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검진이 당신의 목숨을 보장하지 않는 이유

2015-12-01     박민선
   
▲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 1808~1812 - 고야

종합검진 시즌이 다가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지치고 힘든 심신을 다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종합검진의 필요성을 느낀다. 의사로서 종합검진의 수익을 거부한 채, <종합검진에 절대 목숨 걸지 마라>라는 책을 펴낸이가 있어 관심을 끈다.

‘나는 건강하지 않다’는 집단최면에 빠진 사람들이 묻는다.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해야 할까요?” 설사와 복통 때문에 내원한 20대 젊은 환자에게 “요새 유행하는 바이러스성 위염과 장염이 의심 된다”고 진단하자 나온 물음이다. 위염이나 장염 진단을 내릴 때마다 흔히 듣는 질문이기도 하다. 날씨가 추워지면 노로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복통과 설사 환자가 늘어난다. 노로 바이러스에 의한 장염은 자극적인 식사를 피하고 장염을 다스리는 약을 복용하면 대부분 1주일 이내에 완치된다. 결론은, 대장내시경은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급성 장염일 때 설사를 유발하는 약을 복용하면 증상이 더 악화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증상이 가라앉을 때까지 검사를 미루는 것이 좋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건강염려증이 많다. 국제 경제협력기구(OECD)에서는 각국 국민들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조사를 하는데, 그 중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건강하다”, “보통이다”, “건강하지 않다” 등으로 대답하는 조사가 있다.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 중 남성은 31.8%, 여성은 28.2%만이 “나는 건강하다”고 대답했다. 즉, 10명 중 7명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럼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떨까? OECD 평균 남자는 71.6%, 여자는 66%가 “나는 건강하다”고 답변했다. 즉 우리나라보다 ‘건강한 사람’이 2배 이상인 것이다. 내가 2014년 출판한 <스웨덴 사람들은 왜 피로하지 않을까>에 의하면, 스웨덴 사람들은 OECD 평균보다도 많은 약 80%가 “나는 건강하다”고 답변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걱정하는 만큼 건강이 나쁘다면 단명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80%에 달하는 스웨덴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러한 우리 국민들의 건강염려증을 바탕으로 자라는 것이 건강산업이다. 방송계는 건강 이슈를 생산하고, 의학계와 제약회사 일각에서는 이에 따라 상품을 생산한다. 이 모든 것들을 국민들이 소비한다. 즉, 건강산업을 키우는 것도, 소비하는 것도 국민들인 셈이다. 그렇다면 건강산업은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국민에게 어떤 유익을 주고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다. 50대 여성인 부란 씨(가명)는 5~6년 전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빨리 뛰는 듯한 증상이 생겼다. 몇몇 병원들에서 검사한 결과, 공황장애라는 진단이 나왔다. 약을 복용하면 증상이 나아졌지만, “정신과 약을 오래 복용하면 치매가 발생할 확률이 많다”는 방송을 본 후로는 약을 끊었다. 대신 TV에 출연한 의사가 추천한 건강기능식품을 먹었다. 칼슘과 마그네슘이 들어 있는 미네랄, 오메가3, 종합 비타민, 갱년기 여성의 혈액순환에 좋다는 제품, 양파즙, 효소 등 다양했다. 부란 씨는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반드시 복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랜 설득 끝에, 결국 병원 치료를 받았다. 그 밖에도 자신이 쌀, 쌀겨 등 곡식에 심한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현미와 쌀겨를 주원료로 한 효소를 복용하던 여성, 과민성 대장염이나 크론씨 병처럼 장에 이상이 있음에도 해독주스를 즐겨 마시던 환자도 보았다. 의사의 입장에서 간담이 서늘한 사례들도 있었다. 모두 유행처럼 돌고 도는 건강산업의 희생자들이다. 의학은 환자와 의사가 얼굴을 마주하면서 진찰하고, 진찰에서 얻은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 검사를 하고, 이렇게 모은 정보를 활용해서 진단하고 처방하는 과정이다. TV나 방송에서 일반적인 상식을 이야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상식이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더구나 방송에 나와서 말하는 사람들은 의학전문가만 있는 게 아니다. 연예인이나 일반인이 “병을 고쳤다”며 검증되지도 않은 본인만의 비법을 쏟아 놓는 경우도 많다.
또한 건강보조식품 혹은 건강기능식품이라고 분류되는 식품들은 약이 아니고 식품이다. 우리 몸은 다양한 식품을 섭취하고, 식품 섭취를 통해 공급된 영양소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몸속에서 작용한다. 꼭 필요한 성분이 부족해서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그 부족한 성분을 섭취하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부족한 상태가 아닌데도 더 섭취하면 그대로 배설되거나, 몸에 예상하지 못한 이상 반응이 생길 수 있다. 다양한 식품을 골고루 먹고, 내 몸에 맞는 운동을 하는 것보다 건강을 위해 좋은 방법은 없다.


