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기계’로 전락한 좌파 정치인들

기득권 유지에만 골몰하며 정권창출엔 나몰라라
노동자 없는 노동당·녹색 없는 녹색당 고립 자초

2009-11-05     레미 르페브르 | 정치학자

프랑스의 국가권력에서 배제된 지 오래인 좌파 정당들은 자치단체와 그곳 당선자에 의존하며 거기에서 기대되는 일자리를 확보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따라서 사회당과 공산당 및 녹색당은 ‘선거기계’로 전락해버렸다. 하기야 선거기계로의 변모가 정치와 관련된 수천 개의 일자리가 보장되는 군·도·광역도 단위의 차원에서는 상대적으로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좌파가 지역 당선자들의 우상화를 견제하던 시대는 먼 옛날인 듯하다. 일자리 투쟁이 계급투쟁을 대신하며, 좌파 정당들은 전통적으로 좌파를 지지하던 사회조직들(노동자·피고용인·교사 등)의 요구까지 외면한다. 사회적 불안정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으로 환경이 달라지고, 경제위기로 진보 계열의 단결에 균열이 생기기는 했지만, 현재 논란의 중심은 비례대표 명단의 작성을 위한 지도층의 다툼과 노골적인 계산이다.


유럽의회 선거가 끝나자 전통적 좌파 정당들은 경제·사회 위기에서 눈을 돌리고 2010년에 있을 광역지방선거 준비에 벌써부터 뛰어들어 후보자 명단 작성이란 골치 아픈 문제에 골몰하고 있다. 비례대표제 방식이 도입되면서 정당들이 간부들(선거에 패한 옛 동료, 지역 기반 없이 정치권에 뛰어든 정치 지망자, 당선자의 측근이나 협조자, 대도시의 정무 부시장, 현역 간부 등)에게 그동안의 노고에 보답할 좋은 기회를 맞았기 때문이다. <<원문 보기>>

경쟁관계에서도 연합전선을 형성하던 사회주의자·환경론자·공산주의자에게는 이번 전쟁에서 얻을 것도 많지만 잃을 것도 많다. 사회당은 2004년의 압도적인 승리 이후로 유지해온 거의 전 레지옹(광역도·22개 레지옹에서 20곳)의 승리를 이어가고 싶어한다. 사회당의 제1서기장인 마르틴 오브리(Martine Aubry)가 퇴임을 앞둔 지구당 위원장들에게 연대전략의 방향을 정하고, 후보자 명단을 작성하는 자율권을 부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거 승리를 위한 실리주의를 택했다는 뜻이다.

녹색당은 170명의 광역의원에 기반을 둔 지역 정당으로 전락했지만,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거둔 성공을 발판 삼아 다음 의회 선거에서는 사회당과 새로운 역학관계를 맺고 싶어한다.(1) 한편 프랑스 공산당(PCF)은 좌파 전선을 현재처럼 고수하는 방향과,(2) 과거로 돌아가 사회당과 연대하는 방향을 두고 여전히 고심하고 있다. 사회당과의 연대가 덜 위험하지만, 현실적인 이익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정당의 이익이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하기야 좌파 정당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인 사회조직의 이익과 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쟁에 더 몰두해왔다.

지역 차원의 승리에 만족하는 좌파

2002년 이후로 좌파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좌파는 전국적인 단위에서 세력이 크게 약화되고 국가권력에서 밀려났으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해 구조적인 시각까지 상실했지만, 지역적 차원에서 지금처럼 성공한 때가 없었다. 사회당과 녹색당은 지방의원 수를 크게 늘렸고, 지방분권화 흐름과 맞물려 지방의원의 권력도 크게 강화됐다. 공산당도 대통령 선거에서 참패를 면하지 못했지만 공산당 출신 시장들 덕분에 지방의회에서 그런대로 체면을 유지하고, 지방의원들 덕분에 명맥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현재 ‘중간선거의 논리’는 집권당인 우파 정부에 불리하다. 또 지역적 차원에서라도 권력 분할의 균형을 맞추려면 좌파 정당들이 상황적 이점을 누릴 수 있어,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수천 명에게 밥벌이를 제공해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서도 현실 논리가 이데올로기적 전략보다 중요한 셈이다.

