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의 기념비적 상상력, 루이비통 미술관

2015-12-01     조안 포플라르

범선, 새, 부유하는 꿈 등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건축물들은 모두 현대 건축물로서는 보기 드문 찬사를 받고 있다. 게리의 미학이 현대 사회에서 이처럼 환대받는 이유는 아마도 모더니티 가치들을 재구성함과 동시에, 그 가치들을 통해 오늘날의 자유주의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14년 10월, 파리 아클리마타시옹 정원 가장자리에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이로써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법조계와 정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술관 건축승인 논란을 끝내고 문을 연 것이다. 2007년 당시 건축허가증을 발급했던 파리 시장 베르트랑 들라노에의 문화담당 보좌관 크리스토프 지라르가 LVMH(Louis Vuitton Monët Hennessy)사의 전략고문직을 겸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됐던 것. 그러나 LVMH사는 수년 간의 기다림 끝에 결국 법원 측으로부터 건축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막상 미술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이 모든 논란은 잊혀졌다. 그리고 언론은 언제 논란이 있었느냐는 듯 찬사를 쏟아내기 바빴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막강한 재력, 루이비통의 명성, 그리고 유명 건축가의 역량이 합쳐진 결과이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명품업계의 대표주자이자 언론의 조명을 한 몸에 받고 있는 LVMH사가 현대미술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전시하는 미술관을 연 사실은 패션, 문화, 가십 기사를 연일 도배하며 정치적‧경제적 분석의 대상으로 떠올랐다.(1)
그러나 거대한 범선, 이제 막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하는 커다란 새, 반짝이는 구름 등에 비유되며 가장 큰 경탄의 대상이 됐던 것은 바로 미술관 그 자체, 루이비통 재단의 홈페이지에서 ‘꿈의 실현자’로 소개된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이었다. 프랑스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이 미술관의 개관 축하 연설에서 ‘현대 미술의 혜택을 대중 모두와 공유하고자 한 메세나 기업’, 즉 LVMH사에 심심한 경의를 표하면서 ‘문화를 위한 수정궁(Crystal palace)’이라는 수식어를 헌사했다. 비록 이로 인해 가장 큰, 실질적 혜택을 입은 것은 투자액의 66%에 대해 세금 공제를 받게 된 LVMH사일지라도 말이다.

박애주의적 포장 뒤에 브랜드 이미지 고양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의 개관을 모두가 반기고 있지는 않다. 이 박애주의적인 포장 뒤에 루이비통 브랜드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야심이 숨어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알기 때문이다.
아르노 회장의 고문 장-폴 클라브리는 2014년 5월 10일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경제적인 측면의 이득보다는 ‘감정적인 측면의 이득’이 더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적었다. 하지만 이 ‘감정적인 측면의 이득’이야말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데 있어 최상의 방법이 아닌가!
미술관에 들어서면, 이 건축물이 지닌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건축물의 복잡한 구조 안에서 사진과 은유로 뒤덮인 본관 건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는 분명, 사진 속에서만 완전히 실현되고 소비되는 스타시스템 논리에 충실한 건축물의 숙명일 것이다. 철학자 프레드릭 제임슨이 1991년에 쓴 글을 인용하자면, 포스트모던 건축물에 대한 관심은 ‘사진에 대한 욕망’의 발현이며 “대중은 실제 대상이 아닌 사진의 가치를 가장 먼저 소비한다.”(2)
사진이 아닌 현실과 마주쳤을 때의 실망감은 건축사무소가 설계 단계에서 만드는 십여 개의 모형들과 최종 완성품을 비교해도 알 수 있다. 반짝거리고 투명한 모형들은 실제 건축물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위태로운 생명력을 지닌다. 그리고 이러한 모형이 거대한 건축물로 거듭났을 때, 그 건축물은 프리드리히 니체가 지칭한 ‘권력의 표현’이 된다.(3) 권력의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은 경제적 논리에 입각한 문화적 알리바이이며, 나아가 자본주의의 표상이자 기업이 대중에게 권력을 과시하는 매개체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물결 이미지,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의 구름 또는 범선 형상. 프랑스 아를르 루마 재단 건물의 빈센트 반 고흐의 터치…. 프랭크 게리는 건축물을 유연하고 유동적인 존재로 탈바꿈시켰다. 온실과 정자를 떠올리게 하는 부드럽게 휘어진 골조와 공중에 떠있는 철근으로 대표되는 그의 건축물은, 20세기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강압적인 이미지의 건축물, 일례로 육중한 위용을 자랑하는 록펠러 센터와는 지향점이 완전히 다르다. 프랭크 게리는 루이비통 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세상이 끊임없이 변화하듯이, 건축물도 시간과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해 매순간 다른 이미지를 생성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건축물은 반드시 꿈과 같아야 한다”고 그의 생각을 밝혔다.(4)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에서 나타나는 유연성, 공중으로의 도약은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개념인 자본주의, 이동성, 그리고 기존 것들의 ‘경직성’에 대항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과 닿아 있다.
