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보이콧’ 직면한 이스라엘의 반격

팔레스타인 탄압 맞서 양심적 불매운동 확산
이스라엘, 로비와 위협으로 운동 무력화 나서

2009-10-06     윌리 잭슨|국제문제 전문가

2008년 12월부터 2009년 1월까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범한 범죄 행위를 조사한 유엔 조사위원회는 결과 발표를 9월로 미뤘다. 그러나 그 결론이 사법적 심판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무척 희박하다. 전세계에서 이스라엘 제품 불매운동, 제재 및 투자 중단 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이스라엘 정부에 국제법을 준수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불매운동·투자회수·제재’(BDS·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를 촉구하는 운동은 거의 4년 동안 반수면 상태에 있다가 요즘 들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1) 이른바 BDS 운동은 2005년 7월 9일, 즉 국제사법재판소가 권고 의견으로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에 세워진 분리장벽을 불법이라 선언한 지 1년이 지났을 때 팔레스타인 관련 단체 연합회의 주도로 시작됐다.(2) 이 운동의 목표는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만행에 항의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이슬람 준군사조직인 하마스를 무력화하고 이스라엘 국민을 향한 하마스의 로켓 발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2008년 12월 17일부터 2009년 1월 18일까지 전쟁을 벌이면서, BDS 운동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가자지구의 참상은 이번 전쟁의 실질적인 목표가 팔레스타인 국민의 씨를 말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팔레스타인, 더 나아가 전 세계의 많은 조직과 연대한 단체들은 그때부터 ‘국제 공동체’의 한계를 보완하는 행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고 나섰다. 이렇게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규모 민간 운동이 시작되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백 차별을 종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불매운동이란 무기를 다시 꺼내들었다.(3)

몇몇 정치인과 여론 주도자, 예컨대 넬슨 만델라와 데즈먼드 투투 주교, 제임스 카터 등은 오래전부터 팔레스타인에 닥친 상황을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에 흑인들이 겪은 상황에 비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BDS는 브라질 벨렝에서 열릴 예정이던 세계사회포럼을 몇 주 앞둔 3월 30일을 세계적인 행동의 날로 결정했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유대인 공동체에서도 이 운동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비폭력적 불매운동 확산

불매운동에 나선 비폭력 저항세력은 소비자들에게 이스라엘에서(국내 기업이나 외국 기업에 의해), 또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생산된 제품을 사지 말 것을 촉구했다. 상품 목록(과일과 채소, 과일주스, 생화, 통조림, 포도주, 비스킷, 일반 의약품, 화장품 등)과 해당 상품의 바코드가 유럽에 집중적으로 공개됐다. 불매운동을 널리 알리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상점 관리자들에게 해당 상품을 진열장에서 철수해주기를 요구했고, 수입상들에게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다. 또한 슈퍼마켓에서 게릴라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일부 단체는 이스라엘과 유럽연합 간의 협력 협정을 유보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며,(4)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 준수를 촉구하는 이 협정의 2조를 이유로 내세웠다.(5) 1995년에 체결되고 2000년부터 발효된 이 협력 협정은 이스라엘 제품에 관세를 면제하는 특혜를 주었다. 여기에서 진짜 생산지가 어디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스라엘이 자국산이라 주장하는 많은 제품이 실제로는 점령 지역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 수출 기업의 21%가 불매운동 때문에 상품 가격을 낮춰야 했다. 요르단,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국가 등에서 상품 점유율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6)

불매운동은 소비자에게 상품의 선택 여부를 결정할 자유를 주지만, 불매운동이 집단운동을 선동하는 운동으로 변질되면 법에 저촉될 수 있다. 예컨대 2004년 3월 9일 수정된 프랑스 형법 225조 2항은 ‘경제적 행위의 정상적 행사를 방해’하려는 모든 차별 행위는 3년형과 4만5천 유로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누구나 어떤 물건을 살 것인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을 공개하는 행위는 개인적인 행위로 판단되지만,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행위는 이 조항에 위배될 수 있다.

