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식민주의에 물든 아프리카 ‘올드보이들’의 귀환

부룬디부터 콩고까지

2015-12-01     티에르노 모네넴보

아프리카 곳곳에서 민주화가 진전을 보이는 가운데, 여전히 낡은 악습이 잔류하는 국가들이 있다. 심한 경우, 국가 지도자가 집권 연장을 위해 헌법을 조작하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기도 한다. 투표로 선출된 이 독재자들은 특히 프랑스어권 국가에 많다. 온정주의, 연줄, 편짜기 등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모든 결함이 집결된 곳이 프랑사프리크(Françafrique)이기 때문이다.

 

수차례에 걸친 중임인가, 쿠데타인가? 10월 25일 진행된 콩고의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가 분쟁으로 얼룩지고 반대진영은 보이콧해버린 사태가 보여주듯, 이 주제는 정치적 약탈의 문제다. 1979년부터 콩고 정권을 잡고 있는 드니 사수 은게소 대통령은 임기를 연장하길 원했다. 그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5년간 공백기가 있었으나 무력으로 정권을 되찾았다. 쿠데타와 다름없던 제멋대로인 헌법 개정을 겨우 진행시켜 결국 3회 중임에 도전할 수 있었다. 부룬디도 마찬가지로 지난 7월 피에르 은쿠룬지자 대통령이 2번의 임기에 이어 3회 연임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헌법을 고치려는 수고도 없었다. 은쿠룬지자 대통령은 2005년 헌법 준수를 요구하는 야당, 언론, 인권론자를 완력으로 억압하며 연임에 성공했다. 2005년 헌법은 12년간 지속되던 내전을 종식시킨 아루샤 평화협정의 결과물인 만큼, 그 의미가 큰 것이었다. 이번 부룬디 사건은 중앙아프리카 전역과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도 같은 상황에 휘말릴 위기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헌법까지 고쳐가며 장기집권을 꿈꾸는 올드보이들

부룬디와 국경을 접하는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도 2016년 말 대선을 앞두고 있다. 조셉 카빌라 DR콩고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의 막바지에 있지만, 대권을 넘길 준비가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부룬디와 같은 이유로 카빌라 대통령도 어떻게든 헌법을 바꾸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현 헌법은 두 번의 DR콩고 내전(1997~2002년)(1)을 겪으며 긴 시간에 걸쳐 합의한 평화협정의 결과물이다. 게다가 카빌라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2011년 대선 투표 결과는 야당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15년 1월에는 인구조사를 포함시킨 선거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폭동도 있어났다. 인구조사라는 거창한 작업을 선거 전에 끝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카빌라 대통령 입장에서는 차일피일 투표를 미루어 집권을 연장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됐을 것이다. 이번 1월 폭동의 진압으로 최소 4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DR콩고는 인구 7천5백만 명, 막대한 자원, 중앙에 자리한 지리적 위치와 더불어 아프리카의 상징적 존재이다. 독립영웅인 파트리스 루뭄바를 통해 아프리카 대륙 역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 1998년에서 2002년 사이에는 장장 9개국이 연루된 최초의 범아프리카적 규모의 전쟁이 발발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또다시 아프리카의 화약고가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렇지만 해결책이 있다. 아주 간단하다. 그저 규율을 준수하고 시민의 안녕을 우선시하면 된다. 만일 그와 반대로 할 경우, 즉 헌법을 현역 대통령의 입맛대로 재단하고 뜯어고칠 수 있는 셔츠쯤으로 취급할 경우 나라 전체가 혼돈의 구렁텅이로 떨어질 것이다. 어떤 국가들은 라볼(La Baule) 정상회담 연설,(2) 1990년대의 주권국가회의들, 민주적 정권교체 등의 사건들과 전혀 무관한 듯 일이 흘러갔다. 냉전이 끝나고 여러 국가들이 독립하는 사이에도 ‘종신집권’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며, 2015년에 와서도 여전히 같은 행태를 목도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민주주의에 대해 종종 간과되는 점이 있다. 이런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의 민주주의는 전반적으로 실패나 후퇴보다는 진보 양상이 더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서북부의 카보베르데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대륙 전반에 걸쳐 선거가 비교적 정상적으로 치러지고 있다. 정상적인 선거가 사전에 결과가 정해진 부정선거보다 수적으로 우세하다. 그러나 여전히 부당한 관행이 잔존하며, 퇴보적 체제들이 이웃 국가를 오염시킬 위험이 있다. 기니에 이런 말이 있다. “입 안의 나쁜 종자 하나가 한 줌의 땅콩을 다 망칠 수 있다.”
은게소 대통령 같은 인물은 서구에 강력한지지 세력을 두고 있다. 콩고의 모든 자원(특히 석유)이 그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1979년부터 앙골라 정권을 잡고 있는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정치계 입문 초기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신봉자를 자처했건만, 오늘날 그 가족들은 장녀 이자벨 도스 산토스가 불려놓은 엄청난 재물더미 위에 앉아있다. 이사벨 도스 산토스는 앙골라에 막대한 이자수익을 보유하고 있으며 포르투갈 소유 지분들을 사들일 의향을 내비치기도 했다.(3) 카메룬은 1982년부터 집권해온 폴 비야 대통령이 체제의 경직화를 구현하고 있어 그 앞날이 어둡기만 하다.


