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 vs '반동'… 볼리비아의 위태로운 대립
인디오 출신 모랄레스와기득권층의 갈등
분배·규제정책… 반대파 '포퓰리즘' 성토
기득권 주민들, 폭동으로 대통령 방문저지
모리스 르무안 <저널리스트>
에보'는 "볼리비아가 변화하고 있다. 에보는 약속을 지킨다."는 슬로건과, 주먹을 들어 보이는 벽보를 내걸고 선거운동을 벌였다. 그렇게 집권한 '에보'와 사회주의운동당(MAS) 정부는 분명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반대세력들이 그 성공을 폄하하는 바람에 가시적 변화를 감지하기 어려울 때도 종종 있다. 집권후 다국적기업들의 계약재협상 형태를 빌어 시도한 석유 및 천연가스 국영화는 국가수입을 증대시켰다.
그 덕분에 가장 시급한 사회 프로그램들이 실현됐다. 정부는 '품위연금(renta dignidad)'으로 불리는 노령연금을 60세 이상의 모든 볼리비아 국민들에게 매달 200 볼리비아노(약 20유로) 1)씩 지급하게 됐다. 아직 불충분하기는 하지만, 최저임금도 575볼리비아노(55유로)로 올렸다.
'후아신토 핀토(Juacinto Pinto)'라 불리는 가족수당도 지급, 아이들 교육비를 보태고 있다. 토지는 농민들에게 재분배됐으며, 그 바람에 동부의 대지주들은 불만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2) 각종 개발은행은 종전엔 외면했던 소기업이나 영세기업에게도 대출을 해 주도록 했다.
그를 비판하는 세력들은 '포퓰리즘' 정책('인디오 우대' 정책이라고 해야 적합할 수도 있다)이라고 규탄하고 나섰다. 그러나 쿠바 식 "요시푸에도"(예스 아이 캔) 프로그램 덕에 수십만 명이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1억 달러 이상을 들여가며 도로, 보건소, 전기 공급, 운동시설 설치 등 200여개에 달하는 공공사업들이 주로 베네수엘라와의 협력하에,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를 두고 중앙정부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자치 투쟁의 보루' 산타 크루스의 정책 분석가 호세 미르텐바움은 노골적으로 "에보 모랄레스에 의해 볼리비아는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우고 차베스의 조악한 아류 제국주의를 시험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 전투장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분명 인종적 갈등, 정치 양극화, 지역 간 대립 등으로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상황은 매우 나빠졌다. 카를로스 메사 전 대통령(2003-2005년 재임) 정부 하에서 인디오 권한 담당 장관을 역임한 리카르도 칼라는 "야권은 쿠데타를 통하지 않고도 모랄레스를 축출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됐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모랄레스의 위기를 가져온 중요한 원인으로 '권력의 독선'을 꼽았다.
그는 "집권 사회주의운동당(MAS)의 양대 계파의 하나인 게릴라 출신 마르크스-네오마르크스 주의자 계열 3)과 1950-60년대 냉전시기 좌파 지지자들이 그 바탕에 있다"면서 "이들 계파에 반대해 '거의 소외된' 여러 갈래의 민주좌파들이 집권당 내에서 이들과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모랄레스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래 반대파들은 그들이 '인디오'라고 부르는 모랄레스의 실패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 그들은 상원을 장악하고 2007년에만 100개의 법안을 부결시켰다. 이들과 협상을 벌인 것이 바로 대통령의 첫 번째 실책이었다. 그리고 다른 실책들이 계속된 것이다.
