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기니의 불편한 동거

러시아가 장악한 세계 최대 보크사이트 수출국 기니 노동조건 갈수록 악화…노동자들 옛 프랑스 기업 동경

2009-10-06     쥘리앙 브리고| 기자

기니와 러시아의 동거가 불안하다. 지난 9월 10일, 기니 법무부는 2006년 러시아 기업 ’루살’이 프리기아 보크사이트 공장을 너무 헐값에 사들였다는 이유로 사실상 그 매각을 취소했다. 루살사는 기니 경제의 꽃인 공장의 쇠퇴는 방관한 채, 위기를 내세워 경직된 근로조건을 부과하고, 직원들을 서로 대립시키고 있다. 그 갈등의 최근 상황을 알아봤다.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들과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들이 늘어서고, 울창한 숲과 푸르스름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풍경이 펼쳐지다가 불현듯 기니 지폐에 새겨진 그림의 실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코나크리 북부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프리아 보크사이트 광산이다. 세 채의 콘크리트 건물은 수천 개 발코니와 거의 그만큼에 해당하는 위성 안테나를 단 채 우뚝 솟아올라 위용을 드러낸다. 이곳은 과거 프랑스 페시네(Pechiney)그룹이 자사 파견 직원들을 위해 지은 숙소다. 당시 현지 주민들의 (프랑스어 공동체 가입) 거부에 기분이 상한 드골은 1958년 기니에서 갑작스럽게 철수해버렸다.(1) 이후 기니가 이 ‘황금알’ 광산을 민영화하자, 러시아의 루살사가 사들였고, 페시네 그룹이 있던 곳에는 루살사의 ‘책임, 신뢰, 경쟁력’이라는 사훈이 자랑스럽게 내걸렸다.

8층에서 바카리 쿠루마는 액자 하나를 떼어냈다. 그것은 2006년 ‘금속인들의 날’ 행사에서 회사가 준 선물이었다. ‘공장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자신의 업무에서 보인 성과가 남다름’을 인정받아 수여받은 ‘명예훈장’이었다. 바카리 쿠루마는 이 회사가 도맡고 있는 전력 및 상수 공급 업무를 맡아 매달 약 90만 기니프랑(약 130유로)을 벌고 있다. 하지만 가족에게 돌아가는 40만 기니프랑과 전화요금 5만 프랑, 일터로 가기 위해 타는 오토바이 택시 5만 프랑을 제하고 나면 한 달에 15유로 남짓 손에 쥘 뿐이다. 그는 저 멀리, 발코니에서 보이는 엄청나게 큰 빌라에서 살아가는 간부들 밑에서 일하고 있다. 주변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고 수영장도 있는 그곳에는 40여 명의 러시아계 주재원들이 살고 있다.

60년 전만 해도 이곳에는 지금은 지도에서 사라진 ‘킴보’라는 마을의 전통 가옥 몇 채밖에 없었다. 이 마을은 인구 6만 명의 대도시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아프리카 땅에 세워진 최초의 알루미늄 공장’ 주변으로 도시가 형성된 것이었다.

1957년 초 미국·프랑스·영국·스위스·독일 기업들의 공동 출자로 ‘프리아’라는 회사가 세워졌다.(2) 건설 및 운영에 관한 책임은 전적으로 페시네 그룹에 주어졌다. 1973년 프리아사는 기니 정부가 51% 대주주로 참여하는 프리기아 민관 합작회사로 거듭난다. 1997년 페시네 그룹은 이 회사에서 손을 떼고, 회사는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기니 정부에 넘어갔다. 2003년 민영화된 공장은 러시아 루살사로 양도됐다.

