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시리아 공습… 무기력한 유럽과 미국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시리아 공습으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그는 여세를 몰아 군사작전이 끝나고 이어질 ‘정치적 프로세스’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미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간 4자회담을 개최했다. 이번에도 프랑스는 게임에 끼지 못했다.
“이란을 우리의 친구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우리의 적으로 규정할 때인가?”(1) 마이클 액스워디 영국 칼럼니스트는 2015년 1월 이런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통해 “이란이 페르시아만 연안국 간 안정을 유지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가 됐다는 점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라고 평했다. 2001년 9‧11테러부터 계속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던 ‘악의 축’이라는 수식어도 이제 옛말이다.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015년 3월 3일 미국 의회에서 비장하게 연설을 하고 테레즈 델펙(2)의 계보를 잇는 신보수주의자들이 프랑스 외무부에서 나름의 투쟁을 벌였으나, 인식의 변화를 막지는 못했다.
이란은 ‘악명 높은 괴물’에서 근동 지역 ‘반(反)지하디스트 운동의 축’으로 역할이 변화했다. 또한 노련하게 핵협상을 이끌어냈으며, 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조직(IS)을 무너뜨리려는 미국의 실질적인 연합군이 됐다. 이란만 예외가 아니다. 이런 인식의 전환은 확장되고 있다. 국내에서 테러위협이 높아지고 유럽연합(EU)의 정치적 균형을 흔드는 이민자물결이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국제문제 해석을 위해 차용되던 명제로는 더 이상 작금의 상황을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프랑스 언론이 분석 기사를 낼 수 없는 현 상황이 아마 가장 경악스러운 사례인 듯하다.
이슬람 종교지도자 물라가 이끄는 이란이 위험하다더니,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응징’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를 언급한다. 지하디스트 칼리파 국가 수립은 불가능하다더니, ‘터키식 민주주의 모델’로 EU 가입을 꿈꾼다.(3)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무너뜨려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더니, 페르시아만 연안에서 세계화된 중심국가와 상생의 파트너십이 시급하다고 한다. 프랑스와 독일이 굳건히 손을 잡았다더니, 사담 후세인의 생방송 처형 이후에 음산한 희생제가 펼쳐진다. 이런 정세를 살펴보며 확신에 차 거만하게 허풍을 부리던 모습은 사라지고,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며 사안에 우회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여차하면 “내 책임 아니다”고 발뺌을 하는 풍조가 자리 잡았다.
최악의 소식이 남았다. 무력개입권과 범대서양주의라는 운명 공동체,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과격한 표현에 의하면,(4) ‘국가적 이익만 앞세운 추잡한 짓’을 막기 위한 무장십자군은 꾸준히 언급되는 반면, 시리아 체제 붕괴, 사우디아라비아와 협력관계 강화, 러시아 견제, 범대서양자유무역협정 체결 등이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인식이 대중에게 확산되고 있음을 여론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9‧11테러 이후 구세주를 자처하며 펼친 개입적 대외정책에 대해, 냉소적인 평가가 드러난 이러한 사상의 전환은 사르코지-올랑드 시대의 프랑스 외교정책 책임자들을 걱정에 빠뜨릴 만하다. 지난 수십 년간 추진해온 불안정한 체제변화의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정당화할 수 없는 일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뿐이다. 실패의 책임을 적당히 떠넘기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세계 지도자들 중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만큼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따라서 근동지역 혼란의 책임을 떠넘기기에 적합한 인물이 또 있을까?
오바마의 유약함이 근동 지역의 혼란 부채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게 오바마는 유약한 인물이다. 페르시아만 연안의 수니파 국가들은 이제 이란이라는 ‘악마’의 카드를 꺼낸 오바마에 대한 혐오를 감추지 못하며 인종차별적으로 경멸의 시선까지 보내고 있다. 2008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로 오바마와 경합했던 존 맥케인은 이란이나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면서 오바마가 미국의 리더십을 “훼손했다”(5)고 주장한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도 이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IS조직이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2013년 8월 말 어느 어두운 토요일,(6) 프랑스가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공격하지 못하게 한 미국의 결단력 부족”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대외정책이 우유부단함의 연속이라고 일축할 수는 없다. 실패하거나 중간에 포기한 전략도 있지만, 그의 대외정책은 아무리 축소해석해도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 이스라엘 등 협력국의 대외정책보다 한결 나았다. 그는 “전쟁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워 민심을 통합하려고 애쓰는 대신, 외교 전반에 걸쳐 신중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는 세기말 군주처럼 군림하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이어 백악관에 들어가면서부터 그가 추구하던 바다.