신 헌법을 위한 제헌의회를 소집할 당시, 사회 근간을 변화시킬 목적으로 원주민들의 권리를 주장한 MAS는 호르헤 키로가 전 대통령이 이끄는 우파 정당 '민주적·사회적 힘(Podemos)'과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제헌의회 소집에 앞서 MAS는 그런 의견의 일치를 바탕으로 볼리비아 신헌법(CPE)이 제헌의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지지로 가결된 후 국민투표를 거쳐 비준되어야 한다고 국회에서 결정했다. 이는 순진한 민주적 자신감과 경험 부족이 초래한 결과였다. 승리에 도취되어 있던 집권당은 폭넓은 지지를 얻을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이 또한 그랬다. 하지만 전체의원 255명 중 의견의 일치를 본 자당출신 및 '민주적·사회적 힘' 의원 133명으론 결코 3분의 2에 도달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는 바로 우파가 모랄레스 정권의 모든 것에 딴지를 걸고 나설 수 있게 해준 약점 가운데 하나다.
MAS를 방해하기 위해 야권은 제헌의회를 완전히 보이콧했다. 1년 내에 새로운 기본법을 제정해야 하는 제헌의회는 내부강령을 작성하는 데만 8개월이 걸렸다. 주어진 기한이 다하자 위임 기한을 연장했다. MAS-Podemos 간에 새로운 합의가 이루어지고, 국회는 이 기한연장을 받아들이면서 신헌법을 단순 과반으로 승인하기로 다시 결정했다.
변호사이자 볼리비아헌법연구아카데미 회장인 호르헤 안토니오 아스분은 그때를 돌아보며 "제헌의회가 활동 중인 이상 입법부가 다시 나타날 수 없고, 다른 어떤 게임 규칙을 바꿀 수도 없다."며 "그렇게 하는 것은 위헌이고 그럴 권한도 없다."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야권을 참여시켜 볼리비아공화국 법률이라는 형태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제헌의회가 자리 잡고 있는 수크레(산타 크루스에도 있다)에서는 새로운 정세에 따라 선동, 소란, 시위가 일어났다. 시민위원회 4)들이 제헌의회 직무를 계속 방해하자 여당의원들은 2007년 11월 23일, 군사학교 교정으로 피신했다. 밖에서는 경찰과 반대세력간에 난투가 벌어졌고 시위대 중 3명이 사망했다. 결국 12월 9일, 신헌법(안)은 오루로에서 '마시스트(masiste)'들 5)과 그 연합세력을 중심으로 참석의원 3분의 2 지지로 가결됐다. 그러나 야권의원들은 소환 기간을 지키지 않고, 아예 불참했다.
이처럼 MAS는 힘에 의지하는 쪽을 택함으로써, 본래 권위적이고 독재적이고 군국주의적인 우파가 오히려 민주세력을 자처하고, '자치'의 깃발을 휘두르도록 해준 꼴이 되었다.
2006년 7월 2일, 정부의 제안으로 주(州) 자치에 관한 국민투표가 치러졌다. 역사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통치로 고통받아 온 볼리비아에서 대통령 스스로 자치문제를 쟁점화한 것이다. 물론 원주민 자치가 그 쟁점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투표가 시행되기 며칠 전 그는 볼리비아 각 주들에 대한 입장을 급선회해 강력한 '자치반대' 캠페인을 벌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자치 내세운 반 모랄레스 운동
이에 앞서 본래 메사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그만두기 전 우파에게 양보해, 각 주에서 직접·보통선거로 주지사를 선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한 바 있다. 이것이 시한폭탄이었던 셈이다. '메디아 루나'6), 즉 볼리비아 동부의 4개 주인 산타크루스, 타리하, 베니, 판도 등 의 야권 주지사들은 맹렬하게 분리주의 의지를 내보였고, 정면 대결을 불사했다.
