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국제인권법은 유용하다

2015-10-06     올리비에 바이이
무장분쟁은 대량학살, 강간, 납치의 모습으로 연일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한다. 그러나 한 국가의 윤곽이 사라져버린다 해도 ‘국제인권법(IHL)’이 시민을 지켜줄 것이다. ‘대테러리즘 전쟁’으로 혹평을 받고 때로는 그 낡아빠진 방식으로 비난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인권법은 분쟁 당사자들이 악마화된 적과 직면하여 완전히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막고 있다.

2013년 1월 아침, 콜롬비아의 작은 도시 사라베나(Saravena) 주거 지역. 페드로가 오토바이를 인도에 대놓고 나무 그늘에 실비아를 내려놓았다. 그는 그녀에게 “애들 괴롭히지 말라”면서 짓궂게 놀린다. 간호사인 실비아의 임무는 이 지역 어린이들에게 백신 예방 접종을 하는 것이다. 페드로는 바로 출발하려 했지만, 오토바이를 탄 4명의 경찰 기동대가 갑자기 나타났다. 페드로는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경찰들에게 붙잡혀 벌금을 내는 일이 없도록 그들이 떠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데 3번째 경찰이 지나갈 때 마른 가지 속에 숨겨진 폭발물이 폭발한다. 아마 빌라들 중 한 곳에 숨어 있는 게릴라가 폭발물을 작동시켰을 것이다. 피와 먼지가 사방으로 튀어 오르고 실비아가 쓰러졌다. 서있었던 페드로는 오른쪽 눈이 파열되고 사타구니와 척추에 상처를 입었다.
이 공격은 베네수엘라와 접경하고 있는 콜롬비아의 북동부 주(州)인 아라우카(Arauka)에서 발생했다. 폭발은 이 지역에 거점을 둔 게릴라들, 민족해방군(ELN)이 저질렀다. 민족해방군은 “군인들 및 경찰들과 거리를 유지하세요. 우리는 부가적으로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라고 시민들에게 경고했다. 전투지역 주민들에게는 교전 당사자들이 무장투쟁법 내지는 전쟁법, 정확히는 ‘국제인권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사법부장인 크누트 도르만의 말에 의하면, ‘야만성을 방지하기 위한 유일한 이 제약’은(1) 호전성을 종식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 제약은 가능하면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그리고 무차별주의·인륜성·비례 배분의 원칙들을 위반하는 무기(집속탄集束彈같은 무기)의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시민들에게 미치는 분쟁의 영향을 축소시키고자 한다. 
국제인권법은 1864년 제 1차 제네바 협정에 의해 탄생했으며, 1945년 이후 실질적으로 발전한 무장분쟁에 대한 4개의 제네바협정에 의해 1949년 구체화되었다.(2) 이 문서는 무엇보다 국가 간의 분쟁, 즉 ‘국제 무장분쟁’을 성문화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국제 무장분쟁은 드물어진 대신 ‘비(非)국제 무장분쟁’이 늘어났다. 1977년 국제인권법은 현실을 반영하기에 이르렀다. 부속규약 1과 2는(3) 국제 무장분쟁과 비국제 무장분쟁의 희생자 보호를 명시하고 있고, “식민지배와 외부인의 점령에 대항하여, 또 주민들의 권한을 인종에 따라 차별 인정하는 정권에 대항하여 주민들이 투쟁하는”(4) 분쟁들을 관리대상으로 삼고 있다. 미국, 파키스탄, 이스라엘(5), 이란 등의 국가는 이 부속규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국제인권의 공식 ‘지킴이’다. 독립적이고 공정하고 중립적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이 제네바 기구는, 포로 면회, 가족에게 돌려주기 위한 사망자 시신 발굴, 모든 당사자들과의 회합 및 대화(심지어 국내법이 ‘테러리스트’ 그룹과의 접촉을 금지하고 있는 경우에도) 같이 어떤 교전 당사자들도 할 수 없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정보의 기밀을 유지하며 일한다.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생산하는 관계서류와 문서는 소송에 사용될 수 없으며 결코 출간되지도 않는다. 대신 그 서류와 문서는 관계당국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수정할 수 있도록, 범죄와 연관된 관계당국들에 전달된다.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아주 은밀하게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의 협상가들을 아바나(쿠바의 수도)로 보냈던 것은 콜롬비아 정부, FARC, 쿠바, 노르웨이가 공동으로 요청했기 때문이다.
1945년부터 248건의 무장분쟁이 집계되었다. 한 명의 전투원이 살해되었을 때, 10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국제인권법은 세상에서 가장 조롱받는 법들 중의 하나다. 조롱받는 이유에 대한 설명 중에서 국제경찰의 허약성이 가장 눈에 띤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전쟁범죄들(제네바 협정에 대한 심각한 위반)에 대해 판결을 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ICC는 해당 국가가 기소를 원치 않거나 혹은 기소를 할 수 없을 때에만 개입한다. 게다가 ICC의 관할 영역은 ICC의 지위를 비준한 국가들의 국민 혹은 그 국가들의 영토로 한정된다. 그러나 러시아, 중국, 인도, 미국 혹은 이스라엘 등은 ICC의 지위를 비준하지 않았다.(6)