최고행정재판소와 최고법원 등 상급법원의 판례도 이런 유형의 행위에 줄곧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스라엘과의 무역거래에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7) 2009년 7월 16일에 있었던 ‘빌렘 대 프랑스’ 사건의 판결에서 보듯이, 유럽인권재판소(CEDH)의 판단도 다르지 않다. 릴 근처에 있는 세클랭의 장클로드 빌렘 시장은 2002년 10월 3일 시의회에서 세클랭의 식당업자들에게 이스라엘 제품을 사용하지 말 것을 촉구하고, 시청 공식 인터넷 사이트에도 그런 내용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다. 그리고 2003년 9월 11일 1천 유로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빌렘은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며 이 사건을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다. 이 사건을 조사한 유럽인권재판소는 선출직 공무원인 빌렘의 행위는 ‘차별적 행위에 해당되며, 따라서 유죄’라고 판결했다.

불매운동은 표현의 자유의 일환

그러나 불매운동은 정부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을 시행하거나, 혹은 강압적 조처의 일환으로 정부의 이름으로 시행할 때는 합법적이다.(8)

언론에서 가장 자주 언급하는 것은 불매운동이지만,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하며 국제 무대에서 고립시키기 위한 다른 전략들도 구사되고 있다. 문화·학술·외교 및 스포츠의 보이콧도 상당한 결실을 맺었다.(9) 1월 15일 파리에서 열릴 예정이던 이스라엘 관광 박람회가 무산됐고, 2009년 5월에는 런던 지하철에서 이스라엘 관광 포스터가 사라졌다. 렌터카 업체인 허스는 이스라엘 항공사가 제안한 합작 사업을 거절했다. 스웨덴은 이스라엘이 참여한다는 이유로 국제 공군훈련 참가를 거부했다.

중동에서 사업하는 기업체를 상대로 한 투자 회수 캠페인도 상당한 결실을 거두기 시작했다. 예컨대 벨기에에서는 ‘이스라엘에서 덱시아 철수시키기’ 작전이 벌어졌고, 이 작전에 14개 자치단체가 참여하며, 이스라엘 자회사를 통해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의 협동조합에 돈을 빌려준 프랑스·벨기에 합작 금융기관인 덱시아에 출자한 돈을 회수했다.

스웨덴 연금기금이 2009년의 자금 운영계획에서 프랑스 운송기업인 알스톰을 배제하면서, 알스톰도 똑같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 결정은 2006년 네덜란드계 금융기관 더치 ASN은행이 프랑스의 또 다른 운송기업 베올리아 운송회사에 내린 결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다국적기업인 알스톰과 베올리아는 예루살렘의 전철 건설사업에 참여한 대가로 다른 사업들의 입찰에 참여할 자격을 상실했다. 프랑스 보르도시는 도시 쓰레기 처리와 관련된 7억5천만 유로 상당의 계약에 참여할 권리를 베올리아에 주지 않았고, 영국의 샌드웰 시의회는 쓰레기 수거와 재활용에 관련된 계약에서 베올리아를 배제했다. 스톡홀름 시의회도 지하철 운영에 관련된 35억 유로 상당의 계약에서 베올리아에 참여할 자격을 주지 않았다. 반면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투자라는 조건에 맞추기 위해 자진해 앞장서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하이네켄이 대표적인 예다. 하이네켄의 자회사 템포 드린크스는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국경 안으로 이전했다. 전기기계 안전시스템에서 선두기업인 스웨덴의 아사 아블로이도 서안지구에 있던 제조공장을 이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스라엘의 집요한 반격

그렇다면 이스라엘 자체에 가해지는 제재는 어떤 수준일까? 회원국들 간의 이해관계가 끝없이 충돌하는 유엔은 이제 국제적으로 적법성을 보장받은 기구라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현재까지 이스라엘에 대한 어떤 행태의 제재도 가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독재체제에는 지금도 온갖 형태의 제재가 가해지고 있으며, 제재의 효과는 아파르트헤이트와의 전쟁이란 이름으로 가해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미 입증됐다.

따라서 이제는 다른 경로, 특히 사법적 경로를 통해 정의를 구현해가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2007년 이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연대한 프랑스·팔레스타인 연대협의회(AFPS)가 프랑스의 두 기업, 알스톰과 베올리아를 상대로 프랑스 법정에서 벌이는 사건은 무척 시사적이다.

