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복잡미묘한 아시아 회귀 정책

2015-10-06     이자벨 파콩
 
수년 전부터 낙후된 극동지역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아시아와의 우호적인 경제적·정치적 대외관계를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국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4년 러시아는 아시아와의 협력을 널리 표방하고 나섰다. 먼저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적 고립에 처했다는 서방 강대국의 지적을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유럽연합과 미국의 제재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댈 곳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줌으로써 여론의 불안도 잠재우기를 바랐다.
그러나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오로지 서구만을 외교정책 대상의 1순위로 삼으며 상대적으로 아시아는 등한시해왔다. 그런 현실 속에서 러시아가 아시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그리고 정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빠른 시일 내에 경제적·정치적 대외관계를 아시아 중심으로 변경할 수 있을까? 사실 오늘날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현재 러시아는 다른 주요 서방국가들과 어느 때보다도 관계가 악화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전략적 단절을 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최근 몇 달간 러시아가, 중국과 인도 정부가 자국의 대(對) 우크라이나 정책에 대해 포용적인 자세를 보인다는 사실을 유독 강조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러시아는 앞으로 아시아가 대외정책의 구심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종종 주장했다. 그렇기는 해도 실상 러시아가 조금 더 균형 있는 대외경제관계와 외교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이미 러시아는 ‘위대한 아시아’에 대한 비중을 높이는 데 매진해왔다. 아시아 국가들과의 양자관계를 강화하고, 각종 다자간 지역협의체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가령,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상하이협력기구(SCO)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한편 러시아는 아시아 지역의 외교망을 확대하는 데도 매진해왔으며, 아시아 학술 연구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12년에는 거액의 투자비용을 들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APEC 정상회의를 주최하며 아시아 중심의 외교를 본격적으로 공식화하기도 했다.
 
중국, 독일 제치고 러시아의 최대 교역국 부상
 
러시아는 시베리아횡단열차와 바이칼아무르철도(2013~2017년 65억 유로 소요)(1)에 대한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아시아와의 연결망을 더욱 단단히 구축하고, 아시아와 유럽 간 교역의 교두보가 되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었다. 한편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에너지 사업에도 더욱 박차를 가했다. 동시베리아와 태평양을 잇는 송유관 건설 사업, 일본과의 에너지 협력 강화, 2013년 로스네프트사의 대중국 석유수출량 2배 확대를 골자로 한 러‧중 협정 체결, 러시아와 한국을 잇는 송유관 건설사업 타진 등이 대표적인 예다. 
러시아 정부는 2020년까지 아·태평양 지역과의 교역량을 전체 대외무역의 절반 이상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있다. 비록 현재 러시아와 아·태평양 지역과의 교역량은 전체 대외무역의 1/4에도 미치지 못하며, 러시아가 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무대에서 큰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최근 들어 분명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령 2010년 중국은 독일을 제치고 러시아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또한 2005~2010년 일본과의 교역은 2배, 한국과는 3배가 증가했다.(2) 한편 방위우주산업의 경우에도, 베트남‧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과 손을 맞잡으며 아시아의 사업 파트너들을 더욱 다각화하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러시아도 다른 나라들처럼 더욱 균형 잡힌 경제 및 전략적 대외관계를 위해 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적인 수준의 강대국 지위를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정작 아시아에서는 중량감 있는 경제대국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만일 지금처럼 중국이 눈부시게 부상하는 한편, 미국이 태평양 지역으로 중심축을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새로운 현실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날이 갈수록 국제적인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아·태평양 지역에서 결국에는 완전히 소외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러시아는 잘 인식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가 자국의 아시아 영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 역시, 결국  아시아 무대에서 자국의 위상을 더욱 견고히 하려는 야심인 것이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극동지역에서는 탈산업화가 심화됐으며 인구도 급감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도 이런 극동지역의 문제점을 심각한 취약점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2012년에는 ‘극동개발부’라는 정부부처까지 신설하기에 이르렀다. 가령 러시아 정부는 현재 아무르지역의 보스토크니에 건설 중인 새 우주 발사기지가, 러시아 극동지역의 성장을 이끌 견인차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사안과 관련하여 러시아는 이중적인 방법론을 도모하고 있다. 때로는 역설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먼저 러시아는 여러 아시아 정부나 사업가들이 러시아 극동지역 개발에 대거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있다(투자, 기술 이전, 인력 제공 등). 하지만 동시에 극동지역 내 현지 경제적, 정치적 주체들이 점차 자율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아시아 파트너들을 찾아나서는 현상을 엄중관리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고 있다. 이처럼 지역 주체들이 직접 파트너를 찾아나서는 이유는, 그동안 러시아 중앙정부가 시행한 개발정책이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식의 변화가 지속된다면, 결국에는 러시아는 향후 극동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할 우려가 높다. 또한 더 나아가 ‘러시아의 아시아 영토’ 내에 중국의 이권이 점차 깊숙이 개입하면서 결국 중국의 도전으로 인해 러시아의 주권이 위태로운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러시아, 아시아 내 군사적 잠재력 강화에 골몰
 
