했다. 군비 지출 상위 20개국의 보유 병력은 1990년 1530만 명이었으나 2009년에는 1천만 명으로 감소했다. 전체적으로는 중국·러시아·미국 세 나라의 병력 감소가 두드러졌는데, 이 국가들의 전체 병력 수는 920만 명에서 480만 명으로 감소했다.
2009년 2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보유한 국가(5)에 대해서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이 국가들이 1990년에 보유한 총병력은 2260만 명이었다. 이 수치는 2009년 15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이런 중대한 변화는 냉전 종식 이후의 지정학적 변화를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2차 세계대전 같은 재래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병력 감소가 강대국에서만 일어난 현상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3개국 외에, 인도(6)와 북한은 10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두 국가의 경우 상황은 20년 사이 그다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대로 다른 21개국(7)은 2009년에 2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20년 사이 그들의 병력은 910만 명에서 780만 명으로 14% 감소했다.
군장비 지출은 대폭 증가
무기 생산에 관해서는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8)가 발표한 전세계 상위 100개 기업(중국 제외) 자료를 근거로 분석이 가능하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이 기업들의 총생산가치는 2060억 유로에서 3470억 유로로 약 68% 증가했다. 이것은 전세계의 군비 지출이나 GDP 상승률보다 확연히 높은 수치로, 군장비 투자가 우선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군비 지출 분포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9) 국가에서도 확인된다. 1999∼2008년 인건비는 1860억 유로에서 2050억 유로로 10% 증가했다. 같은 시기 군장비 관련 지출은 880억 유로에서 1350억 유로로 50% 증가했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 변화가 감지된다. 2008년 국방안보백서에는, 2009~2014년과 2015~2020년에 걸친 12년 동안 군장비 관련 지출이 매년 180억 유로(2008년 가격)에 달한 것으로 보고돼 있다. 이것은 제5공화국이 출범한 이래 유례가 없었던 57.5%라는 수치에 도달한 것이다.(10)
무기 판매에 관해서는 자료가 많지도 않고 편차가 심한 관계로 확실하게 분석하기 어렵다. 이 분야에서는 유엔 자료의 데이터 분석을 적용하기 힘들다. 무기와 탄약을 언급한 ‘93’번 항목의 수치들이 주요 국가들이 발표한 수치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11)
마찬가지로, 재래식 무기 거래에 관한 유엔의 기록은 1992년 이래 유용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 자료들은 거래량(가격에 관한 사항은 없음)에 관해서만 언급하고 있고, 전체 시장의 변화를 연도별로 파악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하다.(12)
전체적인 동향을 파악하게 해주는 자료는 SIPRI와 미 의회 리서치서비스(CRS)다. 해마다 적절한 지표(13)를 발표하고 있는 SIPRI에 따르면, 세계 무기시장은 1989~98년에 3분의 1 정도가 감소했다가 이후 다시 상승세를 보여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2% 증가했다.
CRS의 리처드 그리메티 연례보고서(14) 역시 1989~98년에 무기 거래가 약 3분의 1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후 시기에는 SIPRI와는 반대로 다시 3분의 1 정도 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1999년에 340억 유로였던 무기시장 규모가 2007년 210억 유로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각종 도표가 풍부해 이 보고서가 자주 인용되기는 하지만, 이 보고서는 몇 가지 방법론적 문제, 특히 미국의 경쟁국인 유럽 주요 국가들의 무기 판매 평가에서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CRS는 2000~2007년에 프랑스 무기 총판매량을 114억 유로로 집계한 반면, 프랑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총액이 그 3배(364억 유로)에 달한다.