레이건 시대의 보수주의를 좇는 반대파의 히스테리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2015년 7월 1일 쿠바와 국교정상화 합의를 맺고, 7월 14일 이란과 핵협상을 타결하고, 푸틴과 얽힌 개인적 원한은 묻어둔 채 우크라이나 사태를 관망하는 모습은 그의 대외정책이 상대적으로 계획적인 노선을 따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2011년 리비아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모험주의가 낳은 혼란, 네타냐후의 자폐증적인 호전성, 2012년 이래 유지된 시리아 문제에 대한 올랑드의 고집 등을 떠올리면 확연히 그 차이를 깨닫게 된다.
사실상 오바마에게 실망한 사람들은 도널드 럼스펠드, 토니 블레어, 콘돌리자 라이스(7)가 국제외교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몽유병자들뿐이다. 오바마는 합리적이고 소박한 노선을 추구하며 특히 근동 지역에서 항구적일 수 없는 체제변화를 강요하는 모험주의를 거부한다. 이는 2006~2011년 국방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의 이름을 딴 ‘게이츠 독트린’이라고 볼 수 있다. 리비아전 당시 게이츠는 “지금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국가건설 연습이 아니다”(8)라고 평가했다. 오바마가 의회에서 ‘뒤에서 리드하는 정치’로 비난받던 시점에 나온 이 간결한 논평으로 인해, 개입의 시대는 상징적으로 막을 내렸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일의 잔재를 수습한 후 노먼 포도레츠와 어빙 크리스톨의 신보수주의 지침서를 덮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으며 전략적 심사숙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키타이족을 위해 어떤 정부 형태가 좋을지에 대해 고민한 스파르타인은 없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달린 일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심했다. 우리는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목적을 달성할 수단에 대해서 생각했다”(9)고 적었다. 시리아에서 사람들은 많은 문제를 오바마 탓으로 돌린다. 시리아 분쟁의 이면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가장 냉소적인 터키 정부에게 보인 유약한 모습이 대표적인 그의 실책이다.
불행히도 프랑스는 이 점에 대해 오바마를 대놓고 비난할 입장이 못 된다. 화려한 언변으로 전략의 부재를 영원히 덮을 수는 없는 법, 시리아에서 일어난 비극을 계기로 발전한 프랑스의 스토리텔링이 날카로운 분석을 이기지 못한 점을 인정해야 한다. 지난 몇 달 간 프랑스는 주적인 시리아 정권을 강화시키는 일을 절대 할 수 없다면서 IS조직을 폭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런 태도로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프랑스는 자신의 논리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일까지 실행에 옮겨, 정체가 모호한 온건 반군에게 무기를 지원했지만 결국 이 무기는 지하디스트들의 무기고만 채워줬다(<르몽드>, 2014년 8월 21일자).
전략 없는 프랑스의 ‘전략의 진화’
상황이 더욱 악화되자 프랑스는 2015년 9월 27일 마침내 ‘다에쉬(IS조직의 아랍어)’를 폭격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 상황을 ‘전략의 진화’라고 평가했다. 통찰력이 부족한 평론가들이 어떠한 전략도 없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않을까 싶어 뻔뻔하게 돌려 말했다. 이런 ‘진화’를 빌미로 올랑드는 2015년 10월 4일 푸틴을 맞은 자리에서 “IS조직은 우리가 물리쳐야 할 적”이라고 그에게 ‘환기’시켰다.(10)
이 뻔뻔한 언사는 감탄스럽지만, 안타깝게도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나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촉발된 이후 점점 더 과격해지는 이슬람 분파가 세력을 확대하자, 고집스럽기로 유명한 푸틴은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 알카에다와 IS조직을 격퇴하도록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나중에 체제를 바꾸는 정치적 협상을 진행하자면서 두 단계로 시리아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러시아 정부의 복심이 무엇이든, 러시아에서 알아사드가 영원히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장관이 2015년 칼레드 코자나 하이탐 만나 같은 시리아 반군 특사를 만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카다피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게 러시아의 전략이다. 그 자체로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그래도 이 전략은 명확하고,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터키의 냉소적인 태도나 흥분한 사우디아라비아, 2013년과 2014년 말리와 중앙아프리카에서는 널리 환영받은 외교적이고 실용적인 결정을 했던 프랑스가 지금은 어떤 노선을 취할지 갈피를 못 잡는 상황이 더욱 혼잡스러워 보인다.
