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음험한 시리아 도박
2015-10-30 알렉세이 말라첸코
시리아 작전현장에 투입된 러시아 군대는 지역동맹을 지키는 동시에,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유지함에 있어 역량을 보여주고자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의 오래된 협력관계를 재확인하고, 동시에 근동의 세력판도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더욱 큰 영향력을 가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국 세력의 한계를 드러낼 위험 또한 감수하고 있다.
러시아가 띄운 수코이 SU-34기와 카스피 해에서 쏘아올린 크루즈미사일이 근동의 하늘에 날아들면서 시리아 전장의 권력구도는 일단 변화했다. 강력한 폭격과 더불어 시리아 정부군은 공격을 재개할 수 있었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전략적 지원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시리아는 근동에서 러시아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고, 과거의 영광이 상징적으로 남아있는 최후의 유적지라 할 수 있다. 러시아는 현 시리아 정권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온 덕택에, 2013년 여름 화학 무기고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서구의 개입을 피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었다.(1) 소련해체 이후 구소련 공간을 제외한 지역에는 러시아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러시아를 단순한 ‘지역 대국’으로 분류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입증해 보였다.
‘아랍의 봄’부터 시리아를 지원해온 러시아
시리아는 1956년 러시아와 최초의 군비조약들을 체결했다. 이후 러시아와 대단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관계는 이집트와 통일아랍공화국을 수립했던 시기(1958~1961)와 ‘아랍사회주의’를 내세웠던 바스당이 권력을 장악하는 시기인 1963년에 더욱 강화됐다.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은 2000년에 사망하기 전에 아들 바샤르에게 바스당이 시리아 제1당으로 남으려면,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라고 명령했다.
이집트와의 동맹이 역전되고, 1977년 알렉산드리아와 마르사마트르후의 기지를 잃게 되면서 시리아의 타르투 항이 지중해를 오가는 러시아 함대의 유일한 피난처가 됐다. 최근 몇 달 간은 러시아군이 시리아 해안의 먼 바다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9월에는 현재까지 설계된 미사일 탑재함 중 가장 큰 규모의 러시아 타이푼급 핵잠수함 드미트리 돈스코이까지 모습을 드러냈다.(2)
러시아는 ‘아랍의 봄’이 시작될 때부터 계속 시리아를 지원해왔다. 튀니지‧이집트‧리비아 정권이 무너지고 이라크 정권이 해체된 후 2014년 이슬람국가(IS)가 조직되자, 러시아는 알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고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위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서구의 정책 중에서도 우선 미국의 정책이 전반적으로 불안정하고 접근방식을 파악하기 어렵기에, 몇몇 국가들은 파트너를 다양화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남는 무기를 걸프 만 국가들에게 판매했다. 러시아는 얼마 전 이집트, 이라크, 요르단과 경제·군사·기술 협약을체결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별 주저 없이 이집트를 통해 러시아 무기를 구매하고 있고, 이집트국부펀드는 7월 초 러시아에 100억 유로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3)
많은 아랍 정치지도자들과 군인들은 가말 압델나세르 이집트 대통령 시대, 즉 1950~1960년대에 향수를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4) 이 시대는 소련과 서구가 이념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라 아랍 세계가 지닌 운신의 폭이 컸다. 압델 파타 알시시 현 이집트 대통령이 2014년 대선운동 당시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에게 찬사를 보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푸틴 대통령은 (마음에서 우러난 것은 아니겠지만) 일찍이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 쪽에 기울어 예전의 관계
를 재개했다. 그리고 30억 유로의 무기판매협정을 얻어냈다.
