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남극에 공기 방울이 있었다

2015-12-01     도미니크 레노
   
▲ <기후변화를 기다리며>, 2013-이삭 코르달

극지방의 영구 빙설 기후에 관한 흔적들을 파고들던 소수의 빙하학자들이 기후변화와 관련한 이산화탄소의 역할을 밝혀냈다. 이 선구자들 중 한 사람이, 정치적 이슈가 돼버린 기후문제에 연구자들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었는지 이야기 한다.

젊은 빙하학자들로 구성된 우리 연구팀은 1960년대부터 남극에서 채취한 빙하 표본에서 가스를 추출하려는 시도 중이었다. 연구팀을 조직한 클로드 로리위스는 수천 년 전에 생긴 빙하 조각을 위스키 잔에 넣자 생기는 무수히 많은 작은 기포들을 보며, 빙하 속 가스 추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1) 우리는 베른 대학교 물리 연구소의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과거 대기 속에 존재하는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의 비밀을 풀려고 노력했다. 데이비드 킬링이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1958년부터 지속해온 이산화탄소의 농도측정 결과, 인간의 활동이 이산화탄소 농도를 변화시킨다는 추측이 가능해졌다. 우리는 1869년 이후 공식으로도 정리가 된, 이산화탄소가 빙하기 형성 주기에 기여를 한다는 스웨덴의 화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의 예측에 대해서도 연구해보고자 했다. 무엇보다 동기부여가 된 것은, 남극을 탐색하고 남극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려던 의지였다. 기후와 관련된 흔적들을 해석하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연구를 수행하던 지역에 몰아친 극한의 추위와 매서운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두꺼운 빙모를 시추하기 위해 아주 깊숙이 시추공을 넣은 후 빙하 시료들의 연대를 추정하고 정확한 성분을 측정하는 작업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 작업을 위해 우리는 연구소에서 희망과 절망으로 점철된 10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다.

전 인류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발견

1980년, 추위에 갇혀있던 공기 방울의 비밀이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2만 년 전, 마지막 대빙하기의 대기에는 이산화탄소가 당시의 절반 정도밖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발견 덕분에 빙하시대의 온도 저하가 이산화탄소 농도가 40% 가량 감소하는데 기여했다는 아레니우스의 가설에도 힘이 실렸다. 가장 주목할 만한 순간은 1987년 10월 1일 <네이처>지에 3건의 논문을 공동 발표하던 때였다.(2) 프랑스와 소련의 빙하학자들이 함께 노력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와 대기의 온도가 지난 16만 년 간 즉, 마지막 빙하기와 간빙기 순환 주기에 나란히 변화해온 사실을 밝혀냈다.(3) 남극 보스토크 기지에서 채취한 빙하 시료에 대한 세밀한 분석 결과가 우리 논거의 바탕이 됐다. 이후 극지방의 시료들을 통해 80만 년 전부터, 즉 여덟 번의 천체 운동 주기 이후의 이산화탄소와 온도 사이의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14~15면 그래프 참고).(4) 다른 측정 결과들을 통해 대기 중 메탄(CH4)의 비율과 온도 사이의 연관성도 밝혀냈다. 이는 온실효과의 변화가 과거 기후 변화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뒷받침 했다.
이 발견은 우리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인류 전체에 질문을 던졌다. 보스토크 기지의 연구결과 발표 1년 후, 유엔개발계획(UNDP)과 세계기상기구(WMO)의 주도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탄생했다. 우리도 동참했던 이 조직의 임무는 기후 변화와 관련한 과학적, 사회경제적, 기술적 사실에 대한 주기적인 평가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후, 각국 정부 차원에서도 인간 활동과 기후 변화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킬링 곡선(5)은 이산화탄소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사실을 명확히 밝혀냈다. 증가의 원인이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된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또한 보스토크에 갇혀있는 화석화된 공기를 통해, 1980년대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비율이 352ppm, 부피로 치면 0.0352%로, 유례없이 높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6) 지난 마지막 빙하기와 간빙기 순환주기에는 유사수치가 관찰된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마우나로아 곡선과 보스토크 연구 결과 덕분에 사람들은 문제를 인식할 수 있었고, 이 두 연구는 신화적인 사례로 남았다.
새로운 발견들로 인해 필자를 포함한 연구자들은 기초과학 연구에 매진해야 할지, 정책 결정자들 및 시민들과 보다 폭넓은 소통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물론, 우선 국제 과학 학술지에 지속적으로 연구결과를 발표해 연구결과와 그에 대한 해석의 질을 검증받을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과정은 과학적 발견이 합리적으로 신뢰받기 위해 필수적인 단계로 자리 잡았다.
연구자들의 성격은 다양하다. 연구결과물을 제출하기 전에 모든 오류 및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연구자들이 있는가 하면, 최대한 빨리 자신이 발견한 내용을 발표하되 오류의 여지가 있는 부분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는 부분의 목록을 작성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이 두 가지 방식에 대한 논란은, 우리 팀이 <네이처>지에 연구 결과를 발표하던 때 가장 뜨거웠다. 결국 합리적 의심에 기반을 둔 방식이 승리를 거뒀고, 초기 논거를 보강하기 위한 사후 작업이 수반됐다.
오늘날, 지식의 수준은 기술의 진보와 모델화 덕분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기후학 분야도 급격히 늘어난 과학 발표와 함께 지난 수십 년 간 빠른 성장을 거뒀다. IPCC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종류의 과학 문헌을 검토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행동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를 동료 연구자들을 넘어선 범위까지 공유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도 과학계는 아직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연구에 대한 열정에 빠져있고, 또 어떤 이들은 정책 결정자들에서부터 시민에 이르기까지 사회와의 접촉에서 강한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필자는 이 두 유형의 중간쯤에 서있다. 언제나 연구에 빠져있으면서도, 문제의 중요성 때문에 조금씩 추가적으로 동기가 부여됐다. 빙하 시료와 남극, 고기후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인류의 미래를 밝히기 위한 IPCC의 중요한 역할을 알리려는 의지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필자는 1992년 IPCC의 요청에 따라 탄소 순환과 관련된 주제 보고서의 주요 집필자가 됐다. 이후 다양한 분야의 지적·과학적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사실 예전에는 연구자들, 특히 젊은 연구자들 사이에 교류의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필자에게 있어 IPCC는 탄소 순환, 대기, 대양, 대륙에 대한 다양한 시대별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살아있는 백과사전들이 하나의 탁자에 둘러 앉아 다른 실무 그룹들의 보고서와 대조하기 전, 이 분야의 지식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서를 작성했다. 이후 고기후학의 한 주제 보고서에서 주요 집필자에 이어 검토자의 임무를 맡았을 때까지 필자의 열정은 사그라질 줄 몰랐다. IPCC가 설립된 이후 전 세계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IPCC를 위해 기여했다. 그들의 전문성은 지식의 발전 상태에 대한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IPCC, 유례없는 제도적 시도의 전형