여기저기 훈계만 난무하고 비효율적인 덫에 발목을 잡힌 국제관계에서 점점 서방세계의 결정에 전적으로 기대지 않는 외교적 시도들이 속속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근본적인 변화이다. 오늘날 근동 지역에서 게임 체인저(11)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확실해진다. 분명 오바마는 아니다. 오바마는 동유럽의 우크라이나와 유프라테스강이 지나는 시리아 문제에 조치를 취하라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로선 진짜 우선순위인 ‘태평양 축’에 집중하는 만큼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유럽 내에서는 독일의 뒤에, 다른 곳에서는 미국의 뒤에 숨어 있으면서도 이미 온전치 못한 ‘독립성’이라는 환상을 유지하려고 이 두 나라를 비난하는 올랑드는 더욱 아니다. 지역 강국은 어떠한가? 이스라엘은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 성사와 팔레스타인 봉기 재발로 인해 마비됐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유가 하락과 예멘 내전 개입으로 발목이 잡혔고, 터키는 쿠르드노동당(PKK)과 다시 전쟁 중인데다가 쿠르드족을 통제하기 위해 IS조직을 오랫동안 이용하면서 이미 주변국의 신뢰를 잃었다.
이제 공은 러시아와 이란에게 넘어갔다. 한편 중국도 있다. 중국이 지금은 시리아 분쟁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언젠가 외교적 해결책을 제시할 기회를 잡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미 2013년 시리아 화학무기 사용문제를 해결하면서 모두에게 출구를 만들어 주었고 판세를 바꿨다. 푸틴은 한편으로는 2015년 9월 28일 국제연합(UN)에서 새로운 반테러연합안을 제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리아 정부의 요청에 따라 폭격을 통해 시리아 내전에 군사 개입을 하면서 오늘날 또 한 번 시리아라는 체스판에서 캐슬링 수(12)를 쓰고 있다. 이번 폭격은 러시아가 생각하는 시리아 내전 해결 방법에 따라 IS조직의 근거지는 물론 반군연합인 정복군의 근거지도 공격대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푸틴은 밝혔다. 정복군은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카타르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아흐라르 알슈람 살라피스트와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인 알누스라 전선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만이 경직된 메소포타미아 게임의 패를 되돌릴 수 있다. 지난 1년에 걸친 공습과 7천여 건의 작전에도 불구하고 IS조직이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을 보면 2013년부터 미국의 주도로 서방국가연합이 추진한 전략은 실패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이제 알아사드의 위기 타개 일정을 논의하고 시리아 문제 해결을 위해 러시아와 이란과 협력해야 한다고 인정했다.(13) 언론도 다시 입장을 바꿔 “알아사드가 물러나고 IS조직을 무너뜨리고, 시리아에 평화를 가져오는 게 최종목표라면, 한꺼번에 이루려 하지 말아야 한다”고 평했다.(14)
이란과 이라크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러시아 전략
<레제코>에서 인용된 글을 보니 매큐 로잔스키 우드로윌슨센터 소장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원전 6세기 손자의 “두 곳보다 한 곳에서 싸우는 것이 낫다”는 경구를 새삼 되새겼다. 헨리 키신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15) “바샤르 알아사드와 테러리스트 간에 명백한 연합관계가 형성됐다”(16)는 에르도안과 로랑 파비우스 외무장관의 주장은 타당성을 잃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저조한 외교 성적표를 만회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는 태도는 사리에 맞지 않고, 전략적으로 비생산적임이 밝혀졌으며, 곧 미디어에서도 사라질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와 시리아 군이 팔미라를 수복한다면 정치적으로도 자멸하는 일이다. 