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혹의 경제학’을 넘어라

“서방 덕분에 잘 살게 됐다” 아시아에 위험 분담 촉구
지금 필요한 건 경제 민주화 위한 정치적 상상과 행동

2009-11-05     프랑수아 셰네 | 경제학자

2008년 가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의 충격은 ‘1930년대 이래로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가 도래했다는 생각에 모두가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치가들도 현재 상황을 1929년의 대공황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 원인에 대해 말할 만한 사람이 매우 적었던 대공황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정치가들은 대공황에 대한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위기의 원인에 대한 토론을 입막음하려고 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적자금과 대규모 자금 지원을 통한 은행과 대기업 구제, 대규모 해고 등은 ‘불가피한’ 해결책이 된다. 다시 한번 상황에 ‘적응’하라는 것이다. <<원문 보기>>

지난 2007년 8월부터 2008년 9월 사이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경제학자들은 금융시장 붕괴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고 대규모 경제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을 부정했다. 경제학자들은 그 후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긴 했어도 1929년의 대공황을 언급하는 것만은 조심스럽게 피해왔다. 그러나 2009년 상반기에 줄지어 출간된 경제위기 관련 책들(1)은 모두 세계적 차원의 지각변동을 우려하는 목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내용은 중국의 새로운 위상과 그에 대한 기대, 미국의 상대적인 쇠퇴, 유럽의 예정된 후퇴 등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일단 금융 시스템이 정비되고 나면 세계경제는 예전과 같은 토대 위에서 다시금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는 제도금융 투자자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그들이 ‘주주의 논리’를 포기하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 반면 앙드레 오를레앙은 헛된 기대를 품기보다 자본의 대규모 동원에 대한 억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 전문가들 중 경제위기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해악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프레데리크 로르동 한 사람뿐이다.

경기순환론 입각 경제회복 낙관

미국과 유럽에서의 은행과 대기업에 대한 대규모 자금 지원과 중국·인도 경제의 탄력성 덕분에 일단 전세계적 경제위기라는 급한 불은 꺼졌다. 세계 경제 관련 기구들은 위기가 완전히 진화되었다고 말하긴 힘들어도 최소한 경기가 예상보다 빨리 회복되리라는 전망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위기는 몇 가지 개혁을 통해 해결될 수 있으며 남은 일은 그 개혁의 성격과 범위를 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옳았던 것처럼 보였다. 이런 주장을 담은 가장 대표적인 책 중 하나가 ‘경제학자 서클’에서 나왔다. 이 서클은 ‘조절학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파를 아우르는 모임이다. 피에르 도케스와 장에르베 로랑지 공저의 <세계의 종말 또는 위기의 탈출?>이란 이 책은 두 가지 대조적인 해석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 해석은 현 위기가 본래의 경기 사이클의 한 국면일 뿐이고 경제를 정화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체제가 종언을 고하고 있으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피에르 도케스의 해석의 정당성을 논외로 친다면 이러한 대조는 구색 맞추기일 뿐이다.

올해 7월에 개최된 제9차 모임에서 ‘경제학자 서클’은 “정상 영업 중”(business as usual)이란 간판을 내걸고 그저 안심시키기 위해 효과도 없는 위험한 대안을 제시하는 관점”과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경제학자 서클’은 이번 모임에서 ‘제도적 개혁과 새로운 성장모델 개발’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들이 제안한 10개 항목은 목적 달성에 별로 효과가 없는 것들이다. 재계의 압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진부한 이론들의 혼합물일 뿐이다. 그들이 제안하는 ‘은행과 금융에 대한 규제 강화’는 국제결제은행(BIS)에서 협상된 사항, 특히 은행들로 하여금 부외자산(Off-balance-sheet)을 축적하게 함으로써 금융위기를 심화시킨 ‘바젤2 협약’의 폐지로 이어질 것이다.

경제위기가 가져올 여러 가지 놀라운 점 중에서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이동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2007년 전부터 광범위하게 관측돼온 이런 움직임은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이미 허약해진 생산 시스템이 큰 타격을 입음으로써 가속력을 얻게 되었다. 세계경제가 언제 얼마만큼 되살아날 수 있을지는 상당 부분 중국에 달려 있다. 세계경제의 균형을 다루는 이 저서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이런 상황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 등 아시아의 ‘도덕적 채무’ 강조