이들이 모랄레스 대통령을 몰아붙인 또 다른 약점도 있다. 협상 실행을 주장하는 의원들과 도시 지식인층 계파, 그리고 이에 반해 실력행사와 강력한 '조치'를 주장하는 인디오 원주민이나 농민들을 축으로 하는 과격 노선 사이에서 정부와 대통령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조차 이를 두고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국민투표가 실시되자 볼리비아 전국적으로는 '반대'가 우세했다. 반면 산타크루스, 베니, 판도, 타리하 4개주에선 '찬성'이 우세했다. 이 주들은 즉각적인 자치제 실시를 요구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거부했고 위기를 초래했다. 애초 대통령 자신이 2006년 3월 6일자 이른바 '3365소환법안'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이 법안에는 "국민투표에서 단순 과반을 얻은 주들은 신헌법이 공포되는 즉시 주자치제를 시행하도록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수크레에는 볼리비아의 다른 어느 곳과 마찬가지로 인디오 원주민들에 대한 차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신임 대통령이 나오기까지는 그랬다. 그런 가운데 제헌의회가 바로 이곳 수크레에 들어섰다. 그럼에도 여전히 원주민에 대한 차별과 분노가 이곳엔 가득하다. 추키사카 주 출신 민중연맹지도자인 우르키조 쿠엘라가 그 대표적 사례중 하나다. 그는 제헌의원으로 당선되면서부터 이 지역에서 '페르소나 논 그라타'(기피인물)로 낙인찍혔다.
MAS의 표를 얻어 당선된 그와 그의 원주민 동료들의 사진들이 벽이며 상점이며 식당에 나붙었다. 그 사진들에는 "배신자, 주(州)의 적들"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쿠엘라는 "국회에서 농촌 지역을 대변하는 것이 죄가 되고, 농민이고 케추아족이라는 것도 죄가 된다."고 호소했다. 2008년 4월 10일, 그는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다. 쿠엘라는 그 순간을 돌이켜 "그들이 나를 폭행하는 동안 '원주민들을 끝장내야 해! 혀를 자르고 눈알을 뽑아버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그들은 내가 아는 사람들이며, 고소를 제기했지만 불행하게도 고소장이 분실됐다. 그것도 사법권의 수도라는 수크레에서…"라고 분개해 마지 않았다.
더욱 극단적 사태는 지난 5월에 벌어졌다. 2008년 5월 24일, 모랄레스 대통령은 헬리콥터를 타고 수크레에 도착해 농촌 지역과 주변지역에 사회계획의 일환으로 앰뷸런스 2대와 2백만 달러를 전달해주기로 되어 있었다. 이에 맞서 지역사회의 이익을 목적으로 3월 7일 창설된 '범체제위원회'가 동원됐다. 이 위원회에는 추키사카의 샌프란시스코 하비에 대학, 시청, '시민단체'(Codeinca), 수크레 주 기업가조직 등이 포함되어 있고, 대학총장인 하임 바론이 회장을 맡고 있다.
모든 지역사회 저명인사들과 함께 있던 하임 바론은 이날 반 모랄레스 시위를 벌이던 군중들로 하여금 행사장인 주경기장을 선동했다.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중이던 군인들이 공격을 당했다. 긴장이 극에 달한 순간, 한 장교는 "사격하면 안 돼! 다이너마이트 던지는 걸 멈춰! 7)"라고 자제를 명령했다. 그리고 군대는 후퇴했다. 이에 헬기 착륙이 중단되고 대통령은 헬기에서 내리지 않았다.
반대파, 차베스식 '제국주의' 비판
석유·가스 국영화, 토지 재분배 지향
그러자 이에 고무된 시위대와 폭도들에 의해 '원주민 사냥'이 시작되었다. 마침 '에보'를 환영하기 위해 시골에서 트럭을 타고 온 원주민들이 행사장에 내렸다. 그러나 동부에서 버스를 타고 온 산타크루스 청년연맹 소속 젊은이들은 또다른 조직적인 대학생들과 합류해 이들 원주민들을 추격, 생포했다. 발길질과 주먹질이 이어졌다. 여자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쳤다. 그런 여자들의 머리채를 낚아챘다. "죽여! 죽여!" 돌에 맞아 죽거나 산채로 불태워질까 겁먹은 십여 명의 평화적 원주민 참석자들이 주 광장으로 밀려갔다. 사람들은 그들의 옷을 벗기고 무릎을 꿇게 한 다음, 땅에 엎드려 대통령을 모욕하도록 강요했다. 흥분한 군중들은 "수크레여 일어서라! 에보는 무릎 꿇어라!"고 민주주의를 외쳤다.