러시아는 국제법을 내세우며 영향력을 강화시키고자 한다. 푸틴 대통령은 9월 28일 UN 총회연설에서 “모든 국가와 정부가 IS와 싸우는 방식”을 결의안 형태로 조율하자고 제안했다. “주권국가에 대한 모든 형태의 지원은 강요가 아니라 권고되는 것이며, 전적으로 유엔헌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은 당연하다.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리비아의 국가체제 재건에 기여하고, 이라크의 새 정부를 지원하며, 합법적인 시리아 정부 지원에 다수의 국가가참여하는 것이다.”(5)
러시아가 처해있는 역설적 상황
러시아는 국제관계에서 예전 소련의 지위를 되찾으려는 의도를 감춘 채, 근동으로 귀환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역설적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많은 아랍 국가에서 알아사드 대통령이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어, 러시아-시리아 동맹으로 러시아는 사실상 이란,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지역 대결에서 시아파와 대치하는 수니파는 시아파를 이교도 취급한다)와 가까워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역량을 러시아 여론이나 지역 파트너들에게 보여주려면, 알아사드 대통령을 ‘배신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 합의를 통한 분쟁 해법을 생각해볼 수 있을까? 러시아 입장에서는, 일정기간 알아사드 대통령이 대통령 직에 남아있는 방안을 서방측이 수용한다면 그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지난 9월 15일 타지키스탄의 두샨베에서 개최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6) 총회에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속내를 다음과 같이 내비쳤다. “합의를 대신해서, 시리아의 정치개혁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아사드 대통령이 건전한 반대세력과 함께 국가경영을 할 준비가 돼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7) 이 단계에서는 성전운동과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야당이 참여하는 시리아 연정이 형성될 수 있다. 그 후 대통령은 ‘정말 기꺼이’ 시리아 주요 정치세력과 해외 관계자들이 승인하는 인물에게 대통령직을 양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현재로서는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이 방안은 이미 외교적으로 토의된 바 있고, 충돌도 있었다. 만일 이 방안이 실현될 경우, 러시아는 적절한 때에 자신의 패를 보여준 평화세력으로 여겨질 것이다. ‘시리아 정부의 요청에 따른’ 개입은 러시아가 냉전시기에 소련이 담당했던 지정학적 견제 역할과 이 지역 소수파의 보호자 역할(제정러시아가 동방의 기독교도들을 위해 행했던) 을 동시에 재개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게임은 지역 차원을 넘어서 훨씬 광범위한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실 배후에서는 시리아를 돈바스와 ‘교환’하려 한다는 가설이 드러나고 있다. 돈바스는 친러파와 우크라이나 정부추종자들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이다. 다시 말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시리아에서의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보다 고려해준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보다 너그러운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9월 말에 EU를 통해 우크라이나나 가즈프롬 쌍방 모두에게 적절한 가격으로 천연가스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가즈프롬은 새로운 계약을 얻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8) 2014년 9월에 체결된 1차 민스크협정과 2015년 2월에 체결된 2차 민스크협정이 완전히 적용되기에는 상황이 대단히 불투명하다. 10월 초 파리에서 개최된 회담을 통해 중화기를 실질적으로 철수시키고, 양측이 제도적인 해결책을 시행하기 위해 지역선거를 연기시켜 돈바스에서 지속가능한 휴전을 모색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교환조건의 논리도 러시아가 처한 진퇴양난을 숨길 수 없다. 푸틴 대통령은 9월의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일부 회원국이 외부로부터 무장혁명을 조장해 내전으로 확대시켰다”고 비난하는 한편, 합의를 지지했다. “위협이나 무력으로 우크라이나의 보존을 보장할 수 없다. 돈바스 주민들의 권익을 현실적으로 고려하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 합의해야 한다.”
러시아의 목표는 IS 진압이 아닌 정권 유지
현재 시리아에서, 아사드 이후에 가능한 연정 유형에 대한 전망은 완전히 불투명하다. 분쟁 당사자들은 제각기 자기 방식의 해결책을 구상하고 있다. 러시아는 군사적·기술적 지원을 계속 강화할 생각이다. 무기와 군대의 유입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 전투기가 직접 개입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물자보급과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적들이 몇십 킬로미터 이내에 있기에, 라타키아 공군기지는 공격용 헬리콥터 Mi-24기들이 보호 중이며, 탱크들이 배치돼있다. 공식정보에 따르면 2천 명이 동원됐다고 하는데, 군부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9)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연막에 불과할 수 있다. 왜냐하면 크림공화국에 실제 투입된 러시아군의 수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반면 고문단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새로운 사항이 없다. 1950년대 중반부터 근동에는 러시아 군사전문가들이 진출해 있었다. 시리아 주둔 러시아군인들의 역할은 주요 시리아군 기지를 보호하고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데 그칠수도 있다. 러시아사회는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제한된 징집병’이나 이후 1979~1989년의 침체상태를 잊지않고 있다. 공식통계에 의하면, 소련군 사망자는 1만4천 명(부상자 5만 명), 아프간 측 사망자는150만 명에 달한다. IS의 학자들은 이 처참한 아프간전쟁이 소련의 몰락에 기여했다고 한다. 25년이 지난 지금, 시리아 지상전 개입이 일어나면 푸틴 대통령의 인기에는 좋을 게 없을 것이다.
서구 지도자들에 의하면, 러시아의 주요 목표는 IS 진압이 아니라 알아사드 정권의 유지다. 사실 폭격이 시리아의 반대파들을 겨냥하고 있고, 그 중에는 알카에다에서 파생한 알노스라 전선도 있다. 동시에 러시아는, 다른 나라들이 IS와의 싸움에 보다 주력하고, ‘극단주의의 전쟁’에 러시아와 합류할 것을 원한다. 그러나 전 세계적 반테러 연합의 탄생은 어려울 것이다. 최선의 경우 비행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기술적 연합은 가능하다. 러시아 매체들은 러시아, 이란, 중국이 참여해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과 겨룰 연합을 언급하지만, 이런 연합이 탄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은 자국 국경 밖에서의 개입을 거부하고 있다. 이란혁명수비대 소속 최정예 부대로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는 쿠드스 부대의 카셈술레이마니 장군이 러시아를 방문했다고는 하지만, 이란은 계속 독자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베냐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는 그와 같은 접근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특히 러시아와 동맹을 체결한 시아파 덕에 헤즈볼라가 무기를 회수한다고 걱정하며 푸틴 대통령의 확약을 얻어냈다.
