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배당’, 이제 박근혜정부가 답할 때!

2015-12-01     이재명

지난 11월 25일, 성남시의회는 재적인원 34명, 출석인원 34명, 찬성 18명, 반대 16명의 표결로 청년배당 지급 조례안을 가결했다. 국내 최초로 청년배당 조례안을 제정한 것이다. 이로써 성남시는 청년들에게 청년배당을 지급할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융단폭격처럼 쏟아진 정부여당의 ‘포퓰리즘’ 공세를 뚫고 일궈낸 성과물이다.
청년배당이 주목 받은 이유는 ‘기본소득’ 개념을 도입하는 국내 최초의 정책이기 때문이다. 청년배당이 안착된다면, 국내 복지 개념은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성남시의 도전에 주목하는 이유다. <편집자>

기본소득, 너는 누구냐?

‘기본소득’이란 우리 사회의 공동의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기여 등 어떤 조건 없이 모든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분배를 보장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앙드레 고르는 〈경제이성비판〉에서 한 사회의 생산력은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동일한 생산량을 위해 요구되는 노동량은 계속 감소하므로,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노동 비례 소득을 유지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지탱할 수 없다고 했다. 앙드레 고르는 대안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주장했다. 조건 없이 지급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은 기존의 사회보장과 다르다. 가구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로 지급되며 노동 요구나 노동 의사와 무관하게, 자산이나 다른 소득의 심사 없이 보장되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을 이야기할 때, 나미비아에서의 사례를 빼놓을 수 없다. 아프리카 대륙 남서부에 있는 작은 나라인 나미비아의 오미타라 지역에서는 지난 2008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만 2년 간 주목할 만한 실험이 진행됐다. 60세 이상 노령연금 수혜자들을 제외한 모든 주민에게 1인 당 매월 1백 나미비아 달러(약 1만 5천 원)를 아무런 조건 없이 지급한 것이었다. 주민들은 1만 5천 원을 받기 위해 소득과 재산이 얼마인지 신고할 필요도 없었다.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똑같은 금액을 지급받았다. 그 돈을 어디에 써야한다는 조건도 없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실험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자, 기본소득 외에도 주민 평균소득이 29% 늘었다. 자영업과 고용이 활발해지면서 마을의 실업률은 60%에서 45%로 떨어졌다. 아이들의 건강상태도 확연히 좋아졌다. 42%였던 아동 영양실조 비율이 6개월 만에 17%로 떨어졌고, 1년 후에는 10%로 떨어졌다. 학생들이 학비를 내고, 교복을 입고,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교실 분위기가 좋아졌다. 결석하는 학생들도 없어졌고, 성적도 오른 것.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성남시에 일정기간(3년 이상) 거주한 만 19세~24세 청년들에게 분기별 25만원 이내의 소득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1년에 1백만 원 꼴이다. 성남시는 수급자의 선택권을 넓히기 위해 청소년기본법을 근거로 19세~24세로 청년배당 지급대상을 정했다. 청소년기본법에선 청소년을 9세~24세로 규정하고 있으며 청년고용 촉진법에서는 15세~29세를 청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청년고용 촉진법을 근거로 할 경우, 예산의 사용분야가 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의 경우 구직활동 경험이 있어 실업급여 대상의 중복수혜 문제점도 고려했다.
다만, 성남시는 재정상의 이유로 시행 첫 해인 2016년에는 만 24세에 우선 지급하고 대상을 점차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내년 예산안에 113억 원도 포함시켰다. 특히, 성남시는 ‘청년배당’을 지역화폐인 성남사랑상품권과 지역 내에서만 사용가능한 전자화폐로 지급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선순환구조를 만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청년 지원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한신대 강남훈 교수가 진행한 성남시 ‘청년배당’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113억 원의 청년배당을 지급할 경우, 지역 내 소득이 증가해 생산유발 효과와 취업유발 효과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남지역 내 유발 부가가치액은 최대 64.4억 원이 늘어나 총 소득은 177.4억 원으로 증가하며, 성남지역 내 생산유발 효과는 최대 92.3억 원, 취업유발 효과는 최대 102.8명이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왜 하필 청년일까? 세대별로 보면 현재 청년이 가장 취약한 계층이 돼버렸다. 청년세대는 우리 기성세대들을 먹여 살릴 다음 미래 세대들이다. 따라서 청년세대가 망가지면 기성세대들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청년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2015년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실제 실업률은 10.1%였으나 청년층의 실제 실업률은 22.4%에 달했다. 청년 취업자의 2/3는 비정규직이고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의 등록금을 내고 있다. 때문에 2013년 기준으로 대학생 10명 중 6명이 1천500만 원 이상의 부채를 지고 있다. 수도권 청년들의 주거 빈곤율은 전체 인구의 주거 빈곤율보다 훨씬 높다. 청년들을 위한 복지제도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생애주기별로 살펴보면 아동은 출산수당, 양육수당, 누리과정 지원 등의 무상보육 혜택을 받고 있다. 초·중·고생은 무상급식을 지원받는다. 노령층은 기초연금이 지급된다. 하지만 청년층을 위한 소득보장 정책은 매우 제한적이다. 복지의 세대 간 형평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성남시만 하더라도 생애주기 및 계층별 지원예산 규모를 살펴봤을 때 전체 예산 5천3백억 원 가운데 청년세대에 대한 지원은 34억5천만 원에 불과하다. 비율로 따지면 0.65%에 불과하다. 반면, 노인 지원사업에는 전체예산의 29.6%인 1,571억 원을 쓰고 있다. 이중 노인 기초연금에만 1,193억 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청년배당 vs 청년수당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청년수당’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정책이다. 청년배당이 보편적복지라면 청년수당은 선별적복지에 해당한다. 우선, 수급자격을 살펴보자.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소득수준, 취업여부 등과 무관하게 성남시에 3년 이상 거주한 19~24세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학생도 취업자도 아닌 ‘사회 밖’ 청년 3천명만을 대상으로 한다. 만 19~29세 저소득층(중위소득 60% 이하) 출신 청년에게서 활동계획서를 받고 심사를 통해 지원한다. ‘청년배당’은 조건 없이 분기별 25만, 연 100만원씩 지급하고, ‘청년수당’은 2~6개월간 월 50만원씩 ‘사회참여활동비’를 준다.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인원수를 제한하고 일정 활동 이상을 해온 청년들에게 활동 지원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이어서 성남시 정책과 취지가 조금 다르다. 사실,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기본소득과는 무관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정부·여당·보수언론까지 나선 “포퓰리즘” 공세

