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EU의 이기심, 기아 내몰리는 최빈국들

각종 편법 동원해 반덤핑 제소 비켜가…제도적 차별부터 시정해야

2009-11-05     자크 베르틀로 | 경제학자

전세계적으로 2050년이면 93억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인류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높은 인구증가율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최빈곤 개발도상국에는 특별히 의심스러운 도전이 될 것이다. 최근 조사를 보면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이 이 국가들에 가장 많이 살고 있고, 2007~2008년 곡물 가격 폭등으로 폭동이 발생한 국가도 바로 이곳들이기 때문이다. 이 국가들은 토질은 좋으나 경제적 수단이 미비해서 개발이 안 돼 있다. 선진국은 연료용 곡물을 수입하기 위해, 아시아와 걸프만 국가들은 세계 곡물 가격이 급등할 경우를 대비해 곡물을 비축하려고 이곳 토지를 호시탐탐 매점하고 있다. 게다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매년 수확량이 15%에서 30%가량 줄어드는 상황이다.

2007년과 2008년 국제 곡물 가격 폭등은 곡물 가격 구조의 허약함을 드러냈고, 가격의 자율 조정이라는 매커니즘에 의심을 갖게 했다.(1) 곡물 생산은 단기적으로 안정적 수요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 정도에 따른 굴곡만으로도 가격과 수입에 큰 변화가 생긴다. 이런 이유로 이집트의 파라오 시대 이래로, 각 국가들은 수입량을 조절하고 비축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농업 분야에서 1980년대 이래로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강요에 따라 후진국은 교역의 자유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또한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체제를 대신해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의 ‘농업에 관한 협약’ 체결 당시, 더 싼 수입 가격을 좇는 다국적 식료품 기업들의 탐욕은 그곳 심장에까지 미쳤다. WTO의 모든 가맹국이 모이기 전에 유럽연합(EU)과 미국이 맺은 농업 관련 협정은 후진국엔 불공평한 내용으로 이뤄졌다. 특히 덤핑을 정의한 점이 더욱 그렇다. WTO는 수출업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나라의 행위를 덤핑으로 규정했는데, 수출 가격이 국내의 어떤 사정으로 실제 생산비보다 낮더라도 그 가격이 내수 시장가격과 같을 때는 덤핑에 해당되지 않는다. 1992년부터 브뤼셀과 워싱턴은 형식적으로는 덤핑에 해당되지 않도록 그들의 내부 시장가격을 가시적으로 낮춰 덤핑의 범주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식량 생산을 늘려야 한다

게다가 WTO가 파란색으로 표시해 허용을 뜻하는 보조금과 오렌지색으로 표시해 제한하도록 요구하는 우회적인 보조금 사이의 구별(2)도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되풀이하는 EU 농업정책과 미국 ‘농업법’의 개혁도 그 본질은 이 술책에 근거하고 있다.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개발어젠다(DDA·Doha Development Agenda)에서도 미국과 EU는 후진 개도국의 시장 개방을 조건으로, 1995~2000년 자국 농업 분야에 지급한 보조금의 80%와 70% 삭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미국과 EU는 실제로는 광범위하게 ‘우회적이고 파행적인’ 수준에서 농업보조금을 지급해왔다. 2007년의 경우를 보면, 미국은 보조금이 85억 달러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282억 달러였으며, 마찬가지로 EU도 당초 회계연도인 2005~2006년에 보조금 실지급액이 431억 유로라고 발표했으나 729억 유로인 것으로 밝혀졌다.(3) 보조금 지급을 줄이겠다고 한 그들의 말은 공언이었던 셈이다.

