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우리 모두의 권리

2015-10-30     카를로 페트리니
지금은 전 세계적인 운동이 됐지만 1986년 당시에는 이탈리아 내 작은 움직임이었던 슬로푸드(1) 운동은 “미식이 문화 및 친환경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다”는 새로운 관점에 영향을 주었다. 이에 따라 슬로푸드 운동은 먹는 즐거움과 식품의 원산지, 농촌생활에의 존중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게끔 이끌었다.
 
“음식을 먹는 것은 농업적 행위다.”
켄터키의 농부 웬델 베리(Wendell Berry)의 시(時)에 언급된 견해는 간단하다. 미식이 과학과 정치, 문화 분야에 속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미식은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정치적 도구이자 진행 중인 세계화에 대적할만한 고결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먹는 즐거움이자 미식법적 지식의 근본적 기반, 삶의 질을 본질적으로 구성하는 ‘미식’을 이렇듯 높이 평가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 슬로푸드 운동은 “먹는 즐거움에 대한 권리 및 방어를 위해” 만들어졌다. 대체로 좌파로 구성된 몇몇 지지자들은, 미식이 ‘부르주아적 퇴폐’ 혹은 ‘타락한 쾌락주의’와 동일시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 필요했다. 
 
미식은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아우른다
 
우선, 미식에 대해 말할 때 먹는 즐거움만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식의 주요 이론가이자 <미식예찬>(2)의 저자인 앙텔므 브리야 샤바랭(3)에 의하면, 미식이란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론을 기반으로 한 인식”이다. 이 간단한 정의에서 비롯된 지적 노력 덕분에, 우리는 미식이 모두의 이익을 중심으로 먹을거리를 되돌려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리야 샤바랭은 음식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부터 원인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요리예술을 일종의 확고한 과학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는 체중감소 및 비만, 절식이 휴식에 미치는 영향, 단식, 피로, 죽음을 연구하면서 맛의 역학에 대해 정밀분석을 하는 데 전념했다. 이러한 관점의 미식은 우리를 학제 간의 복합적 지식으로 이끌었다. ‘음식을 섭취하는 인류와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곧 인류학‧사회학‧경제‧화학‧농업‧생태학‧의학‧전통‧현대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요한다. 이러한 학술적 ‘자료체’는 미식가가 다루는 분야를 상당히 발전시킴과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보다 잘 다루고 대처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잘 이해하려 노력하는 이들의 폭을 넓혔다.
 
미식, 즉 먹을거리의 생산 및 유통과 소비는 다시금 국제적 토론의 중심에 놓였으며, 정부의 당면과제 중 하나가 될 자격을 획득했다. 앞에서 언급했듯, “음식을 먹는 것은 농업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정상회담 이후 농부들이 탈세계화 운동을 상당히 지지하고 있는 것, 저명한 지도자들(조제 보베, 라파엘 알레그리아, 에보 모랄레스 등)이 농업분야 출신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또한, 수많은 도시에서 산업식품의 품질에 대한 의심으로 큰 불안이 야기되는 것도, 유엔의 <새천년생태계평가 보고서>(4)에서 대부분의 환경문제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먹을거리를 생산한 결과라고 기술한 점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먹을거리에 대한 선택이 세계의 방향을 결정한다
 
절반에 가까운 세계 인구(5)는 여전히 농촌에서 살고 있다. 도시에서 식품의 생산이나 가공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 사람들 중 대부분이 식품 분야와 관련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식품에 사용되는 기술은 대부분 처참한 수준이다. 자원이 만들어내는 것보다 많이 소비하는 생산제일주의, 집약적 생산방식으로 인한 피해는 실로 엄청나다. 우리의 미래는 세계 각지의 문화 및 경제와 관련된 미식법적 전통과 생물다양성을 존중하고, 오래된 방식을 재평가하며, 지구의 리듬과 양립 가능한 기술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사람들에 의해 보장될 것이다.
 