쿠테타로 이루어질 팔미라 수복은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지만 라브로프와 푸틴이 고려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 사이, 현재 러시아의 전략은 이란과 이라크(17)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집트는 반대하고 있으며 중국은 형세를 지켜보며 거부는 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오늘날 메소포타미아 격전지에서 ‘서방’에 속하지 않은 국가가 전략적 활동을 이끄는 주요 동력인 반전과 기습을 주도하는 중이다. 힘을 잃은 미국과 기회주의 러시아는 근동지역에서 발생한 혼돈의 소용돌이에서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의 이익은 유럽의 이익과는 전혀 다를 테니, 미국이나 러시아 어느 한 편을 전적으로 지원하는 일은 지적 굴복과 다름없다. 여기에서 (현실을 직시하기 위한 대가로) 푸틴의 전술적 우월성을 확인하는 것보다 프랑스의 외교에 대한 칭찬을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보수주의라는 지는 별이 아직까지 파리 센 강변을 비추고 있고, 프랑스가 아프리카에서 벌이는 작전을 제외하고 EU는 외부 안보활동에 관해 손을 놓고 있다. 정치색과 무관하게, 그저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은 그저 초라하고 미약한 위안에 불과하다.
글·올리비에 자젝 Olivier Zajec
리옹 3대학의 정치학 조교수
번역·서희정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있다.
(1) Michael Axworthy, ‘Is it time to make Iran our friend and Saudi Arabia our enemy?’, <The Guardian>, 런던, 2015년 1월 28일.
(2) 테레즈 델펙(1948-2012), 핵전략문제 전문가. <야만적이 된 세계>(2005), <엄청난 문제아, 이란 문제에 대한 고찰>(2007) 등의 저서를 남겼다. 프랑스 원자력청의 전략문제국장을 지냈다.
(3) ‘터키의 이슬람 정당인 정의개발당(AKP)이 무슬림을 위한 민주주의 모델을 자처하다’, <라크루아>, 파리, 2012년 10월 1일.
(4) 베르나르 앙리 레비, <사랑 없는 전쟁, 리비아의 봄의 한가운데에서 적은 작가의 기록>, 그라셋, 파리, 2011년.
(5) Sandy Fitzgerald, ‘McCain : “Putin’s actions in Syria the fault of Obama’s weakness”’, <Newsmax>,West Palm Beach (Florida), 2015년 9월 30일.
(6)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2015년 10월 15일자 <르푸앙>의 ‘메모장’ 칼럼에 쓴 표현.
(7)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콘돌리자 라이스는 2005년에서 2009년까지 국무장관을, 도널드 럼스펠드는 2001년에서 2006년까지 국방부장관을 지냈다.
(8) 2011년 3월 미국 상원 국방위원회에서 한 연설.
(9)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III, 4.
(10) 브누아 비트킨, ‘올랑드 대통령, 푸틴 대통령에게 “IS조직은 우리가 무너뜨려야 할 적”이라고 강조’, lemonde.fr, 2015년 10월 2일.
(11) 전략용어에서 판도를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을 말한다.
(12) Castling, 체스에서 킹과 룩을 동시에 움직여 룩이 킹을 보호하게 하는 특별한 수.
(13) Karen DeYoung, ‘Obama administration scrambles as Russia attempts to seize initiative in Syria’, <The Washington Post>, 2015년 9월 30일.
(14) ‘시리아 사태, 오바마는 러시아와 협상하고 알아사드를 받아들였다’, <레제코>, 파리, 2015년 9월 30일.
(15) Henry Kissinger, ‘A path out of the Middle East collapse’,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015년 10월 17일.
(16) 2014년 1월 22일 스위스 몽트뢰에서 열린 제2차 제네바회담 후 로랑 파비우스의 기자회견.
(17) 엘렌 살롱, ‘이라크의 러시아 지원’, <르몽드> 2015년 10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