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없는 기후변화협상

2015-12-01     아녜스 시나이
   
 

기후변화협상의 진행은 점점 느려지고, 인류 역사의 흐름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제 사회의 의사 결정 당국은 현 사태를 해결할 만한 수준 높은 고민과 적절한 해결 방법을 내놓지 못하는, 무능함만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역사의 ‘가속기’에 일어난 유례없는 기후변화

나이지리아 라고스 시 석호 지대의 인공 섬. 이곳에서 건설 중인 스마트 시티 ‘에코 아틀란틱’이 금세기 말이면 물에 잠길 지도 모른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해, 나이지리아 연안 지역에서 90km 떨어진 육지까지 침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1) 에코 아틀란틱은 훗날 지질학자들이 지구 역사를 복원하는 데 있어 잔해 중 하나로 쓰일 수도 있겠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량이 오늘날과 같은 수준이었던 시기는 300만 년 전 신생대 제3기 플라이오세 시기다. 이 시기 기온은 2~4도 가량, 해수면은 10~20m 가량 더 높은 상태였다. 오늘날 남극 대륙의 빙하가 얼마나 빨리 녹을 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의 가상 시나리오를 비롯한 일부 가설에 따르면, 전 세계에 남아있는 화석연료를 모두 태울 경우, 앞으로 천 년 간 해수면이 100년에 3m씩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2) 화학적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의 대기 구성상태는 지난 백만 년 간 온실효과의 자연적인 변동 폭에 비해 상당히 이례적이다. 과거의 기후 관측으로 미루어 보면, 중립적인 시나리오를 따른다 해도 21세기 중 약 3℃의 기후변화가 예상된다. 이는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준할 정도로 급격한 변화다. 하지만 그 속도는 이때보다 더 빠른 편이다. 과거에는 천 년에 약 1℃씩 기온이 상승했던 것이다.(3) ‘산업시대’라 불리는, 인류역사 중 이례적인 이 시기는 몇 천 년 후에도 그 흔적을 남길 것이다. 3012년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30%에 이를 전망이다.
오늘날 인류는 지구를 관장하고 다스리는 중심세력이 됐다. 불과 두 세대 남짓한 기간 인류가 막대한 지질학적 영향력을 미치는 세력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의 여러 활동들은 과거 빙하기나 화산 분출, 운석 추락 못지않게 뚜렷한 흔적을 지구상에 남기고 있다. 오늘날의 급격한 기후변화 또한 이 뚜렷한 흔적 중 하나다. 도시화, 댐 건설, 산업시설, 농업 및 광업 활동 등에 따라 만들어지는 지질층에는 이 유례없는 시기의 수많은 화석들도 포함된다. 방사성 핵종, 불소가스, 생명공학 및 나노 기술이 만들어낸 화합물 등 1945년 이후 인간이 만들어낸 신종물질들은 이 ‘인류세’(4)의 전형적인 표식으로 남을 것이다.
석유화학 산업이 전 세계로 확대됨에 따라, 얀 잘라시에비치 교수의 표현처럼 ‘플라스틱 고생물학’도 생겨날 판국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산업사회에서는 산업시설에서 배출된 매연이 북극에서까지 검출된다. 그렇게 육·해·공의 모든 층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기후변화는 지리학자 윌 스테펜, 지구화학자 파울 크루첸, 역사학자 존 맥 닐 등이 인류역사의 ‘가속기’(5)라 명명한 시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 시기는 1945년부터 지금에 이르며, 석유 자원의 황금기와 일치하는 풍요의 시기다. 이 시기 인류사회에서는 탈식민지화가 진행되고 소비의 대중화가 이뤄지며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반면, 유엔차원에서 진행되는 협상은 이보다 더 느릴 수가 없을 정도다. 게다가 생산제일주의에 따른 현재의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지도 못했다. 또한, 에너지 문제나 법적 구속력 확보의 문제, 개발문제 등도 성공적으로 다루지 못했다. 국제 사회의 이 더딘 행보는 제네바와 본에서 있었던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사전회의에서 두드러졌다. 196개국의 만장일치를 얻기 위해, 많은 문건 처리가 상당히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환경보다 시장경제구조가 우선인 환경보호책