국제인권법의 긍정적인 측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법은 유용하다. “폭력 상황에서는 아무도 법을 지키지 않는다. 그러나 국제인권법의 긍정적인 면은 바로 존중해야할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요구할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2014년 9월까지 콜롬비아 국제적십자위원회 대표단의 단장이었던 조르디 레쉬(Jordi Raich)는 설명했다. 
게다가 이 법은 현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당사자들이 휘두르고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무장한 내전 당사자들과의 대화를 담당하는 ICRC의 자문관인 오드레 팔라마 여사는 “몇몇 전쟁 당사자들은 자기 부대규율을 잡기 위해 국제인권법을 이용한다. 이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많은 부대들이 법률가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법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콩고민주공화국의 경우, ICC의 위협을 내세움으로써 아주 강력한 지역의 책임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불안정한 성공이지만, 몇몇 성공사례들이 현장에서 보고된 바 있다. 근동 국제적십자위원회 활동 단장 로베르 마르디니는 말했다. “2013년 예멘의 조그만 도시 다마이(Dammaj) 주변에서 우리 대표단은 두 개의 교전 그룹 사이의 중립적 중재자 자격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 10여 명의 부상자와 시체를 가족들에게 보낼 수 있었다. 인간 존엄성의 기본 규칙들을 지키는 것이 공동의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앞뒤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그런 순간들을 우리가 포착해야 한다.”
또 다른 사실들은 무장그룹들의 교리 내에 인권이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상당수 무장그룹들은 자신들의 내규에 국제인권법을 언급하고 있으며, 위반할 경우 제재를 예고하고 있다”고 팔라마 여사가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콜롬비아는 흥미로운 실험 대상이다. 1990년대 콜롬비아의 아라우카(Arauca)에서는 납치가 흔하게 발생했고, 전투원들은 부상자들의 목숨을 끊어놓기 위해 병원의 수술실까지 들어갔다. 국제인권법 위반은 무장한 내전 그룹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콜롬비아군(軍)은 전투원과 시민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가했다. 알바로 우리베(Alvaro Uribe) 정권은, 정적들을 제거하거나 혹은 단순히 ‘살상자 숫자를 늘리기’ 위해(7) 근거 없는 군사작전을 수행함으로써 수천 명의 시민들을 살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베 정권 하에서 콜롬비아군은 자신의 교리 안에 국제인권법을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콜롬비아 공군 대령인 후안 카를로스 고메즈(Juan Carlos Gomez)에 따르면, 그 계기가 1998년 아라우카 주(州)의 산토 도밍고에서 촉발되었다. 폭격에 의해 17명의 민간인이 살해되었는데 그중 6명이 어린이였다. “공군은 이 살해의 책임을 FARC에게 넘겼다. 그러나 2년 후 유엔의 조사에 의해 책임자들이 밝혀졌다. 범죄 수사는 공군 조종사들을 향했다. 이 사례가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8)
콜롬비아군(軍)이 전략적 이유로 다시 말해 인권단체들의 국제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국제인권법을 채택했을까? 그 점은 중요하지 않다. 제시된 내용들은 구체적이었다. “나는 32년 동안 군인이었다. 국제인권법에 대한 인식수준이 이렇게 높은 군대를 나는 결코 본 적이 없었다. 지상군에만 300명의 법률 자문가와 172명의 군사작전 법률가들이 있다. 콜롬비아는 먼 길을 걸어왔다. 이 수치는 최근의 것이다. 5년 전에는 자문관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고 프레데리코 아소에이라는 설명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이라크·레바논 혹은 발칸 반도에서 군 생활을 했으며, 현재 콜롬비아 정부군을 위한 국제적십자위원회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이다.
2003년부터 항공작전 통제가 중앙집권화 되었고, 국제인권법이 군인들의 교육과정에 통합되었으며, 법률 자문관들이 군사작전 시 지휘관들을 동반하고 있다.
게릴라 측인 ELN과 FARC도 마찬가지로 국제인권법에서 영감을 얻은 행동 수칙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게릴라들이나 정부 측 모두에게 이론서의 내용들이 곧바로 시행되기는 어렵다. 10년 넘게 ELN을 위해 전투를 수행했던 레온 발렌시아(Leon Valencia)는 1995년경 ELN을 떠났고, 그 후 콜롬비아에서 아주 존경받는 논설기자가 되었다. “나는 내가 지휘관이었을 때 국제인권법에 대해 토론을 한 것을 기억한다. 나는 납치를 중지하는 문제에 대해 내 동료들과 토론했다. 모든 전사들은 자신의 배낭 속에 그 법전의 사본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발렌시아가 이야기한다. 관행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그렇게 큰 변화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전투란 것이 매우 역동적이어서 당신이 항상 그 법을 위반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전투에 참여했던 시절에 전쟁은 더러웠고, 나는 손을 더럽혔다. 만약 당신이었어도, 손을 더럽히지 않았다면 죽었을 것이다.”