1999년 이후 지역 통합이 진행되면서 지방의원의 수당이 크게 늘었고, 그로 인해 정치를 직업으로 삼아 먹고사는 사람들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3) 수당과 경력이라는 민감한 문제는 감춰진 채 공개되지 않지만,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정치적 견해와 전략의 결정 등 모든 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사회당이 지방자치단체의 개혁에서 태도를 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위 도와 광역도에 대한 간부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 좌파는 선출직의 상당수가 지역기관 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프랑스의 제도적 특성에 타협하는 방향으로 구조화돼가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방자치단체의 개혁을 통해 선출직 시장(市場)을 크게 줄일 계획이다. 그 계획에 따라 ‘광역의원’(conseiller territorial)을 두면, 광역도의원과 기초단체의원의 수가 많게는 6천 자리, 적어도 3천 자리까지 줄어들게 된다.

사회당의 위기라는 말이 조금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은 지는 여러 해가 됐다. 사회당이 끊임없이 불화를 일으키며 리더십의 문제에 봉착하고, 당원들의 이탈이 눈에 띄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당의 위기는 상대적인 문제일 뿐이다. 많은 사회주의자가 자신들의 아성에 틀어박혀 모험을 하지 않아 지역 단위에서는 성장을 거듭했지만 중앙당은 좀비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제로 사회당이 지방 단위에서 지금처럼 약진한 때는 없었다. 도의회에서 사회당원이 의장인 곳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94년에는 23곳, 1998년에는 35곳, 2001년에는 41곳, 2004년에 51곳이었다. 2004년의 승리로 사회당은 694명의 도의원과 640명의 광역도의원을 당선시켰다.

게다가 사회당원이 자치단체장인 곳도 2005년 현재 2913곳에 이르고, 기초단체의 선거에서도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어 제도적인 기관의 장악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었다. 또한 사회당은 역사상 처음으로 상원에서도 다수당의 위치에 올라설 기세다.

새로운 피의 수혈에 인색

이처럼 사회당은 지방 단위에 새로운 자리를 정복해가고 있지만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데는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 핵심 당원들이 점점 노쇠화돼가는 실정이다. 1981년 이후로 사회당에 입당한 사람들이 당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제한적인 듯하다. 1970년대 말에 당선된 젊은 자치단체장들과 도의원들, 또 1981년에 불어닥친 장미꽃 물결에 힘입어 젊은 나이에 당선된 의원들 중 대다수가 아직도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1978∼1981년에 당선된 의원 중 3분의 1이 당시 40살 이하였다. 이런 비율이 점점 떨어져 1997년에 9.9%였고, 2002년에는 4.2%에 불과했다. 의원들의 평균 연령은 2006년 현재 54살로 1971년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이런 이유에서 사회당 지도부 내에서도 “정권은 우파에 맡기자. 사회민주주의에 호의적이지 않은 경제 환경에서도 우리가 선택할 방향은 많다. 사회당이 살길은 지역에서 기반을 잡는 것이다”라는 ‘몰레티슴’(Molletisme·제4공화국 시절에 활동한 사회주의자 기 몰레를 빗댄 개념으로 ‘이중성’을 가리킨다-역자)이 되살아나고 있다.(4) 현역 의원들은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이 승리하면 ‘중간선거의 논리’에 따라 지역적 기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조직 전체의 전국화를 꾀하는 데 단결하지 않고 자신의 영지를 강화하는 데만 열중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지방 권력이 무슨 소용인가? ‘지역 사회주의’라는 그럴듯한 말은 막연하기도 하지만, 정치 세력화하는 데도 유리하지 않은 듯하다. 지방분권이란 추세와 맞물려 현실적인 행동의 여지가 있고, 국가의 불간섭에도 불구하고 지방 단위가 1970년대의 경우처럼 사회적 변혁의 지렛대 역할을 떠맡을 가능성은 이제 없는 듯하다. 정치를 경영이란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이런 차원의 정치가 옹호되는 것이다.