전통과 현대, 아프리카 국가 체제에 필요한 두 요소


한편 부르키나파소는 2014년 10월 헌법 개정 시도에 국민이 반발하고 나섰으며, 2015년 9월에 길버트 디엔데레 장군을 필두로 한 쿠데타에 맞서 승리를 거두며 괄목할만한 희망의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다. 세네갈의 경우, 민주화의 톱니바퀴가 윤활유를 칠한 듯 굴러가고 있다. 세네갈은 2000년 이래 거국일치를 문제 삼지 않는 선에서 몇 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1990년에 최초로 주권국가회의를 개최했던 베냉도 마찬가지로 체제가 안정돼 보인다. 베냉은 유일하게 독재자를 ‘교화’하는데 성공한 국가이기도 하다. 마티유 케레쿠 베냉 대통령은 1972년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지만 1991년 투표결과에 승복하며 잠시 물러났다가 그로부터 5년 후 개선된 모습으로 복귀, 헌법을 준수하며 두 번의 임기를 수행했다. 케레쿠 대통령은 전통과 현대에 두 발을 나눠 담고 있을 때의 이점을 잘 보여주며 베냉의 견인차 역할을 해주었다.
전통은 정체적이고 역행적일 수 있겠지만 방어막 역할도 한다. 세네갈이나 베냉에서는 전통적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있으며, 반대세력이 집결해도 그 과정에서 개탄할만한 어떠한 학살도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기니는 그러하지 못하다. 1958년 독립 직후 아메드 세쿠 투레 대통령은 전통 부족들로 구성된 구조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국가 체제에 전통과 현대가 모두 없으니, 어떻게 보면 기니의 미개함은 두 배라 할 수 있겠다.
아직까지 아프리카는 민족성을 내세운 정치적 행동이 파괴적 영향력을 가지는, 교육이 부족한 농민사회를 기반으로 한다. 그럼에도 비민족적 기반 위에 대항세력처럼 움직일 수 있는 ‘시민사회’를 세우려는 초인적 노력을 볼 수 있다. 은쿠룬지자 부룬디 대통령이 자리를 보존하려고 자신의 발언에 민족성을 부여하기 시작한 시기도 지난 5월에 실패로 끝난 쿠데타가 발생한 이후부터이다. 기니도 다를 바 없는데, 2010년에 콩데 대통령 소속당은 펠르족(Peuls)이 정치집회에서 독이 든 물을 나눠주려 했다고 비난했었다. 그야말로 유권자를 분열시키려는 공작이었다. 2015년 10월, 콩데 대통령은 1차 투표에서 재당선되길 바랐고, 서구 대사관들과 유럽연합 감시관들은 부정행위를 모두 덮어주었다. 선거인명부는 조작되고, 선거인 등록 카드는 임의로 배포됐다. 콩데 대통령이 유리한 지역 투표율은 90% 이상이었던 반면, 야당지지 세력이 많은 지역은 50%에 그쳤다.
한편, 어떤 식으로든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옛 식민지배국 영국을 비난하는 것은 영어권 아프리카 국가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있는 짐바브웨도 마찬가지이다. 르완다는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했는데, 식민지배에 대한 기억을 과거로 넘기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시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절대 전형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다.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도 그 누구에게도 뭐라 할 자격이 없다. 지난 11월 17일, 2017년에 시작하는 3차 연임에 도전하려고 헌법을 개정하지 않았던가. 장장 2034년까지 집권할 가능성까지 확보하면서 말이다. 인정해줘야 하는 부분도 있다. 카가메 대통령이 조직한 행정부는 르완다에서 비닐봉투 사용을 전면 금지시킬 만큼 제 역할을 잘 수행한다.


두 가지 재앙의 결합, 프랑사프리크(Françafrique)