이 두 거대 수출국은 WTO의 사무총장과 농업협상분과 위원장을 자기 편으로 삼고 있다. WTO의 분쟁조정기구인 항소위원회(4)는 2001년 12월 3일의 캐나다 유제품 사건 판결 때, 수출제품에 대한 내부 보조금도 덤핑에 포괄적으로 포함시킨 반면, 2005년 3월 3일의 미국 면화 사건 판결 때는 일정한 액수로 고정된 미국의 직접 보조는 푸른색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10억 명의 인구가 단백질 결핍이나 무기염류 중 희유원소 결핍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아는 FAO는 지금부터 2050년까지 전세계적으로 식량을 70% 증산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996년 식량 문제에 관한 세계 정상회담에서 두 가지 주요 조치가 제안됐다. 하나는 농업 분야를 위한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의 자본 이동인데, 그 규모는 애초 205억 달러로 추정됐으나 조금 뒤 440억 달러로, 그리고 현재는 79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교역의 자유화다. 자본의 이동은 환영할 일이나 현재 추진 상태로서는 그다지 믿을 만하지 못하다. 반면 교역 자유화는 후진 개도국의 예산 축소를 가져와 농부들의 파산을 속출시킨다.

사하라 이남 국가 같은 최빈 후진국의 진정한 발전을 도모하려면 미국과 EU에서 성공한 것처럼, 농부를 위한 농업 분야의 보호 조치가 필수적이다. 더욱이 부유한 나라들은 농업 분야에서 개발도상국 평균치보다 낮은 중간 관세(관세를 높은 세율, 중간 세율, 낮은 세율로 구분지어 해당 품목의 관세를 중간 세율로 선택함-역자)임에도 부유한 나라일수록 기초식량 분야를 외국 농산물로부터 더 많이 보호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사실 현재 이 중간 관세권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실정이다. EU에서는 농업 관세 품목 2202개에 대한 중간 관세가 22.9%이고 특혜관세의 경우 10.5%일지라도, 곡물에 대한 중간 관세는 8개국으로 구성된 서아프리카경제통화연합(UEMOA)에서는 5%인 반면, EU 27개 회원국에서 50%에 달한다. 분말우유는 서아프리카에서는 5%, EU에서는 87%, 당 제품은 20% 대 59%, 닭·소·돼지를 포함한 냉동 육류는 20% 대 66%다. 이것만 보아도 중간 관세는 의미가 거의 없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부유한 나라일수록 그들이 수입하는 기초식량 제품의 비중이 미미한 편이다. 2001~2004년 기초식량 제품의 비중은 곡물의 경우 미국에서는 1.4~5.9%이고, EU에서는 5.9%, 사하라 이남 서아프리카 국가에서는 19.3%, ##서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18.9%이다. 유제품의 경우 미국에서는 2%, EU에서는 2.7%, 개도국에서는 10.3%, 서부 아프리카에서는 39%에 달한다.

농업생산 분야에 대한 보호 조치의 극적 효과는 케냐와 UEMOA 소속 국가들 사이를 비교해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케냐에서는 분말우유에 대한 중간 관세가 1999년 25%에서 2002년 35%로, 2004년 이후로는 60%까지 오른 반면 연합 소속 국가에서는 5%대에 머물렀다. 케냐는 국민 1인당 112ℓ를 소비하며 유제품 수출도 늘려가고 있다. 반대로 1인당 우유 소비량이 35ℓ인 연합 소속 국가는 총 우유 생산량의 64%에 맞먹는 양을 수입하고 있다.

이런 사실에 비춰볼 때, 식량 주권의 원칙에 입각해서(5) ‘농업협약’처럼 국제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모든 농업정책을 다시 손질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즉, 원하는 대로 식량과 농업 정책을 펼 수 있는 권리를 각 나라 혹은 국가연합 공동체에 부여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덤핑을 시행해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에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덤핑의 범주에는 명목상 가축사료에 주어지는 보조금 같은 변형된 형태의 보조금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EU는 녹색당이나 유럽의회의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다양한 비정부기구가 주장하는 것처럼, 환경이나 최소한의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지 않는 나라들로부터의 수입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농업시장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이다. 사실 브뤼셀이 강요하는 높은 중간 관세권의 경우, 만일 도하 라운드 범주 안에서 협약이 체결되고 우선적으로 2010년 제1회기에 EU의 의장국이 되는 스페인이 바라는 대로 남미공동시장(MERCOSUR)(6)과의 자유교역 협약이 마무리되면 그 요율이 낮아질 것이다. 그런데 유럽 농부들의 생존은 내수시장의 통제에 달려 있다. 2005~2007년, 총생산량의 77.5%가 내부 수요로 소비됐던 것이다.