프랑스 기업 대신 러시아 기업이 활개

보크사이트 가루가 흩날리는 가운데, 프리아는 유럽형 공장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능력별로 서열화된 노동자 기숙사가 있고, 굴뚝과 용광로가 있는 공장은 사회사업의 일환으로 운동장과 청소년 시설, 수영장도 갖추고 있었다. 이 모든 게 가족주의를 표방했던 프랑스 알루미늄 산업계의 꽃 페시네 그룹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3) 기니는 알루미늄의 원광석인 보크사이트 매장량이 160억t이나 되는 나라이다. 전세계 매장량의 3분의 1은 족히 되는 수준으로, 지금 속도로도 앞으로 1600년은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철·다이아몬드·금과 더불어 보크사이트는 2009년 기니 국내총생산(GDP)의 20%, 수출량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2008년 가을 시세가 폭락한 뒤,(4) 노동자 1200명과 하도급인 1천 명은 지도부에 일부 기계 교체를 요구하였으나, 지도부는 이를 거부했다. 한 노동자는 공장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 기계에서 부품을 빼내서 다른 곳을 메우는 식으로 수리를 하면서 공장을 돌리고 있다. 대금 체납이 계속되자 납품업체들도 물품 조달을 중단한 상황이다.”

지도부는 운영난을 이유로 임금 인상을 거부하고 있고, 이 회사는 기니의 국내 최저임금 기준(250만 기니프랑, 약 220유로)을 적용하지 않는 몇 안 되는 광산업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노동자는 책임 완수를 요구받고 있다. 이 회사의 주간 사보 <라 부아 드 루살> 2008년 5월호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면, 공장이 순조롭게 운영될 수 있을 것이며, 순풍에 돛을 단 듯 잘돼나갈 것이다”라는 내용이 실렸다. 러시아인들은 기니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 이들을 간부 직위에서 모두 배제시켰다. 그런데도 기니 노동자들은 낙후한 장비를 불평하기는커녕 되레 ‘이 어려운 상황에 공장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비용 절감과 생산성 제고, 재료 절약을 위해 나는 무엇을 했나?’를 생각해야 할 판국이다.

판매량 감소, 노동자에게 희생 강요

 

1년 전, 걸핏하면 시내 전기가 끊기는 것에 항의가 잇따르자 루살사는 ‘전기 절약’이라는 주제로 어린이 그림 그리기 대회를 개최했다. 이같은 술수에 넘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페시네 시절부터 일해왔으며 지금은 역장으로 근무 중인 이르바이마 디알로 타리베는 “세계 알루미늄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2008년 루살사가 이 분야에서 세계 2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루살사 사장인 올레그 데리파스카의 재산 규모는 러시아 10위이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측근이기도 하다.

 

홍보부에서 일하는 제나디이 울리아니흐는 기니 원주민 풀라니족의 셔츠를 입고 있었다. ‘위기’를 타개하려면 현지 문화를 조금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사무실에서 파리 지하철 노선도와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아이들 사진을 앞에 두고. 그는 열정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사보 편집을 최종적으로 손질하고 있었다.

울리아니흐는 러시아 본사로 원고를 송부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페시네 사보의 뒤를 이어 루살 사보를 작업하고 있는 그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모스크바에서는 이곳 노동자들이 식솔 10여 명의 입을 책임져야 하는 참담한 상황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자부심 반, 우려 반으로 이렇게 말한다. “기니 사람들은 내게 언젠가 자신들이 우리를 내쫓아버릴 것이며, 나는 그들이 연민을 보여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눈에는 중국인이 러시아인의 뒤를 잇는 게 엿보이는 듯했다. “저들(중국인)은 모든 것을 밀어버리고 더 현대적인 새로운 공장을 지을 것이다. 어쨌든 이 공장을 새로 고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든다. 차라리 새 공장을 하나 짓는 게 더 나을 것이다.”

