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 지역에도 여성 투쟁가들이 있다!

2015-11-02     나다 모쿠랑
이라크 쿠르드 여성들의 실제 상황은 언론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당당한 여군들의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법제도 등 여러 차원에서 여성해방을 위한 진보가 이뤄졌지만, 여성혐오적 박해와 명예살인 등의 악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헬리 러브는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쿠르드인들의 저항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헬리 러브(본명: 헬란 압둘라)는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팝송을 세계에 전파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2014년 발표한 뮤직비디오 <Risk It All>은 유튜브 조회 수 4백만을 기록했다. 전통적인 춤을 비욘세, 브리트니 스피어스조차 무시 못할 리듬과 결합시킨 형태의 이 뮤직비디오는 영어로 된 가사로 쿠르드인들에게 ‘모든 위험을 감수할 것’을 엄숙히 강조하고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헬리 러브는 미니스커트나 전투복 차림으로 여전사들에게 둘러싸여 등장한다. 이 여전사들은 카피에(아랍, 팔레스타인, 쿠르드 등지에서 쓰는 전통적인 머리쓰개-역주)를 쓰고 눈 화장을 진하게 한 채, 매니큐어를 칠한 손으로 카라슈니코프 자동소총을 휘두르고 있다. 헬리 러브의 다른 노래들처럼, 이 영상은 쿠르드 여군의 특성으로 알려진 카리스마를 표현한다. 이런 영상이 확산될수록, 쿠르드 여군을 향한 지속적이며 열광적인 관심은 높아질 것이 틀림없다.

쿠르드족의 정치지도자들은 IS와 대치하기 이전부터 이미 지리적 위치를 불문하고 여성들을 군사적 요직에 배치해왔으며, 정치적 요직에도 임명해왔다. 100년도 더 이전인 1909년에 이미 아딜라 카님(Adila Khanim)이라는 여성은 남편의 뒤를 이어 할랍자 총독을 맡았고, 또 쿠르디스탄에서 가장 큰 부족인 자프족의 족장을 맡았다. 카님은 역내 질서와 법제도를 재확립하는 데 성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전설적인 인물은 오늘날 106대대와 관련해 두 여성 대령, 나디아 아메드 라시드와 아일라 하마 아민 아메드에게 영감을 줬다. 106대대는 쿠르드 자치정부(KRG: Kurdish Regional Government)(1) 세력 하의 이라크 도시 술라이마니야에서 1996년 창설된, 여성 병사로만 구성된 대대다.

아메드 라시드와 하마 아민 아메드, 106대대가 조직된 이후 줄곧 대대에 헌신해온 이들은 이런 헌신의 동기에 대해 주저없이 설명했다. “위협당하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 절대적 필요성을 느꼈으며, 동시에 형제자매가 죽임을 당하는데 집에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두 장교는 자신들이 직면했던 난관, 특히 이라크 쿠르드 사회의 소극적인 태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험했던 어려움을 토로한다. 하마 아민 아메드는 “우리는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해야 했다. 그것은 일종의 투쟁이었다. 군인이 될 수 있는 자유는 남성들이 베푼 호의가 아니라, 우리가 투쟁해서 얻어낸 것이다. 내가 미혼을 고집하는 이유도 여생을 전투에 바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아메드 라시드는 “여군은 소위 남성적인 표본을 모방하지 않는다. 여성 자신의 정의에 따라 무기를 들 뿐”이라고 강조했다.

 

쿠르드 여군, 쿠르드 여성의 극히 일부에 불과

여군에 대한 열망은 이라크 쿠르드 당국이 서구 언론에 교묘하게 연출하는 홍보 전략에 활용되고, 그 효과는 무시하기 어렵다. 여군의 존재는 연민을 유발하며, IS와의 전투에 있어 국외 원조를 보다 쉽게 유치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쿠르드 여군들은 이라크 쿠르드 사회 내의 여성탄압이라는 주제를 다루길 꺼려한다. 우리의 인터뷰이들조차 군대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해방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가설을 반박한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쿠르드 여성들은 완전히 해방된 상태이며 남성들과 동등해지기 위해 군인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자유롭고 애국심과 자긍심에 넘치는 쿠르드 여군들은 보편적인 쿠르드 여성의 모습이 아니다. 쿠르드 여성들 중 군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1만9천 명으로 구성된 사단에서 106대대의 정원은 500~600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다른 대대에서 복무하는 여군이 몇십 명 더 있을 뿐이다.