사회공동체에 머물 수 있는 수단

2014년 11월 제네바 대학 국제법학부 학과장인 마르코 사솔리(Marco Sassoli)는 비(非)국가 무장그룹 회의에 참석했다. 이 특이한 모임이 끝났을 때, 35개 조직들은 자신들의 실제 행동에 인권 규범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약속했다.(9) 그 조직들로부터 공격받고 있는 국가가 그들을 형사재판에 회부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그 법을 지키고자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사솔리가 대답한다.
“우선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위해서다. 이 조직들은 자신들이 민간인들을 공격한다면 자신들의 이상을 배반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 그룹들은 합법성과 최소한의 국제적 영향력을 획득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이들이 ‘약탈자’ 그룹들이 아니라면, 민간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또 민간인들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권법 존중행위는 이 그룹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된다. 마지막으로 이 그룹들의 대다수가 그들의 대의를 지지하는 디아스포라(이산된 민족 집단)를 가지는데, 이 디아스포라는 ‘자신들의’ 전사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를 때 당황할 것이다.”
사솔리는 이 법의 유용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한 마디로 정리했다. “국제인권법은 당신에게 당신의 집으로, 당신의 가정으로, 당신의 구역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 즉, 국제인권법은 인간 공동체에 머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인 것이다.  


글·올리비에 바이이 Olivier Bailly  
이 기사는 벨기에의 저널리즘 기금의 지원을 받고, 보고타와 사라베나(Saravena)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지원혜택을 받아 작성되었다. 


번역·고광식
파리 8대학 언어학박사로 대학에서 프랑스 언어를 가르치고 있다. <르몽드 세계사 3> 등의 역서가 있다.

(1) 프레드릭 콜레르(Fréderic Koller)가 인용함, <르 탕(Le Temps)>, 제네바, 2009년 8월 10일.
(2) 195개국에 의해 서명되고 비준된 협정임.
(3) 부속규약 1에는 167개국이 부속규약 2에는 174개국이 서명함.
(4) 부속규약 1의 1조 4항.
(5) 팔레스타인은 2014년과 2015년에 이 두 개의 부속규약을 비준했다.
(6) 프란체스카 마리아 벤베누토(Francesca Maria Benvenuto), “비난받는 국제사법재판소”,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13년 11월 참조.
(7) ‘긍정 오류’의 실례를 들자면, 콜롬비아 군이 게릴라들에 대한 전투에서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했다는 결과를 조작하기 위해 수천 명의 민간인들을 살해했다. “콜롬비아에서의 ‘긍정 오류’ 살인의 증가와 감소: 미군 군사 원조의 역할, 2000-2010년”, 화해단체와 콜롬비아·유럽·미국의 휴먼 라이트 옵서버터리, 2014년 5월.
(8) 산토도밍고 학살과 관련하여 그 관점은 아주 상대적이었다. 콜롬비아는 2012년과 2013년에 미국 국외 인권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월드 리포트 2014년> 참조, 휴먼 라이트 워치.
(9) “제네바 콜(Geneva Call: 비정부기구의 명칭임)의 행위 공약에 서명한 자들의 제 3차 선언”, 제네바, 2014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