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인도네시아, 금융부실로 외환위기 우려

2015-12-01     전기용

지난 9월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환율이 달러당 1만4천을 돌파했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중국 증시 폭락 사태,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 등 급격한 대외 여건의 변화와 경상수지 적자, 인플레이션 증가 등 대내 경제 요인에 의해 루피아화 약세는 지속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루피아화 가치 하락에 제동을 걸기 위해 2015년 7월 국내 거래 시 달러 등 외국 화폐 사용을 금지했다. 달러를 포함한 여타 외화에 대한 루피아화 의존도를 낮추고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물가 상승과 소비 위축 등 경제가 뚜렷하게 둔화되는 시점에서, 이는 단기적 처방에 불과하다는 것이 인도네시아 경제를 우려하는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원유, 천연가스 등 자원 수출 의존 큰 경제구조

최근 부각된 불안정한 성장국면은 인도네시아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관련이 깊다. 즉 자원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매장량 기준으로 석유가 세계 14위, 금 5위, 주석 2위에 이르는 자원부국이다. 가스는 생산량 기준 10위에 달한다. 자원 수출은 인도네시아 총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2013년 수출은 품목별로 농산물 3%, 광물 31%, 석유 및 가스 14%, 고무 및 목재 7%다. 자원 수출은 52%인 반면 제조업 관련 수출은 44%에 불과하다. 이 수출로 벌어들인 금액은 정부 지출, 산업화, 채무 상환 등의 재원으로 활용된다.
원유 가격이 급등할 때는 성장동력이 되지만, 현재와 같이 유가가 급락을 거듭할 경우 오히려 성장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석유·천연가스 부분의 과대 성장은 그간 상대적으로 비석유 부문의 위축을 초래했다. 게다가 유가 급락은 에너지 자원 수출액의 감소를 가져오고 경상수지 적자를 야기한다. 자원에 의한 성장이 경제의 악순환 고리 형성의 시발점이 되는 형국이다. 문제는 또 있다. 수출액이 감소하면 경상수지 적자가 심해지고 자국 내 인프라 등 투자를 위해서는 해외자본 의존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대외 환경이 급격히 악화될 경우 달러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달러 유출은 국가의 투자 감소 효과로 나타나 민간 부문의 위축을 초래한다. 달러당 루피아화의 가치가 급락하고 소비도 위축되는 상황에서는 과거 아시아 금융위기와 같은 위험이 다시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의 적극적인 외환시장 개입은 이러한 염려를 방증한다. 2009년부터 국제 원자재 시세가 폭등하며 인도네시아의 수출은 급증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는 값싼 원유를 팔아 상대적으로 고가인 휘발유를 사와야 하는 취약한 산업구조의 개선을 미뤘다.

1997년 IMF 통제 체제 경험, 그 원인은 취약한 재정 건전성

인도네시아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겪었다. 1000억 달러의 외채를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7년 7월 태국 바트화의 폭락으로 촉발된 인도네시아 금융위기는 부실한 금융과 취약한 실물 부문 등 내부 환경이 원인이 됐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서는 헤지 펀드 등 투기성 단기자본을 포함한 자본의 유출입이 빈번했는데, 낙후된 금융시장이 국제 금융체제로 편입되면서 자본의 과잉 유동성으로 신용 팽창이 발생한 것이다. 유동성 증가에 대한 환호는 결국 인플레이션이 되어 인도네시아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실질 환율의 절상으로 수출은 위축됐고 경상수지가 악화됐다. 다시 자본을 투입해 이를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재정 건전성도 취약해졌다. 외부적 요인은 중국의 수출시장 잠식이다. 중국은 1994년 위안화 평가절하로 수출 경쟁력을 강화했고, 수출시장에서 저임금을 무기로 제품 생산의 비교 우위를 확보해 나갔다. 이 결과 상대적으로 인도네시아의 성장 잠재력이 의문시됐고 대외신인도도 하락했다. 단기자본이 외환보유액을 초과해 유출되기 시작하면서 결국 경제위기가 촉발됐던 것이다.

산업구조 개편은 실패

인도네시아는 한편으로 축복받은 국가였다. 2009년부터 국제 원자재 시세가 폭등했고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의 수출은 급증했다. 2006~2012년 수출액은 982억 달러에서 1,873억 달러로 1.9배가 됐다. 천연자원 개발을 목적으로 한 해외자금도 급격히 유입됐다. 제조업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는 값싼 원유를 팔아 상대적으로 고가인 휘발유를 사와야 하는 취약한 산업구조의 개선을 미뤘다. 산업화 과정에서 자바와 외곽도서 간 심각한 개발 격차로 전통 부문과 산업 부문의 이중 구조가 형성된 것 또한 자원 수출을 통한 성장의 불가피한 결과다. 하지만 정부의 이익배분 정책 실패가 무엇보다 치명적이었다. 정부의 감독 능력 부족으로 자원 분배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자원 수출에 따른 이익이 제조업 기반 조성과 인프라 투자가 아닌 정부, 국영기업, 외국기업 등으로 돌아갔다. 골드먼삭스(Goldman Sachs)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전력, 물류 수송량 증가에 따른 도로와 철도 건설 등 인프라 수요가 2013~2020년 약 2,370억 달러로 추산되지만 정부의 인프라 투자는 제자리걸음이다.‘자원부국 딜레마’는 자원이 풍부한 국가가 지나치게 자원 수출에 의존하게 되면서 제조업 발전을 미루어 중간재와 소비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다. 러시아·브라질 등이 대표적이며 인도네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2억5천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소비를 시작하자 수입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14년 수입 구조를 살펴보면 기계 및 금속, 자동차, 전자, 기초화학, 식음료, 사료, 섬유 및 섬유제품, 기타 화학제품, 펄프 및 종이 등 9개 산업의 수입량이 가장 많다. 자원을 수출하고 다량의 상품을 수입하면서 경상수지 적자에 대한 부담은 상시화됐다. 경상수지 적자가 인도네시아의 고질병이 된 것이다. 인도네시아에 반드시 필요한 외환보유액은 1,526억 달러에 달하지만 최근 외환보유액은 1,021억 달러에 불과하다. 외환위기가 시작되면 1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다.