과학자들이 정치인의 요청을 받거나, 엄청난 재력을 가진 로비스트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짐작에만 그치도록 장려 할 때, 과학자들의 독립성에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잘 모르는 정치 분야에 발을 들일 때 어떻게 해야 오류를 범하는 위험을 벗어나고, 자신의 업적이 도구로 이용될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 우리 분야에서 ‘지식의 대장장이들’이라 할 만한 공공 연구를 수행한 기후학자들이 어떻게 한 로비스트에 의해 폭 넓게 이용될 수 있었는지, 어떻게 지성의 독립성을 포기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IPCC 실무그룹1의 최근 보고서에 참여한 259명의 기후학자들이 모두 이러한 상황을 묵인했다는 사실 또한 상상하기 어렵다. 이 보고서의 평가 과정에서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보고서 작성자들이 의무적으로 답해야 하는 5만 건에 달하는 의견을 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현재 195개의 국가가 IPCC의 회원국으로서 기후 시스템의 이해와 기후변화의 원인(실무그룹 1), 잠재적 영향(실무그룹 2), 대응 전략(실무그룹 3)에 관한 실무에 참여하고 있다. 제네바에 위치한, 12명의 직원으로 이루어진 이 작은 조직에 전문가들의 협력이 오로지 자원봉사 형태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알려야 할까? 다른 전제 조건 없이 하나의 과정을 통해서 보고서를 작성하자는 합의는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이 진보적인 방식은 연구자의 신중함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연구자들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과학적 진리는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새로운 발견으로 기존의 연구결과가 언제든 무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결정을 인도하기 위해 더 나은 발명을 해야 하는가? 우리 문명이 직면한 이 거대한 도전에 맞서기 위한 정치적 성찰을 장려하는 임무를 가진 IPCC는 유례없는 제도적 시도의 전형이다. IPCC는 현재 생물다양성의 취약함에 대한 연구에 대해 영향력을 갖지만, 아마 미래에는 기술의 위험과 같은 다른 분야에도 영향력을 미칠지도 모른다. 루이 파스퇴르가 누에 미립자병을 막을 수 있는 발견을 한 이후, 과학자들은 인간을 위협하는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물론 과학자들의 발견이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과학자들이 수많은 나라들을 위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적은 없었다. 과학자들은 기후 온난화를 진단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을 바탕으로 파리 회의에서 협의와 결정이 내려질 것이다. 파리 회의에 참석할 많은 과학자들이 IPCC의 평가 업무에 관여했다. 일부는 회담이나 토론의 일환으로 자국 국회나 대중 앞에서 발표도 했다. 그들의 업적이나 연구 방식 덕분에 정책 결정자들은 미래 세대를 위해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르렀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대부분의 기관들이 응용과학 연구에 투자한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한 결과, 기초과학 연구의 기여 없이는 기후 위기와 관련한 중대한 발견도, 신뢰할 만한 분석도 없다. 기후 문제를 뛰어 넘어, 우리는 정치적 경쟁에서 벗어난 국제적 협력의 이점도 헤아릴 수 있었다. 우리가 냉전의 한복판에서 소련과 협력을 이루어낸 것처럼 말이다.


글·도미니크 레노Dominique Raynaud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산하 그르노블 빙하학·지구물리학·환경 연구소(LGGE) 명예소장,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회원.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클로드 로리위스, 로랑 카르팡티에, <인류세로의 여행. 우리가 영웅이 되는 이 새로운 시대 Voyage dans l’anthropocene. Cette nouvelle ere dont nous sommes les heros>, Actes Sud, Arles, 2013.
(2) <Nature>, no 329, 런던, 1987.10.1.
(3) 천체역학의 불완전함(팽이효과 및 지구 자전축 기울기, 지구의 태양 공전 이심률)과 자연적 온실효과로 인해 수백만 년 전부터 약 8만 년 간 지속된 빙하기와 그 뒤를 이어 2만 년 간 지속된 간빙기가 발생했다.
(4) <Science>, vol. 317, Washington, DC, 2007.8.10. 및 Nature, vol. 453, 20085.15.
(5) Keeling Curve, 1958년부터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량을 나타낸 그래프. 1958년부터 남극과 마우나로아에서 이산화탄소량을 매일 측정한 찰스 데이비드 킬링의 이름을 딴 것으로, ‘Killing'과는 무관하다. 킬링은 이산화탄소 농도의 변동이 계절적인 변동을 넘어서, 매년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다.-역주
(6) 최근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이산화탄소의 비율은 399ppm, 즉 0.0399%으로 지난 백만 년 간 유례없는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