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대서양 거대시장(GMT)에 저항하는 시민들

2015-10-06     아멜리 카논·요한 티즐러

지난 5월 8일 유럽의회의 지지를 얻은 유럽연합(EU)과 미국은 범대서양 거대시장(GMT)을 출범시키려는 은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자유무역협정의 위험성이 알려지자 시민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이 반대 운동에 나섰다. 1998년 다자간 투자 협정(MAI) 반대 운동 이후 가장 거센 움직임이다.


“일드프랑스 지방 의회는 민주적 통제와 공개 토론 없이 진행되고 있는 범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이른바 범대서양 거대시장(GMT) 협상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일드프랑스 지역은 프랑스에서는 최초로 ‘탈 TTIP 구역’(또는 프로젝트 영문명의 첫 글자를 따서 ‘탈 TAFTA 구역’)을 선포했다. 2014년 2월 14일 이 표결 결과가 발표되자 프랑스 내 지방자치단체 500여 개가 유사한 안건을 내놓고 표결에 들어갔다. 전체 프랑스 인구의 54%가 여기에 해당된다.
 
만약 이것이 일드프랑스(Ile de France, 파리를 둘러싼 외곽 지역) 한 지역의 반대운동이었다면, 상징적인 의미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다른 지방 단체들이 동참하면서 자유무역 및 투자 협정 반대 운동이 본격화됐고, 현재는 프랑스에서 유럽 전체로 번져가고 있다. 최근에는 정당들뿐만 아니라 시민들까지 자신이 속한 지역의 의원들에게 표결을 요구하고 있다. 여러 협회, 조합, 정당들로 구성된 시민 단체 ‘Stop TAFTA’는 구체적인 표결 방법을 제시하면서 시민들에게 해당 지역 의원들에게 표결을 요청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국제 조약은 법적으로 회원국 내 모든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설사 이 안건이 가결된다고 해도 GMT의 위험에서 해당 지역만 제외될 수는 없다. 다만 ‘탈 TAFTA 구역’ 선포를 통해 적어도 시민들과 지역 의원들에게 고용 안정, 공공서비스 보호, 환경보전, 미국 기업들의 지방 공공 시장 공격 등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국가정책기관에 영향력 행사

반대 운동가들은 시민들과 지역 사회의 움직임이 국가정책기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길 기대한다. “현 프랑스 대통령이 2001~2008년 시장으로 있었던 튈 시에서도 이 안건이 가결됐다는 것은, 상징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튈 시의 자문관 사뮈엘 데자귀예가 말한다. “코레즈 주의 다른 도시들에서도 집권당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안건이 가결됐습니다.”
 
현재 독일에서는 쾰른, 라이프치히, 뮌헨을 비롯한 228개 지역이, 오스트리아에서는 260개 시가, 벨기에에서는 브뤼셀을 포함한 82개 코뮌이, 영국에서는 에딘버러와 브리스톨을 포함한 21개 시가 ‘탈 TAFTA 구역’을 선포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와 안코나 시가 동참했으며, 스페인의 경우 지난 5월 지방 선거에서 포데모스 당이 승리를 거두면서 TAFTA 반대 운동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체코의 활동가들은 2015년 가을부터 지방 단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GMT 프로젝트 이전에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협정이 있다. 바로 GATS(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 협정)이다. GATS는 수년간의 협상 끝에 1995년 1월 1일 발효됐다.(1) GATS의 발효 소식은 유럽 시민들을 분노케 했고 2000년 초에는 ‘탈 GATS 구역’을 위한 반대 운동이 조직됐다. “우리는 너무 빠른 속도로 전개되어 일반적인 반대 운동으로는 저지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힘의 관계를 근본부터 바꾸어야 했고, 지방 의원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야 했습니다.” ATTAC(국제금융관세연대) 소속으로 반 GATS 운동에 참여했던 프레데릭 비알은 말한다. 이 운동은 이후 엄청난 호응을 얻어 불과 4년 만에 816개 지방 단체와 총 22개 지역 가운데 20개 지역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반대 운동을 회의적으로 보는 일부 시선에 대해 비알은 이렇게 반박한다. “WTO에게는 한동안 GATS가 상당한 골칫거리였지요.”
 
유럽 각국의 TAFTA 반대 운동 세력들은 2013년부터 서로 협력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탈 TAFTA 구역’ 선언은 범유럽적으로 진행 중인 TAFTA 반대 운동의 일부에 불과하다. 반 GATS 운동과는 달리 반 TAFTA 운동은 사회 활동가들이 주축이 된 운동이 아니다. 이는 2014년 6월 EU 집행위원회에 제출된 ECI(European Citizens' Initiative)와도 관련이 있다. 당시 20여 개국의 230개 단체는 유럽의회에 협상기한을 폐지하고 현재 캐나다와 진행 중인 EU-캐나다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리스본 조약과 함께 도입된 ECI 제도에 따라, 2011년부터 7개 이상의 EU 회원국에서 시민 10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시민도 유럽의회와 유럽이사회 측에 법안을 제안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2014년 9월 10일, EU 집행위원회는 본 ECI를 기각했다. 협상 개시는 준비 행위일 뿐이며 ECI가 개입 가능한 법적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U 법원 앞에서 이 결정에 반대하던 활동가들은 480개 이상의 단체들을 집결시켜 자가조직 방식으로 반대 운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목표는 1년 내에 시민 300만 명의 서명을 받아내어 EU 사상 최다 시민들이 참여한 청원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서명 수집은 각 회원국에서 자유로운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ECI가 법적 유효성을 얻을 수 있는 최소 서명인 수는 해당 국가의 인구에 따라 결정됐다. 일례로 프랑스는 5만5,500명이었다.(2)