의료계의 ‘공룡’이 돼버린 종합검진 사업

국민들의 건강염려증을 먹고 자라는 또 하나의 산업이 바로 병원의 종합검진 시스템이다. 검진만을 전문으로 하는 검진센터도 있고, 대형병원에서 시행하는 종합검진 등 다양한 검진 프로그램이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웬만한 선진국보다 건강검진시스템이 잘 돼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시행하고 있다. 영유아 검진, 18세 이상 세대주 혹은 40세 이상 65세 이하인 성인은 건강보험에서 2년에 1회, 직장인은 직장 건강 보험에서 1~2년에 1회, 65세 이상 노년층은 노인요양법에 의해서 2년에 1회 건강 검진을 시행하고 있다. 기본검진은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통해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과 같이 성인병을 진단하고, 40세에 시행하는 생애 전환기 검사에서는 위암, 대장암, 간암, 자궁암과 유방암까지 확인할 수 있는 검사가 포함돼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러한 검사로 만족하지 못한 채 CT나 MRI 등을 이용하는 특수검사까지 포함하는 정밀검진을 받는다. 자비를 부담해가면서 말이다. 물론 정밀검진을 지원하는 직장들도 있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검진은 개인이 부담하는 비용이 거의 없지만, 개인적으로 선택하는 종합검진은 적게는 10만 원 정도부터 수백만 원까지 든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기 위해 미리 조심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특별한 이상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의 검진이 일상화되면서, 정작 필요할 때 검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종합검진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검진 후 “이상 없다”는 결과를 얻은 사람들은 ‘한동안 걱정 없겠네!’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때문에 신체적 이상이 나타나더라도 ‘그때 이상 없었는데 뭐’ 하는 식으로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종합검진을 예약한 후에는 몸에 이상이 있어도 굳이 병원에 가지 않고 참는 사람들도 있다. 어차피 얼마 후에 종합검진을 받을 테니, 이중으로 돈 들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검진 맹신 증후군’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중검진을 할 필요는 없다. 또한 종합검진이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들도 정기검진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는 검사를 권하기 전에 마지막 검진을 언제 받았는지 묻는다. 이미 검진을 받은 경우에는 그 결과에 따라 질병을 예측하기도 쉽고, 또 중복검사를 최대한 피하려는 목적도 있다. 그러나 검진을 한 환자들 중에서도 검진의 상세한 결과를 제대로 알고 있는 환자가 드물어 검진결과를 참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건강할 때의 검진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검진으로 족하다. 그리고 비싼 돈을 들여 종합검진을 예약했거나 받은 후에라도, 건강상의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병원에 찾아가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검진은 분명 우리 건강을 위해 필요하지만 남용할 이유도 맹신할 이유도 없다. 즉 어떤 검진을 받느냐가 아니라, 평소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고, 이상이 의심될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는 내가 <종합검진에 절대 목숨 걸지 마라>라는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100만 원짜리 검진보다 중요한 건강관리수칙

우리가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듣는 말이 있다.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운동한다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진짜로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영국의 웨일즈 지방의 케어필리라는 지역에서 거주하는 남성을 35년 간 4년에 한 번씩 추적조사한 결과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처음 연구를 시작할 당시에 45~59세 사이의 남성 2,512명을 35년 간 관찰했더니, 식이요법과 운동을 꾸준히 지킨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비교할 때 당뇨병 발병은 76%, 심장병 발병은 60% 감소했으며, 심장병이 발생한 연령도 평균 6년 이상 늦었다. 또 치매의 발생도 40% 감소했는데, 평균 12년 정도 치매 발생 시기가 늦어졌다. 35년에 걸쳐 축적된, 꾸준한 식이요법과 운동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확실한 효과가 있음을 증명했다.
하루에 400~600cc(약 2~3컵) 분량의 과일과 채소를 섭취한다. 튀김이나 당분을 첨가한 음료수와 동물성 기름은 섭취를 자제한다. 현미 등 통곡물과 기름이 적은 고기, 달걀, 생선 등 양질의 단백질과 들기름, 올리브유 등 식물성 기름 그리고 약간의 견과류를 골고루 먹는다. 담배는 확실히 끊고, 술은 1주일에 3회 미만, 1회 음주 시 알코올 함량 4% 미만 맥주는 400cc, 7% 맥주는 240cc, 13~15%인 와인이나 정종은 120cc, 40%이상의 양주나 독주는 30cc로 제한한다. 체중은 정상체중이나 약간의 과체중이 바람직하다. 운동은 1일 1시간 정도 빠르게 걷기나 가벼운 근육강화 운동이 가장 좋다.
말로는 이렇게 쉽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켰을까? 4년마다 점검한 케어필리 조사에서는 이런 건강수칙을 꾸준히 실천한 사람들은 놀랍게도 30명(전체의 1.2%)에 불과했다.
알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는 검진을 하거나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종합검진을 해도 문제점을 인지하고 개선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평생 건강을 위해서는 건강을 위한 실천이 필요하고 이렇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100세 이후까지 건강한 건강관리법

건강보험 공단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은 반드시 받는다. 건강검진 결과를 받으면 즉시 이상 소견을 확인한다. 이상 소견을 확인할 경우 전문의사의 진료가 필요한 부분은 반드시 의사의 진료를 받고 향후 치료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다.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현재 나이에서 10년 단위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예측해서 가장 좋을 때와 나쁠 때를 예측해 본다. 가장 좋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생활수칙을 정한다. 현재 건강검진 결과에서 다음 번 건강검진 때까지 개선할 생활목표를 세운다. 이렇게 건강상태가 개선되려면, 당장 실천할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오늘부터 실천할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다. 가능하면 가족이나 친한 친구, 직장 동료와 같이 계획을 세워 서로 독려한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심장 질환, 신장 질환, 간질환 등 만성질환을 치료하고 있다면 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기본검진을 하고, 기존 질병과 연관이 있는 정밀검사는 주치의와 의논해서 1년에 1~2번 필요에 따라 검사한다. 질병이 있을 때는 의사의 소견과 검사결과를 종합분석해야 가장 정확한 진단과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글·박민선
스웨덴에서 공부하고 서울 순천향대학병원에서 15년 간 교수로 재직했다. 6년 간 다국적 의료회사인 박스터(Baxter)에서 아시아 담당 의학 고문으로 근무했다. ‘더맑은 내과’를 운영하면서 현대인의 건강불안과 피로와 스트레스를 상담하고 치료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종합검진에 절대 목숨 걸지 마라>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