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빚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10-06     박송이
이 미끄덩한 중력을 빠져 나와 
 
                                            박송이

 
청춘의 두루마리들이 흘러가는 게 보였다.
이 나라의 잃어버린 양식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포옹하는 
그물망에 걸린 지느러미들이 보였다.

담뱃불이 켜지질 않는다고
왜 세상의 모든 바람은
차갑게만 부는지 모르겠다고 
말 거는 
저 난민의 침몰선으로
아름다운 물고기떼가 몰려드는 게 보였다.

맨발을 감싸는 양말의 일생,
이 다정한…… 거지의 마음,

아무것도 부수려 애쓰지 않는
저 하얀 눈발, 
그 거룩한 민낯을 무어라 불러야 하나.

휴식의 시절 속에서
나의 오래된 불면의 고물차가
다시 시동을 켠다.
달릴 수 있을 때까지
정지가 생의 목적이 될 때까지
우리의 폐차된 연애의
그늘 숲 속에서
나의 가장 따뜻한 물을 삼킨다.



시인의 변

 
시가 고상을 떨던 시대가 있었나.
푸주한, 새끼,
이리도 아름다운 욕을 하면서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아주 쉽고 간단하다는 거,
나, 너, 우리,
보편?
나의 정신은 푸주한이 발라낸 고깃덩어리처럼
깔끔하고 요란하다.
아프고 졸린 날에 대하여 
선한 이웃들에 대하여
세월호, 
난민, 
이 불균등한 계급의 가라앉음에 대하여
이 뻔하고 낯선 세계에 대하여 
이 우주 속
거렁뱅이들 곁으로
잠수하려는 제 작은 동정으로
어떤 감동처럼 
나의 시는 쉽게 씌어졌다.

우리의 폐차된 연애의
그늘 숲 속에서
나의 가장 따뜻한 물을 삼킨다.

시인·박송이
1981년생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2011년, ‘새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