일반화된 덤핑을 거부해야 한다

따라서 EU는 식량 주권에 관한 EU 농업정책과 ‘농업협약’을 개정하고, 일반화된 덤핑을 거부하며, 식량을 가축용 사료로 전환 생산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국제 농산물 가격이 보조금을 제외한 상태에서 내수 가격을 웃돌면 수출을 막지는 않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겨우 EU의 평균 생산비 정도의 수익을 올리는 농부들의 생존을 위해 보조금이 필요하다면, 예상 생산량을 미리 파악한 뒤 생산량의 일부를 폐기하는 조건으로 최소한의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있게 가변 가격으로 보상해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 보조금은 물론 상한선이 정해져야 하며, 그 액수도 소속 국가별로 다를 수 있다. 아무리 적은 양을 생산하더라도, 이 보조금은 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 ‘다기능 농업’(7)과 같이, 사회적 혹은 환경적인 이유로 해서 보조를 받을 필요성이 있는 농부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생산량과 관련해 농산물별 상한선, 즉 과잉 생산이 되지 않도록 산물 생산 쿼터를 정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 상한을 넘지 않는 선에서 연합 소속 국가들이 토지를 특정 농산물에서 다기능 농업 생산물 같은 다른 작물의 생산지로 전환할 경우 운송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각 나라에 균형 있게 생산물을 분배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 해도 농업정책 개정은 EU보다 후진 개도국에 더 시급한 문제다. 2007년 생선을 제외하고도 133억 달러에 달한, 점차로 증가 추세에 있는 이들 나라의 식량 부족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EU가 도하 협상에서 개도국의 용역 분야와 농업 외 분야의 시장 개방에 대한 대가로 내세운 것이 우회적인 농업보조금과 수입 제한 조치의 축소라는 것을 감안하면, 개도국은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개도국은 EU과 미국이 ‘농업협약’의 여러 조항을 억지 해석하고 있으며 개도국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폭로할 수도 있고, 이를 WTO에까지 연장할 수도 있다. 만일 보조금 지급액과 수입 제한을 축소하겠다는 미국과 EU의 공언이 뻔한 거짓말임이 확실히 부각된다면 개도국은 용역 분야와 농업 외 분야의 시장 개방 압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이때부터 식량 주권에 관한 농업정책과 농업협약을 개정할 길이 열릴 것이다.

글·자크 베르틀로 Jacques Berthelot
반세계화 비정부기구(NGO) 단체인 ‘국제금융과세연대’(Attac) 기술위원회 위원.

번역·이진홍 memosia@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 주요 역·저서로 <진보와 그의 적들>(2003), <자살>(2004) 등이 있다. 


<각주>

(1) 도미니크 바이야르, ‘세계 곡물 시장이 어떻게 폭발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타크> 2008년 5월호 참조.

(2) WTO는 보조금을 범주별로 구분한다. 녹색은 제한 없이 허용된 경우이고, 푸른색은 허용된 보조금, 오렌지색은 피하거나 줄여야 할 보조금을 말한다.

(3) 자크 베르틀로, ‘EU는 도하 라운드에서 자기들의 내부 농업 보조금을 줄이지 않는다’, ‘미국은 도하 라운드에서 자기들의 내부 농업 보조금을 줄이지 않는다’, 2009년 8월2일, www.solidarite.asso.fr.

(4) WTO의 분쟁조정위원회를 통상적으로 일컫는 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12월호 참조.

(5) 제라르 쇼플렝, 알렉산드라 스트리크너, 오렐리 투르베, <식량 주권, 유럽은 무얼 해야 하는가?>, 실렙스 출판사, 파리, 2009.

(6)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우루과이·베네수엘라가 현 가맹국이며, 볼리비아·칠레·콜롬비아·푸에르토리코는 연합국가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7) 1990년 이후 등장한 개념으로, 농업 생산이 가진 전통적인 기능 외에도 농업은 ‘다양한 기능’으로 환경적 내지는 사회적 차원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EU는 실제로 약 1만2천 개 품목의 차등 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 중 농업 분야 산물에는 2202개 차등 관세가 매겨지는데, 중간 관세란 이 가운데 품목과 수입량에 따라 특정 품목의 어느 한 등급을 선택해서 부과하는 관세를 말한다. 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입을 제한하기 위해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