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예수에서 마호메트까지의 기원

2015-12-01     아크람 벨카이드

이슬람교와 그 기원에 관한 문제는 현 상황을 벗어나서 다루기 어려운 소재다. 또한 ‘지하드(성전,聖戰)’처럼 반복 등장하는 주제들을 벗어나서 다루기도 어렵다. 이 문제는 제라르 모르디야와 제롬 프리외르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잘 다루고 있다. 7편의 일화로 구성된 이 영화는 그리스도교가 이슬람교에 미친 주된 영향, 적어도 초기 계시종교가 끼친 영향을 다루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 작업의 첫 번째 장점은 코란에 대한 학제적 연구, 신학적 주해를 넘어선 차원의 연구가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흔히 이슬람교 경전은 복잡한 문학적 구조와 각 장들의 시기를 정할 수 없다는 점, 또한 계시의 연대기적 순서를 전체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콘텍스트 없는 텍스트’로 소개된다. 이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왜냐하면 삼대일신교 중 마지막 종교(이슬람교)가 출현한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잘 이해하는 것이 현대의 정치적·종교적 도발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 뿌리는 같다

정교분리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 간의 대화도 십자가와 이슬람교 깃발이 본래 닮았다는 사실을 환기함으로써 시작한다. 여러 국적을 가진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한 이 다큐멘터리가 긴 시간에 걸쳐 입증하듯이, 이슬람교는 최초의 인간 아담만큼 예수를 핵심적인 인물로 간주한다. 아이사 이븐 마리암, 다시 말해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적그리스도를 없애기 위해 세상의 종말 직전에 되돌아오는 자다. 그런데 이슬람교도들은 메시아라고 지칭하는 자가 실제로 ‘그들의’ 예언자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가 코란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의식하지 않는다. 코란에서 그는 ‘령’, ‘숨결’, 하느님의 ‘말씀’으로 제시돼 있다. 그는 아름답고 비범하고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반면 성서는 마호메트(Mohammad)를 평범한 사람(그는 기적을 이루지 못한다), ‘단지’ 알라의 사자(Rassoul), 그리고 여러 예언자(Nabi)들 중의 한 명일 뿐이라고 더 간결하게 소개한다. 두 종교의 이러한 유사성은 마리아에게 부여하는 중요성에서도 드러난다. 코란에서 마리아는 이름을 가진 유일한 여성으로서 여러 차례 언급되며, 특히 19장은 그녀에게 온전히 할애됐을 정도다.
분열을 야기하는 어휘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그리스도 교도를 지칭하는 ‘십자군’이라는 용어를 다시 쓰고 있고, 많은 서양인들이 이슬람교와 정치적 이슬람주의를 혼동한다. 유사성을 지닌 유명한 문구들을 인용해 어느 정도 긴장 관계를 완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종교의 점진적 소멸현상이 뚜렷이 나타나는 사회에서, 그러한 인용은 유대-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이질성을 관례적으로 주장해온 담론들을 실추시킬 수 있다. 물론 신학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는 반박도 있을 것이다. 코란은 마리아의 무염수태(無染受胎)를 인정하고 옹호하면서도, 예수의 신성은 반박한다. 또한 코란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모르디야와 프리외르의 다큐멘터리는 이 문제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코란 4장에서 메시아가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들은 환영을 보았을 뿐이라고 특별히 언급한 두 구절을 환기시켰다. “예수의 십자가형은 그들에게 이처럼 환영(幻影)이었다.” 또한 이슬람교는 그리스도교를 강경하게 반대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예수(Chirk)와 성령을 하느님과 결합시킴으로써 엄격한 일신교와 단절했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대립은 많은 논쟁과 분쟁을 양산해온 만큼, 매우 위험하다. 모르디야와 프리외르의 작업의 또 다른 의미는 이슬람교가 그리스도교와 적대관계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연관성을 지니고 개혁의 시도로 출현했음을 입증하려는 연구자들에게 발언권을 준 점이다. 실상 이슬람교는 7세기까지 지속됐던 그리스도교 교리들을 계승하거나 다시 집필했다. 그리스도 가현설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이것은 초기 그리스도교에 나타난 한 이단으로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코란에서 마리아가 차지하는 위치는 일부 성서외전들을 읽어보면 분명해진다. 이 외전들은 마리아를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은, 가톨릭교회가 인정한 교리에 합치되는 ‘정전’을 반박한다.
결국 역사적 측면에서 발생기의 이슬람교는 그 시기의 신학 논쟁과 무관하지 않다. 어떤 면에서 이슬람교는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끝없는 논쟁을 종결짓기 위해 출현했다. 예수가 코란에서 차지하는 우위를 보면, 마호메트가 메카와 아랍 반도의 다신교 신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교도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설득을 시도했다고 추측할 여지가 있다. 이것이 근동지방의 그리스도 교도들이 이 새로운 종교를 놀라운 속도로 채택한 이유들 중 하나가 된다.

