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 일본의 이중성에 애증 교차

젊은이들 일본 문화 선호, 중-일의 오랜 갈등 누그러뜨려
교류 증진될수록 관계 호전… 일본 과거사 외면이 걸림돌

2009-11-05     양바오윈 | 베이징대학 교수·국제관계학

중-일 간의 긴장은 2004~2006년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 반일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나면서 정점에 올랐다. 그러나 긴장이 가장 고조된 순간에도 중국인들은 일본 제품을 계속 구매했으며, 젊은이들은 일본 음악을 듣고 일본 만화를 읽었다. 교역과 지적·기술적 연구 교류 역시 증가했다. 일본에 몇 달간 거주했던 양바오윈 베이징대학 교수가 이런 사실을 증언한다.


고작 좁은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분리된 중국과 일본은 2천 년 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가까운 이웃이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특히 1930~40년대에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후 중-일 관계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최근 20년간 서방 언론은 중국인 사이에 존재하는 ‘반일’ 감정을 중-일 관계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사실상 중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지식은 선형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몇 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1950~60년에는 국제 환경 때문에 두 나라가 공식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영화나 일본 침략전쟁에 관한 소설들을 통해서만 자신들의 이웃을 알고 있었다. 1972년 중-일 외교관계가 정상화되었지만 상황이 별로 변화되지 않았다. 당시 중국이 문화혁명의 혼란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세계에 대한 개혁·개방 정책은 70년대 말에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중국인들은 일본을 근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번영한 일본과 매력적이고 교양 있는 일본인을 발견했다. 많은 중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배우고 싶어했으며 수많은 중국 젊은이들이 온갖 수단을 통해 일본에 공부하러 가거나 일본에서 일자리를 얻으려 노력했다.(1)

일본 정치인들 야스쿠니 참배에 실망

그러나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보수 성향을 충동질했기 때문에, 일본 전역에 이런 성향이 점점 퍼지게 되었다. 대립은 주로 역사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일본 당국은 수정주의적 시각을 띤 교과서의 출간을 허용했다. 심지어 몇몇 지도자들은 일본을 위해 전사한 군인들과 상당수 전범을 기리는 야스쿠니신사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 특히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2001~2006년 야스쿠니신사를 연속 참배했다.

결과적으로 중-일 관계는 상당히 우려스런 긴장 단계에 접어들었다. 중국인들은 1937년의 난징학살을 잊지 않고 있었는데, 일본 당국의 이런 태도가 중국인들의 예전 상처를 들춰냈던 것이다.

1972년 중-일 관계 정상화 협상 때, 중국 정부는 도쿄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중국인들에게 입힌 피해에 대해 통절히 참회한다는 조건하에 모든 전쟁배상 요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볼 때 일본 당국은 자신의 약속을 확실히 저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동중국해 해상경계선인 댜오위다오(2)의 주권,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군대가 중국 땅에 폐기한 화학무기(3) 등과 같은 다른 문제들이 양국 간에 현안으로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은 중국인들에게 불만감을, 심지어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의 여러 대도시에서 2005년 3월과 5월에 발생한 시위는 이런 감정들이 폭발했다는 사실을 드러냈고, 결과적으로 서구 옵서버들은 중국인들이 반일 감정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4)

그러나 이것은 가혹하게 중국을 침략해 점령한 일본에 대해 중국인의 일부가 갖는 시선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중국인의 눈에는 일본에 대한 또 다른 이미지가 존재한다. 개방 정책이 가속화되면서, 자신의 눈으로 일본을 직접 목격한 중국인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상당수 중국인들이 일본인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했고, 다른 많은 중국인들은 일본 제품, 영화, 소설 등을 통해 일본을 알게 되었다. 많은 수의 학생, 교사, 공무원, 심지어 노동자, 여행객이 단기 또는 장기 체류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중국인 이민자 급증 속 일본 이미지 상승

중국 이민자 수가 일본에서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정보산업의 발달은 이웃 일본을 더 잘 배우거나 이해하는 데 원활하고 신속한 통로 역할을 했다. 30여 년간의 개혁·개방 정책의 결과, 중국인들은 일본을 포함한 외부 세계를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중국인들의 눈에 일본은 수준 높은 교육 시스템과 신기술을 갖춘 선진국이다. ‘메이드 인 재팬‘ 제품들은 높은 품질을 갖고 있으며, 일본 어디에 가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환경이 잘 보존돼 있다. 일본인들은 예의 바르고 상냥하다. 이 모든 것은 일본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한다.

다수의 중국 젊은이들이 일본의 의상, 음악, 만화영화, 만화, 전자오락에 열광한다. 심지어 2005년의 시위 기간 중에도 학생들을 포함한 많은 중국인들이 중-일 관계를 냉정히 처리하자고 호소했다.

2006년 10월 ‘쇄빙 무드’를 조성한 아베 신조 총리의 중국 방문 이후 양국 관계가 증진되고 접촉도 늘었다. 2007년 4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도쿄를 방문함으로써 ‘해빙’ 시대가 열렸고, 8개월 후 ‘봄의 개막’을 알리는 후쿠다 총리의 중국 방문이 이어졌다. 2008년 5월 6~10일 ‘만개한 봄을 알리는’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일본 방문이 이루어졌다. 양국 지도자들이 ‘상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천명하는 공동선언에 서명함으로써 중-일 관계는 새로운 도약 단계를 맞이했다.

쓰촨성 대지진 때 도움 줘 이미지 크게 향상

이런 관계 증진은 당연히 일본과 일본인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었다. 중국인들은 2008년 5월 12일 쓰촨성 대지진 때 일본 구조대의 신속성과 효율성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특히 중국인들은 붕괴된 건물 잔해 속에서 발견된 희생자의 시신 앞에서 조의를 표하는 일본 구조대원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보고 감동을 받았다. 구조대가 일본에 귀환했을 때, 구조대는 공항에서 중국 학생대표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사실상 일본은 이중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양국 사이에 존재하는 난관들, 특히 역사 문제 때문에 부정적 모습이 드러나고, 반면 일본인들을 더 이해하고 알게 됨으로써 긍정적 모습이 드러난다. 교류가 증진될수록 상호 간의 이해도 더 증진될 것이다.     

글·양바오윈 Yang Baoyun
베이징대학의 아시아·태평양 연구센터 부소장이며 국제관계학 교수

번역·고광식 kokos27@ilemonde.com 
파리8대학 언어학 박사. 한국외국어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각주>

(1) 일본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3년 46만2396명의 중국인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

(2) NDLR. 일본에서는 이 섬을 센카쿠열도라고 부른다.

(3) 중국 통계에 따르면, 일본은 200만t의 화학무기를 40여 곳에 폐기했는데, 대부분 헤이룽장, 지린, 랴오닝의 3개 성에 집중돼 있다.

(4) 클로드 르블랑, ‘베이징과 도쿄 사이, 민족주의의 그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4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