성남시가 청년배당을 도입한다고 밝히자, 수구언론을 필두로 정부와 여당은 ‘포퓰리즘’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조선일보는 10월 5일자 사설에서 “그 돈을 시장이 개인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것처럼 헬리콥터에서 살포하겠다는 것은 다른 지역 주민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선심을 쓰겠다는 말이다. 그 돈이라도 받아쓰기 위해 다른 지역 청년들이 무더기로 성남시로 거주지를 이전할 가능성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세금을 사용해 유권자를 매수(賣收)하는 행위”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도 사설에서 “직업이 있든 없든, 잘살든 못살든 모두 100만 원씩 세금으로 퍼준다는 데 얼마나 많은 국민이 박수칠 지 의문”이라며 “사실상 청년들에게 돈을 뿌려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전형적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도 거친 표현을 써가며 청년배당을 비판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0월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마치 아르헨티나를 망쳐 놓은 에바 페론, 그리스를 망친 파판 드레우를 보는 것 같다”며 “어려움을 겪는 청년의 마음을 돈으로 사겠다는 전형적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23일 기재부 확대간부회의 자리에서 성남시의 ‘청년배당’과 서울시의 ‘청년수당’ 정책을 겨냥해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시혜성 현금 지급 같은 포퓰리즘 정책은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패널티를 부과해서라도 무분별한 무상복지사업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이에 즉각 반박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11월 19일 “서울시와 성남시가 취업절벽 상태에 있는 청년들에게 청년수당·배당이라는 정책을 발표했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은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고 있다”며 “청년의 건강한 정신을 파괴하는 아편 같다는 막말까지 하고 있다”고 정부여당의 주장을 비판했다. 같은 달 24일,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도 원내대책회의에서 ‘청년수당’과 ‘청년배당’ 정책을 거론하며 “정부가 사회보장기본법으로 차벽을 치고, 여당이 포퓰리즘 정치공세로 물대포를 날릴 게 아니라 공유하고 실천해야 할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포퓰리즘이란 지지획득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할 때 쓰는 말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청년펀드’ 조성을 할 정도로 청년문제가 심각한데, 부정부패를 없애고 세금을 아껴서 성남시 자체재원으로 청년역량을 강화하겠다는데 이를 포퓰리즘이라 할 수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당시 65세 이상이면 예외 없이(이건희 회장까지 포함해) 연간 24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한 적이 있다. 먼저 이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왜 노인기초연금은 복지이고, 청년배당은 포퓰리즘인가?

이제 박근혜 정부가 답할 차례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이제 정부와의 협의만을 남겨놓고 있다. 성남시는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에 따라 지난 9월 24일 보건복지부에 협의를 요청했다. 법에 따라 90일 이내에 협의를 완료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와의 협의가 완료되면 2016년 1월부터 청년배당을 시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제동을 건다면, 청년배당의 실행은 어려워질 수도 있다. 행정자치부는 사회보장제도 신설·변경 시 사전협의를 위반하면 지출금액만큼 지방세 교부금을 깎는 내용의 지방교부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성남시가 정부의 반대에도 강행한다면 정부 교부금 감액이라는 ‘보복’을 감수해야만 한다. 청년배당은 시의회의 동의를 거쳐 자체예산으로 진행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소관 사무이며, 이 같은 복지정책에 대해 중앙정부는 반대할 명분도, 근거도 없다.
성남시는 준비가 끝났다. 이제, 박근혜 정부가 답할 차례다.


글·이재명
성남시장(2010~). 공약이행율 2년 연속 1위를 했으며, 행사예산을 쥐어짜 공공성 강화에 노력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 법대 졸업 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군사정권의 판검사 발령을 거부하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했으며, 부정부패감시 운동, 시립의료원 설립운동을 하다 2차례 구속 수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