 

 

버블 붕괴 공포의 인도네시아 경제와 외환위기 가능성

근본적인 문제는 금융 부문의 부실이 심각해 외부 충격에 쉽게 영향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2009년 이후 원자재 가격 상승의 덕을 보기는 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다른 신흥국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 경제에도 거품이 생기기 시작했다. 원자재 수출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풍부한 자금 유동성이 인도네시아 국채 가격을 비정상적으로 끌어 올렸다. 이 결과 신용대출과 부동산 가치는 폭등했다. 2013년 외국인의 인도네시아 국채 보유율은 2008년 대비 34%로 20%P 늘었으며 같은 기간 주식시장은 5배로 뛰었다. 같은 해 10년 만기 인도네시아 국채 수익률은 금융위기 전 10~15%에서 5%로 떨어졌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루피아화 가치가 급등하자 기준금리를 12.75%에서 5.75%로 인하했으며, 금리가 하락하자 신용대출과 소비는 급증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소비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60%에 달한다. 무디스에 의하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신용대출 성장률은 22%를 기록했다. 신용대출은 소비를 부채질했으며, 신규 자동차·오토바이 등록인 수가 2004년 3,050만 명에서 2012년 9,440만 명으로 세 배가 늘었다. 부동산 구매도 급증해 자카르타 등 주요 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부동산에 대한 여신도 크게 증가했다. 2012년 6월~2013년 5월에는 아파트 구입 관련 대출이 두 배로 늘어 11조4천2백억 루피아에 이르렀다. 문제는 인도네시아 경제 거품의 주역인 중국 경제가 악화될 때 나타난다.

경상수지 적자와 외화보유량 부족

국제적 투기자본의 영향을 크게 받는 인도네시아 외환시장에서 루피아화 가치 하락을 막으려면 첫째, 경상수지 흑자가 높아야 하고 둘째, 외환보유액이 충분해야 한다. 그러나 경상수지는 2011년 이후 적자가 지속되고 있으며 실물 부분도 취약해졌다. 수출증가율은 2008년 18%에서 2014년 -3%대로 크게 둔화됐다. 중국 경기 둔화와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총수출에서 원자재 수출의 비중이 2014년 28.7%로 하락했고 대중국 수출 비중도 10%로 감소했다. 수출이 둔화되면서 경제성장률도 떨어져 2015년 1분기 경제성장률은 4.71%에 그쳤다. 201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물가상승률은 2013년 연료 가격 인상으로 8%대로 상승한 후 2014년 중반 4%대로 하락했으나 최근 식료품 가격 상승 등으로 7% 수준을 기록했다. 정부 지출과 민간 소비 성장세도 둔화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10년 만기 국채금리도 2015년 1월 7% 수준에서 같은 해 9월 8.8%로 급등했다. 국가 부도 위험 정도를 나타내는 CDS프리미엄은 2014년 11월 135bp에서 2015년 9월 245bp까지 상승했다. 분기 수입액, 단기외채,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의 3분의 1 등 반드시 필요한 외환보유액은 1,526억 달러에 달하지만 최근 외환보유액은 1,021억 달러에 불과하다. 외환위기가 시작되면 1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경제위기 대책, 실효성은 의문

인도네시아 정부는 최근 경제위기 타개를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 완화, 인프라 개발 가속화, 부동산 투자 촉진 등에 초점을 맞춘 제1단계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고 2015년 10월까지 시행규정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법 규정 완화, 관료주의로 인한 비효율 개선, 법 질서 확립 등의 방안을 내놨다. 서민 주택 개발 지원, 취로사업 등 저소득층 소득 증대를 통해 내수 소비를 부양하고 국가 전략 인프라 개발을 가속하기 위해 사업 시행에 장애가 되는 요소도 제거한다는 방침이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과 협력을 강화해 달러 대비 루피아화 가치 하락을 억제하는 방안으로 외국인의 달러예금 계좌 개설 규제도 완화할 계획이다. 달러 유입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제조업 체질 개선은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개선하는 것은 위기가 현실화될 때 이를 방어할 수 있는 방패막이며 동시에 성장의 발판이 된다. 이번 정부가 경제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세 번째 기회이자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글·전기용 kjeon@posri.re.kr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본지는 포스코경영연구원의 친디아 플러스(Chindia Plus)와 업무 제휴 하에 서로 유익한 기사를 교차 게재하기로 했습니다. 이 글은 친디아 플러스 11월호에 게재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