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대한 권리 찾기, 칠레의 임신중절권 투쟁

2015-10-06     줄리아 파스쿠알, 레일라 미냐노

앞서 본 프랑스 여성 실비 로젠버그 라이너의 일생이 말해주듯, 임신중절권은 의식 있는 사람들의 용기 있는 참여와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다. 칠레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1)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이 법안이 발효된다 해도 수만 명의 여성들은 여전히 불법수술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매우 심각한 3가지 상황(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 태아가 기형아인 경우, 강간으로 인해 임신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열네 살 때였어요. 한 여름 날의 꿈같은 사랑이었지요. 임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어요. 어느 날 아침, 엄마가 임신테스트기를 주셨어요.”

칠레의 오후 간식시간인 ‘온세’ 즈음에, 카밀라(가명, 24세, 산티아고 출신)는 자신의 집 거실에서 필자와 차를 마시며 10년 전 일을 회상했다. 임신테스트 결과는 양성이었다. “엄마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우선 평소처럼 학교에 다녀오라고 하셨어요. 저녁에 집에 돌아오자, 엄마가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으셨어요.” 그는 임신중절을 하기로 결정했다. 카밀라의 엄마인 신시아(가명)가 말을 이었다. “이 일은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고 카밀라에게 주의를 줬어요. 알려지면 제가 감옥에 갈지도 모르니까요. 전 불법적인 일을 많이 했거든요.” 그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정권 당시 칠레 공산당의 무장군대였던 마누엘 로드리게스 애국노선에서 활동했었다. “임신중절 자체보다,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40대 남자가 집으로 찾아왔어요.” 카밀라가 말했다. “전 그 사람이 의사인지도 몰랐어요. 저한테 알약 4개를 주고는 약효가 나타나길 기다렸어요. 자궁이 수축되고 피가 흘렀어요. 욕조에서 사산을 했어요. 그 일은 잠깐 지나갔지만 충격은 2년 넘게 갔어요. 죄책감 때문에 몹시 우울했거든요.” 카밀라는 원래 임신중절에 반대했었다. “임신중절은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 당시에 제가 다니던 가톨릭학교에서는 소파술의 잔인한 장면이나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 사진을 보여주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일을 겪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는 18개월이 된 아들 아리엘이 거실 한 구석에서 노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엄마가 되고 나니, 이제 아이를 원하는 마음이 임신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신시아는 언제나 딸 카밀라를 응원해왔다. “자기 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어야 해요. 하지만 칠레에서는 임신에 있어서 여자가 결정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임신중절금지법을 금지하라!

2013년 의붓아버지의 반복적인 강간으로 11세에 임신한 벨렌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임신중절에 관한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다. 이듬해에는 역시 강간으로 임신한 13세 소녀가, 그것도 태아가 심각한 병을 가지고 있음에도 임신중절을 할 수 없어 출산을 감행해야 했던 일이 있었다. 아기는 태어나서 몇 시간 만에 사망했다. 이렇게 연이어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자, 칠레에서는 피노체트 군사정권 막바지에 공포된 ‘임신중절전면금지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칠레 내부의 상황, 그리고 시대에 역행하는 법을 고집하는 일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임신중절에 대해 칠레만큼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국가는 바티칸, 몰타,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온두라스, 아이티, 수리남 정도다. 쿠바,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주(2007), 우루과이(2012) 등에서는 임신 초기 12주 이내라면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임신중절이 가능하다. 이 지역 다른 국가에서는 치료적 유산(2)이 폭넓게 용인된다. 의사이자 유명한 칠레 여성운동가인 마리아 이사벨 마타말라 비발디 박사는 “칠레에서도 약 50년 간 치료적 유산이 가능한 시절이 있었다. 임신이 산모의 건강을 위협하는 경우에 치료적 유산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인턴 때 수술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오히려 퇴보했다”고 설명했다.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후, 의회에서 ‘임신중절전면금지법’을 수정하려는 시도가 10여 차례나 있었지만, 임신중절을 한 여성을 징역 3년에 처하는 관련법은 여전히 개정되지 않았다.

매년 ‘징역 3년’의 위험을 무릅쓰고 임신중절을 감행하는 여성은 최소 7만 명에서 최대 12만 명까지 추산된다. 마타말라 비발디 박사는 “칠레는 중남미에서 가장 임신중절률이 높은 나라다. 도미니카공화국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칠레에는 피임 관련 공공정책도 없어, 원하지 않는 임신율이 특히 높은 것도 문제다. 도미니카공화국이 2014년 12월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 기형아 임신,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 등에는 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면서, 더 이상 칠레의 현행법 고수는 어려워졌다.