우선 안톤 브렌더와 플로랑스 피자니의 저서 <국제금융의 불안정>을 살펴보자. 이 책은 매우 정교한 논리의 가설을 제시한다. 중국이 이번 위기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으며, 중국은 미국에 대해 채권자이지만 도덕적으로는 빚을 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중국은 선진국들이 개인연금저축을 자본화하는 데 기여했다.(2) 원래대로라면 자본 흐름은 지구 북반구에서 남반구 방향으로 이루어졌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 방향으로 자본이 흘렀다. 브렌더와 피자니는 미국이 개도국에 좋은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세계화는 개발도상국(아시아·걸프만 국가)들이 위험부담 없이 자본을 축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만약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들이 더욱 많이 지출하지 않았더라면 높은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국가들이 그들이 벌어들인 돈보다 적은 지출을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마찬가지로 “서구의 은행 시스템이 모든 위험부담을 짊어지지 않았다면 개발도상국들이 위험부담 없이 자금을 투자하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금융 위험부담의 세계적 연쇄 고리’에 대한 정교한 이론 전개는 미국의 담보대출자들과 신용카드 소비자들을 영웅으로 등극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들이 없었다면 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의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며, 또한 그림자 금융시스템(Shadow banking system·금융회사들의 모든 부외자본)은 위험부담을 떠맡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전세계에 이익을 가져다준 셈이라는 것이다.

매년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킨 책들을 펴낸 파트리크 아르튀스와 마리폴 비라르(3)는 자신들의 저서 <미국을 구하기엔 너무 늦었나?>에서 ‘아시아로 세계 자본주의 중심축 이동’이라는 주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들의 방법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대안세계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도 그들의 생각을 가로채는 것으로 시작해 독자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온건한 제안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책은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무렵의 미국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생산에 대한 만성적인 투자 부족과 생산시설 해외 이전이라는 불가역성으로 인해 고도화된 탈산업화 경향, 공적·사적 투자 부족에 따른 인프라 황폐화, 채무변제 불가능에 이른 공적·사적 채무, 구조적인 재정·무역 적자,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화된 사회 불평등, 의료복지제도의 공백,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연금 시스템 등이 그 사례다.

저자들이 보기에 책임은 모두 미국에 있다. 미국은 제조업 공장 일부를 해외로 이전시켰다. 저자들은 브렌더와 피자니를 정면으로 반박하진 않지만, “개발도상국에서 수입되는 상품의 60%가 현지로 이전된 미국 기업들에 의해 생산된다. (특히 중국의 수출 증가는 현지로 이전된 외국 기업들의 재수입 덕분에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아르튀스와 비라르는 “나이키, 휼렛패커드, 모토롤라처럼 이들 국가로 생산시설을 이전시킨 회사들이 다시금 본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정확히 갈파한다.

‘오바마 일병 구하기’ 협력 강요

미국은 경제 분야에서 ‘양극화 모델’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모델은 한편으로는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금융·경영·개발)과 다른 한편으로는 열악한 복지와 저임금, 고용 불안을 감내해야 하는 ‘나쁜 직업군’(bad jobs)으로 구성된다. 지금까지 미국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 부문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매번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방향 선회를 시도해왔다. 사실상 이 책의 6장 제목 ‘오바마 일병 구하기’가 저자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높은 외화 보유율을 자랑하고 있는 국가들이 미국 서브프라임이나 자산유동화증권(ABS) 문제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위험을 감수한다면 미국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중국이 지나친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협력적인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다른 누구보다 앞서 아글리에타는 중국에 관심을 가져왔다.(4) 산드라 리고와 공동으로 집필한 <금융의 위기와 혁신>에서 그는 확신에 찬 대안을 제시한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경기부양에 대한 그들의 약속을 지킬 것이며 세계적 경기후퇴를 막아낼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사적연금 시스템을 채택한 국가들을 축으로 하는 세계경제 성장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처들을 이행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국가 규제가 중심이 되는 일종의 사회시장 경제를 건설해야 하며 복지와 교육, 인프라를 위한 막대한 투자와 환경비용 감축과 비재생산업 축소를 위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투자는 최소한 향후 10년간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엄청난 양의 투자는 중국 내 저축의 대부분을 흡수할 것이고 마침내 자본화를 통해 외국의 연금저축까지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아글리에타가 제시하는 새로운 정책들은 매우 시사적인 만큼 불확실해 보인다.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아글리에타는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며 세계경제 성장률이 약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사적·공적 채무액의 규모가 막대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담고 있는 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금융회사들이 기대하고 있는 시스템 전환을 제안하는 것이다. 아글리에타는 그 누구보다 먼저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예견해왔다.(5) 그는 금융증권화(securitization)와 그림자 금융 시스템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함께 강도 높은 비판을 덧붙인다. 그는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의 충격을 잊지 않아야 하며 비슷한 일이 언제라도 다시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러나 10년 전 자신이 ‘자산증식체제’(6)라고 이름 붙인 시스템의 기초를 튼튼하게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한다. ‘금융자본의 일탈’(7)을 비판하던 그는 이제 ‘금융 혁신’을 부르짖는다. 아글리에타는 반자유주의자도 반자본주의자도 아니다. 그의 저서는 몇몇 독자들이 처음에 그에게 품었을 법한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주주 권력과 세계화 대세론 추종