2004년 이스라엘 기업 시티패스(베올리아와 알스톰은 이 기업의 주식을 각각 5%와 20%씩 보유했다)와 이스라엘 정부 간에, 예루살렘과 서안지구 일부 지역을 운행하는 전철을 건설해 운영하는 독점 계약이 체결됐다. 이 계약의 합법성을 인정해야 하느냐에 대한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이다.

알스톰과 베올리아 및 시티패스는 소환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이 소송을 맡은 낭테르 재판소가 물리적·영토적 관점에서 부적합하며, 소송의 질을 담보할 수 없기에 고소인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등 여러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낭테르 재판소는 이런 주장을 일축하고, 2009년 4월 15일의 판결을 통해 AFPS가 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했다. 문제의 계약이 집행되면, AFPS가 옹호하는 집단의 이익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이스라엘 관할권에 속하므로 면책이란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소송에 관련된 당사국은 아니지만, ‘소송이 제기된 사업 지역인 서안지구의 일부를 점령한 강대국’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란 이유였다. 알스톰은 항소하기로 결정했지만, 베올리아는 항소를 포기했다.

사법적 제재는 국제적 차원에서, 또 각국의 사법제도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이스라엘에 가해지고 있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형사법을 도구화하고, 많은 국가가 보편적 사법권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이런 사법적 제재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무척 의심스럽다.

이스라엘은 집요한 로비로 BDS 운동을 무산시키기 위한 반격에 나섰다. ‘이스라엘 상품이 냉장고에서 사라지거나 배척당하는 현상’을 막기 위한 조직적 활동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10) 결국 BDS 운동은 국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전통적인 방법이 실패한 결과일 뿐이다.

글·윌리 잭슨 Willy Jackson
파리7대학교 세데연구소 연구원, 국제문제 전문가

번역·강주헌 2nabbi@ilemonde.com 
불문학 박사 출신의 문화비평가 겸 번역전문가. <선물> <해리포터 철학교실> 등 100여권의 번역서를 펴냈다. 


<각주>

(1) www.protection-palestine.org 참조.
(2) 윌리 잭슨, ‘서안지구 분리장벽을 부숴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4년 11월호 참조.
(3)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이스라엘을 비교한 연구로는 Omar Barghouti, ‘이스라엘의 차별정책: 남아공의 해결책’(Apartheid israelien : la solution sud-africaine), Bds-info.ch, 2006년 6월 18일, Virginia Tilley, ‘지체하지 말고, 당장 이스라엘을 보이콧하자’(Cessons de tergiverser: il faut boycotter Israel tout de suite!), Bds-info.ch, 2006년 8월 27일, Uri Avnery. ‘소돔의 침대’(Le lit de Sodome), France-Palestine.org, 2007년 4월 24일을 참조할 것. Alain Gresh, ‘팔레스타인에 대한 남아공의 시선’(Regards sud-africains sur la Palestin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8월.
(4) ‘피스 사이클’(The Peace Cycle·www.thepeacecycle.com)의 탄원서를 참조할 것.
(5) 유럽연합의 모호한 태도에 대해서는 Alain Gresh, ‘팔레스타인: 유럽연합의 모순과 위선’(Palestine: contradictions et hypocrisie de l’Union europeenne), Nouvelles d’Orient, Les blogs du Diplo, 2009년 4월 30일 참조.
(6) Maan News Agency, 2009년 3월 31일.
(7) 최고행정재판소 판결, 전체회의, 1980년 4월 18일, Societe Maxi-Librati Creation, N° 09643 09644. 최고재판소 판결, 형사부, 2007년 12월 18일, N° 06-82.845.
(8) 영국은 이스라엘에 수출되는 무기에 대해 금수 조처를 내리지는 않았지만 군수품의 수출을 제한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가자지구에 무차별적으로 가해진 공격에 불만을 표시했다. <워싱턴포스트>, 2009년 7월 14일.
(9) 텔아비브 공연을 취소한 로저 워터스, 작가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와 나오미 클라인, 아룬다티 로이, 영화감독인 켄 로치와 장뤼크 고다르도 이 운동에 동참했다.
(10) www.desinfos.com과 www,crif.org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