폭도들, 원주민 린치
이제 더 이상 수크레의 집들에는 MAS의 깃발이 휘날리지 않는다. 깃발이 보이면 불태워 진다. 5월 24일의 사건들은 수크레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러나 사건 규명을 방해하기 위해 수크레 시의원들은 6월 22일, 인디오 원주민 부족 폴레라(8) 출신인 사비나 쿠엘라르 여사를 주지사로 선출했다. 쿠엘라르는 '요시푸에도' 프로그램 덕택에 글을 깨우쳤고, MAS 측 제헌의원에 선출된 바 있다.
그러나 야권의 새로운 아이콘이 된 그녀는 우파와 연합하며, "나는 인디오 원주민이다. 나이 45세, 일곱 아이를 키웠다."는 정치연설을 반복했다. 그녀는 71%에 달하는 도시 지역유권자 지지에 힘입어 전체 득표 51.5%를 얻어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했다. 농촌지역에 사는 그녀의 '원주민 형제들'은 그녀에게 반대표를 던졌다. 알티플라노, 라파스, 엘알토, 포토시, 오루로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도시와 농촌으로 갈라진 볼리비아의 현실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인 셈이다.
1950년대에 고립되어 있던 작은 촌락에 불과했던 산타크루스 데 라 시에라(산타크루스 주의 주도)는 몇 십 년이 흐른 지금 볼리비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번성한 도시가 됐다. 원래 농민들이 주를 이루던 이곳 부르주아지는 현재 산업, 수출, 농공업에 종사한다. 사탕수수와 쌀 윤작은 콩 재배로 대체됐다. 특히 타리하 주와 마찬가지로 산타크루스 주에서 개발된 천연가스에 대한 직접세가 강화되면서 놀라운 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최근 모랄레스 정권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에 겨워한다. 산타크루스에 거주하는 한 중산층 주부는 "나 스스로 불행하고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괴로워하며 마음은 좌파에 있다."면서 "나는 변화를 원하며 '에보'에게 투표했고, 모든 볼리비아 인들이 평등해지고 동등한 권리를 갖기 바랐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또 다른 극단적 경우, 다시 말해 거꾸로 된 인종차별주의"라고 분노했다.
그녀 생각엔 모든 정책이 원주민들만을 위한 것이다. 아이들 교육을 위한 '후아신토 핀토' 수당 역시 "원주민 부모들이 아이들 대신 현금을 가로챈다."고 했고, 신 헌법 역시 "사회운동이란 차원에서 투표를 하기는 했지만 뭘 알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회의적이다.
유독 그녀의 마음을 끄는 한 가지는 '자치'다. "과거에 중앙정부가 관리했던 모든 것은 대실패였다."는 생각 때문이다. 과거 국제개발처(USAID) 9)의 추방과 미 대사관저 앞에서의 시위도 그런 것들이란 생각이다. 그녀는 "지금은 일종의 전쟁이며, 사람들은 우리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소수의 지배자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6년 7월 국민투표에서 산타크루스는 자치권 확대에 찬성했다. 소환법에 의거하면 이 투표는 '양도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주는 자치제 적용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소환법에 명시된 것처럼 "신헌법이 공포되는 즉시"가 되어야 한다.
