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캠핑 ‘비박’의 작은 모험

2015-12-01     김지연

19세기 말의 산업화와 노동시간의 단축은, 소수의 상류층만이 즐기던 자연에서의 여가문화를 확산시켰고, 노동자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여가문화’가 시작됐다. 노동자들이 즐길만한 문화시설이 충분치 않던 당시, 여가란 야외에서의 뱃놀이나 식사 정도였다. 반면 현대의 도시는 시내에서 대부분의 여가활동이 가능하다. 서울만 보더라도, 영화관이나 공연장, 가벼운 운동이 가능한 스포츠 시설들이 즐비하고, 실내에서 암벽 등반과 썰매 같은 다이내믹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또 한강에서 수상스키를 타거나, 서울숲에서 사슴을 만나는 등 자연과 더 가까운 체험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토록 편리하고 즐거운 도시를 벗어나 자연, 그것도 깊은 자연 속으로 떠나는 이들이 있다. 현재의 3040세대. 상대적으로 풍요롭게 자랐고, 개성 있는 즐거움을 추구할 줄 알며, 자신의 관심사를 위해 거침없이 소비하는 세대다. 이들이 사회적 경력을 쌓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관심사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취미생활로 실현하기 시작했고, 보편적으로 누리지 않는 특별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향과 도심에서의 복잡한 생활을 벗어나 한적한 자연을 즐기고픈 욕구가 합쳐져 캠핑, 비박 등 자연에서의 모험이 시작됐다.(1)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성상, ‘야외활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등산이다. 등산은 지금도 전 국민적 스포츠라 할 수 있다. 그런데 3040세대가 즐기는 모험은 등산과는 또 다르다. 자연 속에서 간소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오는 것인데, 온 힘을 다해 정상을 ‘정복’하는 등산과 달리 자연과 하나가 되는 모험은 등산과는 의미를 달리하며, 보다 다채로운 요소를 담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오토캠핑이다. 오토캠핑은 자동차에 텐트와 취사도구 등 필요한 장비를 싣고 떠나서 야영하는 것으로, 보통은 취사가 허가된 캠핑장에서 야영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오토캠핑이 일부 마니아들 사이에서 국소적으로 유행하다가 몇 년 사이에 점차 가족단위의 캠핑객이 늘어났고, 휴가철이면 국립자연휴양림과 같은 인기 캠핑장은 예약하기가 대학생들의 수강신청만큼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렇게 캠핑장이 복잡해지자,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3040세대는 더 조용한 자연으로 떠나는 비박을 시작했다. 비박이란, 군대가 야영할 시 경비병이 밤새 지키는 것에서 유래한 독일어로, ‘Bi(주변)’와 ‘Wache(감시하다)’가 더해져 ‘Biwak’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뜻의 프랑스어인 ‘Bivouac’이나, 백패킹(Backpacking)이 더 자주 쓰인다. 원래는 비상시 지형지물을 이용해 노영하는 것이나 여행이나 취미로서의 비박은 작고 간소한 1~2인용 텐트를 사용한다. 따라서 시설이 갖춰진 캠핑장이 아닌 야생의 자연에서 혼자, 또는 작은 무리를 지어 하룻밤을 보내는 야영(Camping)에 가깝다. 오토캠핑보다 날 것의 자연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수천 명의 회원을 보유한 국내 최대 비박 커뮤니티 ‘백패킹코리아’의 한 회원은, 주로 30~40대 남성이 비박을 즐기며 남성은 30대 중반, 여성은 30대 초반 많이 입문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입문자의 연령을 볼 때, 도시에서의 스트레스와 일상의 권태를 체감하기 시작하는 즈음에 일탈로서 비박에 입문하는 것 같다는 견해를 전했다.

다양한 캠핑요리는 고사하고 준비한 간편식으로 식사를 때우고, 전기나 수도는 물론 불을 피울 수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 야생에서 잠자길 자처하는 비박인들. 이들은 자연이 험준할수록 비박의 매력이 높아진다고 입을 모은다. 비박 마니아들은 퇴근 후 산에서 자고 바로 출근하는 일명 ‘퇴근박’으로 일상의 비박을 즐기며, 이를 넘어 점점 극한의 경험을 추구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초보자가 약 30kg의 장비를 가져가는데, 숙련자들은 최소한의 생존도구만 갖춘 8~10kg의 장비로 생활하거나, 일부러 눈 속에서 비박할 수 있는 곳을 찾거나, 텐트 없이 침낭만을 갖고 바위 아래에서 잠을 청하며 건조식품 등 비상식량만으로 버티기도 한다. 심지어 채취한 임산물을 먹으며 버티는 사람도 있다는데, 이쯤 되면 거의 베어 그릴스(2)다. 이런 비박 마니아들의 로망은 굴업도, 간월재, 선자령과 같은 야생의 자연에서 비박하거나, 약 800km에 이르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미 서부를 종단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이하 PCT)과 같은 해외 장거리 백패킹에 도전하는 것이다.

