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주의·상대주의와의 싸움

유럽 가톨릭의 위기

2008-09-29     미셸 쿨 | 기자 및 저술자

 

   
▲ 유럽 가톨릭은 종교적 원칙에 어긋나는 세속주의·다원주의의 도전에 직면해있다. 사진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각계 인사들을 접견하고 있는 모습. (사진 = 로이터/뉴시스)

미셸 쿨 <기자 및 저술가>

지난 7월 20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제23차 세계청년대회 폐막 미사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11년 8월 15일부터 21일까지로 예정된 차기 대회의 개최지로 스페인 마드리드를 호명했다. 발표 직후 가톨릭 우파 일간지 ABC는 이번 개최지 선정을 '스페인 교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라고 논평했다. 사실상 스페인은 이탈리아와 함께 1984년 처음 출범한 이번 행사를 유일하게 두 차례나 개최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 동시에, 2005년 교황 추대 이후 베네딕토 16세의 방문을 두 번이나 영접하는 유일한 국가가 된 셈이다. 현 교황은 선종한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에 그랬듯, 스페인을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경도된 유럽 가톨릭 부흥의 전초기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다원주의'에 '포위'

 이러한 가정에 무게를 실어주듯 교황은 최근 스페인 사제들의 활발한 사회운동을 독려하고 있다. 예를 들면 2005년 6월 18일 20여명의 스페인 주교들이 가톨릭단체가 동원한 수십만 명의 시위자들과 함께 정부의 동성결혼 법안 철폐를 요구하며 수도 마드리드에서 거리 시위를 벌였다. 그로부터 몇 주 후인 11월 12일에는 종교 교육 의무화 폐지 및 교육제도에 대한 교단 영향력 축소를 골자로 한 법안 통과에 맞서, 또 다시 수십만 명의 스페인 시민들이 마드리드 시내를 점거했다. 2006년 7월 발렌시아를 방문한 교황은 스페인 주교들을 향해 "때로는 기독사회 내부의 삶까지 뒤흔들며 급속도로 심화되고 있는 이 세속주의의 시대에, 여러분이 교단활동에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으며, 이에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고 노골적인 강론을 펼쳤다.

    한편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정권의 희생자 복권을 골자로 한 법안이 국회 심의를 사흘 앞둔 2007년 10월, 교황청은 1987년부터 요한 바오로 2세가 꾸준히 추진해 온 운동의 일환으로 공화파에 의해 희생당한 사제나 수도사 등 가톨릭 순교자 498명에 대한 대규모 시복식을 거행했다.

   정부와 스페인 주교단의 힘겨루기는 2008년 3월 9일 사회당이 총선에 승리하고,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가 재임에 성공하면서 더욱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특히 주교단을 이끄는 마드리드 대주교 안토니오 마리아 루오코 바렐라 추기경은 완고한 보수파의 대표적 기수다. 법학 전공자이기도 한 그는 주변인의 신랄한 표현대로 '절대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곧은 사고'를 가진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16세기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 반종교개혁을 소재로 박사논문을 쓰기도 한 그는 교회가 사회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대를 동경하는 인물로 보인다.

  주교단은 자신들의 처지를 '포위당한 요새'에 비유하고 있다. 그들은 정부가 1985년 선진 유럽 각국 수준으로 완화하기 위해 내놓은 낙태법 수정안이나, 교회에 대한 현행 공공 재정 지원 방식 대신 국민의 뜻에 따른 선택적 세금제도로 바꾸는 방안 등에 대해 모두 '어불성설'로 치부하고 있다. 역사학자 브누아 펠리스트랑디는 "양측의 관계가 분열의 위기에 있다"며, "그 중에서도 특히 주교단은 전임 대주교 빈센트 엔리케 이 타란콘 추기경이 보여줬던 개방적이고 명철한 정신이 부족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타란콘 추기경은 스페인의 가톨릭화를 다시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허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잘 알았다.

  빈센트 엔리케 이 타란콘(1907-1994)은 스페인 개혁파 주교의 구심점 역할을 한 인물이다. 스페인 내전 종식 후 승리에 도취된 가톨릭에 경종을 울리고, 군벌세력을 공개 비판하면서 독재정권시절 유명세를 얻었다. 프랑코 독재정권 붕괴 후, 조국의 민주화에 공헌했으며, 스페인 가톨릭 교계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방정신을 지지했다.1)"고 비교했다.