2007년 사회당이 발표한 지방정책은 막역한 원칙의 선언에 불과해서, 후보자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또 2004년의 선거에서 우파에 승리한 지역들은 사회주의의 ‘진열창’ 구실을 해주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예컨대 ‘고용 증대’라는 구호는 어떻게 됐는가? 당선자들은 탈정치를 선언하며 지역 기반을 다지고, 그들의 행동에서 사회당이란 냄새를 없애는 데 주력할 뿐이다. 요컨대 지방정부의 탈정치화는 중앙당의 정책 방향과 완전히 거꾸로 가는 셈이다.

비슷하다는 이유로 하나의 울타리 아래에 같이 있기는 쉽다. 이런 정치적 편의주의는 정치색을 띠지 않은 민중을 투표장에서 밀어냈고, 그 결과는 2007년 기초단체 지방선거에서 대대적인 기권으로 나타났다. 이 선거에서 전국적인 정책은 지역적인 연대 구성에서 별다른 역할을 못했다. 사회당은 지역 후보자에게 선거 전략과 연대 범위의 결정에서 거의 전적인 자율권을 부여했다. 따라서 중도우파인 ‘민주운동’(Movement democrate)과의 연대는 처음부터 지방적 차원에서 결정될 수 있었다(‘민주운동’은 중도우파 정치인 프랑수아 바이루가 이끌고 있다-역자). 내년에 있을 광역지방선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예측된다.

승리 위해서라면 적과도 연대 가능

총 당원 수에서 차지하는 당선자 비율은 몇 달 전부터 눈에 띄게 나타난 당원의 현격한 감소로 인해 더욱 높아졌다. 당선자는 지구당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면서, 앙리 베베르의 지적대로 ‘맬서스주의’와 ‘지역적 후견주의’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5) 당선자는 조직의 전투적인 활동은 등한시하고 개인적인 인맥을 구축하는 데 열심이고, 새로 입당한 당원이 기존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에서 월급을 받거나 지방의회에서 혜택을 받은 이해관계인처럼 신원이 확실한 사람들을 당원으로 충원한다. 게다가 당대회는 주로 광역지역 당선자들과 현직 연합체의 참여로 이루어진다. 마르틴 오브리는 2008년 11월 노르 지역의 대대적인 연대에 힘입어 랭스에 터전을 마련했고, 세골렌 루아얄은 부슈뒤론과 헤로 지역의 연대에 세력 기반을 두고 있다. 탈이데올로기화된 현재의 연대는 내부적으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취약한 연대에 불과하며, 지역 유지들의 결집일 뿐이다. 따라서 현재의 연대는 역학관계를 지속적으로 끌어가기 어렵다.

사회당의 직업화는 조직의 전투적인 활동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직업인과 전투적 당원의 이해관계가 자주 충돌하기 때문이다. 지방공무원의 역할 변화, 지방자치단체에 속한 기구의 증가, 당에 소속된 기구 등 때문에 당선자의 비위에 맞출 수밖에 없다. 직업 정치꾼이 차지하는 자리가 지난 20년 전부터 급속히 늘어나면서 당 내부의 역학관계와 윤리의식까지 크게 변질됐다. 선거의 이해관계가 모든 차원에서 급선무가 됐고, 그 결과로 선거를 위한 동원 이외에 일상의 전투적인 투쟁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사회당이 당선자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노동계와 민중세력, 교사와 지식인, 노동조합 등과의 관계가 예전만 못하다. 자기만의 문제에 점점 골몰하면서 사회당은 사회적 무중력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제 사회당 지도부는 이런 현실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다. 지난 유럽의회 선거에서 참패를 당한 후에 사회당 내에서 가장 비판적인 목소리조차 ‘지역 유지들의 정당’을 규탄했을 뿐, 지도부의 행태는 문제 삼지 않았다. 당선자들의 영향력으로 당이 분열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분당도 현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의 하나로 여겨진다. 직업 정치꾼의 이해관계가 지나치게 개입하기 때문이다. 당선자들은 그야말로 선거 조직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선거 조직이 그들의 밥줄이긴 하지만, 지역 단위에서만 경쟁력을 발휘할 뿐이다. 장뤼크 멜랑송이 좌파당을 창설하며 사회당에서 뛰쳐나올 때도 그의 측근들만이 뒤따라 탈당했다.