그들만의 공간 속에 갇힌 협상은 좀처럼 진척되지 못한 채,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기후변화 문제는 오늘날의 환경외교의 문제, 즉 얼마나 진행이 더디며 불확실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거듭됐음에도, 기후 정책에 관한 한 국제사회는 현 사태를 해결할 만한 수준 높은 고민과 적절한 해결방법을 내놓지 못한 채 무능함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실과의 분리’의 첫 번째 사례는 경제학에서 끌어온 수많은 수사학이다. 통계수치를 바탕으로 비용과 이익을 계산하는 경제학이 수사학적 도구로 활용된 것이다. 무한 성장에의 믿음이 곧 원동력인 현대 산업사회는 자연의 문제를 외부의 국제기구에 위탁해버렸다. 따라서 자연은 죽어있는 재고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생태계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수익원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기후변화 협상의 로드맵으로 채택된 2℃선의 ‘최대기온 상승폭’은 이러한 패러다임 속에서 결정된 것으로, 이는 어느 정도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인간의 기술과 정치적 동원력으로 기후를 관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기후를 안정화할 수 있는 온실가스 수준을 결정하기는 어렵다. 인류의 생존을 좌우할 티핑 포인트가 언제 도래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를 통치할 수 있는가?>라는 책의 저자들은 자연이 훼손되는 실질적·물리적 과정과, 문제해결을 위해 20년 전 수립된 다자적 의사결정기관 사이에 나타나는 심각한 괴리감에 대해 ‘현실의 분리’라는 개념을 사용한다.(6) 화석에너지의 연소에 의해 발생한 문제를 에너지 채굴 자체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단순히 부산물만 제어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별 의미가 없다. 어이없게도 현재의 기후변화협상에서 노리는 건 이산화탄소의 배출과 관련된 문제일 뿐이다. 경제개발방식 그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국제무역 규정에 대해서도 재고하려 하지 않으며, 전 세계 에너지 시스템의 운용방식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고 있다.
두 번째로 들 수 있는 ‘현실과의 분리’ 사례는 교토 의정서다. 교토 의정서에는 기후를 측정가능하고 동질적인 ‘경제재’로 인식하고 있다. 즉 환경보호책에 있어서도 역시 시장경제구조가 우위를 점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교토 의정서의 ‘유연성 체제’는 경제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배출 감소를 장려했으며, 이러한 보상논리는 삼림파괴에 따른 배출 감축 프로그램(REDD) 메커니즘을 활용한 온실가스 감축 부문으로도 확대된다. 하지만 탄소 배출권 할당량 거래제를 기반으로 한 탄소거래시장은 유럽에서 쓰라린 실패를 맛본 바 있다.
끝으로 세 번째는, 유엔기후변화협약이 WTO의 자유무역체제에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현실과의 분리’가 나타난다. 현재 WTO의 규정은 기후변화를 저지하는 것보다 우위에 있다. 이러한 규범적 서열은 현재 대서양 너머에서 진행되는 무역협상에서도 나타난다. 2013년부터 진행 중인 캐나다-EU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이면공작이 기후변화정책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유럽이 앨버타의 비재래식 석유 자원에 유럽의 빗장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7) 미국의 천연자원보호협의회가 내놓은 한 발표에서도 2012년 일일 4천 배럴까지 증가했던 오일샌드 수입량이 향후 2020년까지 일일 70만 배럴까지 증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8) 트랜스캐나다가 구축한 에너지 이스트 파이프라인은 그 모든 제약에서 벗어난 캐나다 시장에서 유럽 정유공장의 공급선이 될 것이다.
사학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 기후 변화 위기는 지구의 역사와 인류진화의 역사, 그리고 최근에 발전한 산업문명의 역사 간에 존재하는 갈등 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9) 이 세 가지 역사는 각각 서로 다른 규모와 속도로 발전해왔다. 따라서 오늘날의 현대 사회는 이제 그 간의 사고방식을 재고해야만 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이제 지구에서의 삶은 더 이상 안정선 상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류세’는 지구의 역사에 흠집을 내버렸다. 이 때문에 인간은 문지방 효과와 티핑 포인트, 불가역 현상, 기후체계의 폭주 가능성 등 극단적인 불확실 요인을 고려하며 인간의 명운에 대해 재고해야만 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후학자 제임스 핸슨은 화석연료인 석탄의 완전폐기계획을 수립할 것을 정치권에 권고한다. 이제는 사전예방의 법칙이 아닌 최대예방의 법칙을 적용함으로써, 최악이 아닌 ‘차악’의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것이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크리스토프 맥그레이드와 폴 엘킨스가 발표한 연구에서는 석유 매장량의 1/3, 가스 매장량의 50%, 석탄 매장량의 80% 이상이 채굴되지 않아야 지구 온난화를 피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10) 현재의 기술력과 경제력으로 채굴할 수 있는 화석자원의 매장량이면, 약 2,900G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온난화 억제 목표인 배출 상한선 2℃보다 3배 높은 수치다.