  그렇지만 스페인 교단은 여전히 지도층이나 사회 전반, 특히 유력단체 중 하나인 오푸스 데이(Opus Dei)와 같이, 경제인, 언론인, 종교단체, 사회운동가들로 구성된 막강한 세력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스페인에서는 가톨릭계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전체 취학인구의 절반에 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의 막강한 영향력도 최근 심화된 정신의 세속화로 인해 위태로운 상황이다. 예를 들면, 가톨릭 교도의 78%가 사회당에 투표를 했으며, 그 중 33%가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석하는 신실한 신도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파테로 총리는 공화파 대위 출신의 조부를 두었으며, 본인도 개인적으로는 정교분리국가에 찬성하고 있음에도 신중한 태도를 견지할 수밖에 없었다. 주교단도 현재로선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종국에는 스페인 사회의 다원주의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세속주의와의 투쟁

  학술잡지 '에튀드(Etudes)'의 편집장이며 예수회 교도인 피에르 드 샤랑트네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독재정권을 경험한 전통 가톨릭 국가라는 점에서 서로 유사하지만, 프랑코의 독재정권이 무솔리니의 독재정권보다 더 많은 여파를 남겼다는 점에서 서로 상이하다"고 지적했다.

  양국의 또 다른 차이점으로는 주교단의 상이한 정치 태도를 들 수 있다. 사회의 다원주의 이념을 용인하지 않는 스페인에서는 주교들이 정부를 '정신의 적'으로 간주하고, 그에 맞서 투쟁운동을 벌이고 있다. 반면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1994년 기독 민주당 세력이 마피아와의 결탁, 국민의 신뢰를 잃고 와해되면서 주교단의 정치 참여 방식에 대한 반성 움직임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탈리아 주교단은 여전히 가족의 개념,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전 단계에 대한 생명존중, 공익과 같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기독교적 가치관 수호라는 동일한 사명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다수당 체제나 다양한 매스미디어 수단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전략을 착안한 사람은 1991년부터 2007년까지 16년간 이탈리아 주교회의의 의장을 역임한 카밀로 루이니 추기경이다. 이후 이 전략은 적어도 거리 시위에 있어서만큼은 주효한 효과를 발휘했고, 2005년 6월 인공수정 규제 완화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을 때,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지지를 등에 업은 주교단은 열렬한 기권운동을 벌이며 법안 통과를 무효화시키는데 성공했다.

   또한 2007년 5월 12일에는 로마노 프로디 중도좌파 정부가 발의한 이탈리아식 '동거인 권리에 관한 시민연대계약(Pacs)'인 이른바 디꼬(DICO) 법안에 맞서 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시위자들이 로마에서 거리행진을 벌였다.

   이탈리아 주교단은 분명 이런 식의 '문화 투쟁' 전략 덕분에 정치참여 역량을 강화할 수 있었고, 여전히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가톨릭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탈리아 교구는 이웃 프랑스의 경우와는 달리 충분한 수의 사제가 포진해있고, 가톨릭 운동, 친교와 해방, 산트에지디오를 비롯한 세속적 종교단체의 회원 수도 전체 인구의 12%인 약 50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교단의 사회투쟁은 종교인이 정치에 선거 전략적으로 이용되는 폐단을 낳았다. 2008년 4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본인의 선거운동에 루이니 추기경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 이에 역사학자 알베르토 멜로니는 "과거나 지금이나 가톨릭 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당들은 저마다 교회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2)"며 현 상황을 개탄했다.

 주교들이 언론에 참여하며 나타난 또 다른 폐단으론 '양보할 수 없는' 기독교적 가치관이, 낙태, 인공수정, 안락사와 같은 윤리적 문제로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멜로니는 "선별된 가치관 투쟁은 교회와 사회 사이의 갈등의 요소였다"고 설명하며, "이러한 선택은 참여 기독인의 '거세'를 가져왔고, 이제 그 누구도 이들이 외교정책이나 경제와 같은 다른 분야에 참여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며 많은 좌파 기독인들의 심경을 대변했다.