주자치권은 신헌법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자치가 시행되려면 국회가 회부한 신헌법이 국민투표를 통해 승인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우파는 그 승인을 지연시키기기 위해 온갖 짓을 다했다. 그때부터, 대체 문제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입헌주의자인 아스분의 말에 그 답이 들어있다. "자치권 확대 계획에는 당연히 인디오원주민들과 시, 군의 자치권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땅에서 또 다른 자치권이 출현한다고 해도 주자치권 확대를 원하느냐고 묻곤 하죠. 이것은 민주적 절차와 의지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지방분권이 미덕으로 여겨지나, 이것 역시 주(州)로 권력이 집중되는 또 다른 형태의 중앙집권화를 위한 지방분권이다. 이런 논리에 따라 지난 5월 4일, 산타크루스는 주자치권 확대를 승인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주민투표를 강행했고 대승을 거뒀다. 하긴 기권표가 38%에 달했다. 어쨌든 천연가스가 집중적으로 매장되어 있는 베니 주와 판도 주(6월 1일), 그리고 타리하 주(6월 22일)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이어졌다. 산타 크루스 정책 분석가 호세 미르텐바움은 "그러나 이곳에는 분리주의자들이 없다. 여기는 코소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야권 지도자들과 함께 자주 산타 크루스에 모습을 보이는 필립 골드버그 미 대사의 전 임지는 코소보였다. 어쨌든, 이런 자치적 '위상들'을 갖게 되면 주(州)는 유무선 통신과 이동통신, 도로와 철도, 정책과 교육프로그램 결정, 도시와 농촌의 전기설비, 에너지 정책, 노동체제, 사회보장 및 건강, 사법행정, 주 내의 공기업 및 국가조직 책임자 지명권 등의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 언론 분야에서는, 특정신문을 통한 '차별적' 국정홍보가 금지되고, 중앙권력이 라디오와 텔레비전 주파수를 정부 '마음대로' 양도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주 행정부는 대중방송매체를 창설할 수 있다 10).
산타 크루스의 부르주아지는 1950년대에 발전하기 시작했다. 1964년부터 시작된 18년간의 독재권력 뒤편에는 항상 산타크루스 부르주아지가 있었다. 실제로 이 지역 기업인들은 1971년 우고 반세르 수아레스 장군의 쿠데타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산타 크루스 주변 지역 책임자인 호르헤 파스는 "오늘날 자치주의자들을 자처하는 시민 우파는 이 기간 동안 모든 정권에 참여했고, 당시 가장 중앙집권적이었던 사람들"이라며 "현 카를로스 다브두브 주자치 사무총장은 하이메 파스 사모라 전 대통령(1989년-1993년 재임) 시절 장관을 지냈던 사람"이라고 꼬집었다.
2000년에 이르러선 이들 부르주아지 계층 내부에서 누수가 시작됐다. 2003년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이반이 심해졌다. 이에 대해 "당시 자신들의 이익이 위험에 처해있음을 알게 된 우리 권력그룹은 '자치'라는 주제를 발명해냈다."고 분석한 호르헤 파스는 "그들이 서로 결합하고 미디어를 통해 캠페인을 벌여, 그들 자신조차 믿지 않는 새로운 신화를 통해 그들의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라고 자치권 주장의 배경을 설명했다.
반면 그들은 노령연금 재원조달을 위한 석유 및 가스 직접세 30% 인상을 두고, 정부가 '몰수한' 것으로 생각하며 이를 중앙정부로부터 회수하려 했다. 석유 및 가스 국영화가 이런 손실을 보충해주었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외면한채, 시와 주에 할당되는 지방세 비율을 증대시켜 이를 만회하는 한편, 다국적기업들에 대한 과세기준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8월 10일 정·부통령 및 8명의 주지사에 대한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지기 몇 주 전, 자신 역시 신임투표 대상에 포함된 루벤 코스타스는 산타크루스 주에서 '에보'의 패배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그가 더 이상 이곳에 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며 "그는 이곳에 올 수 있겠지만, 통치자로서가 아니라 일반 방문객으로 올 수 있을 것 11)"이라고 의중을 드러냈다. 대통령의 산타크루스 방문이 예고되자 체계적으로 조직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고, 시위대는 대통령의 메디아 루나 4개 주와 수크레 방문을 방해했다. 지방자치인가 반란인가라는 물음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이들 지역 사람들은 모랄레스 대통령이 볼리비아 빈민들의 처지를 개선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고 비난하고 있다. 인디오 원주민 대중들은 역사적으로 소외되고, 그런 이유로 해서 폐쇄적이며 자기방어적이다.
