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5개국만의 ‘사회적 모델’ 존재하나?

2009-10-06     장피에르 세레니|<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차별되는 북유럽 5개국만의 독특한 사회 모델이 존재하는가? 이 문제를 두고 대학과 학계에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300명 정도로 구성된 역사학자와 사회과학 연구자 집단은 1996년부터 이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1) 정치인, 노조, 운동권, 전문가들도 두 손 놓고 기다린 건 아니었다. 100년도 더 전인 1907년, ‘산업재해와 근로자 보호’를 의제로 스칸디나비아반도 최초의 사회문제 국제회의가 개최된 바 있었다.

그 뒤 서로 다른 의견 대립 과정과 경험 교환을 거치며 끊임없이 서로의 방식과 결과를 비교하던 이들 국가를 지켜본 다른 나라들은 북유럽 5개국이 질병·노령·빈곤·실업 등 국민의 생활에서 위기로 작용하는 문제들을 접근하는 방식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

사실 인구 면에서도 정치 면에서도 북유럽 5개국은 저마다 상황이 다르다. 인구 900만 명의 스웨덴은 덴마크·핀란드·노르웨이보다 인구가 2배 많고, 아이슬란드보다는 30배나 많다. 정치적 측면에서도 스웨덴과 덴마크는 강력한 왕정국가였고, 노르웨이와 핀란드, 아이슬란드는 20세기 초에야 뒤늦게 독립한 식민지 국가였다. 하지만 북유럽 5개국은 서로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덴마크는 1939년 전에 먼저 길을 열어 보였고, 전쟁의 타격을 입지 않은 스웨덴은 1945년 이후에 바통을 이어받았다.

혹독한 날씨와 척박한 토양이라는 장애를 안고 있는 이 지역은 오랜 기간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조금씩 힘겹게 가난에서 벗어났다. 그 과정에서 인구의 4분의 1 이상을 잃기도 했다. 250만 명이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났기 때문이다. 1875년 스웨덴은 87%가 농촌 지대였고, 덴마크는 75%, 노르웨이는 81%, 핀란드는 94%가 농촌 지대였다. 1848년 덴마크에서 절대왕정이 폐지되고 1898년과 1920년 사이에 보통선거가 일반화되면서 정치권에서 변화가 일어났고, 이어 토지개혁이 봉건시대의 종지부를 찍으면서 사회 면에서 변혁이 나타났으며, 끝으로 (스웨덴 철강, 덴마크 농가공업 등) 근대식 산업이 등장하면서 경제구조가 변화했다.

처음에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대개 소작농)을 구제해주던 곳이었다. 독일 북부에 이어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난 뒤, 이 지역은 루터교가 지배하게 되었다. 곳곳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루터파 교회들은 철저히 박애주의를 실천하고, 술 취한 사람이나 미혼모가 기본권이나 자유를 박탈당하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구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 징계를 가하기도 했다.

먼저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부터 시작해 덴마크로 이어지며 점차 세속화된 교구 심의회는 가난한 사람들과 초등학생들을 지원해주는 행정시를 탄생시켰다. 중앙권력과 지방권력 사이에는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국가는 법을 만들고, 시에서는 이 법을 그대로 적용했다. 이는 당시 주요 납세자인 지주들과의 연대의식에 기반하고 있었다. 중앙권력은 지역의 상위 계층 사람들에게 (노령연금, 보건의료, 고아양육 등) 사회적 솔선수범을 요구하였고, 세금 인상을 원치 않았던 상위계층 사람들은 이를 정확히 따랐다.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노조의 압력 아래 정치적 역학관계는 노동계 강성 쪽으로 강화된 반면 유산자 계급과 지주 세력은 약화되었다. 보수주의 및 자유주의 세력들은 사민주의 세력에게 기득권을 내주고, 이에 따라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에서는 대연정이 이뤄졌다. 1917년 유혈투쟁을 불사하며 러시아혁명에 참여했던 핀란드는 이같은 대대적인 변화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었다. 노동조합과, 노동시장의 일정 부분 조정을 받아들인 기업인연합 사이의 지속적인 파트너십이 형성됨으로써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인구 전반으로 사회적 권리가 확장되었다. 지역 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는 보편적 사회복지 체계가 자리잡고, 시민 각각은 복지국가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며, 프랑스와 같은 사회 분담금이 아닌 세금으로 재정 지원이 이뤄진다. 노르웨이를 제외하면, 노동자가 자의로 가입한 보험으로 충당되는 건 실업보상금뿐이다.

실질적으로 복지국가의 황금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열렸다. 자유주의 사회도 사회주의 유토피아도 아닌, 사회적 관용과 경제적 효율성을 결합해 개혁 자본주의에 기반한 제3의 활로에서 복지국가의 꿈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모든 정치·사회 권력들은 지나치게 눈에 띄는 사회적 불평등을 금지하는 시장경제 사회를 받아들였다. 사회보장제도, 연금, 육아위탁시설, 양로원, 지체부자유자 보호, 보건, 교육, 직업훈련, 연구, 문화 등이 강화되는 양상은 다른 나라들의 눈에 복지국가의 사회민주주의 버전으로 보였다. 이는 일당 단독으로 혹은 연정의 수장으로 스웨덴에서는 60년 이상, 노르웨이나 덴마크에서는 45년 이상 정권을 잡으며 제1당으로의 역할을 해온 사회민주당의 작품이었다.

1980~90년 경제위기, 냉전 종식, 사민주의 정치 세력의 약화, 금융의 세계화가 전개되면서 ‘노르웨이식’ 사회 모델은 그 힘을 잃어가고 점점 서유럽 사회 모델에 다가갔으며, 그보다 더 관대함이 떨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각주>  

(1) Niels Finn Christiansen, Klaus Petersen, Nils Edling and Per Haave, <The Nordic model of selfare - a historical reappraisal>, Museum Tusculanu, Press University of Copenhagen, 2006, p.432.

<2009년 6월 유럽 선거 득표율>

- 적십자연맹당(Enhedsliste·극좌) 7.2%

- 사회주의국민당(Socialistisk Folkeparti·SF·좌파사회주의) 15.9 %

- 사회민주당(Socialdemokratiet·SD·사회민주주의) 21.5 %

- 사회자유당(Det Radikale Venstre·RV·사회자유주의) 4.3 %

- 자유민주당(Venstre·자유주의) 20.2 %

- 보수국민당(Det Konservative Folkeparti·KF·보수) 12.7 %

- 덴마크 국민당(Dansk Folkeparti·DF·극우) 1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