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로 향하는 관음증 사회
많은 사람들이 사생활 보호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사생활을 드러내 보일 권리를 요구한다. 이에 놀라워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얼마 전부터 일련의 징후와 증상들이 관음증과 노출증, 감시와 복종이 복잡하게 뒤섞인 행동방식의 출현을 예고해 왔다.
관음증의 원형은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의 1954년 작 <이창(Rear Window)>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사진기자(제임스 스튜어트 분)는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 방에 처박혀 무료해하다가 맞은 편 이웃들의 생활을 관찰한다. 히치콕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과의 대화에서 “그렇다, 그는 관음증 환자다,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 관음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라고 되물었다. 트뤼포 감독 또한 “내면을 분석하는 영화를 볼 때, 우리 모두는 관음증 환자가 되지 않는가? 자기 집 창가에 있는 제임스 스튜어트와 영화를 보는 관객은 동일한 상황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히치콕 감독은 말했다. “마당 저쪽에 취침 전 옷을 벗는 여자의 모습, 방 안에서 정리정돈하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면, 십중팔구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기 마련이다. 시선을 돌리고 덧창을 닫을 수도 있겠지만, 천만에! 대다수는 그렇게 안 할 것이고, 서슴없이 지켜볼 것이다.”(1)
사생활 폭로에서 범죄고백까지 이르는 노출증
관음증의 저편에는 노출증이 있다. 자신을 드러내려는 노출증의 충동은 타인을 훔쳐보려는 관음증의 충동에 상응한다.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망은 인터넷의 비약적인 발전과 1996년 웹캠의 등장으로 인해 폭발적으로 분출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웹캠이 유행하던 초기, 미국 오하이오 주 오벌린에서 남녀 학생 5명이 2층 단독주택 곳곳에 40여 대의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리고 카메라에 찍힌 자신들의 24시간을 매일 온라인으로(www.hereandnow.net) 전송했다. 이후 어떤 것도 금지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자신(들)의 생활을 공개하고 네티즌들을 초대하는 독신자, 커플, 가족들이 무수히 늘어났다.(2) 심지어 중국 상하이에서는,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일하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류오우칭이 최초로 자신의 ‘사망일기’를 인터넷에 게재했고, 세계적인 사이버문학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 젊은 중국인은 “이제 나는 줄을 끊는다.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위암과 싸우는 자신의 모습을 동시대인들에게 전했다.
한편, 2000년대 이후 미국 TV에는 일명 ‘쓰레기’ 프로그램이 늘어났다. 수치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 프로그램에 등장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나 이해하기 힘든 열정을 소개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이 NBC의 간판 막장 토크쇼 <제리 스프링거 쇼>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무대에 나와 열광적인 청중들 앞에서 파렴치한 사생활을 털어놓는다. 800만 명 이상의 시청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에, 15분 간 시선을 끌기 위해 자신의 사생활을 폭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수천 명의 미국인들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이제 살인범들까지 숨김없이 범죄사실을 털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의 케이블 채널인 <Court TV>는 살인범들의 고백을 전문적으로 방영한다. 전 세계에서 최초로 “1989년 뉴욕의 한 병원에서 의사를 강간 살해한 스티븐 스미스의 고백, 여자 친구를 살해해 시신의 목을 잘라 끓인 대니얼 라코비츠의 고백, 1995년 휠체어를 탄 고객의 살해 과정을 묘사한 성매매남성 데이비드 가르시아의 고백”(3)을 비열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방영했다.
서로 감시하는 전체주의적 사회로 이동
이제 소셜 네트워크는 아무 걱정 없이 자기 신상과 일상을 낱낱이 공개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빅브라더들이 자신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는 전자 팔찌를 스스로 차고 있다는 걱정 따위는 없는 듯하다. 그들이 자기 생활을 공개하는 동안, 기계들은 어디에선가 무한용량의 데이터들을 축적해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진밀고자가 되어 경찰업무에 관여하는 것 또한 이런 새로운 ‘아이덴티티’ 개념이 빚은 현상이다. 일례로, 미국 법무부는 2002년 조지 부시 대통령 정부 하에서 TIPS(테러 정보 방지 시스템, 여기에서 ‘Tips’는 정보를 뜻함)를 시행했다. 이 시스템의 목표는 택배기사, 배관공, 벽돌공, 열쇠공, 전기배선기사, 안테나설치기사, 우체국직원, 가스 기사, 정원사, 이삿짐 운송업자, 가사 도우미처럼 사람들 집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수백만 명의 직업인들을 밀고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들 중 수백 명이 어떤 ‘수상한 징후’를 포착하면 경찰에 알리기로 약속했다. ‘4세대 전쟁’의 목표들 중 하나는 정보사회를 정보제공자들의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텍사스 국경보안관연합은 텍사스와 멕시코 간 국경을 따라 설치돼 있는 전략지대에 수백 대의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카메라 설치 목적은 당연히 정보수집이다. 이 수백 대의 카메라들은 인터넷에 연결되어,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이 편안하게 자기 컴퓨터 앞에 앉아 위험 없이 텍사스의 사막지대나 리오그란데 강 연안을 정탐할 수 있다. 모니터에 불법이주자가 포착되는 경우 당국에 전자편지 한 통을 보내 그를 고발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중단되기는 했지만,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약 3천만 명이 끄나풀 정신으로 무장한 채 텍사스 국경 관리 경찰의 ‘자발적 정보제공자’ 기능을 수행했던 것이다.