'현실참여 반성'도

  동유럽에서는 폴란드가 세속화와 다원주의라는 힘겨운 시련에 직면해 있다. 샤랑트네는 "현 위기는 매우 심각하다"고 분석하면서, "2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위기"라고 말했다. 샤랑트네는 "사제들의 환속이 증가하고 있으며, 성직이나 종교에 입문하려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며 "주교는 권위를 상실한 단순 관리자로 전락했고, 교회를 찾는 신도의 수도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며, 폴란드 국민은 현재 자유와 다원주의를 혹독하게 학습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분명 폴란드는 인구의 95%가 가톨릭 신도이고 40%가 정기적으로 교회를 찾는다. 하지만 폴란드 국민이 가족의 가치를 중시한다고 해서, 성에 대해 폐쇄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타 유럽사회와 유사한 의식태도를 보인다. 그 결과 가톨릭 공식교리에 반대하여 낙태에 찬성하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54%에 이르며, 동거에 찬성하는 사람도 60%에 이른다. 또한 교회의 교조주의적 권위와 거리를 두는 젊은 층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며, 25세 이하 젊은이 중 52%가 "신이 아닌 자신을 믿는다"는 설문 답변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폴란드 가톨릭 교단은 이 같은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사실상 교단의 대응은 미숙하기 그지없다. 사회의 변화에 전혀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폴란드 교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폴란드 가톨릭이 공산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상징되던 시대와 동일하게, 자신들이 사회를 대변한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1989년 이미 공산정권이 붕괴된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허구에 불과하다. 2003년 유럽 연합 가입 찬반투표를 둘러싼 내분, 마리야 라디오의 반유대주의적·국수주의적 독설 방송, 소위 '개방적'이라 불리는 가톨릭계 지식인들의 비평 등으로 인해 이미 사회를 대변한다는 교단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세속의 정치 대립 노선은 고스란히 가톨릭 교회 내부로 전이되었다.

   폴란드 교단의 최근 전례 없는 위기에는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도 한 몫을 했다. 사회학자 파트릭 미셸은 "교황은 폴란드에 일종의 예외적인 신화적 위상을 부여하며 폴란드 가톨릭의 실질적 지도자 역할을 해 왔다"고 설명하며, "그의 죽음은 폴란드를 평범한 국가로 회귀시켰고, 이는 미처 준비되지 않은 회귀임이 자명해 보인다 3)"고 덧붙였다. 다음으로 공산정권에 대한 항거라는 미명 아래 잠재되어 있던 내부 갈등이 가시화되면서 가톨릭 교회가 변질된 것도 위기를 낳은 또 하나의 원인이다. 또한 정치 변화와 다원주의 사회의 도래는 새로운 도전 과제에 대응하지 못하는 무능한 주교단의 와해와 실권을 가져왔다.

 유럽 탈기독교화의 현 단계를 분석한 예수회 교도 앙리 마들렝은 "주로 관습의 차원에서 '은밀히 진행되는' 세속화 단계가 지나고 나면, 사회 전반에 걸친 종교분리의 단계가 도래하는데, 이 단계가 되면 모든 공공분야에 대한 종교 개입이 금지될 것 4)"이라고 설명했다.

   이 문제는 앞으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를 비롯한 가톨릭 전통이 뿌리 깊은 국가에서 더욱 심각한 도전과제로 다가올 것이다. 자유주의 사회의 종교 소외 현상에 직면하여 교황은 냉철한 현실감각과 동시에 강인한 의지를 견지하고 있다. 신학자이기도 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재위 초기 유럽 가톨릭의 위기는 매우 심각하고 지속적인 것으로 보인다"며 겸허한 태도로 현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그가 현대의 상대주의나 세속주의라는 두 난제 앞에 호락호락 고개를 숙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주교들이 벌이는 전면전을 기꺼이 지지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번역 : 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1) 빈센트 엔리케 이 타란콘(1907-1994)은 스페인 개혁파 주교의 구심점 역할을 한 인물이다. 스페인 내전 종식 후 승리에 도취된 가톨릭에 경종을 울리고, 군벌세력을 공개 배판하면서 독재정권시절 유명세를 얻었다. 프랑코 독재정권 붕괴 후, 조국의 민주화에 공헌했으며, 스페인 가톨릭 교계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방정신을 지지했다.
2) AFP 통신. 2008년 4월 13일자.
3) 앙토네라 카펠 포가샹, 파트릭 미셸, 엔조 파스. 유럽의 종교와 정체성. 다원주의의 시련. 2008년 파리정치학교 대학출판사.
4) 앙리 마들렝. 유럽 재건. 신과 구. 2007년 파리. 로셰르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