녹색당은 오래전부터 사회당을 반면교사로 삼았지만 똑같이 ‘직업 정치꾼’들의 양성소로 변해가고 있다. 그들이 ‘다른 정치’를 표방하면서 이런 흐름을 뒤바꾸려 했던 때는 이제 아득한 옛날이 된 듯하다. 녹색당은 전통적인 실용주의와 정치권력의 위임 원리(경력 관리, 권력의 집중, 개인의 우상화, 리더십 등)를 불신하며 겸직 금지, 순환직제 등 새로운 형태의 위임 방법을 과감하게 시도했다. 이런 점에서 노동자 정당들이 19세기 말에 시도했던 방법과 엇비슷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선거의 ‘현실주의’에 매몰되며 녹색당도 ‘정상적’인 길로 돌아섰고, 대의 민주주의의 규칙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6) 순환직제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당규에서는 여전히 겸직을 금지하고 있지만 겸직 금지도 크게 완화돼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7) 노엘 마메르는 베글의 시장 겸 하원의원이며, 도니미크 브아네는 하나의 직책만 오랫동안 보유했지만, 기초단체 지방선거 후에 몽트뢰유의 시장 겸 상원의원이 됐다.

체제순응주의의 만연

이런 변화는 ‘유명하고 인정받고 경쟁력 있는 인물을 앞세워야 한다’는 전통적인 논리로 정당화된다. 요컨대 정치 게임에서 힘을 축적하려면 ‘정치적 자산’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노엘 마메르는 “우리도 당선자를 내야만 지지자들에게 체면을 세울 수 있다”(<르몽드> 2003년 6월 14일자)라고 말했다. 도미니크 브아네는 상원직을 포기하면 당에서 입지를 상실할 수 있지만, 겸직함으로써 자신의 지역구를 발전시키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고 역설했다.

녹색당은 사회당이나 공산당과 달리 지역적 기반을 완전히 갖추지 못해, 좌파끼리 경쟁하는 도의원과 하원의원 선거에서 적용되는 단기명 투표에서는 약세를 면하지 못한다. 그러나 실리주의를 택해 상당한 이득을 거두고 있다. 실제로 녹색당은 점점 많은 당선자를 배출하며 직업화돼간다. 2008년의 선거에서 녹색당은 41명의 자치단체장(여자 3명, 남자 38명)을 당선시켰고, 그중에서 18명이 처음 당선됐다(몽트뢰유, 베글, 파리 제2구, 메스를 제외하면 모두 인구가 1만 명 이하인 작은 자치단체이다).

지난 도의원 선거에서 녹색당은 11명(여자 3명, 남자 8명)을 당선시켰으며, 그중에서 4명이 현역이었다. 또한 2004년 광역도 지방선거에서는 168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상원의원은 5명, 하원의원은 4명이다. 여기에 당의 유급 직원을 더하고 당원 수를 고려하면 그 정도의 수치도 대단한 것이다.