여군을 위시한 홍보활동은 쿠르드 사회 내 많은 여성들의 대조적인 상황을 뒤덮고 있다. 술라이마니야에 거점을 두고 2000년부터 여성인권보호 활동을 해온 비정부기구(NGO) '아수다(Asuda)'의 카님 라티프 총재는 쿠르드 사회를 좀먹는 여러 가지 악습에 대해 말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명예살인’의 존속이다. 인권운동가 아소 카말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체의 정조‧순결과 연관된 가족의 명예’(2)라는 미명 하에, 1991년부터 2007년까지 1만2천 명 이상의 여성들이 KRG 영토 내에서 살해됐다고 추산한다. 또한 아수다는 분신자살이 계속 발생하는 사실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분신자살은 종종 가정 내 압박으로 인한 극단적인 비탄의 표현으로 일어난다. 또한, 가정 내에서 실제로 발생한 명예살인과 은폐된 자살 시도에 대해, 아직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아수다에서 집계한 건만 봐도, 2014년 술라이마니야에서 일어난 명예살인이 19건에 달한다.

 

쿠르드 여성들을 옥죄는 가부장제의 폭력

쿠르드의 젊은 여성들이 직면하는 또 다른 재앙은 조혼이다. 널리 퍼진 악습인 조혼은 가장 빈곤한 마을과 이주민 집단에서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추세다. 이들에게 소녀를 결혼시키는 것은 뜻밖의 횡재에 속한다. 조혼의 주된 요인은 소녀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라티프 총재는 “중학교가 없는 마을들이 있다. 이런 마을의 소녀들은 집에 처박혀 결혼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총재는 또한 소녀들의 할례를 언급했다. NGO ‘와디(Wadi)’의 보고서에 의하면, 14~18세 소녀 중 57%가 할례를 받는다. 

그렇지만 KRG는 법적으로 주목할 만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로 인해 다른 이라크 지역과 차별화된다. 2011년 쿠르드 국회는 가정폭력에 관한 ‘8번법’을 도입했다. 이 법은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신체적·정신적 폭력 및 조혼, 강제 결혼, 할례, 부부성폭행, 교육 관련 성차별을 범죄로 인정한다. 또한 가정폭력사건을 전담하는 특수재판소를 설립해서 피해자의 보호 부양과 후속조치에 힘쓰고 있다.(3)