 

가톨릭의 거센 반대 

2013년 대선 때, 좌파연합의 후보였던 전문의 미첼 바첼레트는 “세 가지 경우, 즉 강간으로 인한 임신일 때, 태아의 생존가능성이 희박할 때,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 때에는 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2015년 초 의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하라는 시위가 이어진 후에야 정부는 행동에 옮겼다. 지난 8월 초 국회위원회에서 법안이 채택되면서 첫 번째 고비를 넘겼다.

이 법안에 관한 토의는 다소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우리는 생명을 존중한다. 우리 보건센터 네트워크도 생명을 보호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임신중절수술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원에 출석한 이그나시오 산체스 가톨릭대학교 학장은 경고했다. 가톨릭대학교는 칠레에서 가장 중요한 사설의료기관 네트워크, UC-크리스투스를 운영한다. 법이 임신중절을 허용한다 해도 이곳에서 일하는 1,200명의 의사들은 임신중절수술을 하지 않을 것이다.

2004년에 와서야 이혼이 법적으로 가능해졌고, 인구의 57%가 가톨릭신자임을 자처하는 나라에서 이들의 입장을 소수의견으로 치부하고 가볍게 넘기기는 어렵다. 마타말라 비발디는 “성당이 여전히 정부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들은 정부에 자신들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브라질의 복음주의자들처럼 사회적인 압력을 가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칠레 성당이 우파는 물론 집권한 좌파연합에 속한 기독교민주주의당의 지원까지 받는 상황이므로, 정계에 대한 성당의 압력은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2013년 대선 때 기독교민주주의당은 바첼레트가 내세운 임신중절 합법화 관련 공약에 합의했었다. 그러나 기독교민주주의당은 지난 7월 말, “소속 하원의원 21명 중 임신중절 합법화를 지지하는 이는 1/3 미만”이라고 밝혔다. 기독교민주주의당 부대표인 마티아스 워커는 “당원 대부분이 강간으로 인한 임신에 대한 중절수술 합법화에 반대했다”고 덧붙였다.

 

‘치료적 유산’ 여론 늘어

바첼레트 대통령은 아들 내외가 연루된 부동산투기사건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기구의 권고사항을 최소한 준수함과 동시에, 의회에서 과반수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2014년 말, 바첼레트 대통령이 여성기구 최초의 여성 총재로서 활동하던 국제연합(UN) 전문가단은 칠레에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회라는 굴레를 벗어던져라”고 촉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운동단체도 임신중절 허용 관련 논의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0년 설립된 성적 권리와 재생산권 수호를 위한 단체인 ‘마일즈(Miles)’가 대표적이다. 마일즈는 치료적 유산 합법화를 우선과제로 두고 있는데, 2014년의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칠레인의 60~70%가 치료적 유산에 찬성한다고 한다.(3)

다른 단체들은 정부가 좀 더 나아가길 바란다. 2014년 설립된 ‘투쟁하는 여성운동가 연합’은 활동가가 1백여 명에 불과하지만 산티아고에서 임신중절 허용을 촉구하는 행진을 추진하는데 세 번이나 성공했다. 칠레 수도에 위치한 디에고 포르탈레스 대학교 역사학교수인 힐러리 하이너는 “바첼레트 대통령이 내놓은 법안은 계급의 문제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사설병원이나 외국에 가서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어떨까? 칠레 생식의료학회 소속인 솔레다드 디아즈 박사는 “빈부의 차는, 안전한 임신중절수술의 가능성에서도 드러난다. 이런 불평등의 문제는,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법만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법안에서 승인하려는 세 가지 경우는 전체 임신중절 케이스의 2%에 불과하다”고 카롤리나(가명)는 강조했다. 그는 ‘칠레임신중절합법화연대’ 소속이고, 이곳 소속 활동가들은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에 찬성하는 네덜란드 단체 ‘위민 온 웨이브’(4) 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매일 저녁 8시에서 밤 11시까지 콜센터를 운영하며 안전하게 약물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임신중절이 합법화되기 전까지는, 수천 명의 칠레 여성들이 암시장의 밀수꾼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이웃 국가에서 밀수입된 임신중절 알약인 미소프로스톨이 고가(4만~12만 칠레 페소, 약 55~146유로)에 거래된다. 이렇게 어렵게 구한 약도 적정복용량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거나 약효를 볼 수 있는 기간(임신 12주까지)이 지나 복용하는 일이 다반사다. 디에고 포르탈레스 대학교에서 발표한 보고서(5)에 의하면, 임신중절을 한 여성들이 출혈이나 감염을 비롯한 합병증을 겪을 때, 단지 건강상 위협에만 노출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병원을 찾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취조’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성의 없는 치료를 받으며 심지어 비난을 사기도 한다. 산티아고 루이스 티스네 브루스 병원에서 일하는 전국산파연합장인 아니타 로만은 “불안한 표정의 여성들이, 무작정 병원에 온다. 그들은 심각한 상태가 되고 나서야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비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칠레 가톨릭대학교의 마우리시오 베시오 박사 역시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칠레에서 임신중절은 강력범죄