파리에서 녹색당으로 출마해 하원의원에 당선됐지만 좌파당으로 당적을 옮긴 마르틴 비야르는 정치에서 직업인의 꾸준한 증가 현상과, 그런 현상이 당에 미치는 영향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당원 5천 명 중에 정치활동으로 봉급을 받는 유급직과 당선자의 수는 2천 명 정도로 추정된다.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당선자는 관리라는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특히 단체장의 경우에는 일에 파묻혀, 당의 세력을 확장시키는 데 지역적으로 소홀하게 된다. 녹색당원들은 당에는 당선자들과 당선자의 유급 직원들,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자조 섞인 말을 입에 달고 산다.(8) 당원들에게는 기초단체 지방선거가 가장 중요하다. 그들에게 가장 큰 동기를 부여하는 기회다. 1차 투표부터 사회당과 공동 명부를 작성하는 덕분에 상당한 지역을 확보할 수 있다. 정치가 점점 직업적 관점에서 해석된다. 대부분 30대인 열혈 운동가들은 선출직에 당선되고 싶어 당에 입당한다. 그들에게 정치를 한다는 것은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이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14명이 당선되면서 녹색당의 얼굴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 초년병들이 아니다. 다니엘 콘 벤디트는 독일에서는 임기 제한이라는 규정에 저촉돼 프랑스에서 출마했다. 제라르 오네스타는 유럽의회 의원직을 포기했지만 2010년 광역도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 명단의 윗자리를 차지할 예정이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29살의 나이로 당선된 카리마 델리는 상원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다. 엘렌 플로트르는 벌써 3선 의원이며, 미셸 리바지는 이번에 당선되기 전까지 드롬의 부시장과 도의회 부의장을 지냈다.

프랑스 공산당이 당면한 문제는 약간 다르다. 공산당은 개인의 우상화를 피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당선자를 견제하는 정책을 유지해왔지만 요즘 들어 당선자들의 힘이 눈에 띄게 강해졌다(겸직은 1970년대부터 전반적으로 금지됐다). 또한 양대 세계전쟁 사이에 그랬던 것처럼 지역 기반 확보에 심혈을 기울인다. 따라서 당선자들에게 의지하고 그들에게 자율권을 대폭 보장하면서, 쇠락의 속도를 늦추는 전략을 취한다. 이런 생존 전략 때문에 공산당은 극좌와 이데올로기적 유사성으로 연대하지만, 사회당과는 지역 확보 전략에 따라 연대하기 때문에 그런 밀월 기간이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될지 불확실하다.

공산주의 역사학자 로제 마르텔리는 이런 흐름의 암초들을 이렇게 분석한다.

“공산당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있다. 조직을 구하려면 당선자라는 자산을 유지해야 하고, 지역 기반을 지키려면 사회당과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역동성을 회복하는 전략을 택하지 않고 쇠퇴를 막아보겠다는 생각은 소극적인 태도이다. 선거와 지역적 이해관계가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둘이 이제는 공산당의 생존 조건으로까지 여겨진다. 공산당도 당선자를 내는 데 주력하고, 당선자들의 영향력도 크게 확대됐다. 그러나 지도부 내에서 당선자들의 입김이 커지지는 않았다. 수직적이고 계급적인 구조가 공산당의 뿌리 깊은 문화이기 때문이다. 당 간부들도 당선자가 되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1998년의 광역도 지방선거가 전환점이었다. 비례대표 명단에 중앙당 서기들을 조직적으로 끼워넣으라는 명령이 있었다. 그리고 중앙당 서기들은 자치정부에서 책임 있는 자리를 맡았다. 과거와의 단절이었다. 선출직에 일정한 봉급을 정기적으로 보장하는 방법이었다. 그때까지 연방서기들은 당에 봉사한다는 명목에서 자치정부의 관리직을 맡지 않았다. 당시에는 ‘내가 당선되지 않으면 나의 상근직은 꿈도 꿀 수 없지. 중앙당도 와해되거나 붕괴될 거야’라는 말이 흔히 나돌았다.”

좌파 정당들, 사회조직들과 멀어져

노동자 출신인 당선자들은 오래전부터 정치로 먹고살아, 직업인이란 삶으로 돌아가는 걸 두려워한다. 프랑스 공산당이 당선자들의 기여금에 크게 의존하는 것은 사실이다. 2007년에는 약 1만 명의 당선자가 당 운영비의 절반 이상을 감당했다. 공산당은 이런 현상이 가장 뚜렷한 정당이다.(9)

전반적으로 지방 조직은 좌파 정당들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문제를 탈정치화시킨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했듯이, 정치적 공간은 자치적인 장이어서, 그 자체의 문제와 규칙에 점점 매몰돼 새로운 피의 수혈을 차단한다.(10) 정치에 오랫동안 몸담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 구조에 물들어버린다. 1958년에는 하원의원 셋 중 하나가 40살 미만이었다. 이런 비율이 2002년에는 13명 중 하나로 떨어졌다. 2008년에는 55살 이상이 하원에서 처음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기득권이라는 규칙이 거의 모든 정당에 예외 없이 적용됐다는 뜻이다.