2009년 4월, 프리아 노동자들은 파업을 결정한다. 그들은 2008년 12월 쿠데타로 란사나 콩테(5) 전임 대통령을 몰아낸 무사 다디스 카마라 대위에게 호소했다. 그들은 프리아에서 루살사 간부들을 쫓아내려 했다. 카마라는 노동자에게 다시 일터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면서도 루살사를 질책했다. 6월 초, 루살사는 최저임금 수준을 40유로로 인상하였으나, 최저임금 제도의 적용은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방마다 세면대 하나가 놓여 있고 벽에는 금이 간 ‘독신 기숙사’ 안마당에서는 직원 10여 명이 기자에게 발설하지 말라는 간부들의 명령을 과감히 어기고 있다. 공장 인부, 하도급자, 엔지니어들로 구성된 이들은 세계경제 위기라는 미명하에 자신들에게 강요되는 ‘자구 노력’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러시아인들은 회사가 살려면 우리가 힘든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건 협박이다!”

러시아 기업들, 당초 약속 어겨

기니자유노조연맹 소속 마마디 쿠루마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러시아인들은 거주민들에게 모든 특권을 유지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비용 절감뿐이다. 전에는 회사가 거처를 책임졌고, 전기가 끊기는 일도 없었으며, 직원 전용 식료품 가게 ‘에코노 마트’가 있어 식비도 더 저렴했다.”

페시네사의 후일담에 대해서밖에 알지 못하는 29살의 쿠루마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인들에 대한 거부감을 기존 프랑스 기업에 대한 이상화로 대체하고 있다. 이미 주민들은 프랑스 기업을 동경하고 있다.

주민들이 물려받았던 수많은 ‘특권’들은 지금 저마다 제각각인 상태다. 교육센터 신축 건물에서는 빛이 났지만, (운동장·수영장·육상트랙 등) 운동시설은 낙후됐다. 과거에는 무상으로 공급되던 수도와 전기는 할당량이 정해졌고, 아이들 놀이터는 폐쇄됐다. 업무를 보러 가는 사람들과 그 가족이 이용하던 코나크리행 교통 서비스는 하청으로 넘어갔다. 기니 최고 수준이라 일컫던 병원 시설은 예산이 줄어들었고, 지역 주민들이 ‘페시네 병원’이라 일컫던 이 병원은 이제 의약품 수급도 즉각 이뤄지지 않는다. 반면 주거는 여전히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휘발유와 식료품 가격이 오르자 프리아 사람들은 2009년 3월 초, ‘부패 척결’과 ‘광물계약 전면 재협상’을 약속했던 쿠데타 정권 지지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아들이 거대한 마약, 성매매, 부패 조직에 연루되는 등 나라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간 전임 대통령 시절의 후유증은 ‘프리아 사태’로까지 이어진다. 프리아 사태는 주민들 스스로 ‘지질학상의 스캔들’이라 부를 만큼 자원이 풍부한 나라에서 부를 축적하는 외국 기업에 국내 자원을 ‘헐값’으로 넘긴 대표적 사례였다.

비난의 중심에는 루살사의 2003년 공장 매각이 놓여 있다. 루살사는 약 1400만 유로에 이 회사를 사들였지만, 감사위원회 평가로는 그 가치가 1억7500만 유로에 달했다. 루살사가 이같은 특혜를 입을 수 있었던 건 콩테 대통령을 설득한 모리셔스 출신의 사업가 조제프 들라아의 로비 덕분이다.(6) 그렇게 해서 루살사는 러시아 이외 지역에서 첫 번째 상징적인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공장장인 파벨 오프키니코프는 “전세계 알루미늄 소비량이 지난 20년 이래로 최저치로 떨어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공장문을 닫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러시아가 늘 아프리카 국가들의 믿을 수 있는 동반자로서 행동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니 독립 이후 소련과 중국은 기니와 우호의 증거로 대학 및 무역 분야의 협력뿐 아니라, 제설차량까지 제공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1961년에 레닌 평화상을 수상한 아마드 세쿠 투레(기니의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대통령-역자)는 아프리카 발레단 예술가들을 모스크바로 보냈을 정도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뒤, 러시아인은 기니에서 킨디아 보크사이트 회사를 통해 거대한 보크사이트 광맥 채굴을 맡고 있다.