그러나, 2013년 칠레 여성 166명이 임신중절로 인해 비난의 대상이 됐다. “166명의 여성들 중 22명은 실형을 받았다”고 펠릭스 이노스트로자 검사가 지적했다. 그는 강력범특별팀장을 맡고 있는데 칠레에서 임신중절은 강력범에 속한다. “대부분은 감옥에 가지 않고 다른 형벌을 받게 된다”고 변호사이자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칠레지부장인 아나 피케르는 설명했다. 2015년 칠레 남성 6명이 징역을 살았다. 한 남성은 76세의 간호사였는데 반복적으로 임신중절수술을 수술했다는 이유로 2013년 818일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앞으로 임신중절로 인한 실형선고는 줄어들 전망이다. 피케르는 “엘살바도르의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면서 “그곳에서는 임신중절을 한 여성들을 감옥으로 내던진다”고 했다. 2015년 4월 국제사면위원회는 ‘17’ 캠페인을 시작했다. 1999년에서 2011년까지 엘살바도르에서 살인범죄 가중처벌법으로 최대 40년까지 징역형을 선고받은 여성이 총 17명.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여성들 중 과달루페 바스케스가 거의 1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지난 1월 풀려나자, 다른 여성들의 변호사들은 대통령 사면을 요청했다. 이런 움직임을 보면서, 칠레에 이은 엘살바도르의 임신중절법 개정을 기대하는 이들이 있다.

중남미 각지에서 임신중절 합법화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은 몇 년 전부터 연대망 구축을 위해 노력해 왔다. ‘칠레임신중절합법화연대’는 약물임신중절에 관한 실전지침서를 제작했고 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수천 부 배포됐다. 카롤리나는 “아르헨티나에서 발간된 중남미 첫 번째 지침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볼리비아도 이 지침서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진정한 범(凡)아메리카 네트워크 구축의 거점이 마련된 셈이다.

 

줄리아 파스쿠알 | 기자

<르몽드>의 여성문제 전문기자로 <리베라시옹>, <코제트(Causette)>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주요 저서로 <보이지 않는 전쟁(La Guerre Invisible)>(레일라 미냐노와 공저, 2014) 등이 있다.

레일라 미냐노 | 언론인

프랑스 프리랜서 단체(Youpress)의 회원으로, 시리아 민주화운동인 ‘아랍의 봄’을 취재했다.

동료기자인 줄리아 파스쿠알과 함께 <보이지 않는 전쟁(La Guerre Invisible)>(2014)를 썼다.

 

번역 | 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있다.

 

* 2015년에 작성된 이 기사는 칠레의 낙태 허용을 둘러싼 그동안의 논쟁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 8월, 칠레는 낙태를 부분 합법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단, 성폭행에 따른 임신이나 산모 또는 태아 위험시에만 낙태를 허용한다는 원칙을 달았다.

(1) Michelle Bachelet, 칠레의 제39대, 제41대 대통령. 사회주의 중도좌파 성향을 지닌 정치인. 산티아고 출신의 의사로 2000년 이후 보건장관과 국방장관을 지내면서 칠레의 대표적 여성정치인이자 사회당 지도자로 떠올랐다. 2006년 칠레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됐으며, 2010년 지지율 84%로 명예로운 퇴임 후, 2014년 재선됐다.

(2) 의학적, 법의학적 사유에 의한 인공유산(임신중절)을 말함. 본인 또는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산모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3) ‘Encuesta nacional del instituto de investigación en ciencias sociales’, 디에고 포르탈레스 대학교, 산티아고, 2014.

(4) Women on Waves, ‘파도 위의 여인들’이라는 의미로, 1999년 설립된 이 단체는 임신중절이 금지된 국가의 외해, 즉 공해 상에 의료선박을 띄워 임신중절을 수술한다.

(5) Lidia Casas and Lieta Vivaldi, 'La penalizacion del aborto como una violacion des los derechos humanos de las mujeres', 인권보고서, 디에고 포르탈레스 대학교,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