코란을 재해석하려는 움직임

당시 이슬람교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에 불과했을까? 이 질문에 과학적이고 역사적으로 뒷받침된 유일한 정답을 내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생각한다. 어쨌든 다큐멘터리에서 질문을 받은 전문가들이 말하듯, 태동기의 이슬람교와 7세기의 그리스도교 사이에 실제로 ‘상호텍스트성’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다큐멘터리는, 시급하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종교들 간의 대화에 또 하나의 길을 열어주었다. 오늘날 이슬람 세계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처지로 인해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것이 코란에 대한 일정 해석에 근거한다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관련 구절들이 출현한 맥락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서 대두된다. 코란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요구했다고 비난하면서, 코란 역시 7세기에 널리 퍼져있던, 이후로 질긴 생명력을 갖게 될 그리스도교 사상을 채택했다. 1963년, 교황 요한 23세는 “우리가 부당하게도 유대인을 고통스럽게 한 저주를 용서하소서. 우리의 죄로 당신을 두 번 십자가에 못 박은 우리를 용서하소서”라는 기도를 올렸다. 또한 이 다큐멘터리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마호메트가 622년 메카를 탈출해 메디나에 은신처를 구한 후 그곳의 두 유대인 일족과 일으킨 분쟁에 대해, 정치적 차원만이 아니라 신학적 차원의 분쟁이었음을 환기시킨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모세와 예수의 계보에 속하는 예언자가 코란이 원 종교의 변질로 간주하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개혁하려 했다면 그는 필시 랍비들과 충돌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전문가들은 코란이 유대인을 배척한다기보다 랍비를 배척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슬람교가 출현하고 한 세기가 지난 뒤, 한창 교세를 확장하던 이슬람교는 예수가 가지고 있는 수호신의 형상에서 벗어나 차츰 마호메트에게 지배적인 위치를 부여했다. 그리스도교와의 차이는 세기를 거듭할수록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코란이 세상에 알려진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코란을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는 이슬람교 사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야심찬 코란 주해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거쳐야할 관문이다. 11세기 이후 동결된 이쥬티하드(Ijtihad), 즉 632년 예언자가 죽은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너무나도 풍부해진 원전 해석은, 오늘날 성서의 주해에 또 다시 주해를 첨가해 만든 긴 고리에 불과하다.
코란의 아랍어와 다른 언어들, 특히 아랍어에서 파생된 셈어족인 고대 시리아어에서 차용한 많은 어휘를 연구하기 위해, 언어학은 인류학과 더불어 귀중한 도구가 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자국에서 많은 발굴 작업을 허용할 경우, 고고학도 계시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다음으로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한 것처럼, 코란 원전의 재해석이 가져올 새로운 가르침을 보급해야 할 것이다. 큰 어려움이 예상되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글·아크람 벨카이드 Akram Belkaïd
주요 저서로, <알제리 회귀(Retours en Algérie)>(Carnets Nord, Paris, 2013) 등이 있다.

번역·문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