왜 개혁 이상을 주장하지 못하는가? 그에 따르면 그 이유는 “주주들로 구성된 근본적인 권력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킬 것이며, 누구도 세계화의 추세를 거역할 수 없다. 또한 인구 노령화가 장기연금저축 투자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 위기의 원인이기도 한, 부가가치 분배의 일탈을 교정하기 위해 “포드식 성장이 주를 이루던 시대의 기업 거버넌스에 의한 수익분배 모델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글리에타와 리고의 생각으로는 ‘금융 세계화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계약’은 ‘장기 투자자로서의 책임’을 감수하는 연기금의 출현을 통해서만 가능해질 수 있다.

이 책에서 국가 규제는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국가 규제의 비효율성과 연금과 투자기금으로 인한 국가의 영향력 감소 때문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저자들은 책의 시작에서 끝까지 ‘참을성 있는 투자자’라는 개념을 반복한다. 이 투자자들은 노동에 임금배분과 고용불안을 조정하는 변수로서의 역할만을 부여하는 주주들과 구별된다. 그들은 실질임금과 생산성 향상을 담보하는 장기적인 수익성을 추구한다. 아글리에타와 리고는 결국 이 ‘새로운 제도권 투자자’들에게 ‘규율화된 투자’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국가 규제와 새로운 사회계약 외면

그렇다고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대한 충고도 없다. 이 책에 언급된 10개의 제안은 경영자들에게 최근에 겪은 실패를 성찰할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기는 하다. 이 충고들은 좀더 합리적인 경영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새로운 사회계약’의 근본 문제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 없다.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CalPERS)이 다른 연금에 비해 위기 속에서 잘 버틸 수 있었다는 사실을 제시한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연금기금 이사회에 노조대표들이 참여함으로써 어떤 효과를 봤는지에 대한 언급은 책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이들은 예를 들어 미국에서 ‘새로운 사회계약’을 통해 기업들이 노동자의 연금 수혜 권리를 무시하고 노동자에게 퇴직연금저축에 가입하도록 강요하는 걸 금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뉴딜 시대의 자본-노동 역관계에 비견할 만한 오늘의 상황에서 이런 것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자동차노조(UAW)가 자동차산업 구제책의 일환으로 퇴직금과 임금 삭감, 고용 감소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만 봐도 이런 상황을 실감할 수 있다. 아글리에타와 리고는 복잡한 금융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는 발전된 기술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실현 가능성이 적은 헛된 희망이 도사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프레데리크 로르동의 저서 <과도한 위기-파산한 세계의 재건>을 펼쳐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저자는 콘티와 캐터필러, 셀라니스와 몰렉스의 노동자들의 분노에 공감한다. 저자는 “위기의 탈출구로서 자본주의 철폐를 우선적으로 내세우지는 않지만, 대대적인 경제 붕괴가 도래했을 때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으로 남겨둔다. 그럼에도 그의 책은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이 청사진을 통해 저자는 스스로 ‘리코뮌(récommune)의 지평’이라 이름 붙인,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이 용어는 ‘공유된 것’이라는 뜻의 라틴어 ‘res communa’와 관련이 있다. 이 새로운 기획은 “민주주의에 대한 급진적 요구들을 모든 경제관계 속에서 실현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로르동은 “의회라는 코미디를 위해서만 소용이 있고 단결한 노동자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마르크스가 남긴 이 말은 공교롭게도 공식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잊혀져왔다.

자원 배분 누가 결정할 것인가

로르동은 또한 임금노동자들이 이런 사실을 깨닫고 저항을 조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당장 실천이 가능한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들을 제시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사회화된 신용 시스템이다. 그의 모든 주장들을 살펴보면 그가 전통적인 ‘조절학파’와 분명하게 구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르동은 동료와 친구들에게 자신의 확신에 찬 가설을 설명했다. 그 후 앙드레 오를레앙은 다양한 금융 직종들 간 분리를 강화해야 하며 투자자본의 이동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오를레앙에 따르면, 현재 상황은 “금융시장 확대를 특정 경제 부문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자본 이동의 완전한 자유라는 생각을 재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는 이어서 “관건은 제한이다”라고 역설한다.