협정의 실체는 괴물 트롤과도 같다

정부 기관들이 시민들의 논쟁과 우려를 무시할수록 반대 운동은 더욱 거세졌다. 2015년 8월에 이미 시민 25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냈으니, 10월 6일까지 ECI를 종결시킨다는 목표달성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탈 TAFTA' 안으로도 불리는 이 청원서의 목적은 대중들에게 TAFTA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이다. 본 ECI를 위해 의기투합한 유럽 동맹은 여름 동안 유럽 대륙을 횡단하면서 각국의 시민을 직접 만나 TAFTA라는 알쏭달쏭한 전문 용어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 조약은 노르웨이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트롤과 비슷합니다. 햇빛을 보면 돌로 변하지요.” 유럽 동맹에서 활동하는 리투아니아 출신의 활동가 로라 진탈라이테는 설명한다. “이 운동의 목적은 모든 국가와 시민들에게 이 자유무역협정의 실체를 바로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까요.” 시민들이 TAFTA가 보건, 교육, 농업, 심지어 환경에 미치게 될 잠재적인 영향을 알게 된다면 이 상업 협정은 정당성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GATS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와 유럽의 의원들 대부분은 상업과 투자 관련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다. 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조약의 실체는 모른 채, 이론적인 의미만을 중요시한다. 지난 7월 8일, 유럽의회는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GMT 협상안 투표를 위해 스트라스부르그로 모였다. 의원들은 특히 다국적 기업이 국가를 중재 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분쟁 규제 메커니즘의 포함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3) 2014년 말 상업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중의 97%가 이 메커니즘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의원들 중에는 녹색당과 좌파당 의원들만이 이 결의안에 반대했지만, 프랑스의 사회당 의원들은 만장일치로 반대표를 던졌다. 이렇듯 사회당과 민주당의 의견을 극명하게 가른 것은 탈 TAFTA 구역과 ECI를 통해 전달된 시민들의 의견, 그리고 투표 전에 EU 의원들에게 쏟아진 수 만 건의 이메일과 전화였다. 시민들의 이러한 압박으로 인해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그 결과, 찬성이 과반수를 넘기지 못해 안건이 1개월 후로 미뤄졌다. 그러자 유럽의회의 의장이자 독일 사회민주당 소속인 마르틴 슐트는 중재 메커니즘을 유지하되, 국가가 지정한 판사가 판결을 하도록 하고 재판 결과에 항소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으로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지지를 얻었다.

협정 반대 운동의 본격화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에서는 반대 운동이 유독 활발하고 공격적이다. ECI가 효력을 얻기 위해 필요한 청원서 서명인 수는 이미 몇 주 안에 초과 달성됐다. 반대 운동은 동유럽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체코 공화국, 크로아티아, 헝가리 모두 최근 서명인 수를 채웠다. 이는 유럽 문제에 대해 시민들과 정치인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현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동유럽의 경우 반대 운동은 지정학적, 사회적 어려움에 직면하기 쉽다. 루마니아 출신의 활동가 마달리나 에낙은 말한다. “GMT처럼 복잡한 주제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미국에 동조하지 않으면 러시아 편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예 말이 안 통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협정의 체결을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협상 개시 이후 GMT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수많은 논쟁, 회의, 컨퍼런스가 유럽 전역에서 조직되고 있다. 2014년 10월 11일에는 22개국에서 1100건 이상의 반대 활동(행진, 회의, 서명 운동 등)이 진행됐다. 일단 수백만 명의 유럽인들에게 GMT의 실체를 알린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본 협정이 수 년 안에 발효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반대 캠페인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시민들의 비판과 요구에 귀를 막은 EU 집행위원회는 에너지, 금융, 농업관련 다국적 기업들의 주장은 너그럽게 수용하고 있다. 그리고 GMT 협상을 이어나가려는 의지, 그것도 비밀스럽게 추진하겠다는 고집을 보이고 있다.(4) 현재로서는 오직 EU 정상회의만이 이를 저지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처럼 시민들과 지방 의원들의 대부분이 GMT 프로젝트를 반대하고 있는 국가에서도, 정부가 나서서 협상 거부권을 행사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시민들과 의원들이 GMT의 실체에 대해 알리는 일은 이제 막 첫 단추를 끼웠을 뿐이다.  
 
 

글·아멜리 카논 Amélie Canonne
AITEC(기술자, 전문가, 연구원 국제 연합) 회장으로, 상업 및 투자 정책 전문가이며, 프랑스 및 유럽에서 Tafta(GMT의 영문 명칭)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요한 티즐러 Johna Tyszlet
AITEC과 ATTAC(국제금융관세연대)에 소속되어 프랑스에서 Tafta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프랑스 시민단체 'Stop TAFTA'를 이끌고 있다.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수잔 조지 & 엘렌 굴드, <자유화하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0년 7월
(2) 국가별로 필요한 서명인 수를 계산하려면 해당 국가의 의원 수에 750을 곱하면 된다. 서명운동이 시작된 지 1년이 된 2015년 7월, EU 회원국들 중 18개국에서 이 기준을 이미 초과 달성했다. 
(3) 브누아 브레빌 & 마르틴 뷜라르, <법 앞에 선 국가들> 및 범대서양 거대시장(GMT) 관련 기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6월
(4) 외부 공개가 극도로 제한된 나머지, 위키리크스는 현재 협상 중인 GMT 협정의 본문을 공개하는 사람에게 10만 달러의 현상금을 지불하겠다고 공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