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체제로 회귀하는 한국

2015-12-31     성일권

이 글은 프랑스판 1월호 4~5면에 게재된 내용으로, 프랑스어 원문은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한국 경제가 휘청거린다. 2015년 경제 성장률은 2.5%로 5년 전인 7.1%와 비교하면 저조하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불만의 목소리에, 서슬 퍼런 진압이 가해지고 있다. 독재정치가 - 공식적으로 - 막을 내린 후 처음으로  노조 위원장이 투옥됐다.


2015년 12월 5일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2013년 2월에 집권한 박근혜 정권의 독단적인 국정운영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참여 인원은 4만여 명. 그보다 3주 전인 11월 14일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118개 진보성향 노동단체들이 노동법 개악, 역사교과서 국정화, 한·중 FTA 등에 대한 반대시위를 이끌었고 약 13만 명이 참여했다. 경찰이 발포한 물대포로 30여 명이 부상을 입었고 이 중 한 명은 중상이다.

시청광장의 집회현장에 있던 서울대 강사 김주현씨는 분노를 터뜨렸다.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벌이는 평화 시위를, 어떻게 불법 폭력 집회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복면시위를 한다고 해서, 어떻게 대통령이 자국민을 테러조직 IS에 비유할 수 있습니까?” 실제로 일부 시위자들은 대통령을 조롱하고 진압을 피하고자 나비, 고양이, 호랑이, 혹은 박근혜 얼굴 모양으로 된 다양한 복면을 쓰고 있었다. 경찰은 시위 장면을 촬영하거나 민간 CCTV를 보며 시위자들의 신원을 확인해 출석을 통보했다.

시위 당일인 12월 5일에도 서울중앙지법은 불법시위 등의 혐의로 시위 참가자 6명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보다 며칠 전에는 약 7백 명의 경찰관이 6시간 동안 민주노총 건물을 포위 수사해 자료와 컴퓨터 등을 압수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불법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았고, 조계종 사찰에 3주 간 은신해 있다가 경찰서에 자진출두했다. “저는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개악을 막기 위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1급 수배자 한상균의 실질적인 죄명입니다.” 한상균 위원장이 체포 당시 했던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탈세의 은밀한 주범인 재벌들의 범법행위에 대해선 ‘관용’을, 자신의 반대세력에겐 가차 없는 사법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추운 겨울날, 많은 사람들을 거리 시위에 나서게 한 이유들 중 핵심적인 것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법 개정과 의료 민영화다.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목으로,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고 비정규직을 늘릴 수 있게 관련법을 개정하려고 한다. 현행법상 모든 비정규직 고용자는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법이 통과되면 현행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이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인 동료와 같은 일을 해도 월급과 복지에서 많은 차별을 받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2011~2015년 4.9% 증가했다.(1) 이어서 청년층의 비정규직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노동법 개정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추진한 여타의 ‘개혁 조치’ 중 하나인데, 박 대통령은 그 결과에 자화자찬하고 있다. “한국은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등 4대 핵심 부문 구조개혁을 중점 추진해왔고 그 덕에 포용적 경제 성장이라는 성과를 내게 됐습니다.”(2) 박근혜 대통령의 설명이다. “포용적 경제 성장이 국민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의 정책이 가져온 부작용(같은 성향인 전임 대통령의 정책이 가져온 부작용도 함께)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2010년도에 6.2%를 기록한 경제 성장률이 2014년에 2.7%로 곤두박질쳤고 높은 스펙을 자랑하는 젊은이들조차 점점 일자리를 얻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모든 책임이 노동조합에게 있다는 듯한 뉘앙스의 말을 했다. “민주노총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훨씬 부강해졌을 것입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즉 국민소득도 3만 달러 대에 진입했을 것입니다.” 지난 11월 27일 새누리당 주재 회의에서 김무성 대표가 했던 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2만 7,315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수익 창출을 내세워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부유층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의료관광 추진이 필요하다며, 의료 관광으로 1만1천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민영화가 추진될 경우,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커지고, 치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라고 많은 시민단체들은 지적하고 있다. 11월 14일 시위에서는 11월 30일에 국회가 비준한 한‧중 FTA에 반대하는 농민과 어민들이 대거 참여했다. 시위에 참가한 농민과 어민들은 생계 위협, 저가 중국산 제품의 범람을 두려워했다. 농민과 어민의 우려를 어느 정도는 이해한 것인지, 정부는 10년 간 총 1조 원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마지막으로 시위를 촉발시킨 또 다른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이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정책에 반대하며 들고 일어섰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을 찬양하고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쾌거를 왜곡하며, 좌편향된 현재의 교과서를 수정해 ‘올바른’ 역사관을 줄 수 있게 됐다”고 했다.(3)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대립각은 지금도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 한국은 해방 이후 역사교과서 검정제를 유지하다 1974년 박정희 정부시절(1962~1979)에 처음 교과서 국정제를 도입했다. 2년 전인 1972년에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대통령의 연임제한 규정을 폐기해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해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했다. ‘1972년 유신’으로 교과서 국정화 추진이 쉬워졌고, 정부에 대한 미화와 심각한 역사 왜곡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1980년대 말부터는 독재정치가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통해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를 억누르려 한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지적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이미 친일사관에 물든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가 발행된 바 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로 인한 조국의 근대화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조국의 산업화를 이끈’ 재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로’를 높이 샀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후 정부의 집필기준안에 충실한 교학사 교과서도 집필방향이 동일하다.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역사학자들은 국정 교과서 정책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교과서 국정화의 반대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11월 10일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라는 발언을 했다.

취임 3년차인 박근혜 대통령은 벌써 20회의 해외순방을 다녀왔다. 친정권, 친재벌 성향의 보수언론(대부분의 신문과 TV방송)은 루브르 파리장식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한국공예 패션 디자인전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입은 빨간색 코트와 진회색 바지정장을 “한국 패션홍보차원이다”며 극찬했다.(4) 반면 이 매체들은 시위자들에 대해서는 냉소적으로 보도했다. “집회주최측이 착한 시위대로 위장하기 위해 평화시위를 벌이고 있다. 공권력이 이런 위장술에 속아선 안 된다.”(5) 최근 어느 해설자가 했던 말이다. 복면 시위 금지법은 이미 국회에 상정된 상태다. 독재정권이 - 공식적으로 - 무너진 후 처음 목격하는 독단적인 정치다.


글·성일권 Sung Il-Kwo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발행인. 주요 저서로,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 1>(공저, 2015, 길),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2006, 고즈윈> 등이 있다.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졸. 번역서로는 <워크숍 매뉴얼>(2015) 등이 있다.

* 이 글은 프랑스판 1월호 4~5면에 게재된 내용으로,
프랑스어 원문은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1) 고용노동통계, 2015년, http://kostat.go.kr
(2) 아시아·태평양지역경제협력체(APEC) 홈페이지와의 인터뷰, 마닐라, 2015년 11월 17일, www.apec.org
(3) 국회 연설, 2015년 10월 27일
(4) <문화일보>2015년 12월1일
(5) <TV조선> 2015년 12월5일