대부분 빈민들은 인디오 원주민들이며, 사회 프로그램의 중요한 부분들이 그들에게 맞춰져 있다. '인디오 원주민 우대주의'로 비난받기도 하는 이런 정책들은 이같은 인적·역학적 현실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볼리비아노동자연맹(COB)의 교사들과 광부들이 주도한 강력한 사회운동은 이런 복잡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들의 압력으로 정부는 8월 9일, 빌바오비스카야 아르헨타리아 은행(BBVA)과 취리히 그룹, 두 민간 기업이 담당했던 퇴직금 관리를 국가가 대체하겠다고 발표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8월 10일 투표에서 67%의 지지를 얻어 재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야권에 속하는 산타크루스, 판도, 베니, 타리하 주지사들 역시 그들 주에서 큰 승리를 거뒀다 12). 자치지역을 통합하는 민주국가위원회(Conalde) 의장이기도 한 코스타스 주지사는 이제부터 주자치를 적극 추진하고 "석유 및 가스 국영화와 토지 재분배 등의 모랄레스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에 저항하겠다 13)"고 선언했다.
국민투표가 있기 며칠 전에는, 시민단체들의 '단식농성', 소동, 폭력행위, 그리고 군부에 의해 대통령을 축출하자는 호소(페리 페르난데스 산타크루스 시장의 호소)가 이어졌다.
해발 4,000미터의 하늘과 맞닿은 거대한 알티플라노 고원에선 전혀 상반된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곳 캄페로에서는 모랄레스 대통령을 지지하는 회의가 열렸다. 이곳엔 집권당을 추종하는 마시스트들도 있고, 마시스트가 아닌 사람들도 있고, 독자노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파트너' 에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를 위해 투쟁하기로 했다.
이 지역이 오지 마을 콘도르 이키냐의 어떤 이는 또 "기득권 세력이 우리로부터 빼앗아가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며, 그건 치욕스러운 일"이라며 "그들이 '에보'를 쫓아내면, 아주 심각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번역 : 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1) 미미한 액수로 보이지만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볼리비아에서는 상당한 액수다.
2) 정부집계에 의하면 500만 헥타르의 토지가 재분배되었다.
3)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을 지칭한다. 그는 인디언은 아니지만 원주민 게릴라 '투팍 카타리(Tupak Katari)'(전력송신탑을 폭파하는 게릴라 행위를 함) 소속이었는데, 부통령이 되어서는 역설적으로 협상을 주장하는 인물이 됐다.
4) 이 시민위원회들은 우파의 가장 강력한 구성원들을 규합하고 야권의 선봉이 된다.
5) MAS 투사 혹은 MAS 지지자들.
6) 반달이라는 뜻. 고원을 둘러싸고 있는 볼리비아 동부 주들의 지형학적 위치를 본뜬 말.
7) 세자르 브리가 찍은 비디오 자료 참조. 'Humillados y ofendidos', 수크레, 5월 24일. 'Documental sobre los hechos', 수크레, 2008.
8) 전통복장을 입은 인디오원주민
9) 국제개발을 위한 미국 기관. 샤파레 지역에서 간첩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10) '산타크루스 주의 지위', 산타크루스 데 라 시에라, 2007년 12월 15일.
11) <El Deber>, 산타크루스 데 라 시에라, 2008년 7월 16일
12) 코차밤바와 라파스의 주지사들은 재신임을 받지 못했다. 최근 보궐선거를 통해 추키사카 주지사로 선출된 쿠엘라 여사는 신임투표대상에 해당되지 않았다.
13) BBC Mundo, 런던, 2008년 8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