교황, 2015년 회칙 통해‘검소한 삶의 방식’ 호소

화석에너지 및 광물 자원의 채굴을 반대하는 움직임은 지구 도처에 나타난다. 나이지리아의 니제르 델타에서 에콰도르의 야수니 국립공원까지, ‘환경정의책임 무역 네트워크’의 집계만 해도 수백 개에 이른다.(11) 교황 또한 2015년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를 통해 ‘검소한 삶의 방식’을 호소했다.(12) 1인당 배출량 배분을 제안한 싱크 탱크도 여럿이다. 인도에서는 학자 아닐 아가왈이 설립하고 수니타 나라인 여사가 운영하는 ‘과학환경센터’에서 빈국의 ‘생계형 배출’과 부국의 ‘사치형 배출’을 구분하고, 공유재의 1인당 배분을 주장했다. 아일랜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지속가능 경제학 재단’에서는 화석에너지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배급하는 공유재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기후변화를 저지하기 위한 국제공공기금을 창설해 채굴기업에 경매로 연간 최대생산량을 할당하고, 전 세계인들 간에 공평한 자원배분을 실현하는 것이다.
차크라바르티는 현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기후 위기는 정의에 대한 대대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세대 간의 정의, 작은 섬나라와 (과거는 물론 미래에도 오염의 주범이 될) 오염 국가 간의 정의, (역사적으로 탄소배출의 책임이 가장 큰) 선진 공업국과 개발도상국 긴의 정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12~14개국에 불과한 몇몇 국가와 (전 세계 인구의 1/5에 불과한) 소수 인류가 오늘날 온실가스 배출의 역사적 책임을 안고 있다.
남은 건 법도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2012년 6월 Rio+20 정상회의 자리에서는 범대서양 기업들의 면책특권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500여 개의 단체가 모여 시민운동조직을 창설했다. ‘지구생태계 파괴종식 운동본부’에서는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의 근간이 된 로마규정을 수정해, 생태계 파괴에 관한 범죄를 신설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한 법률가 집단에서는 ‘환경범죄(Ecocrime)’와 ‘생태계 파괴(Ecocide)’라고 하는 두 개의 협약안을 작성했다.(13) 이는 환경범죄의 예방 및 억제효과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 세계적 차원에서의 공조체계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활용하면 앞으로 생태파괴가 ‘인류에 대한 범죄’에 동급의 극악 중범죄가 될 수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1)국제환경 검찰청의 신설 2)국제환경형사재판소의 신설 고려 3)환경조사 및 연구조직 창설 4) 공중보건 및 환경을 위한 국제보상기금 마련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 모든 이례적인 조치를 통하면 법률학자 미레유 델마 마르티가 기록한 바처럼, “책임자에 대한 비난을 확대”하고 “공동운명에 있어 희망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14)


글·아녜스 시나이 Agnès Sinaï
환경분야 전문기자. 저서로 <성장 이후의 경제Economie de l'après-croissance> (Presses de Sciences Po, Paris, 2015) 등이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대 통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등이 있다.

