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기름 같은 커플의 이야기

[서평/프랑스] ‘감의 떫은 맛’ 등

2009-10-06     그자비에 라페루

<감의 떫은 맛> / 조야 피르자드

이란어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작품이다. 덫에 걸려 답답해하는 커플. 좁고 숨 막히게 더운 방처럼 답답한 상황의 커플. 이 커플을 보면 마치 사람들이 아웅거리며 벽을 치는 방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의 전통이라는 그물망에 갇힌 커플은 가깝지만 먼 사이다. 이란의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조야 피르자드는 이번 작품을 다섯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해 결혼해서 함께는 살지만 늘 상대에게서 낯섦을 느끼고 자신을 찾아가려는 커플을 등장시킨다.

‘얼룩’이라는 단편작품에서는 레일라와 알리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그저 할퀴며 상처를 줄 뿐이다. 레일라가 알리에게 약혼하고 싶다고 하자 알리는 너무 놀라 케첩을 옷에 묻힌다. 레일라가 결혼하고 싶다고 하자 알리는 숨이 막혀옴을 느낀다. 레일라와 알리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욕조는 얼룩이 가득하다. 사실 이들이 사는 아파트 구석구석이 얼룩으로 가득하다. 이는 레일라와 알리 커플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또 다른 단편작품 ‘아파트’에서는 위태위태하게 살아가는 커플이 등장한다. 마나즈와 파라마르즈 커플. 두 사람은 답답한 관계와 전통에 갇혀 있다. 여성은 일하고 남성은 집안을 광내고 닦으며 즐거워한다. 마나즈는 이혼해 자유롭게 떠나고 싶어하지만 떠날 수도, 이혼할 수도 없다. 파라마르즈가 아이를 가지면 어떻겠느냐고 하자 마나즈는 순간 주춤한다. 아이가 생기면 도망갈 기회는 영원히 없어지고 말기 때문이다. 파라마르즈는 그냥 전통 방식대로 주어진 운명을 살아가지만 마나즈는 이렇게 정해진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조야 피르자드 작품에 등장하는 커플들은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같은 상태로 억지로 살아간다. 커플 사이의 유대감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조야 파르자드의 작품에서 아파트는 중요한 의미로 사용된다. 커플이 탈출을 꿈꾸면서도 함께 만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야 파르자드는 하나의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다. 조야 파르자드의 작품에 등장하는 커플은 선택이 자유롭지 않고 외부로부터 삶의 방식을 강요받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커플들은 전통과 현대화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대 이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네 번째 단편 ‘하모니카’는 테헤란이 배경이다. 카말리와 젊은 직원은 낚시터에 가는 길에 하모니카를 부르며 기분 전환을 한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감옥 같은 답답한 상황이 ‘감의 떫은 맛’처럼 씁쓸함만을 안겨준다. 늘 똑같은 삶은 의미가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저자는 일상의 수레바퀴를 보여주며 일상의 틀에 너무 갇혀 있지는 말라는 메시지를 준다.

글·그자비에 라페루 Xavier Lapeyroux  


축축한 밤의 세계로 안내하다  

<베리투스, 땅 속의 도시> / 라비 자버

아랍어를 프랑스어로 옮긴 레바논 작품이다.

베리투스는 지금의 베이루트에 있었던 로마의 도시로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이 작품은 현대소설을 좋아하지 않고 그보다는 클래식 스타일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건물 수위이자 독서광인 주인공은 1년 내내 지하에서 생활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시티 플레이스’ 영화관에서 미끄러져 정신을 잃은 후 지하 동굴에서 눈을 뜨게 된다. 주인공 셰이크 이스하드, 그의 딸 라일, 셰이크 이스하드의 여러 만남, 야스미나에 대한 셰이크 이스하드의 사랑, 환상적인 지하에서 살다가 ‘바다의 문’을 통해 나오게 된 셰이크 이스하드의 모험이 그려진다. 지하에서의 삶과 레바논 내전(1975~90)의 암흑기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 그려진다. 내전 동안 어둡고 축축한 지하는 은신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화적인 느낌의 이 소설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카티아 고슨 


<중국이 아시아를 다스릴 때> / 마틴 자크

부제는 ‘중원 왕국의 부활과 서구 세계의 몰락’이다. 1820~70년에 미국과 영국은 최고의 성장기를 구가했다. 연평균 국내총생산은 미국이 4.2%씩, 영국이 2%씩 증가했다. 이어서 여러 아시아 국가들은 1970년대에 더욱 빠른 성장률을 보이며 발전했다. 중국은 30년 전부터 매년 10% 정도 성장했다. 중국만큼 이렇게 단기간에 빨리 성장한 나라는 없다. 중국이 빠르게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사람들도 하루가 다르게 현대화하고 있다. 아시아에 오래 거주했던 저자 마틴 자크는 단순히 중국의 성장 부분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근대화에 나타나는 특이한 점을 중국 역사·문화와 연결해 설명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근대화가 서구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중국은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도 역사를 계속 이어나간다. 


 

<아니키즘에 관한 미니 철학용어: 프루동에서 들뢰즈까지>
 / 다니엘 콜송

사회학자인 저자 다니엘 콜송이 펴낸 <아니키즘에 관한 미니 철학용어> 초판은 2001년에 출간돼 인기를 얻었다. 그리하여 이번에 재판으로 다시 나오게 됐다. 아나키즘은 새로이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기존의 노조뿐만 아니라 대안 세계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아나키즘은 영감을 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초판이 나온 2001년과 재판이 나온 2008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지만 저자는 이 점을 제대로 업데이트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령,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논쟁은 아나키즘에 영향을 끼쳐 북미에서는 ‘포스트아나키즘’이라는 사조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2008년판 <아니키즘에 관한 미니 철학용어>에는 언급되지 않았다.
 


<내 몸은 전쟁터> - ‘나의 분노’ 총서 제2권

2004년 출간된 제1권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육체를 다루면서 획일적인 아름다움, 날씬한 몸의 숭배, 인종주의가 여성의 육체에 대한 시각에 녹아 있다며 여성 개개인의 개성이 인정되지 않는 현실을 비판했다. 제1권이 큰 반향을 일으킨 데 힘입어 제2권이 출간되었다. 이성애자 여성과 동성애자 여성은 글, 그림, 사진을 통해 여성의 육체에 대한 편견과 맞서 싸운다. 여성의 몸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를 하고 참견하는 주변 사람들이 자행하는 폭력, 먹을거리와 대립적인 관계, 몸에 찾아오는 병, 행복과 해방의 순간 등을 다루고 있다.


요약 및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한불상공회의소 격월간지 <꼬레 아페르> 전속 번역. 번역서로는 <여성의 우월성에 관하여>(200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