어떤 점에서, IS는 러시아가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지역의 친 러시아 국가들에 보여주는 데 일조한 셈이 됐다. 결국 러시아는 집단안보조약기구(OTSC)라는 ‘러시아식 NATO’를 통해 중앙아시아 무슬림 국가의 보호자로 자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련 해체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러시아는 ‘유라시아’(10) 중심부의 안정을 유지하고 자신의동맹국들을 외부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려는 결심을 과시 중이다. 그 위험의 정체는 아프간의 탈레반이었다. 이후 중앙아시아 남쪽 국경을 따라 중앙아시아 쪽으로 침투 중인 IS가 추가됐다. IS는 창설 때부터 러시아를 적으로 지목했다.
2014년 IS는 러시아 대통령에게 경고하는 문서를발간했다. “너의 왕좌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 우리가 도착할 대면 무너질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네가 바샤르에 보냈던 비행기들을 우리는 알라 신의 도움으로어 네게 돌려보낼 것이다!” 실제로 지하드는 이 야심찬 계획을 나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중앙정부에 대항하면서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카프카스 북부에 그 영향력을 확대 중인 것이다. 더욱이, 5월 19일, 9월 20일, 10월 13일에 일어난 러시아 대사관저 테러와 같은 사건이 또 일어날 수도 있고, 러시아 영토 내에서도 일어나지 말란법은 없다.
1979년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은 러시아공산당중앙위원회(PCUS) 내의 정치국(폴리트뷰로) 회의를 통한 합의방식으로 결정됐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그의 동료들에게 설득 당했다. 당시 KGB 국장이자 나중에 공산당중앙위원회 서기장이 된 유리안드로포프는 개입 결정에 반대했다가 결국는 동의했다. 오늘날 우리는 누가 어떤 식으로 결정을 내리는지 알고 있다. 9월 30일에 러시아 상원이 만장일치로 해외파병을 지지했다고 하나, 모든 결정은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상황판단에 따라 직접 내린다. 때때로 그의 결정은 가능한 결과에 대한 충분한분석 없이 감정적으로 이루어지는 듯 보인다.
러시아는 1962년의 러시아 미사일 위기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 소련 지도자였던 니키타 흐루시초프는 갑자기 쿠바에 소련 미사일을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흐루시초프는 “미국의 팬티 속에 고슴도치를 밀어 넣겠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당시 그는 단독으로 결정했고, 그의 측근들은 나중에 통보받았다.(11) 쿠바 해상을 봉쇄하고 소련에 대한 공격도 가능하다는 위협을 가한 미국의 민첩한 대응에 러시아는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12) 이 사건으로 다른 국가지도자들 사이에서 소련지도자에 대한 신뢰는 심각하게 실추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푸틴 대통령은 오바마 미대통령보다 더 결단력 있고 유능해 보인다. 시리아사태를 두고 러시아가 자국 파트너이자 경쟁국보다 한걸음 앞선 결정을 내림으로써 그런 견해가 다시 한 번 확실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중전에서의 승리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다. 그 뒤에는 흔히 정체상태가 이어지고, 허허벌판에서 퇴각하기도 한다. 1년 전부터 시작된 엄청난 폭격에도 IS는 물러서지 않았다. 러시아의 근동 귀환은 국제적 정치해법의 조건들을 만들어내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글·알렉세이 말라첸코 Alexeï Malachenko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모스크바사무소 종교사회안보 프로그램 팀장. 주요 저서로 <영향력을 위한 싸움 : 중앙아시아 속의 러시아>(카네기, 모스코바 2014년) 등이 있다.
번역·김계영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학사>(2006), <르몽드 세계사3>(2013),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
(1) 자크 레베스크, “러시아의 국제무대 귀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11월호 참조.
(2) Maxpark.com, 2015년 9월 9일.
(3) “서방측 제재에 맞서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와 가까워지다”, 2015년 7월 7일, www.latribune.fr
(4) 로제 마르텔리, “나세르의 웃음, 부다페스트의 눈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6년 10월호 참조.
(5) UN 사이트에서 연설 전문 볼 수 있음, www.un.org
(6) OTSC에는 러시아, 아르메니아, 벨로루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이 가입해 있다.
(7) “OTSC : 블라디미르 푸틴의 반테러 공동전선 호소”, 2015년 9월 16일, www.lecourrierderussie.com
(8) 카트린 로카텔리, “가즈프롬, 크렘린, 그리고 시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년 5월호 참조.
(9) Informing.ru, 2015년 10월 1일.
(10) 장 마리 쇼비에, “유라시아, ‘문명 쇼크’의 러시아 버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5월호 참조.
(11) 윌리엄 토브맨, <흐루시초프와 그의 시대>, 노튼, 뉴욕, 2003년.
(12) 다니엘 강세르, “쿠바 미사일 위기로의 귀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2년 11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