아직 험난한 독립국가의 역사

페시네 병원에서 주임의사로 재직 중인 알파 하시무 디알로는 악역을 자처하며 “지금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이다. 당신네 나라에서도 일부 약제비 환불을 중단하기 시작하지 않았나?”라고 설명한다. 파리에서 일한 적이 있는 그는 비용 절감 얘기에는 이력이 난 사람이다. 그에게 ‘노인병원’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근거 없는 이야기이며, 단지 이전 시대에 대한 향수로만 해석될 뿐이다. “여기서는 비용을 전부 다 루살사가 부담한다. 이곳은 노동자와 그 가족을 위한 병원이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도 계속해서 병원을 찾고 있는 실정이다. 이 병원이 기니 최고 수준의 병원이라는 명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접수된 환자의 35%만이 노동자와 그 친인척들이며, 이는 곧 많은 환자들이 응급할 때 이 병원을 찾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가 이들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루살사는 2007년 이후 병원 기기들을 새것으로 교체하지 않고 있다. 치과의사인 부바카르 바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게 그 유명한 ‘경제위기’ 탓이란다. 그는 환자들이 앉아 치료를 받는 진료 의자에서 플라스틱 외장재가 깨진 것을 보여주었다. 녹슨 곳도 눈에 띄었다. 공장과 마찬가지로 장비의 노후함은 확연해 보였다.

위기 여부와 상관없이 프리아에서 보크사이트 화차들은 매일 코나크리를 향해 떠나고 있다. 화차 행렬이 코나크리를 떠들썩하게 할 때면 나이 든 사람들은 자리에 서서 아직 운행 중인 유일한 열차들을 경외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눈앞에 펼쳐지는 조국의 부강함을 환영한다.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젊은 기니인들은 귀를 막고 등을 돌린다. 열차가 들어오면서 하얀 가루를 잔뜩 날리기 때문이다. 철로를 따라가면 코나크리에서 알루미늄이 기니 사람들과 한 몸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아프리카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탈프랑스’를 외치던 유일한 나라 기니의 51년 독립의 역사를 확인시켜주는 듯하다.(7) 하지만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기니를 위한 루살, 기니와 함께하는 루살”이라는 옛 슬로건이 떠오르는 대형 광고들이 즐비하다.

 

글·쥘리앙 브리고 Julien Brygo

기자, 『Boulots de merde! Du cireur au trader, enquête sur l’utilité et la nuisance sociale des métiers 빌어먹을 직업!: 구두닦이부터 트레이더까지 직업의 유용성과 사회적 문제에 관한 조사』(La Découverte, 2016)의 공동저자.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미래를 심는 사람> 등이 있다. 


<각주>  

(1) 1958년, 아마드 세쿠 투레(1922~1984)의 주도로 기니는 드골의 프랑스 공동체 참여안을 국민투표로 부결시켰다.
(2) 미국- Olin Matheison Chemical Corporation(48.5%), 프랑스- Pechiney 및 Ugine(26.5%), The British Aluminium Company Limited(10%), Aluminium Suisse(10%), 독일그룹 Vereinigte Aluminium-Werke Aktiengesellschaft (5%).
(3) 페시네 그룹의 가족주의 정책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다음 도서를 참조. Celine Pauthier, <Fria, une ville-usine en Guinee>, Universite Denis Diderot, Paris VII, 2001∼2002, p.17.
(4) 2008년 알루미늄은 3/4분기 t당 2450달러에 거래되다 4/4분기 말 t당 1500달러로 떨어졌다.
(5) Odile Goerg, ‘기니, 끝나지 않는 정권의 종말’(Fin de regne sans fin en Guine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6년 4월호 참조.
(6) 모리셔스 출신의 조제프 들라아는 1990년대에 (아코르사 계열) 노보텔사의 인디펜던스 호텔을 인수하기 위해 기니에 출장왔다. 2003년에는 루살사를 위해 프리아 공장 민영화를 은밀히 추진한 장본인이다.
(7) Michel Galy, ‘기니의 정지비행’(Le vol suspendu de la Guine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3년 12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