좌파 정당들은 이런 변화를 극복하기는커녕 더욱 심화시켰다. 정치의 직업화로 인해 좌파 정당들이 당연히 지켜줘야 할 사회조직들과 오히려 사회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멀어지고 말았다. 정치에 입문한다는 것은 새로운 활동을 위해 모든 시간을 바친다는 뜻이다. 고유한 규칙을 지닌 새로운 사회에 전적으로 헌신하려면 현재의 환경을 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꿈을 펼쳐보겠다는 각오는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된다. 당선자가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현실적인 문제로 정치와 담을 쌓는 핑곗거리가 된다.

따라서 당선자의 사회적 대표성이 약화되고, 민중 세력의 배제로 인해 정치의 직업화가 가속화된다. 1980년대 사회당원으로 하원의원이 됐던 교사들은 사회당이 한때 기반으로 삼은 조직들과 거의 단절되고 말았다. 당원의 젖줄이던 노동조합이나 연대조직도 말라버렸다. 지난 국회에서 노동자 출신인 하원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 변화도 좌파의 재구성에 장애물이다. 애당심은 전직(前職)의 이익과 상관관계를 갖는다. 선거에서 개인의 선택은 모든 것에 우선하며, 정당의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글·레미 르페브르 Rémi Lefevre
릴2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프레데리크 사비키와 함께 <사회주의자의 사회>(크로캉 출판사·2006)을 썼다.

번역·강주헌 2nabbi@ilemonde.com
불문학 박사 출신의 문화비평가 겸 번역 전문가. <선물> <해리포터 철학교실> 등 100여 권의 번역서를 펴냈다. 


<각주>  

(1) 2009년 6월, 녹색당은 유효투표의 16.3%를 득표했고, 사회당은 16.5%에 불과했다.

(2)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공산당, 좌파당, 반자본주의 새 정당에서 분당한 통일좌파당, 공화주의와 사회주의 연대, 대안적 진보를 위한 연합회 등 지역 정치단체들이 좌파 전선을 형성했다.

(3) 지방의원들의 수당은 최근 수년 전부터 크게 증가했다. 감사원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난하듯이, 2000~2001년에는 50.5% 이상, 2002년에는 37.1% 이상, 2003년에는 13.4% 이상 증액됐다.

(4) 좌파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인 기 몰레(1905~75)는 1946∼49년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SFIO)의 총서기를 지냈고, 레옹 블룸 정부(1946~47)와 모리스 플레벤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다. 앙리 쾨이유 내각에서는 내각회의 부의장을 지냈다. 내각회의 의장(1956~57)인 때는 세 번째 주를 유급휴일로 정했다.

(5) 상원의원인 앙리 베베르가 사용한 용어다.

(6) 이 문제에 대해서는 Willy Pelletier, ‘Positions sociales et proces d‘institutionnalisation des Verts’, <콩트르탕>(Contretemps), 2002년 4월을 참조할 것.

(7) 겸직은 정치생명을 보장해주는 장치이며 선거의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도구다. 겸직이 보장될 때 지역 기반을 강화해 선거에 따른 신분 보장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쟁을 무력화하거나, 하나의 직책을 상실한 경우에도 다른 직책에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8) 똑같은 말이 사회당 내에서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9) 당 운영비는 3200만 유로로 1700만 유로를 당선자들이 부담했다. 당비는 300만 유로, 공채 370만 유로. 2007년을 기준으로 당선자들의 부담금은 대중연합운동(UMP)의 경우엔 180만 유로, 사회당은 1200만 유로였다.

(10) Pierre Bourdieu, Propos sur le champ politique, 리옹 대학출판부, 2000년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