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에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증언

2009-10-06     다니엘 리나르|노동사회학자

공공부문의 경우

1998년 법적 지위가 변하기 전 우체국:

먼저 분류센터 책임자의 말이다. “공공서비스는 분류센터 안에 살아 있다. 직원들은 일에 대한 애착이 강하며 자신들의 할 일을 잘 알고 있다. 이는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기업체의 우편물과 당신과 나 같은 일반 개인의 우편물이 쌓이는 경우 기업체 우편물을 먼저 처리하라고 요구받은 적이 있었다. 직원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이 봉투에 우표를 붙이는 순간부터 당신은 다른 이들과 동일한 권리를 갖는다. 모든 직원들이 반대했다. 우린 강한 의무감으로 일한다. 우리의 역할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즉, 두메산골에 사는 사람들도 남들과 똑같이 편지를 받고 보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수익성 손실은 감수할 수 있다. 상급자들과 심지어 가장 젊은 직원들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배달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의 걱정도 비슷하다.

“나는 공공서비스를 배달 부문에서 찾는다. 일반 사람들이나 사용자들(우체국)에게 상황은 변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가 집으로 배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내용만 알기를 원한다. 새로운 공공서비스는 더 이상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창구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기계 한 대가 고장난다면 더 이상 손으로 일할 줄 아는 직원이 없다. 만약 기계 고장으로 최저소득 수령자에게 돈을 지급할 수 없다면 부당한 일이다. 예전에 우리는 일할 줄 알았고 고객은 서비스를 받았다. 그것이 공공서비스였다.”

그러나 ‘간단하고 단조로운’ 업무라는 이미지, 즉 끝없이 시계만 보는 전형적인 공무원 이미지와 단절하고 ‘우체국의 쇄신’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회를 연결해주는 공공서비스의 특징에 애착을 갖고 있다.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공공서비스 하나를 유지할 수 있을 뿐이다. 수익성 명목으로 노동조건이 악화되고 있다.” 판매 행위를 별도의 업무 활동으로 간주하는 개인 인센티브는 그들에게 근심을 안겨준다. “판매를 하고 각자의 몫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고객 1명당 최소한의 시간을 할애하며 최대한 많이 판매할 수밖에 없다. 서류 작성이 부실하더라도 별수 없다.”

우체국 직원들은 사용자(우체국)와의 관계도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비스를 올바르게 제공하도록 교육 받았다.” “난 공공서비스에 대해 매우 확실한 생각을 갖고 있다. 난 우편 확인 도장을 찍는 기계가 아니다. 만약 내가 판매원이 되려 했다면 대형 백화점에 취직했을 것이다!”

 

민간부문의 경우

한 대형 식품그룹 계열사인 과자회사:

“예전에 반죽을 만드는 이는 다음 과정의 주물공을 위해 좋은 반죽을 만들었다. 주물공이 덜 피곤하도록 말이다. 과거에는 동료들 간의 결속이 강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있다.” 어떤 노동자는 동료의 고객이자 공급자로서 작성해야 하는 현장 수첩을 동료에 대한 ‘고발장’으로 간주한다. “만약 당신이 보고서를 쓰지 않고 당신 업무 단계에 도달한 상품의 결함을 알리지 않는다면, 즉 다른 동료의 실수를 알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업무에 속한다. 따라서 우리는 때로 다른 이들의 잘못을 폭로할 수밖에 없다.”

“노동조건을 바꾸면서 과거의 상부상조 관계를 잃어버렸다.” 이 과자회사의 포장 부서에서 일하는 기계공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물론 과거에도 일은 힘들었다. 그러나 자기 일을 끝낸 사람은 다른 이들을 도와주러 갔다. 심지어 시설 보수과 직원들도 시간이 있을 때는 우리를 도우러 왔다. 그렇게 직원들은 잔소리가 심한 상사가 있더라도 서로를 더욱 믿을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 직원들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만 한다. 예전에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었다. 많은 얘기를 나눴고 서로를 더욱 잘 알았다. 지금은 움직일 수 있는 이는 나뿐이다. 10분에서 15분마다 나는 작업장을 한 바퀴 둘러본다. 이것이 내 일이다.” 어떤 여성은 이렇게 한탄한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직원들은 더 이상 연대감을 느끼지 않는다.”

과거에는 이런 연대감과 함께 노동 의욕이 더욱 고취되었다. “우리는 결속력이 강했다. 노동조합은 강력했고 우리 모두 굳게 단결했다. 우리는 친구나 마찬가지였다. 문제가 생기면 모두가 뛰어들었다.” “우리는 예전보다 쓸모가 적어졌다고 느낀다. 일하는 것은 기계다. 이제 사람들은 8시간 일하러 온다.” 또 다른 이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스스로 일할 경우에 쓸모 있다고 느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기계를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한 광천수 기업의 고참 직원들은 할 일이 사라졌다고 불평한다. 한 책임자는 이렇게 말한다. “고참들은 그저 말을 할 수 있기만 바란다. 고참들은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게 점점 더 어렵다고 얘기한다.”

새로운 경영 이데올로기도 제대로 자리잡기는 어렵다.

“대다수가 임금의 개별화를 반대했다. 우리는 동일 임금 체계가 기본이 된 상태에서 부분적인 개인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시스템을 원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임금의 개별화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집단의 역동성을 저해한다. 임금의 개별화는 사람들의 개인주의를 촉진한다. 예전에 우리는 더 강하게 단결했다. 또 다른 직원은 이렇게 덧붙인다. “개별화된 임금은 사람 사이를 벌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임금 인상을 판단하는 데 주관성의 개입을 제거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부당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팀워크에 역효과를 초래한다. 팀으로서 단결을 저해한다.”

또한 당연시하는 반민주주의적 조직문화도 마찰의 원인이 된다.

“내가 불편한 것은 간부들이 반말을 하는 것이다. 전에 어떤 엔지니어가 내게 반말을 했다. 난 반말을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간부들은 반말을 하면 친근하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내겐 충격적인 일이다. 간부들은 쉽게 반말을 하지만 부하 직원들이 반말을 참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D. L.

번역·박수현 


<각주>  

(1) 이자벨 베르토-비암므, 오렐리 장트, 다니엘 리나르, <우체국의 현대>, 연구부서 보고서, 우체국, 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