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美食) 외교

2015-10-30     브누아 브레빌ㅣ<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만일 외교관이 공화국에 있다면, 의원들을 유인할 커다란 식탁을 차려야 한다.” 1716년 발표된 프랑수아 드 칼리에르의 저작 <군주들과 협상하는 법(De la manière de négocier avec les souverains)>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훌륭한 식사는 혀를 기쁘게 하고 친근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논의를 원활히 한다. 이처럼 가스트로노미(멋진 식사를 만드는 방법)는 고대의 연회에서부터 현대 국가의 만찬에 이르기까지 몇 백년 전부터 외교 협상의 도구로 이용됐다. 
예컨대 1514년 메리 튜더(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의 여동생, 프랑스 왕 루이 12세의 부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에 머물렀던 영국 대사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향신료와 술을 선물 받았다. 그로부터 40년 후인 1554년 메리 튜더 프랑스 왕비가 잉글랜드에 보낸 밀사들은 잉어와 곤들메기가 차려진 풍미 가득한 연회를 즐길 수 있었다. 1582년, 동맹을 맺기 위해 프랑스에 왔던 스위스 주 대표자들은 마인츠의 햄파테를 13개씩 들고서 되돌아갔다. 
19세기 초의 프랑스 외교관 탈레랑은 가스트로노미라는 무기를 가장 정교하게 만든 인물일 것이다. 빈 회의(1814년 9월~1815년 6월)가 열리기 전 몇 달 동안 탈레랑은 ‘외교 만찬’ 자리를 늘려갔다. 이후 탈레랑은 요리사 앙토넹 카렘을 대동하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를 방문했고, 카렘의 요리는 프랑스 대표단이 주최한 일상 사교모임들의 귀빈들을 매혹시켰다. ‘외교관에게 최고의 조수란 그의 요리사’라고 탈레랑의 좌우명을 요약해도 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각국 정부들은 외국 대사들에게 진미를 내놓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간지 <더 이코노미스트>가 2002년 처음으로 명명한 ‘미식외교’를 시행함으로써 가스트로노미를 ‘소프트파워’ 무기로 이용하고 있다. 이 주제에 관한 논문(<Le temps>, 2014년 1월 6일)의 저자 알레산드라 로베르시는 “어떤 나라들은 자국을 하나의 브랜드로 홍보하고자 한다. 이들은 특별 기관 및 예산을 구성하여 전략을 개발해 자국의 요리 문화유산을 수출한다. 요리를 통해 자국을 알릴 뿐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무역과 관광을 장려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한다. 자국의 요리 전통을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국가들의 열띤 경쟁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