국제 무기시장 규모 파악 힘들어
국제 무기시장 규모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사실은 프랑스의 최근 발표를 보면 알 수 있다. 2002~2006년에 국제적으로 연평균 약 614억 유로에 달하는 무기가 인도된 것으로 나타나지만, 이 수치는 CRS의 집계 수치와는 확연히 다르다.(15) SIPRI는 안내서 외에도, 전세계 무기 거래의 90%를 차지하는 33개국의 공식 집계에 근거한 무기시장 금융 가치 평가서도 발간하고 있다. 이 평가서에 따르면 2001년 200억 유로로 저점을 찍었던 무기 거래가 2007년에는 350억 유로(+64%)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물론 각종 규정이나 조약, 협약, 지역협정 등은 상징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중요 국가들의 경제적·전략적 결정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 상황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비정상적인 대량 무기 보유와 대규모 전투의 시대는 지나갔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군비 지출 액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둘째, 이 분야 전문 대기업의 활동 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군사’ 관련 지출 부분이 ‘안전’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는 것이다. 셋째, 군비 감축은 단선적으로 분석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각종 현상들은 주기적으로 순환된다. 특히 세계적 변화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지출 현상은 더욱 그렇다. 넷째,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변화가 고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근동 같은 고착화한 문제 지역은 나머지 지역과 차이가 있다. 다섯째, 재래식 무기 분야에서 유엔의 제안은 정보가 빈약하고, 무기 거래 금액에 관해서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신빙성 있는 자료에 근거해 적절한 조약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기의 양이라는 변수만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계속 증가하는 전쟁 장비(항공기나 핵미사일 등 초고속 운반 수단, 초강력 폭발물, 고에너지 무기, 소형 무인정찰기, 지상 로봇,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전투기, 첨단 탐지 시스템, 백린탄, 거대 불도저 탱크 등)의 역량은 우리가 군비 전환(transarmament)(16) 시스템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전에 없던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이 문제들은 새로운 개념틀 안에서 다뤄져야 할 것이다.
글· 장폴 에베르 Jean-Paul Hebert
번역· 김계영canari62@ilemonde.com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화사>(2006),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
<각주>
(1) 군비축소회의 마지막 회기는 9월 18일이고, 통상 1월에 업무가 재개된다. 2009년 5월, 이 회의는 1996년 이래 처음으로 협상 프로그램을 채택함으로써 12년 동안의 혼수상태에서 벗어났다.
(2)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란, 북한 등의 분쟁국가들 역시 서명하지 않았다.
(3) 뤽 맘파에, ‘유럽 방위 요람의 나쁜 요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6년 10월호.
(4) 국제전략연구소, ‘군사적 균형’ 참조, www.iiss.org.
(5) 총 26개국(사우디아라비아, 버마, 브라질, 콜롬비아, 인도, 인도네시아, 이라크, 멕시코, 파키스탄, 타이, 독일, 중국, 북한, 한국, 이집트, 스페인, 미국, 프랑스, 이란,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시리아, 대만, 터키, 베트남).
(6) 올리비에 자젝, “인도 군대, 간디를 망각하고 힘을 꿈꾸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9월호 참조.
(7)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버마, 브라질, 콜롬비아, 한국, 이집트, 스페인, 프랑스, 인도네시아, 이라크, 이란, 이탈리아, 일본, 멕시코, 파키스탄, 시리아, 대만, 타이, 터키, 베트남.
(8)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는 1966년부터 <무장, 비무장, 국제 안전>이라는 연감을 해마다 발표하고 있다. www.sipri.org.
(9)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는 이 분포를 파악할 수 없다.
(10) <프랑스 국방안보 백서>, 프랑스국립자료원, 파리, 2008년.
(11) 장폴 에베르, ‘다원주의와 무기 생산 및 이송’, in 미셸 바코-드크리오, <다원주의: 신화와 현실>, 브륄랑, 브뤼셀, 2009년 참조.
(12) 카테고리 IV ‘전투기’에는 최근의 첨단 전투기와 비무장화된 연습용 비행기가 잘 등록돼 있다. F16 최신 기종 ‘푸가 마지스터’에 대해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13) 이 지표는 실제 이루어진 거래 수치가 아니라 SIPRI 자체 평가 시스템에 근거한 총합으로, 기간 및 공간상의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지, 일정 순간의 거래 가치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14) 리처드 F. 그리메트, ‘개발도상국으로의 재래식 무기 이전 2000~2007년’, 2008년 10월, CRS code RL34723.
(15) 의회 보고서, ‘2007년도 프랑스 무기 수출’(p11), www.defense.gouv.fr 다운로드 가능.
(16) 갈등의 소지가 있기는 하지만, 여러 형태의 군사방위와 민간방위가 공존하는 이행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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