로르동의 제안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그중 몇 가지는 본지에도 소개된 바 있다.(9)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에 있다. 로르동이 제시하는 목표를 달성하고 오를레앙이 제안하는 조치들을 실현시키려면 로르동이 ‘임금 압박이 적은 자본주의’(저임금, 고용불안, 장시간 노동)라 이름 붙인 체제에 대항하는 광범위한 정치적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대규모로 연합한 임금노동자들이 자본과 충돌을 빚게 된다면 “어떤 목적으로 얼마만큼의 자원을 생산에 투여할지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다시금 제기될 수 있지 않을까?

글·프랑수아 셰스네 François Chesnais

번역·정기헌 guyheony@ilemonde.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이 글에 언급된 책 외에도 <위기, 그 후?>(Jacques Attali, Fayard, Paris, 2008), <경제위기의 과정>(Eric Bengel, Editions de Verneuil, Paris, 2009), <이것은 위기가 아니다(단지 세계의 종말일 뿐이다)>(Philippe Dessertine, Anne Carriére, Paris, 2009), <자본주의 개혁을 위한 20가지 제안>(Gaël Giraud, Flammarion, Paris, 2009), <금융계를 다시 생각한다. 금융위기에 대한 대조적 시각들>(Les Echos Editions-Eyrolles, Paris, 2009) 등이 있다.

(2) 이러한 입장은 컨설팅회사 매킨지의 관점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McKinsey Financial Institutions Group, <The global capital market: Supply, demandm pricing and allocation>, Washington DC, 1994 참조.

(3) 파트리크 아르튀스와 마리폴 비라르의 주목할 만한 저서로는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La Découverte, Paris, 2005)와 <세계화, 최악의 가능성>(La Découverte, Paris, 2008) 등이 있다.

(4) Michel Aglietta & Yves Landry, <슈퍼파워에 다가선 중국>, Economica, Paris, 2007 참조.

(5) Michel Aglietta & Laurent Berrebi, <세계 자본주의의 무질서>, Odile Jacob, Paris, 2007 참조.

(6) Michel Aglietta, <미래의 자본주의>, Notes de la Fondation Saint-Simon, n.101, Paris, 1998년 11월호.

(7) Michel Aglietta & Antoine Rebérioux, <금융자본주의의 일탈>, Albin Michel, Paris, 2004 참조.

(8) 미국 노동조합의 ‘주주행동주의’의 결과에 대해서는, François Chesnais, <세계화된 금융: 사회적 정치적 기원, 지형학, 결과들>, La Découverte, Paris 2004의 Catherine Sauviat, ‘연금기금과 상호신용기금: 새로운 주주권력의 주인공들’ 참조.

(9) Frédéric Lordon, ‘마침내 비정상적인 금융이 정상화되다, SLAM!’,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2월호와 그의 블로그 ‘la pompe à phynance’(http://blog.mondediplo.net) 참조.

프랑수아 셰스네는 누구인가?

 

 

 

1992년까지 OECD 수석 경제학자였으며, 파리8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는 파리13대학의 경제학과 교수이자 반세계화 국제 비정부기구(NGO) 단체인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트로츠키주의자로 알려진 그는 유럽에서 실천력을 겸비한 대표적 진보 지식인으로 꼽힌다.

주요 저서로, 국내에 소개된 <자본의 세계화>(2003, 한울)을 비롯해, <자본의 세계화>(La mondialisation financi?re, 1996), <토빈이냐, 토빈이 아니냐: 자본에 대한 국제관세>(Tobin or not Tobin: une taxe internationale sur le capital, 1999) 등이 있다. 


 


재판관 노릇까지 하는 피고의 오지랖

지난 9월 말, 프랑스의 점잖은 대학 강단을 뒤흔드는 사건이 있었다. 릴1대학 경제학 명예교수 장 가드레가 자신의 블로그에 경제학자들과 금융계 사이의 ‘위험한 관계’(1)를 폭로한 것이다. 총리 직속 기관으로서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프랑스 경제분석위원회(CAE) 소속 위원 몇몇이 이런 위험한 관계에 결부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드레는 이같은 가정하에 CAE의 대표인 크리스티앙 드 부아시유와 역시 CAE 자문위원이면서 경제학자 서클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장에르베 로랑지의 이력을 조사했다.