미술관 내부에도 이러한 요소들이 곳곳에 반영돼 있다. 여러 개의 거울이 길게 늘어선 홀을 지나면 관람객은 경사로, 계단, 통로를 거쳐 해독 불가능한 논리, 기이한 각도의 모서리로 이루어진 거의 비어있다시피한 넓은 방에 도달하게 된다. 아르노 회장은 미술작품들을 걸을 수 있도록 벽의 형태만은 굴곡 없이 유지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높이가 다른 테라스에서는 이러한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된 비틀어진 입방체 건물의 외부를 내다볼 수 있다. 불로뉴 숲과 에펠탑이 범선의 돛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고, 건물 아래에는 신비로운 연못이 펼쳐져 있다. 미술 컬렉션보다 이 미로 같은 건물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라 하겠다. 19세기와 20세기에 파르테논 신전 같은 형태로 지어진 증권시장, 은행, 박물관에서 느낄 수 있었던 안정감, 견고함, 질서는 이제 ‘과거의 것’이 돼버렸다.
소용돌이, 너울, 꼬임 등 프랭크 게리 건축물의 바로크적 특성들은 안정성과 위엄보다는 끊임없는 변화와 대담한 시도를 중요시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과 우아하게 결합했다.(5) 건축사학자인 조안 오크만은 “엄청난 속도, 범위, 강도로 변화하는 세계 경제 상황 속에서 기존 예술 작품들이 추구하던 논리는 전복됐다. 대기업과 자산가들은 ‘순환적인 문화의 의식’을 거행하는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에 매료됐다”고 설명한다.(6)
이 미학의 중심에는 단순히 ‘그것을 표방하는 브랜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자본의 끊임없는 순환으로 설명되는 현대 자본주의의 ‘유동성’에 대한 환상이 자리하고 있다.(7) 경제학자 프레데리크 로르동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는 ‘관여하지 않을 수 있지만 관여하고, 투자하지 않을 수 있지만 투자하고, 고용하지 않을 수 있지만 고용하려는 욕망’으로 대변된다.(8)
영국 <더 가디언>지의 건축 평론가 로완 무어는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은 소수의 사람들 중 한명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건물을 감싸고 있는 유리로 된 거대한 돛들은 건물의 정체성을 불분명하게 만들었으며, 골조와 입면 간의 조화를 저해하고 있다. 이 돛들만 없었다면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은 ‘어린이를 위한 공원에 지어진 어른 버전의 인형극 극장’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9) 로완 무어는 아마도 건축 프로젝트의 이성적인 논리에만 의거해서 건축물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은 이러한 한계를 모두 넘어선 지점에 있다. 건축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불필요하고, 비용도 많이 들고, 심지어 주변에 해로운 영향을 줄 수도 있는 돛들이다. 하지만 의미론적인 측면에서는 대체불가한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루이비통 기업이 원한 바로 그 ‘상징’인 것이다. 그의 작품은 또한 사물들의 질서가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세계를 표방하고 있기도 하다. 제임슨은 이에 대해, “건축 부재들은 하나의 정지된 상태 속에서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떠다니는데, 이는 다음 순간이면 곧 사라져버릴 경이로운 찰나의 시간이다”라고 평했다.(10) 루이비통 재단은 연속적인 일련의 실루엣들을 표현함으로써 서로 연결되지 않는 조각들 각각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프랭크 게리는 말한다. “나는 이 건축물이 절제된 혼돈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충돌하는 다원적 민주주의의 개념과도 연결된다.”(11) 1950년대에, 젊은 프랭크 게리가 다수 설계했던 ‘쇼핑몰’을 가장 처음 만든 빅터 그루엔도 쇼핑몰이 ‘현대판 아고라’가 되기를 원했었다.(12)