영국에서는 <인터넷 아이(Internet Eye)>라는 기업체가 2009년에 이와 유사한 서비스를 출시했다. 모든 네티즌들에게 오픈된 일종의 게임 형태로 제안된 이 서비스의 목적 또한 상가들을 감시하고, 만약의 경우 발생 가능한 범죄를 추적하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에 참여, 가입하기 위해서 자원자들은 소액의 월 회비를 납부해야 한다. 일단 ID가 등록되고 나면 모니터를 통해 4대의 감시카메라에 접근할 수 있다. 서비스 가입자들은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실시간으로 카메라를 지켜볼 수 있다. 절도나 폭행 등 위험한 행동이 감지되면 경고 버튼을 클릭한다. 그러면 화면은 정지되고, 확인을 위해 줌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상점 관리자는 정지 화면과 함께 메시지를 받는다. 만일 그 경고가 유효한 것으로 판단되면 고발한 네티즌은 3점을 얻는다. 비록 범법행위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경고가 정당하다고 판단될 경우 고발한 네티즌은 1점을 얻는다. 반대로 관리자가 이 경고를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감시관’은 1점도 얻지 못한다. 매월 말 한 달 동안 부정행위나 절도를 가장 많이 적발해 낸 스파이네티즌에게 인터넷 아이는 보상금을 지급하는데, 이 액수는 1천 파운드에 달하기도 한다. 이 사이트를 창설한 토니 모건은 영국 일간지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4백만 대 이상의 감시 카메라가 있지만 사람들이 쳐다보는 카메라는 천 대 중 한 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기에선 하루 24시간 내내 쳐다본다. 이것이 언젠가 일어날 범죄를 예방하는 최상의 수단”이라며 이 사이트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반대로 비디오 감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사이트가 “사생활을 침해하는 스파이행위 도구”라며 위험하다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이 사이트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상점 고객들의 얼굴과 행동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4) “이 사이트가 이웃들 간에 서로를 염탐하게 만들고, 진짜 범죄자들은 이를 통해 상점의 습성을 쉽게 분석함으로써 강도행위가 더 수월해지는 역효과를 낳는다”는 이유로 여러 단체에서 비판하고 있다.
유럽 내 집단 이주가 늘고 외국인 혐오 감정이 커지면서, 유럽 국가들은 인터넷 카메라와 유사한 시스템에 대한 유혹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자발적 밀고자가 되는 민간인 부대의 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이것이 통제사회의 부패 중 하나다. 감시를 주고받는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다. 각자 자기 자신이 감시받는 동안 다른 사람들을 감시해야 한다. 개인이 최대의 자유 속에 살고 있다고 믿는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우리는 최고의 전체주의적인 사회가 꿈꾸는 목표의 실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글·이냐시오 라모네 Ignacio Ramonet
파리 7대학 유럽학과 교수를 지냈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발행인으로 활동하며 반세계화 국제 NGO인 세계사회포럼(WSF)과 국제금융과세연대(ATTAC)를 주도적으로 설립했다. 이 글은 최근 저서 <감시의 제국, 줄리안 어산지와 노암 촘스키와의 대담>(갈릴레, 파리, 2015년)에서 발췌했다.
번역·김계영
(1) 프랑수아 트뤼포, <히치콕이 보는 영화>, 로베르 라퐁, 파리, 1966년.
(2) 드니 뒤클로, “기술에 의해 추격당하는 사생활”, 폴 비릴리오, “시각적 밀고의 세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9년 8월호와 2000년 8월호.
(3) <르몽드>, 2000년 8월 25일.
(4) 로렌 카스빌, “인터넷 아이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www.lepetitjournal.com, 2010년 10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