오늘날 러시아는 극동지역을 잠재적인 약점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미국은 아시아에 대한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전력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일본도 어느 정도는) 군사적 패권을 더욱 확고히 다지고 있으며, 북한은 끈질기게 핵개발 야심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아시아 지역에 대한 군사적 잠재력을 증강하는 데 골몰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더욱이 러시아의 경우, 아시아 내에서 경제적‧외교적 위상을 높이는 것보다는, 군사적 잠재력을 키우는 편이 아시아를 점령할 수 있는 훨씬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여기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다소 열악했던 태평양 지역의 해군력과 군사지대, 군대 등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것이다. 가령 이 지역에 대한 대공방위력을 한층 더 강화하고, 보스토크(동부) 훈련 등 대규모 군사훈련을 자주 실시하고 있다. 어떨 때는 최근까지 서부 지역에서만 실시해오던 대규모 군사력 배치 및 핵무기 사용 시나리오에 따른 훈련까지 실시할 정도다. 한편 외국과 합동훈련도 자주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2003년에는 인도 해군과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2002년 이후에는 중국과도 매년 해상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는 프랑스에서 구입한 지휘함 미스트랄 1~2척을 태평양 지역에 배치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 계획은 어쩌면 오래 전부터 해온 것일 수도 있다.(3) 또한 일본과의 영토분쟁도 아직 깨끗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쿠릴열도에 대한 군사력 증강도 계획 중이다.(4)
 
물론 러시아가 이처럼 아시아 중심으로 대외정책을 변경한 것은, 처음부터 서방과의 정치·전략적 관계의 구조적 악화를 예측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그런 예측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이 러시아가 아시아의 대외정책 비중을 높이게 된, 유일하거나 가장 큰 원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사태는 냉전체제에서 비롯된 국제질서의 성격과 관련해 근본적으로 서구와 러시아 사이에는 명백한 시각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더욱 명확히 보여주었다.
한편, 그런 상호적 의견차를 한층 고착화하는 계기가 됐다. 말하자면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가 대외정책 노선을 아시아로 변경함에 있어, 가속제가 된 셈이다. 이런 경향은 매우 흥미롭게 보인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단호하게 서구 중심적인 관점을 견지해왔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기 전 러시아 정치학자 티모페이 V. 보르다체프와 이고르 마카로프도 이러한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러시아는 “스스로를 아시아에 정통한 유럽의 강대국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지정학적 철학이 러시아의 아·태평양 정책을 제한하고 있다.”(5)
 
아시아로 눈돌린 이유, 서방과 금이 간 외교관계 
 
물론 러시아의 대외 정책 변화가 유럽과의 무조건적인 ‘결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경제 및 에너지 분야에서 유럽과 무시할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연합과의 교역은 러시아 전체 교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또한 유럽연합 내 가스 소비의 30% 이상(전체 가스 수입의 약 65%)을 러시아가 충당하고 있다.(6) 러시아에서 이루어지는 국내외 투자도 대부분 유럽연합에서 비롯된다. 프랑스와 독일의 사업가들이 2014년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조치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 것은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경제적 이권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전략적으로 러시아와 유럽 사이의 맹렬한 힘싸움은 아마도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남길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여러모로 러시아는 서방에 역점을 둔 대외 관계에서 탈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듯하다. 그런 만큼 아마도 러시아는 앞으로 정치·외교적 역량을 다른 지역으로 돌릴 것이 분명하다.
러시아는 현재 경제제재에 직면해있다. 또한 서방과도 상호 신뢰에 금이 가면서 더 이상 산업, 기술, 금융 등의 분야에서 기존의 협력 관계를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 지도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아시아에서 대안을 모색하려 하고 있다. 대안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기존의 유럽과의 관계를 보완할 협력관계가 필요하다.
 