공공규범, 정부의 존재감, 깨끗한 거리가 눈에 띄는 가나 역시 ‘난잡함’이 만연한 다른 국가(특히 불어권 아프리카 국가)와는 놀라울 정도로 대조적이다. 프랑사프리크(Françafrique)는 두 가지 재앙의 결합이며 온정주의, 연줄, 편짜기로 만든 계획들 등 프랑스와 아프리카가 가진 모든 결함의 집결체이다.
그렇다면 국제금융기구나 국제연합(UN), 옛 식민지배국에게 이중 삼중으로 통제받는 신탁통치 하의 국가들이 민주화를 이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프랑스가 과거 관행과의 단절을 공식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프랑스어권 지역은 외부 개입이 끊이지 않는다. 프랑스는 아프리카에 강력한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길 원한다. 가장 답답한 사실은 옛 식민국과의 관계가 시작부터, 즉 독립한 시점부터 어긋났다는 점이다. 공공의 안녕을 걱정하는 국가 간이 아닌 측근 간의 관계로 개인 명부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2004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반인류적 범죄’로 프랑스에 체포된 콩고 경찰청장을 친구인 은게소 대통령의 간결한 요청으로 하루아침에 석방시켜버렸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알라산 와타라 코트디부아르 대통령과 친구인데, 뇌이(Neuilly)시 시장일 당시 와타라 대통령의 결혼을 주재했었다.
본인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백인과 흑인 무리 안에도 파벌이 존재한다. 프랑스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연합은 프랑스마저도 망가뜨리고 있다. 프랑스에 대한 많은 추문들이 아프리카와 관련이 있고, 아프리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2005년, 제이콥 주마 현 남아공 대통령은 군수계약 체결 당시 프랑스 탈레스 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법원에 기소됐었다.
프랑스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재식민지화에 대한 의지 앞에서 아프리카는 권력을 탐하는 지도층의 부정부패로만 답할 뿐이다. 아프리카에 관한 프랑스 정보 사이트가 늘고 있지만 선거, 추문, 세력다툼 등의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토고, 기니, 코트디부아르 혹은 콩고의 선거를 다룬 기사나 분석 대부분은 맞지 않다. 코트디부아르의 10월 대선결과가 신뢰성이 없다고 지적한 이가 있던가? 와타라 대통령은 1차 투표에서 83.6%의 표를 얻어 재당선됐다. 예전 소련 시절 수치를 떠올리게 하는 숫자이다. 우리의 사회구조나 선거구조에서는 어느 누구도 1차 선거에서 그만큼 높은 투표율을 확보할 수 없다.
프랑스에서 운동가나 지식인, 기자가 부족하지는 않다. 그러나 부정부패나 선거가 어떤 식으로 치러지는지 정직하게 보도하는 것이 시급하다. 토고, 가봉, 세네갈은 물론 말리, 기니에서조차 대통령의 아들들에게 세습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들은 허용 안되는 게 없다고 믿을 정도로 자기 후견인을 과신하는 듯하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당선되자, 콩데 대통령은 “이제 안심하고 잘 수 있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올랑드 대통령 역시 지난 10월 확실한 대선 결과가 공식 발표되기도 전에 자신이 미는 콩데 후보의 재선을 축하했다고 한다.


최상의 정부 형태, ‘민주주의’를 향한 길

서구 대사관 사무국들이 내세우는 현 체제의 안정화라는 논리는 종국에는 위기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역효과인 것으로 드러났다. 제도의 안정화는 물론 권할 만하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정부’라는 이름에 걸맞은 체제가 부재하므로, 화제의 인물이 곧 제도가 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말하길 “아프리카는 강력한 인물이 아니라 강력한 제도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에 블레스 콩파오레 부르키나파소 대통령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확신에 차서 “강력한 인물 없이는 강력한 제도도 없다”라고 응수했다. 콩파오레 대통령이 권좌에서 쫓겨나기 3달 전의 일이다. 누가 권력을 잡든 모두가 복종한다. 최고법원, 군부, 헌병대, 때론 기니처럼 교회일수도 있다. ‘안정화’라는 신성불가침한 논리는 1978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텡 대통령이 ‘레오파드 작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꺼내든 것이었다. 당시 조셉 모부투 정권에 대항하는 반군세력이 억류하고 있는 유럽인 인질을 구출할 목적으로 자이르(현 DR콩고)에 군대를 파견한 작전이다. 결과적으로 프랑스는 동맹국을 구해냈다. 그러나 32년간 정권을 쥐고 있던 모부투 정권이 1997년에 실각하자 DR콩고 나라 전체가 그와 함께 무너졌다.
현대사회는 포스트 식민주의에 기반을 둔 우리의 구체제보다 빠르게 진화한다. 최상의 정부 형태를 뭐라고 부르는지는 만천하가 알고 있다. 바로 ‘민주주의’다. 지진에도 잘 견디도록 만들어진 구조물처럼 강력하면서도 유연성 있는 정치체제가 설립돼야 한다. 그렇다 해서 획기적인 목표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내부토론을 허용하고 제도를 강화한, 최소한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계약이 맺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글·티에르노 모네넴보 Tierno Monénembo
기니 출신 작가. 저서 <Le Roi de Kahel(카헬의 왕)>(Seuil, 2008년)으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번역·이보미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콜레트 브래크만 Colette Braeckman, ‘Guerre sans vainqueurs en République démocratique du Congo Guerre(승자가 없는 콩고공화국 전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1년 4월호 참조
(2) 1990년 6월 20일에 개최된 제16회 아프리카·프랑스정상회담에서 프랑소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아프리카에게 민주화를 촉구했다.
(3) 오거스타 콘치글리아 Augusta Conchiglia, ‘Et l’Angola vint en aide au Portugal (그리고 앙골라가 포르투갈을 도와주다)’, ‘Afrique. Enfer et eldorado (아프리카, 지옥과 낙원)’, <마니에르 드 부아>, 2015년 10-11월 1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