그러나 라티프 총재는 이 법이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적한다. “법을 적용할 구체적수단 없이 법을 통과시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 법적 조치를 마련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아수다는 재정이 부족한 상황을 안타까워 한다. 사람들의 가치관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려면 장기 투쟁이 필요하다. 이는 종교‧부족 지도자들, 의사들, 경찰들,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인식개선 캠페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또한, 쿠르드 당국이 항상 재판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폭력행위의 원인이 피해자의 행실이라는 식으로 ‘정당화’되는 경우, 대부분의 폭력 가해자들은 경미한 제재를 받거나, 아무 처벌도 받지 않기도 한다. 이는 각종 보고서와 증언에서 입증된 사실이다. 게다가 극단적인 경우, 판사가 강간범에게 피해여성과 결혼해 그 여성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라고 권유하기도 한다.(4) 마지막으로, 부족들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력한 것도 문제다. 부족들이 가해자인 부족 일원을 보호하기 위해, 재판과정에 개입해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재정적인 보상에 대한 대가로 입막음을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럼에도 여성들의 투쟁과 변화는 계속된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상황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2008년, 술라이마니야에서 ‘명예화형’을 당한 여성의 수는 외곽지역이 도시의 2.5배였다.(5) 또한 폭력 사건과 여성할례도 감소하는 추세다.(6) 지얀(Zhiyan) 같은 단체는 사람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단체는 30여 개의 여성단체 및 인권단체로 구성된 NGO 네트워크에 기반을 두고 정부에 계속 압력을 가하고 있다. 특히 14세에 두 번이나 결혼한 후 여러 명의 부인을 둔 남편에게 고문당하고 살해된 두니야의 사건에서 공조가 두드러졌다.(7) 부족의 비호를 받던 살인범은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두니야가 또래의 소년과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의 명예가 실추된 점을 내세웠던 것이다. 이에 지얀과 여성주의 단체들은 국회 앞에서 수차례의 시위와 연좌시위를 조직했다. 이들은 부족의 개입 없이 법을 엄중히 적용하고, 두니야의 가족과 고위직 종교인사를 포함해 여아의 결혼에 개입한 모든 당사자들에 대한 재판을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에도 여전히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인 이 사건은 KRG 영토 내 법적 장치의 도입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편, 여성인권 투쟁이 단호하고 강경하게 진행되는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끈질긴 노력은 보상받기도 한다. 2000년 아수다는 명예살인의 위협을 받는 여성들을 위해 첫 번째 피난처를 설립했다. 현재 이런 피난처는 쿠르드 지역의 3개 주(州)에 존재한다. 2007년, KRG는 데이터와 통계를 수집하고, 폭력의 가시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담 행정기관을 내무부에 설치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여성고등심의회가 발족됐다. 여성인권운동가들로 구성됐으며, 총리가 주재하는 여성고등심의회는 NGO 및 정부기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제 쿠르드 의회의 여성의원 할당 비율은 30%에 이른다. 라티프 총재는 “쿠르드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하면 상황이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그 이상이다.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술라이마니야대를 졸업한 22세의 레진(8)은 자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다. “나는 가정도, 요리를 해줘야 하는 아이와 남편도 원치 않는다. 결혼 전과 후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결혼 후에는 모든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 과연 사랑이 그런 것일까? 상대방은 당신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데, 당신은 그의 모든 욕망에 순응하는 것?” 레진은 가부장적인 사회에 분노한다. 특히 이에 순응하고 현상 유지에 일조하는 여성들에게 격분한다. 가족과 문제를 일으켰던 적은 아직 없지만, 레진은 모두가 자신의 관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용히 지내는 편을 선호한다. “몇몇 친한 친구들이 내게 반대의사를 비쳤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나는 여행도 하고 싶고, 고등교육도 받고 싶으며, 더 강하고 자유롭고 싶다. 그러나 나는 쿠르디스탄으로 돌아가, 이런 가치관으로도 얼마든지 우리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다.”

한편 레진은 헬리 러브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헬리 러브는 서구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와는 달리 모든 것이 훨씬 쉬웠다. 투쟁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다.” 레진은 자기 신조에 따라, 식당에서 여성에게 할당된 좌석에 앉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쿠르드 언어에 존재하는 감사표현이 오로지 가족의 남성 일원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 분노한다. 이라크 쿠르드 지역에는 오늘도 레진과 같은 묵묵한 여성투쟁가들이 살아가고 있다.

 
 

나다 모쿠랑 | 언론인

레바논, 이라크내 소수 민족과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비정기적으로 이와 관련한 글을 쓰고 있다. 런던대 SOAS(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학 단과대학)에서 아랍문자를 전공했다.

 
번역 | 박나리 
연세대 불문학 및 국문학 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Vicken Cheterian, ‘쿠르드인을 위한 역사적인 기회(Chance historique pour les Kurdes)’, Allan Kaval; ‘Les Kurdes, combien de divisions?’, <Le Monde diplomatique>, 각각 2013년 5월, 2014년 11월 기사 참조

(2) ‘Iraq : Kurdish government promises more action on honour killings>, Réseaux d’information régionaux intégrés (IRIN)’, <Bureau de la coordination des affaires humanitaires (OCHA) des Nations unies>, Nairobi, 2010년 11월 27일.

(3) ‘Combating Domestic Violence Law No. 8 of 2011’, www.ekrg.org

(4) ‘Working together to address violence against women and girls in Iraqi Kurdistan’, <International Rescue Committee>, New York, 2012년 8월.

(5) Nazand Begikhani, Aisha Gill, Gill Hague, Kawther Ibraheem, <Honourbased violence (HBV) and honour-based killings in Iraqi Kurdistan and in the Kurdish diaspora in the UK>, Roehampton University (United Kingdom), 2010년 11월.

(6) <Significant decrease of female genital mutilation (FGM) in Iraqi- Kurdistan, new survey data shows>, Wadi, Francfort, 2013년 10월 20일.

(7) ‘Kurdish Teenager’s “honor killing” fades to memory as Iraq violence swells’, <Huffington Post>, 2014년 7월 17일.

(8) 가명으로 처리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