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나라가 얽힌 ‘허머스’ 음식 전쟁

2015-11-02     아크람 벨카이드
적어도 여덟 나라가 본고장임을 주장하는 ‘허머스’는 기원이 오스만투르크 시대까지 올라간다. 이스라엘에게 이는 근동(유럽과 가까운 서아시아지역)에 뿌리내리느냐 마느냐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계획은 허머스를 국가문화유산의 주요 요소로 삼은 레바논의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1995년 가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어느 절벽 근처 레스토랑에 이스라엘 기자 두 명과 스무 명가량의 중동 기자들이 탁자에 둘러앉았다. 그들은 오슬로 조약과 중동 평화 과정의 미래에 관해 사이좋게 담소를 나눈다. 십 분 후, 언성이 높아지더니 평화로운 분위기는 깨져나간다. 일행 중 어느 그리스 기자가 대화 주제를 바꾼 참이었다. 허머스(병아리콩에 참깨를 첨가해 만든 퓌레의 일종)를 진짜로 발명한 나라가 그리스라고 주장하면서부터다. 그러자 레바논인과 이스라엘인을 필두로 모두가 끼어들더니, 결국에는 서로 욕을 해대기에 이른다. 한편 터키 기자와 그 동료인 북키프로스 터키공화국 기자는 굳은 얼굴로 자리를 뜨고, 팔레스타인 기자는 “최고의 허머스 식당(오로지 허머스만 내놓는 식당)은 팔레스타인과 특히 동예루살렘에 있다”고 반복해 말했다. 유로-지중해 협약 개시를 축하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이 주최한 이 모임에 자리한 어느 스웨덴 기자는 살짝 어안이 벙벙해진 채 “평범한 요리의 기원에 관해 얘기하는 것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평범한 요리라고? 그렇게 확신할 수는 없다. 언론에는 ‘허머스 전쟁'(1)이라 불리는 다툼이 정기적으로 등장한다. 허머스 전쟁이란 무기는 등장하지 않지만, 도를 넘어선 열정에 이성을 잃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는 분쟁의 일종이다. 가장 열정적인 나라는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이스라엘이지만 그리스와 터키, 요르단, 시리아, 그리고 비교적 조용하긴 하나 이집트도 예외가 아니다.
 
중동 국가들은 학회와 서적, 언론 홍보 캠페인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국이 이 요리의 기원지임을 주장한다. 허머스의 최초 문헌 기록은 기원전 8세기경의 메소포타미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병아리콩은 초승달 지대(나일 강과 티그리스 강과 페르시아 만을 연결하는 고대 농업 지대-역주)에서부터 이미 생산되었던 농작물의 일부이며,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이 그 영양학적 가치를 찬양했던 식품이다. 그렇지만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허머스, 즉 병아리콩을 참깨 퓌레와 섞어 커민 등의 향신료를 첨가해 만든 것은 15세기가 되어서야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여러 지역에 등장했다.
 
각 나라가 자국이 허머스의 본고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나름대로 명백한 사실에 근거한다. 2010년, 레바논 산업협회는 허머스를 국가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2002년 그리스가 자국산 치즈만이 ‘페타(Feta) 치즈'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처럼, 협회는 레바논 산 허머스에 대해서만 ‘허머스’라는 명칭을 허용하도록 유럽연합을 설득하려고 시도했다. 이러한 시도는 이스라엘에서 뿐만 아니라 시리아와 터키에서도 거센 항의의 목소리를 이끌어, 이스라엘의 외교적 개입을 촉발했다. 작가이자 신(新) 이스라엘 요리에 관해 책을 쓴 자나 구르(Janna Gur)는 “대다수 이스라엘인에게 허머스는 진정한 종교나 다름없다”고 설명한다. 구르에 따르면 이 요리를 이스라엘의 요리로 삼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일이며, 이는 히브리어를 택한 것과 마찬가지로 ‘근동 지역과 그 전통에 공고히 뿌리내리려는 의지’를 뜻한다.
 
레바논도 같은 동기를 지니고 있다. 트리폴리의 요식업자 하산 하니는 “이스라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 한다. 땅뿐 아니라 허머스도 마찬가지다. 강력히 저항하여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2010년 5월, 알파나르 마을에서는 방송계의 유명 셰프 나딤 슈와이리를 비롯해 3백 명의 레바논 셰프들이 11.5톤의 허머스 ‘한 접시’를 만들었다. 같은 해 1월, 이스라엘의 아부고쉬 마을에서 실현된 4톤의 기록을 지우기 위해 세운 세계기록이었다.(2) 이후 잠잠해지긴 했지만, 이 같은 세계기록 경쟁은 허머스의 패권 다툼, 그리고 더 나아가 기원지 다툼이 2015년 겨울에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짙다는 사실을 시사
한다. 실제로 수많은 레바논 및 시리아 망명자가 거주하는 두바이 토후국에서는 최소 15톤을 목표로 판에 끼어들 준비 중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 ‘사브라’ 기업, 미국 허머스 시장의 2/3 점령
 
그렇지만 이 소규모 승강이질이 비단 근동의 일부 지역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허머스는 지난 20년 전부터 가장 유행 중인 요리로, 수많은 판로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채식주의의 부상에 힘입은 미국의 경우이다. 미국은 전체 허머스 시장의 2/3가 2005년 이후 이스라엘 기업 슈트라우스(Strauss)의 자회사가 된 사브라(Sabra)의 지배하에 있다. 사브라는 허머스를 대중화하기 위한 시도를 늘려나가고 있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온갖 종류의 스낵을 먹으며 TV 앞에 자리 잡는 행사인 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 슈퍼볼과 연계한 홍보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북미 허머스 시장은 그 규모가 1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된다. 이는 허머스가 이스라엘과 동일시되는 현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레바논 망명자들에게 크나큰 유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 점을 미루어보아(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에 닿을 기회가 절대 없긴 하지만), 허머스에 원산지 통제 명칭(AOC)을 부과하고자 하는 레바논 측의 공습은 상업적 동기에 따른 것으로 설명된다. 이것이 어쨌든 사브라 경영진이 주장하는 바로, BDS 운동(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항하여 이스라엘 브랜드에 대해 불매 및 불참, 투자 중단, 경제 제재를 벌이자는 시민운동. -역주) 차원에서 사브라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움직임이 이러한 상업적 논리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얼마 전부터 사브라의 허머스 광고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동일시를 내세우기보다는 지중해와 근동의 이국적 정서를 떠올리게 하고자 주의하고 있다. 이 광고들은 제 역할을 반밖에 수행하지 못했는데, 보이콧의 움직임이 사라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열된 상황을 진정시키고자 2012년에 어느 이스라엘계 미국 사업가는 5월 13일을 세계 허머스의 날로 지정하자고 제안했다. 레바논과 이집트는 이 같은 시도를 신선하게 받아들였으나, 그럼에도 이를 둘러싸고 아랍 세계의 네티즌 수십억 명이 SNS에 모여들었다.
 
 
글·아크람 벨카이드 Akram Belkaïd
주요 저서로, <알제리 회귀(Retours en Algérie)>(Carnets Nord, Paris, 2013) 등이 있다.
 
번역·박나리
연세대 불문학 및 국문학 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호주 기자 Trevor Graham의 다큐멘터리 「Make Hummus Not War」, 2013을 참조.
(2) 「Lebanon claims latest title in "hummus war"」, CNN, 2010년 5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