우선 부아시유 대표의 이력부터 살펴보자. 그는 금융계에서 인기가 높은 인물이다. 그는 2008년 초, 미국이 경기후퇴를 겪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하는 명민함을 발휘했다. (그는 2008년 1월 24일 칸에서 당시의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성장에 대해 낙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아시유는 프랑스 경제관측기관(Coe-Rexecode) 과학위원회 위원장, 모나코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뇌플리즈 오베세(Neuflize OBC)은행 감독위원회 위원, 헤지펀드 HDF파이낸스와 에른스트 & 영 프랑스의 경제자문위원, 프랑스 은행감독위원회(CECEI) 위원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수많은 직책을 맡고 있는 부아시유의 경제 분석이 얼마나 ‘객관적’인지에 대해 인터넷상으로는 알 수 없다. 반면 자유시장 안에서 그의 강연이 얼마의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지는 한 외국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30~60분 정도 강연을 하고 1만2500~5만 유로를 받는다. 자크 아탈리나 베르나르 앙리 레비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장에르베 로랑지는 부아시유보다 한발 앞서간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1994~2000년 보험회사 그라사부아(Gras Savoye) 사장과 부사장, 2006년부터 소시에테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 프라이비스 이퀴티 파트너스의 감독위원회 위원장, 2004년부터 에라메트(광업·철강 회사: 망간, 니켈, 합금), GFI 앵포르마티크, BNP파리바보험, 프랑스텔레콤의 파주 존, 와나두, 프랑스 이동통신사 협회 등에서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경제관측기관 과학위원회 위원, 부동산 대출 감사위원, 리스크 재단(AGF·아크사·그루파마·소시에테제네랄이 공동 창설)의 감독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경제학자이면서 경영자, 이론가이면서 현장실무 책임자인 이들은 모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피고가 재판관 노릇까지 하는 형국이다. 가드레는 진지하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그들이 경제·금융 권력 네트워크 안에서 점유하는 사회적 위치는 경영진 인사나 경제학자들의 경제 분석 내용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힘을 지니지 않을까?” 그들이 자신의 고용주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규제 완화에 그토록 관대한 이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부아시유와 로랑지는 가드레의 글을 읽고 언짢은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로랑지는 가드레에게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내가 맡고 있는 여러 개의 직책은 오히려 내가 가진 지적 호기심과 왕성한 활동력에 대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드레에 따르면 로랑지의 지적 호기심은 “1930년대의 자신의 글들을 재탕하는 수준”(2)에 머물러 있다.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번역· 정기헌

<각주>

(1) http://alternatives-economiques.fr/blogs/gadrey/2009/09/21/les-liaisons-dangereuses/

(2) http://alternatives-economiques.fr/blogs/gadrey/2009/09/25/reponses-a-jean-gadrey/

 


[발췌] 금융 투명해져도 위기 못 막는다

- 앙드레 오를레앙, <도취에서 공포로: 금융위기를 생각한다>(p.100)

지금까지 발생한 사태들, 가령 주가 폭등과 폭락, 유동성 부족 사태와 내수 침체 등은 금융자본 간 경쟁이 야기한 부작용이었다. 금융자본은 필요한 순간에 경제에 균형을 되찾아줄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2006년 11월부터 2009년 2월까지 금융시장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 이 기간에 금융시장 내부에 불신감이 확산되고 스스로 그 불신감을 무마하려 노력하면서 한편으로는 현금화를 시도하는 양상을 보였다. 불과 몇 달 사이 금융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던 근본 구조가 무너졌다. 기업들은 정부의 긴급 구조 예산으로 연명하고 있으며 금융 시스템도 엄청난 공적 원조 덕택에 살아남았다. 이 공적 원조가 가능했던 것은 원조의 목적이 금융시장의 이익 논리로부터 독립돼 있었기 때문이다.

상당수 분석가들은 이번 위기가 금융상품의 불투명성에서 기인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불투명성이 원인을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맹목적인 투자는 금융시장의 내재적 복잡성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금융인들이 금융상품에 대해 더욱 세밀하게 분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끔 한 상황에도 원인이 있다. 이노베이션에 대한 규제, 투명성 증대 등의 조치가 취해지더라도 달라질 건 하나도 없다. 경쟁 메커니즘이 투자자들의 맹목적 투자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투명성이 확보된 주식도 투기 버블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인터넷 버블이 그 좋은 예다. 완전히 투명성이 확보된 인터넷 주식의 주가가 폭등했다. 투자자들은 상장회사들의 적자를 오히려 발전 가능성으로 해석하고는 그 회사들의 주식을 매입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브프라임이 완전한 투명성을 확보했더라면 하고 가정해봐도 부동산 버블 붕괴라는 결과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글· 앙드레 오를레앙 André Orlé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