미식법적 과학은 그 노하우와 삶의 질 및 문화적 차이의 존중을 바탕으로 새로운 친환경적 요구와 양립할 수 있는 결론으로 귀착될 것이다. 친환경적, 미식법적 과학으로 사람들은 최선의 먹을거리를 생산할 것이다. 이는 당연하고도 정당한 열망이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열망은 간과되고 있다. 우리는 양질의 제품을 추구하지 않고, 가장 상업적인 제품을 추구하는 생산을 하고 있다. 따라서 오감을 만족시키는 먹을거리의 특징이 파괴됐고, 품종과 생물다양성은 축소됐다. 우리는 토양과 대기 오염을 발생시키고, 공해를 일으키는 교통수단 사용을
증가시키며 낭비를 부추겼다. 가급적 현지에서 제철에 생산하고, 자연적 방식으로, 전통적인 개념의 농민에 의해 농업기준을 재건하는 것은 해결책의 시초가 될 것이다. 인류가 음식을 지속적으로 섭취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은 안 된다. 미
식가와 소비자들은 이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먹을거리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 세계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1986년에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은 그 철학적 신념을 명확히 밝혔다. 그리고 또 다른 미식법을 구축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먼저, 슬로푸드 운동은 모든 연령 및 학교에 적합한, 새로운 방식으로 식품 및 맛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또한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맛의 살롱’과 같이 먹을거리의 획일화에 대항하는 한편, 재능 있는 생산자를 소개하는 국제 행사를 조직했다. 그리고 슬로푸드 운동은 세계 도처에 있는 전통적 생산 방식과 생물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300여 개에 달하는 특별한 계획을 세웠다. 또한 2004년 이탈리아 폴렌조(피에몽 주)와 콜로르노(에밀리아 로마냐 주)에 첫 미식과학대학을 설립했다.
 
이와 같이 미식에 관한 새로운 발상은 단지 생각에 그치지 않았다. 모든 영역을 획일화시키는 세계화에 저항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운동에 협력하는 사회적 동력이 됐다. 또한 환경과 자연보호를 위한 ‘푸른 요구’를 모두 수용한다.
 
식품공동체를 이끄는 슬로푸드 운동
 
슬로푸드 운동의 핵심 동력은 수십만 명이 넘는 생산자, 농부, 장인, 어부로 구성된 슬로푸드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생각을 공유하고 활동하며, 지식을 교환한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정치 활동가는 여기서 제시한 새로운 미식개념에 무관심하다. 농부들이 주된 역할을 하는 세계사회포럼과 같은 행사를 제외하고는, 정치권은 대개 먹는 행위의 복합성에 대해 무시로 일관한다.
 
그러나 전통적이고, 맛있으며, 친환경적인 음식의 이면 각각에는 수 세기에 걸쳐 쌓인 노하우와 지혜, 창조성이 있다. 이 소중한 자산을, 생산제일주의 때문에 소멸될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다. 다행히 우리는 캠페인을 기대할 수 있다. 2004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지구촌 식품 공동체의 만남으로 창설된 테라 마드레(Terra Madre) 포럼이 처음 개최됐다. 5천 명 이상의 농부들, 어부들, 목축업자들, 장인들과 전 세계 130개국에서 온 1,200개 식품 공동체가 여기 참가했다.
 
식품 공동체는 친환경적이고 사회정의에 부합한 좋은 먹을거리를 생산하기 위해서 함께 일하는 집단이다. 호전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투쟁을 일상적으로 경험한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서로 협조하는 것이다. 대다수가 여행경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했고, 슬로푸드는 먹을거리 생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대지의 지식인들’을 환영했다. 이들은 존엄성과 식량주권, 자신의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한다는 점에서 보면 꽤 정치적이다.
 
앞서 언급한, 음식을 먹는 행위가 생산의 한 구성요소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미식 덕분에 생산자, 연구자, 요리 ‘셰프’, 농부, 소비자로 이루어진 거대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비자도 공동 생산자가 된다. 농산물 품질이 이들의 미식적 요구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엘리트주의와 거리가 먼 미식은 가장 민주적인 학문이 될 수 있다. 양질의 농산물을 섭취할 수 있고, 좋은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을 누리며, 식량 주권을 지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글·카를로 페트리니 Carlo Petrini
슬로푸드 국제운동의 창시자이자 회장
 
번역·김세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졸.
 
(1) ‘느린 음식’. 빠른 음식인 패스트푸드의 반대 개념으로 생겨났다.
(2) <Physiologie du goût>, (1826)
(3) Anthelme Brillat-Savarin, (1755~1826)
(4) <Millenium Ecosystem Assessment>, (2005)
(5) 2004년 기준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