과연 러시아는 ‘위대한 아시아’에서 더 나은 입지를 점할 수 있을까?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비중은 매우 제한적인 현실이다. 더욱이 자국의 아시아 영토가 보유한 경제·사회적 인프라가 미흡한 탓에 아시아 내 러시아의 입지는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에게 하나의 계기가 되어주었다. 일부 아시아 대국들이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제사회의 균형에 미치는 결과에 대해 무심하지 않다는 것을 러시아에게 일깨워준 것이다. 러시아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해 아시아 대국들이 귀를 열어놓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서방의 주장과는 달리 러시아가 국제무대에서 완전히 고립된 것은 아니며,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된 데에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책임이 있다는 러시아 측의 주장에 대해 아시아 대국들이 귀를 닫아버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또한 러시아는 아시아권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서방의 제재조치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다른 국가들도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자국이 서방의 제재조치로 인한 희생자가 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다는 것을, 그리고 세계 각국이 서로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현 세계경제 체제에서 자국을 보호할 방법에 대해 전전긍긍한다는 것을 러시아는 알게된 것이다.
최근 국제적 이슈가 된 여러 사건들은, 물론 아직까지는 상징적인 의미에만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결코 가볍게 여길 사안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일례로, 2014년 5월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아시아 안보협력체계 구축안을 제안한 바 있다.(7)
그로부터 몇 주 후인 7월, 브라질의 포르탈레자에서 러시아는 브라질,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파트너들을 만나, 브릭스 5국을 위한 개발은행 설립과 위기대응기금 설치에 합의했다. 수없이 회자된 바와 같이, 이러한 계획의 추진배경 뒤에는, 달러 패권주의를 탈피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속마음이 있다. 한편 8월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도 처음으로 이 기구의 몸집을 불리려는 시도가 일어났으며(8),  외부 세력의 지원을 등에 업은 ‘색깔 혁명’(공산주의 붕괴 후 동구와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쟁취 혁명-역주)에 대한 거부가 의제로 다뤄졌다. 요컨대 현 국제질서가 불공정하다고, 다시 말해 서방 강대국들에게만 유리한 방향으로 편성돼있다고 인식하는 국가가 비단 러시아 뿐이 아님을 보여준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관계
 
중국의 한 고위외교관은 “중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소수민족의 독립을 선포한 것에 대해서는 반감을 느끼지만, 2014년 5월 크림반도의 독립은 ‘매우 특수한 성격’을 지닌다”며 간접적으로 크림반도의 독립을 승인하는 모습을 보였다.(9) 평소 중국의 지도자들이 영토 보전 문제에 매우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입장 표명은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이 매우 이중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러시아는 경제 및 금융 분야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점차 우세해지는 것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지켜본다. 또한 양국은 미국과도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더욱이 기본적으로 양국은 각자 상대국의 군사적‧전략적 의도를 불신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관계에 채워진 빗장을 깰 유일한 도구는, ‘서방의 간섭’이라는 공동의 두려움이다. 즉 자국이나 이웃나라에 대한 서방의 간섭이 점차 심화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러시아와 중국이 공동의 문제로 인식한다면 양국 간의 불신은 해소될 가망이 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을 지켜보면, 그러한 가능성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국제 정세 변화로, 양국의 관계가 이전보다 돈독해진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러시아는 중국에 대해 매우 조심스런 태도를 견지한다. 러시아는 양국의 관계가 이미 많은 영역에서 중국에게 유리하도록 치우쳐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더 이상 양국 간 격차가 벌어지지 않게 운신의 폭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4년 5월, 양국은 모두 4천억 달러가 소요되는 연장 4천여km 송유관 건설에 관한 가스 협약을 체결했다. 2006년 이후 협상이 가격 문제로 난항을 겪다가 끝내 중국에게 유리한 쪽으로 합의가 난 것이다. 양국은 그밖에도 각종 금융 및 산업 협정을 맺기도 했다. 가령 앞으로 두 나라는 상업용 항공기와 중형 헬리콥터의 공동 생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물론 러시아 정부는 1991~2005년과 달리 근래 들어서는 중국과의 군수 협력에 조금 더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국 군대에 Su-35 전투기와 S-400 대공미사일 시스템을 판매하는 방안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10) 러시아는 중국이 향후 지금보다 더 다양한 경제 분야(산업, 기술, 관광, 사회기반시설 등)에 투자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방의 제재로 수입이 어려워진 항공방위 산업에 필요한 부품들을 중국에서 대량으로 구입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2014년 루블화 폭락 사태가 발생했을 때, 중국은 러시아에 아낌없는 지원을 지속했다.
사실 러시아가 아시아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에는 중국과의 관계를 조금 느슨하게 하려는 속내도 암암리에 포진해 있다. 역설적이게도 중국과의 너무 돈독한 관계는(11), 오히려 러시아가 아시아로 대외정책의 중심을 이동하려는 노력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러시아는 과거 중국의 부상에 맞서기 위해, 유럽이나 미국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라는 주문을 받곤 했다. 사실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는 러시아인들은 적지 않다.
 