그러나,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은 관람객을 해방시킨다기보다, 관람객 위에 군림하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관람객은 이 연속적인 재구성 게임에서 단 한 번도 주체가 되지 못한다. 마치 어느 환타지 속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벽들로 인해 주인공들이 공간감각을 상실하게 되는 것처럼. 관람객은 오로지 건축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할 포스터가 강조하듯이, 건축가의 창의적 자유가 반드시 관람객의 창의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13)
만약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이 상징적인 기념물이라면, 이는 건물주의 관대함 덕분이라기보다는 그가 소유한 재력의 측면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민주주의적인 사고 측면보다는 엄청난 소비의 결정체라는 측면에서 그러하고, 대중을 위한 예술 측면보다는 자본주의적 가치들의 호사스러운 향연이라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유연한 선들로 가득 찬 유토피아와 꿈에서나 볼 듯 한 건축물이 이토록 아름답게 구현된 것을 보니, 공공 문화기관들이 자율성과 독립성을 회복하고, 예술가들이 작품 제작에 있어서 협업을 활성화하고, 메세나 기업들의 독점에 대항해 작품주문이 민주화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듯하다.(14) 자본주의에 의해 주도된 아클리마타시옹 정원의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의 노선과는 다른 길이 예술가들에게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글·조안 포플라르 Johan Popelard
파리 1대학(팡테옹-소르본) 교수, 미술사


글·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레 제코>의 ‘예술 관련 소식’란, <클라시카>, <라디오 클라식> 등
(2) 프레드릭 제임슨,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가본주의의 문화적 논리>, 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de Paris, Paris, 2007
(3)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1888], Gallimard, Paris, 1974
(4) 프랭크 게리 : ‘파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런 건축물을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베아트리스 드 로쉬부에와의 인터뷰, <르 피가로>, Paris, 2012년 6월 1일자
(5) 뤽 볼탄스키 & 이브 치아펠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 Gallimard, Paris, 1999
(6) 조안 오크만, <빌바오 그 이후>, 루이 미구엘 루스 아라나 & 장-미쉘 토블렘 & 조안 오크만 <빌바오의 거품, 프랭크 게리의 등장 이후 박물관들의 침묵>에 포함됨, Editions B2, Paris, 2014
(7) 지그문트 바우만, <유동하는 삶>, Fayard/Pluriel, Paris, 2013
(8) 프레데리크 로르동, <자본주의, 욕망과 종속, 맑스와 스피노자>, La Fabrique, Paris, 2010
(9) 로완 무어, <루이비통 재단, 파리 리뷰 - 프랭크 게리의 모든 것과 블링(bling)>, 2014년 10월 19일, <더 가디언>, 런던, 2014년 10월 19일자
(10) 프레드릭 제임슨, op. cit..
(11) 안느-마리 페브르 <화제를 몰고 다니는 프랭크 게리>에 인용됨, <리베라시옹>, Paris, 2014년 10월 19일자
(12) 빅토르 그뤼엔, <내일의 쇼핑센터>, 1954, 오렐리앙 르모니에 <도시의 약속>의 <프랭크 게리>(전시회 카탈로그)에 인용됨, 퐁피두 센터, Flammarion, 2014
(13) 할 포스터, <디자인과 범죄>, Les Prairies ordinaires, Paris, 2008
(14) 예를 들어 ‘새로운 주문자(Nouveaux Commanditaires)' 계획의 프로젝트, Cf. 프랑수아 에르스 & 자비에 두루, <자본주의 없는 예술>, Les Presses du réel, Paris,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