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노릇까지 하는 피고의 오지랖

경기위기 예측 못했던 경제학자들, 아직도 온갖 자리 꿰차

2009-11-05     피에르 랭베르

지난 9월 말, 프랑스의 점잖은 대학 강단을 뒤흔드는 사건이 있었다. 릴1대학 경제학 명예교수 장 가드레가 자신의 블로그에 경제학자들과 금융계 사이의 ‘위험한 관계’(1)를 폭로한 것이다. 총리 직속 기관으로서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프랑스 경제분석위원회(CAE) 소속 위원 몇몇이 이런 위험한 관계에 결부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드레는 이같은 가정하에 CAE의 대표인 크리스티앙 드 부아시유와 역시 CAE 자문위원이면서 경제학자 서클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장에르베 로랑지의 이력을 조사했다.

우선 부아시유 대표의 이력부터 살펴보자. 그는 금융계에서 인기가 높은 인물이다. 그는 2008년 초, 미국이 경기후퇴를 겪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하는 명민함을 발휘했다. (그는 2008년 1월 24일 칸에서 당시의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성장에 대해 낙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아시유는 프랑스 경제관측기관(Coe-Rexecode) 과학위원회 위원장, 모나코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뇌플리즈 오베세(Neuflize OBC)은행 감독위원회 위원, 헤지펀드 HDF파이낸스와 에른스트 & 영 프랑스의 경제자문위원, 프랑스 은행감독위원회(CECEI) 위원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수많은 직책을 맡고 있는 부아시유의 경제 분석이 얼마나 ‘객관적’인지에 대해 인터넷상으로는 알 수 없다. 반면 자유시장 안에서 그의 강연이 얼마의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지는 한 외국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30~60분 정도 강연을 하고 1만2500~5만 유로를 받는다. 자크 아탈리나 베르나르 앙리 레비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장에르베 로랑지는 부아시유보다 한발 앞서간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1994~2000년 보험회사 그라사부아(Gras Savoye) 사장과 부사장, 2006년부터 소시에테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 프라이비스 이퀴티 파트너스의 감독위원회 위원장, 2004년부터 에라메트(광업·철강 회사: 망간, 니켈, 합금), GFI 앵포르마티크, BNP파리바보험, 프랑스텔레콤의 파주 존, 와나두, 프랑스 이동통신사 협회 등에서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경제관측기관 과학위원회 위원, 부동산 대출 감사위원, 리스크 재단(AGF·아크사·그루파마·소시에테제네랄이 공동 창설)의 감독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경제학자이면서 경영자, 이론가이면서 현장실무 책임자인 이들은 모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피고가 재판관 노릇까지 하는 형국이다. 가드레는 진지하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그들이 경제·금융 권력 네트워크 안에서 점유하는 사회적 위치는 경영진 인사나 경제학자들의 경제 분석 내용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힘을 지니지 않을까?” 그들이 자신의 고용주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규제 완화에 그토록 관대한 이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부아시유와 로랑지는 가드레의 글을 읽고 언짢은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로랑지는 가드레에게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내가 맡고 있는 여러 개의 직책은 오히려 내가 가진 지적 호기심과 왕성한 활동력에 대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드레에 따르면 로랑지의 지적 호기심은 “1930년대의 자신의 글들을 재탕하는 수준”(2)에 머물러 있다.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번역·정기헌 guyheony@ilemonde.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http://alternatives-economiques.fr/blogs/gadrey/2009/09/21/les-liaisons-dangereuses/
(2) http://alternatives-economiques.fr/blogs/gadrey/2009/09/25/reponses-a-jean-gadr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