러시아, 인도를 지렛대 삼아 중국과 균형관계 추구
 
러시아는 보다 균형 잡힌 대외관계를 추구하기 위해, 군수협력 파트너로 인도나 베트남을 선택했다. 러시아가 인도에 중국보다 더 기술적 성능이 우수한 무기를 판매하였으며, 중국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 군수산업협력협정을 체결했다는 점, 러시아는 베트남과도 에너지 분야에 대한 협력을 강화했다는 점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겉으로는 분명히 드러내지 않았지만, 중국은 이 두 사례에 모두 깊은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한편 러시아는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러시아는 아시아 내에서 경제 파트너(특히 러시아 극동지역)나 기술 이전 파트너를 다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본과의 관계에 더욱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우크라이나 사태가 러시아의 선택권을 상당히 제한할 우려가 있다. 물론 인도의 경우에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에 대해 포용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앞으로도 난해한 ‘중국 방정식’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균형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러시아가 중요하게 여기는 다른 아시아의 파트너들은 러시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가령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을 러시아 경제제재 조치에 동참시키기 위해 현재 매우 열성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크림반도 병합은 쿠릴열도 분쟁으로 이미 심기가 불편한 일본을 더욱 자극했다.
결국 일본은 러시아를 상대로 한 서방의 제재조치에 동참하는 한편, 2014년 가을로 예정된 푸틴 대통령의 방일도 무기한 연기해버렸다. 한편 한국은 아직까지는 러시아를 상대로 제재조치에 동참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반도의 복잡한 안보 현실 속에서 결국 미국이 요구하는 경우 충분히 러시아와의 협력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제재조치 해제 여부에 관계없이 러시아와 미국의 전략적 대립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위대한 아시아’에서 그다지 결정적인 주체로 인식되지 못한다. 일단 러시아가 그동안 역사적으로 서방 중심의 외교를 펴왔기 때문이다. 또한 극동지역의 인구 감소나 사회경제적 낙후를 제어하는 데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한편 아시아 경제권과 더욱 긴밀히 교류하기 위한 인프라 시설이 미흡한 것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또한 아시아와 여러 분야에 걸쳐 골고루 경제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한 점(주로 아시아에 원자재만 수출) 역시 러시아가 권위를 회복하는 데 여러 장애가 될 것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아시아의 정치·안보 문제에 깊이 관여해오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도 러시아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흔히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략적으로 문제점이 많다고 여기는 중국과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다시금 중국과 숨 막히는 불공정한 관계 속에 갇히지를 원하지 않는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국제정세 변화로 인해 ‘서방이라는 카드’도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아마 앞으로 다른 아시아 강국들과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며 상당히 복잡할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역학 게임에 뛰어들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 위해선 매번 말만 하고 실천한 적은 없는, 아시아로의 외교 역량 재편을 진정으로 실현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글·이자벨 파콩 Isabelle Facon
전략연구재단 연구원이자 파리공과대학(에콜 폴리테크니크) 부교수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AFP, 2013년 4월 2일.
(2) Artyom Lukin, 'Russia's APEC Moments', <East Asia Forum>, 2012년 9월 1일.
(3) 현재 첫 번째 함정 인도가 무기한 중단된 상태다.
(4) 일본 정부는 남쿠릴열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5) Timofei V. Bordatchev, Igor Makarov, ‘러시아의 대일본 정책 : 균형을 위한 절대적 필요성’, <Regards de l'Observatoire franco-russe>, Le Cherche-Midi, 파리, 2013년.
(6) ‘Gazprom supplying gas to Europe in line with contractual obligations', <Euro-pétrole>, 2014년 9월 19일, http://www.euro-petrole.com
(7) 1992년 창설된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는 모두 24개 회원국(중국, 인도, 이란, 이라크, 이스라엘, 파키스탄, 러시아 등)과 13개 옵저버국가(미국, 일본 등)가 참여하고 있다.
(8) 현재 옵저버 국가에 속하는 인도, 파키스탄, 이란이 향후 완전한 회원국의 지위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9) ‘China against Declaration of Independance et Referendums', <TASS>, 모스크바, 2014년 11월 21일.
(10) ‘Moskva i Pekin dadout optor tsvetnym revolioutsiiam'(모스크바와 베이징 색깔 혁명에 저항하다), <Nezavisimaia Gazeta, 모스크바, 2014년 11월 20일.
(11) 그것은 1990년대의 유산과도 같았다. 당시 의지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러시아는 주로 외교관계를 서구와 구소련 국가들에 국한하였으며, 아시아에서는 대개 중국 정부와의 평화적 관계 수립에만 치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