(1) 님모 바세이Nnimmo Bassey, ‘아프리카, 기후 위기 초읽기L’Afrique et les catastrophes climatiques qui s’annoncent’, in <기후 위기 저지 – 시민사회의 호소Crime climatique. Stop ! L’appel de la société civile>, Seuil, ‘Anthropocène’ 컬렉션, Paris, 2015.
(2) Ricarda Winkelmann, Anders Levermann, Andy Ridgwell, Ken Caldeira, ‘Combustion of available fossil fuel resources sufficient to eliminate the Antarctic ice sheet’, <Science Advances>, vol. 1, n° 8, Washington, DC – Cambridge (United Kingdom), 2015년 9월 11일.
(3) 발레리 마송-델모트Valérie Masson-Delmotte, 크리스토프 카수Christophe Cassou, <기후에 관한 30가지 문제들Parlons climat en 30 questions>, La Documentation française, ‘Doc en poche’ 컬렉션, Paris, 2015.
(4)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 현세 중 인류가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 시점부터를 별개의 세(世)로 분리한 비공식적인 지질시대 개념-역주
(5) Will Steffen et alii, ‘The trajectory of the anthropocene : the great acceleration’, <The Anthropocene Review>, London, 2015년 1월 19일.
(6) 스테판 아이쿠트Stefan Aykut, 아미 다앙Amy Dahan, <기후를 통치할 수 있는가?Gouverner le climat? - 20년 간의 기후변화 협상20 ans de négociations internationales>, Presses de Sciences Po, ‘Références – Développement durable’ 컬렉션, Paris, 2015.
(7) 엠마뉘엘 라울Emmanuel Raoul, ‘캐나다 북부 깊은 숲속, 공해병 걸린 인디언들이 산다Sous les sables bitumineux de l’Alberta’,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10년 5월호.
(8) Danielle Droitsch, Luke Tonachel, Elizabeth Shope, <What’s in your tank ? Northeast and Mid-Atlantic states need to reject tar sands and support clean fuels>, NRDC Issue Brief, New York, 2014년 1월.
(9)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 ‘기후 변화에 관한 고찰에 있어서의 몇 가지 맹점Quelques failles dans la pensée sur le changement climatique’, in 에밀리 아슈Emilie Hache 총괄, <무한한 세계의 폐쇄적 세계De l’univers clos au monde infini>, Editions Dehors, Bellevaux, 2014.
(10) Christophe McGlade, Paul Elkins, ‘The geographical distribution of fossil fuels unused when limiting global warming to 2 °C’, <Nature>, n° 517, London, 2015년 1월 8일.
(11) 오렐리앙 베르니에Aurélien Bernier, ‘에콰도르 야수니 프로젝트En Equateur, la biodiversité à l’épreuve de la solidarité internationale’,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12년 6월호.
(12) 장미셸 뒤메Jean-Michel Dumay, ‘악마의 배설물에 맞서는 교황Le pape contre le “fumier du diable’,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15년 9월호.
(13) 로랑 네이레Laurent Neyret 총괄, <생태계 파괴 환경 범죄 – 환경 살릴 형법Des écocrimes à l’écocide. Le droit pénal au secours de l’environnement>, Bruylant, ‘Droit(s) et développement durable’ 컬렉션, Bruxelles, 2015
(14) Ib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