한편 비박에도 문제는 있다. 야간산행이나 임산물채취, 산에서의 취사는 법으로 규제하고 있으며, 국립공원의 경우 허가받은 장소 외에는 야영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안전과 사유재산 보호 때문이기도 하고, 환경보호가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비박인들 사이에서는 ‘Leave No Trace(LNT)’, 즉 장비를 간소화하고 취사활동을 배제해 흔적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최대한 자연에 폐를 끼치지 않는 친환경 비박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여전히 불법 야간산행을 자행하는 동호회들이 있지만, 내부적으로 불법적인 행위는 자제하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이렇게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따라가는 작은 모험을, 모험가 앨러스테어 험프리스는 ‘마이크로 어드벤처’라고 칭했다. 이는 극지를 탐험하는 ‘매크로 어드벤처’에 비해 돈과 시간에의 부담이 적다. 그리고 성취의 정도에 차이는 있으나, 자연을 경험하고 새로운 변화와 재미를 추구하는 맥락은 같다. 이것이 비박이라는 작은 모험을 하는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 외에 무엇이 또 있기에, 그렇게 사서 고생하며 한데서 잠을 자는 것일까?

험프리스는 현대의 삶이 끊임없이 불모화되며, 우리는 스스로 어둠을 택하기 전까지는 너무 밝은 빛 속에서 지낸다고 했다.(3) 비박은 아무것도 없는 자연, 즉 인공의 빛이 없는 어둠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생존에 꼭 필요한 것만 갖춘 단순한 삶으로 회귀해 하루의 잠자리와 먹을 것, 안전을 도모하는 행위 하나하나에 집중함으로써 그 소중함을 다시금 경험하고, 안온한 일상의 의미를 되짚는다. 한편 침묵과 고독을 스스로 구하며 내 안의 자아와 마주해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이를 통해 나를 다시 발견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멀리 떨어져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관계를 재설정할 수도 있다. “진정한 삶의 길을 찾으려면 두 번의 여행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여행은 나 자신을 잃는 것이고, 두 번째 여행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라고 했던, 한 작가의 말을 빌자면,(4) 비박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나 자신을 잃고, 다시 한 번 나를 발견함으로써 삶의 길을 찾는 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때문에 비박에서 얻는 자연에서의 경험은, 도시생활에 다시 적응하고 제자리를 찾기 위한 모험으로서 역설적인 의미를 지닌다.

도시에서의 삶은 고달프다. 육체적 피로 외에도 개인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갈등과 어려움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기에 도시인들은 늘 마음이 고프다. 그런데 개인의 어깨에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도시의 삶과 달리, 험준한 산과 변화무쌍한 날씨, 고요한 밤의 어둠 속에서 경험하는 거대한 자연의 숭고미는 아주 작은 개인의 존재와 그 한계를 인식시켜준다. 그리고 “네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며 어깨를 두드리고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이것이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알랭 드 보통은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일화를 전한다. 워즈워스는 자연 속에 살면서 경쟁이나 질투, 불안에 저항할 수 있게 됐다고 하며, 자연 속에서의 경험은 ‘재생의 힘’이 있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때는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고 했다. 보통은 이에 보태어, 떠들썩한 도시에서 마음이 헛헛해지고 수심에 잠길 때 자연을 여행하며 만난 이미지들에 의지하며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5) 그러한 삶의 위안은 자연에서의 하룻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큰 선물일 것이다.

한편, 위안을 넘어 구원을 얻은 이야기도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와일드>에서 주인공 셰릴은, 앞서 언급한 비박마니아들의 로망이자, 완주에 성공하는 이가 드물다는 극한의 도보코스 PCT를 걷는다. 꼬박 94일 동안 30kg의 짐과 함께 가정폭력과 마약으로 얼룩진 과거, 어머니의 죽음과 이혼의 아픔을 진 채 4,285km를 완주해낸 그녀에게 있어 자연에서의 생활이란, 단순한 위안을 넘어, 삶의 재생을 구하는 순례였을 것이다. 원작 도서 <와일드>는 이렇게 끝난다. ‘다른 모든 이들의 삶처럼 나의 삶도 신비롭고,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바로 그것.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셰릴의 싱긋 웃는 얼굴은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삶은 내버려두면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돌아보고 다시 정립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자아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제자리를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중요하다. 영화 <버터플라이>에서, 나비수집가 노인 줄리앙과 윗집 꼬마 엘자는 환상의 나비 ‘이자벨’을 찾으러 남프랑스의 산악지대로 떠난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천진한 대화를 나누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경험하지만 결국 나비는 발견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비 ‘이자벨’은 줄리앙의 집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엘자는 돌아와서야 엄마 ‘이자벨’의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멀리서 찾아 헤맨 ‘이자벨’은 사실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일상을 벗어나 거대한 자연의 품에 몸을 맡김으로써 소중한 것을 다시 보듬고 제자리를 찾는 것, 아마 떠나지 않았다면 인지하지 못했을 진실이다.

떠나지 않으면 휴식과 위안을 얻기 어려운 우리의 삶이 조금 서글프지만, 다행히도 “모험은 문 밖에 있다.” 꼭 히말라야나 남극에 가지 않아도 어떠한 형태로든 자연과 모험은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것이야말로 불모화된 도시의 삶을 재생하고, 다독이며 위로해, 마침내 삶을 ‘삶’이게 할 수 있는 힘일 것이다.


글·김지연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무석
사를 받았다. 오랜 기간에 걸쳐(2006~2008년) 싸이월드 페이퍼와 올리
브TV홈페이지 등에 미술에세이를 연재했다.

(1) 김용섭, <라이프 트렌드 2014>, 부키, 2013
(2)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의 생존 다큐멘터리, ‘인간과 자연의 대결 (Man vs. Wild)’의 주인공.
(3) 앨러스테어 험프리스, <모험은 문밖에 있다>, 윌북, 2015
(4) 스튜어트 에이버리 골드, <핑>, 웅진윙스, 2006
(5)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이레,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